의료사고 자체를 줄일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의사 수부터 증원해야
일본같이 수평적 관계에서 사인(私人) 간 중재가 소송에 우선하는 제도 마련 필요
사인 간 중재 제도는 모든 의사가 감정 의견을 개진하는 개방적 환경하에서 가능
의사들 간 침묵의 공모(의료정보 편중) 및 조정중재원 독점 감정서 발부 제도 지양해야

“의료분쟁 관련 법제도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공청회”가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 등의 공동 개최(2005.9.8.)로 국회에서 열렸다.(사진출처: 국힘당 의원 서명옥 블로그에서 갈무리. https://blog.naver.com/gangnam_myungoksuh/224000126590)
“의료분쟁 관련 법제도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공청회”가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 등의 공동 개최(2005.9.8.)로 국회에서 열렸다.(사진출처: 국힘당 의원 서명옥 블로그에서 갈무리. https://blog.naver.com/gangnam_myungoksuh/224000126590)

지난 9.8일 국회에서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 등이 공동 개최한 “의료분쟁 관련 법제도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그 주요 목적은 의료사고 시 이른바 의사의 안전망 강화, 다시 말하면, 의사의 형사면책특례 입법화 추진을 위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고기가 물 만난 듯 가열차게 추진되던 형사면책특례 입법이, 이재명 정부 하에서도 어김없이 고개를 쳐들고 나온 것이다. 여기에 민주당 전진숙, 국힘당 서명옥,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이 공동 개최로 이름을 올렸다.

공청회 자료를 보면, 여러 나라의 사례를 소개한 다음, 의사의 형사면책특례 입법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그런데 공청회 자료 자체에서 소개되는 해외의 사례들은, 그 같은 결론을 뒷받침하기보다, 오히려 그 반대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위 공청회 자료에도 나타난바, 스위스에서 의료사고는 일반 민법에 준하여 처리될 뿐, 특별법이 없다. 또, 같은 자료에서, 독일 등에서는 의료사고 자체가 빈발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사회적 배경에 대해, 공청회 자료는 침묵하고 있으나, 그 이유는 의료가 상업화하지 않은 데 크게 기인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유럽 여러 나라의 의료는 공공의료가 중심인데, 이는 병원을 무료로 이용하는 것이다. 영국은 완전히 공공의료 체제이고, 유럽 다른 나라에서도 60~90%가 그러하다고 한다.

유럽 공공의료 기관의 의사는 봉급제이다. 독일에서는 개인 개업 의사도 준봉급제이다. 준봉급제라 함은 일정 보수 이상으로 생기는 수입에 대해서는 중과세 대상이 되어 국가에 환원하는 것이다. 일정 수준의 보수를 넘는 소득은 들이는 노력에 비해 수입이 턱없이 적으므로, 차라리 포기한다. 그래서 오전만 진료하고 오후에는 휴진하는 의사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의사들이 환자를 위한답시고 종일 시달려야 한다는 내숭 떨기는 통하지 않는다. 의료계가 가능한 한 돈을 더 벌기 위해 개처럼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오후에는 휴진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돈과 시간을 쓰는 것이다. 의사의 봉급 수준을 일정하게 제한하다 보니, 의사나 병원 간 지나친 경쟁이 생기지 않고, 의사 수 중감에 따라 소득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독일 정부에서 5,000명 의사를 증원한다고 해도 의사들은 반발하지 않았다.

한국과는 제도가 다른 독일에서는 의료사고 빈도수가 당연히 한국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의료가 돈벌이 수단화한 것이 아니므로, 돈 벌기 위해 과잉진료하다가 사고 나는 것도 아니고, 오후 휴진하는 의사들이 격무에 시달려 주의의무를 게을리하게 되는 환경에 내몰리는 것도 아니고, 의사 인력이 모자라 의사 아닌 PA(의사업무 보조 간호사)를 늘려서 인력 보충하자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독일을 의료사고 빈도 혹은 의료 소송 건수만 가지고 한국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한국의 이른바 전문가 및 위정자들은 목적성, 편향성을 가지고 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외국의 사례를 인용하는 데, 전제가 되는 다른 환경은 죄다 눈감고, 하고 싶은 것만 달랑 오려내서, 어디서 그런 것이 있더라고 하는 경향이 그러하다.

내각제를 하고 싶으면, 독일에서도 내각제 하고 있더라고만 하고, 다른 사회적 환경의 차이는 죄다 생략 해 버리는 것이 그러 하고, 또 위 공청회에서처럼, 한국처럼 의사들이 민사는 물론 형사 소송에 시달려 본업에 방해를 받는 데도 없으니, 의료사고 시 의사들을 위한 형사면책특례 입법을 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그러하다.

독일 내각제는 한국과 천양지차의 권력구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16개 주(州: 란트)가 독립 국가 같이 고유의 헌법(주법), 행정부, 의회, 법원 등을 갖추고 있어서 서로 간섭하거나 이를 받지 않는다. 서로 독자의 체제를 구축하고 있으므로, 주(지역) 간 갈등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중앙의 연방정부는 공동의 의제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권력을 주 정부로부터 위임받고 있다. 그런 연방정부는 한국의 집권적 정치구조의 국회와는 천양지차로 달라서, 독일에서 내각제 하니 우리도 따라 하면 좋다는 논리는 전혀 성립하지 않는다. 독일이 하니 우리도 내각제 하자고 할 것이 아니라, 권력구조를 개편하여 독일같이 만드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선행 작업은 입법, 사법, 행정 모든 측면에서 각 지역을 독립 국가 수준으로 만들고, 중앙 권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렇듯, 독일과 같은 환경을 조성한 다음에야, 우리도 독일같이 내각제 하자는 말을 할 수도 있는 것이겠다.

지역 간 독립은 고사하고, 정반대로 현재 한국에서는 오히려 회자하는 바, ‘지역간 갈등’이라는 인식 틀(프레임)을 뒤집어씌운다. 이것은 뿌리 깊은 중앙집권적 독재의 전통을 잇는 것이다. 지역을, 있는 그대로의 고유성, 다양성으로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의 종속물 정도로 인식하고, 획일적으로 통합의 대상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의사들이 민사는 물론 형사 소송에 시달려 본업에 방해를 받는 데도 없다고 하는 주장도 그 같은 맥락에 있다. 한국에서 의료사고가 빈발하고, 의사들이 다른 나라보다 더 민형사 소송에 시달리는 것이라면, 그 이유를 찾아서 고쳐가야 하는 것이지, 의사들을 위한 형사면책특례 입법을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본말을 전도한 것이다.

OECD 통계에서, 한국에서는 의사들의 보수가 가장 높은 편에 들고, 인구 비례 의사의 수는 적은 편에 속한다. 전공의, 수련의 등의 노동환경은 아주 열악한 것으로 회자한다.서울 유수 병원의 유명 의사들로부터의 진료는 몇 달을 기다려야 ‘3분’ 진료한다는 말도 회자한다. 의사 인력이 턱없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PA가 상당부분 의사의 행위를 대신하고 있다.

게다가 의료계에는 앞으로 PA인력을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돌고 있다. 의사가 아니라 간호사를 늘려 의사 인력의 부족을 보충하겠다는 발상이다. 이런 의료계의 발상은 완전히 상식을 벗어난 것으로서, 일정 수 의사들의 아성을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고, 환자들에 대한 책임과 주의의무를 중심에 둔 발상이 아니다. 의사가 부족하면, 간호사가 아니라, 의사 수를 증원해야 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윤석열 정부에서 야기된 의료계 파탄은 의사 증원에 대한 반발이었다. 의료계는 의사 수 증원을 원치 않는다.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는 것이 의료계의 주장이다. 이 같은 의료계의 주장이 환자를 위한 것 같지는 않다. 의사 수 증원 반대는 의사들의 수입 등 보수 문제와 직결된 행동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의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지 않는 공공의료의 확충은 필수 의료, 혹은 농어촌 인구 희소지역의 의료를 해결하는 데도 주효하다. 봉급제로 하면, 어디라고 근무지에 따라 소득에서 손실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수는 같은데, 환자 수는 오히려 적으니 인구 희소 지역을 오히려 선호할 수도 있는 것이겠다.

필수 의료라고 할 때, ‘필수’라는 개념도 모호한 데가 있으나, 다소간 기피하는 분야의 의료에 대해서는 형편에 맞게끔 상응하는 응원 수당을 책정할 수도 있다. 이 같은 의료정책은 대중교통에 지원되는 지원금과 같다. 인구 희소지역의 대중교통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보조금을 통해 지원함으로써 불편을 해소하는 것이다.

의료조정중재원의 독점 감정 및 독점 중재 제도는 필히 타파되어야 한다. 감정 및 중재는 개방적, 다발적으로 모든 의사, 모든 개인이 주체가 되어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의료조정중재원이라는 국가기관의 공권력이 독점하여 미리 개입할 것이 아니라, 수평적 개인 간 중재가 선행하는 제도를 입법화해야 한다.

일본에서 의료소송 건수가 한국보다 적다고만 할 것도 아니고, 일본은 소송 이전 중재 제도의 천국이라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 중재는 수평적 개인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개인들은 어디서나 의사 감정서를 구할 수가 있다. 그래서 감정서 간의 진위, 의견 차이 등에 대한 상호 비교가 가능하다. 감정서라고 해서 내용과 가치가 다 동일한 것이 아니라서 교차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일본의 사회환경은 의사들 간 침묵의 공모가 의료소비자(환자)를 질식하게 하고, 독점의 공적 기관 조정중재원으로 의료소비자가 모일 수밖에 없도록 하는 한국과는 천양지차로 다르다. 상식으로도 그 내용에 동의할 수 없는 경우라 해도, 비교 평가가 불가능한 1개 독점감정서만을 발부하는 조정중재원의 감정서에 부득불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의사들은 모두 환자나 고객 등 의료소비자의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것이 의무이다. 가진 전문 지식을 동원하여 성심으로 대답해야 하며, 이를 어길 때는 형사처벌 받는다. 또 환자는 의사가 의무적으로 제공하는 의료정보를 무료로 이용하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이 또한 침묵의 공모로 카르텔(폐쇄적 연대)을 형성하여, 환자(의료소비자)에 대해 폐쇄적 특권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한국의 의사들과는 천양지차이다.

의료사고는 특별계급을 발생케하는 특례 입법이 아니라, 스위스같이, 일반 민형사 법에 준해야 한다. 또, 한편으로, 의료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의사의 주의의무를 실천할 수 있도록, 독일같이, 의사 수 증원, 의사 책임보험을 의무화하는 한편, 궁극적으로는 의료행위의 상업화를 지양하고 의사에 대한 일정 보수제도의 도입(의사 공무원제도)의 의료정책이 필요하다, 다른 한 편으로, 의사 의료조정중재원의 독점 감정 및 중재 제도 지양과 감정제도의 개방화(전문 지식을 지닌 모든 의사들이 감정의견을 낼 수 있도록), 소송 전 개인 간 수평적 중재제도의 활성화를 실천할 필요가 있겠다.

의료사고를 부추기는 과잉진료, 또 개인, 병원을 막론하고 책임보험 가입을 회피하는 현실 등, 의료 상업화에 기인하여 현재 한국에 횡행하는 온갖 암덩이를 그대로 존속시킨 채, 의사 형사면책특례 입법을 통해 의사들의 책임과 소송의 불편을 털어버리려고 하는 의사들의 주장은 환자 측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철면피의 극치이다.

최자영 객원편집위원  paparuna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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