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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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고 꿈틀꿈틀

 

시멘트로 포장된 산책로

죽은 지렁이가 가득하다

 

눈도 귀도 없는 것이

어젯밤 쏟아진 소나기에

얼마나 놀랐을까

숨이 막혀

땅속에서 견디기 어려웠나보다

 

하필이면 기어 나온 곳이

종일 폭염에 달구어진

시멘트 바닥이라니

 

살아보겠다고 서두르다가

엎친데 덮쳤다

 

아직 살아있는 지렁이

안쓰러운 마음에 나뭇가지로 집어

풀밭으로 옮겨 주었다

 

고맙다고 꿈틀꿈틀

온몸으로 인사한다

 

해설) 지렁이는 왜 비만 오면 땅 밖으로 기어 나오는 것일까? 그 이유는 땅 속에 집을 만들어 사는 지렁이가 땅속에 물이 스며들어 집에 물이 차면 산소가 부족해져 호흡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렁이는 호흡기관이 없어 피부를 통하여 호흡을 한다. 그런데 집에 물이 차면 공기를 얻기 어려워져 호흡을 하기 위해 땅 밖으로 기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지렁이는 비가 그치고 햇볕이 내리쬐면 땅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땡볕에 말라 죽게 된다. "시멘트로 포장된 산첵로/죽은 지렁이가 가득"한 것은, 지렁이가 "하필이면 기어 나온 곳이/종일 폭염에 달구어진 시멘트 바닥"이었기 때문이다. 지렁이는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 주는 이로운 생물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다. 징그러워 피해 다니거나 땡볕에 죽어가는 지렁이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하지만 이 시의 화자는 '아직 살아있는 지렁이'를 모른 척하지 않는다. "안쓰러운 마음에 나뭇가지로 집어/풀밭으로 옮겨"준다. 그러자 지렁이는 "고맙다고 꿈틀꿈틀/온몸으로 인사한다". 지렁이가 꿈틀꿈틀 움직이는 것은 본능적인 행동으로 살아 있다는 표시다. 그런데 그 행동을 화자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데 대해 고맙다는 지렁이의 인사로 표현한 것에서 동심의 따뜻한 시선과 인간미가 느껴진다.(신현배 동시시인)  

 

그림  출판사 제공
그림  출판사 제공

공동문패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에

식구들이 늘었다

 

처마 밑 제비네

밥하고 반찬하며

지지고 볶느라고

지지배배

지지배배

 

마당 가 잡초네

민들레, 강아지풀, 질경이

누가 누가 잘 났나

몸매 자랑

키 자랑

 

헛간 거미네

노총각 삼촌거미 장가가요

하객으로 바글바글

 

너도 나도 주인이라고

모여 사는 할머니 집

공동문패 달아야겠다

 

해설)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이지만 처마 밑 제비네, 마당 가 잡초네 민들레, 강아지 풀, 질경이, 헛간 거미네까지 모여 사니 시끌시끌하다.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에 식구들이 늘어나자, 요즘 보기 드문 왁자한 대가족 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물활론적 상상력으로 동식물 식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어 마치 한 편의 동화를 읽는 듯하다. 이 시는 "너도 나도 주인이라고/모여 사는 할머니 집/공동 문패 달아야겟다"는 마지막 연이 웃음을 자아내고 고개를 끄떡이게 한다. 할머니 집에 모여 사는 동식물들이 이미 한 가족이 되었지만, 각자 주인처럼 자유롭게 사니 공동 문패로 서로의 이름을 나란히 걸어 둘 만하지 않겠는가(신현배 동시시인)

 

 

편집: 조형식 편집위원

전영란 독자  chyr89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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