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겨레에서 이 기사를 보았다.

소통하겠다며…박대통령 ‘세월호 망언’ 목사까지 만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bluehouse/769199.html#csidx09db9816e08d3228323bba79e6ac223

박 대통령이 어제 오전 염수정 추기경을 청와대로 초청해 국정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는 것이다. 염수정 추기경은 어떤 의견을 내놓았을까? 의견이 없어 두 사람이 서로 조심조심 고개만 끄덕이지 않았을까?

이렇게 삐딱하게 생각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357일 매일미사

고백남기님이 물대포를 맞아 혼수상태에 빠진 그 다음날 4시부터 서울대병원 중환자실 앞에서는 ‘백남기 농민 쾌유를 비는 미사’가 매일 열리기 시작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주관하는 미사다. 날이 추워지자 미사는 서울대병원 정문 옆 농성천막으로 옮겨가서 316일 동안 열렸고, 9월 25일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다음날부터는 장례식장 3층 빈소에서 41일 동안 매일 4시에 위령미사가 열렸다. 장례식 전날인 지난 4일에 마지막 미사가 되었다.

마지막 미사는 가톨릭농민회 담당사제인 이영선(골롬바노) 신부의 노력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졌다. 새벽이면 동료 신부들은 이영선 신부의 문자를 받았다. 미사를 주례할 신부와 강론을 준비할 신부를 청하는 문자였다. 그런 노력으로 1년간 미사는 지속됐다.

▲ 마지막 미사 (사진 제공 김동호 주주통신원)

이영선 신부는 지난 11월 4일 서울대학교 장례식장에서 열린 마지막 미사에서 강론을 맡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미사에서 3가지 사항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어요. 1. 책임자 처벌 2. 대통령 사과, 3. 진상규명입니다. 이 세 가지중 어느 한 가지도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유가족이 쉴 수 있어야 하기에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비록 세 가지 요구사항 어느 것도 관철되지는 못했지만 이 싸움은 진 것이 아닙니다. 시민들의 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시신탈취를 막기 위해 제주도를 비롯하여 전국각지에서 몰려온 시민들, 그 시민들을 먹이기 위해 등장한 밥차, 그리고 끊임없이 지원되는 음식들... 어느 누구도 어떤 대접을 받기 위해 모인 사람은 없습니다. 이렇게 모인 것 자체가 바로 세상의 죄를 없애기 위한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 몸 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실천한 시민들이 바로 세상의 죄를 없애는 일, 세상을 바꾸는 힘의 원천입니다. 그 힘으로 3가지 요구사항이 꼭 이루어질 것입니다.”

명동성당 장례미사

장례식날인 지난 5일 명동성당 미사는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을 했고 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광주대주교는 강론을 했다.

▲ 명동성당에서

김희중 대주교는 강론에서 이런 말을 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백남기 형제가 우리 곁을 떠난 게 아니라 우리가 떠나보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먹거리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바라는 고인의 외침이 참혹하게 살수차에 의해 죽을 정도로 부당한 요구였나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해야할 국가가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아직까지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습니다. 부당한 공권력 사용으로 한 생명이 죽었는데 공식적인 사과도 없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 있는 분이 책임지고 이 사태를 해결해주기 바랍니다. 이는 갑자기 일어난 사건은 아닙니다. 컴퓨터칩을 팔아 살 수 없습니다. 농사를 지어서 사람답게 살자는 농민의 외침을 외면한 결과입니다. 우리 먹거리를 제공하는 이들의 눈물을 닦고, 법과 제도적 보완을 해주십시요."

김희중 대주교의 이 강론은 지난 10월 11일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 미사 강론의 연장선상이었다. 김대주교는 각 교구 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 위령미사를 봉헌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백남기 형제가 우리 곁을 떠났다기 보다는 우리가 임마누엘 형제를 떠나보낸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이러한 상황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 당국자들은 울고 있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십시오. 그게 할 일입니다. 이 눈물은 손수건이 아니라 법과 제도로써 닦을 수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예전에도 그랬다. 김희중 대주교는 세월호의 아픈 이들을 우선했다. 팽목항에 전담 사제를 발령 내면서 “교종님이 말씀하신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책임자 처벌은 둘째 문제입니다. 고통 그 자체에 함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참사의 진상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세월호 유가족의 큰 고통이므로 진상규명을 위해 천주교가 함께하겠습니다.”라고 했다.

▲ 고 백남기 농민의 장례미사가 5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리고 있다(사진출처 : 한겨레 신문 고한솔 기자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68906.html#csidxac7625ca0c09d3eabd76a7c53e0bcd)

미사를 집전한 염수정 추기경은 장례 미사에서 무슨 말을 했을까?

“현재 나라가 큰 위기와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진정으로 이웃을 위하기보다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세상을 불의로 얼룩지게 합니다. 미사를 통해 우리가 생명고귀함을 잊지 않고 늘 깨어있도록 함게 기도합시다" 고 했다.

미사가 끝나고 신자들은 이런 말들을 속닥거렸다.

“염추기경님은 너무 염치가 없어”

"숟가락만 얹은 거 아니야?”

"기자들 많이 왔네. 기자들 좋아하시는 추기경님이라."

“염수정 추기경님이 강론을 했어야 했는데.. 그래야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다 드러날 수 있었을 텐데.. ”

백남기님에 대한 문병이나 문상, 357회 미사에 단 한 번도 발걸음을 한 적이 없는 염수정 추기경이 미사를 주례한 것과 애매모호하고 두루뭉실 표현에 대한 비판이었다. 서울대 미사가 정치적인 개입이라고 생각하셔서 가보지 않은 걸까? 중립을 지키려고 저리 말씀하신 걸까?

염추기경은 예전에도 그랬다. 2014년 7월31일부터 9월4일까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광화문에서 단식기도회와 저녁미사를 매일 진행했다. 그 기간 중 프란치스코 교종은 광화문 시복식 참가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교종은 어떤 식으로든 매일 세월호 유가족을 만났다. 광화문 시복식 때도 단식 중이던 유민아빠 김영오씨의 손을 잡아주었다. 염추기경은? 한번도 광화문 미사에 참석한 적이 없다. 오히려 7월 25일 경, 강우일(당시 주교회의 의장) 제주교구 주교는 먼 제주에서 올라와 미사에 참석했다.

염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종이 떠난 후 세월호 유가족을 찾아가서 만나 이렇게 말했다. “가족들이 생각하는 대로 모든 게 다 이뤄지면 좋겠지만 어느 선에서는 양보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유가족의 손을 잡아주기는 커녕 그들의 아픈 마음을 한 번 더 할퀴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교황청 관료들, 영적 치매 걸렸습니다. 슬퍼하는 이와 함께 울고 기뻐하는 이와 함께 웃어야 하는 우리로선 인간의 감성을 잃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라는 말씀을 한 적이 있다. 솔직히 염수정 추기경이 생각났다. 염추기경이 슬퍼하는 이와 함께 슬퍼하고, 아파하는 이와 함께 아파하는 현장에 나타난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천주교에서는 가장 고귀한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compassion)이라고 한다. 동정심을 넘어서서 아픈 이들과 함께 행동하는 마음이다. 부디 천주교의 수장인 염추기경이 예수님의 compassion으로 무장하고 천주교를 이끌어나갔으면 좋겠다.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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