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회적 올림머리의 메타포

우리 역사상 올림머리가 이렇게 큰 화두가 된 적은 없었다. 세월호 침몰로 304명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는 국가적 재난의 상황 속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오전 내내 미적거리다가 결국 오후에야 미용사를 부르고 2시간에 걸려 머리를 하고 중대본에 나타났다는 그녀. 그녀의 올림머리는 전국민을 경악케 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인 그녀는 바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인 박근혜 씨다.  

본인으로서는 작년인지 재작년인지조차 헷갈리는 세월호 사건의 7시간에 대한 실체가 최근 밝혀지면서 올림머리 손질에 대한 이슈도 불거졌다. 머리손질에 2시간을 썼는지 20분을 썼는지는 본인들도 헷갈리는 듯 하지만, 어쨌든 7시간 중에 구체적으로 확인된 일정은 머리 손질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시급을 요하는 시간에 머리손질이라니! 그 와중에 올림머리를 했다니? 이런 놀라움이 불거져 나왔는데, 올림머리라는 말을 처음 접한 사람들부터 업스타일(upstyle hair)이라는 전문용어를 아는 사람들까지 모두 혀를 차며 조롱했다. 또한 어떤 이유에서든지 올림머리를 해본 여자들도 기가 막혀 했다. 70년대 시골에서 서울로 결혼식 구경 가느라 전날 저녁에 올림머리를 하고 엎드려서 잠들어야 했던 할머니들과 아주머니들조차 혀를 끌끌 찼다. 물론 여전히 그녀의 올림머리를 사랑하는 많은 팬클럽이 존재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올림머리란 도대체 무엇일까?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순정만화의 여주인공들은 대부분 올림머리를 한다. 여왕이나 공주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열두살의 마리 앙투와네트의 초상에도 올림머리는 존재한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머리카락만으로 올림머리가 가능했겠지만, 더 크고 풍성한 올림머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 가발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 올림머리를 한 열두살의 마리 앙투와네트( Martin van Meytens, 1767-1768)(출처 : 위키미디어)

우리 나라에서도 근대 이전에는 "가체(加髢)"라는 이름의 가발을 사용했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여성들과 기생들이 가체를 사용하였는데, 서양의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더 크고 무거운 가발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였다. 무려 1척(30.3cm)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가체가 일반 서민층에게까지 일반화되면서 재정적 부담이 가중되었고, 20kg에 달하는 가체를 머리에 얹고 다니는 일은 고역이었다. 시집오는 처녀가 가체 무게 때문에 혼례 중에 혼절하기도 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 19세기 중엽 작품으로 추정되는 해남 윤씨 종가의 미인도. 엄청난 가체를 썼다.(출처 : 위키미디어)

최근에도 올림머리는 여성들에게 있어서 특별한 자리에 참석하기 위한 필수 조건처럼 여겨진다. 보통 일반적인 여성들이 올림머리를 하는 경우는 자신의 결혼식, 아이 돌 잔치, 동생 결혼식 등 중요행사에는 드레스나 한복을 입고 그에 걸맞는 올림머리를 하게 된다. 그렇지만 미용실에 가서 올림머리를 하게 될 경우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라, 최근 인터넷에는 셀프 올림머리를 위한 비법을 공개하는 정보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셀프 올림머리 비법공개.(출처 : http://blog.naver.com/kmh385011/220609385958)

그런데 말이다. 결혼식이나 음악회, 파티 등 특별한 날에나 경험해 보는 특별한 헤어스타일인 올림머리를 평생 매일 해온 분이 바로 바로 박근혜 씨다. 그녀는 올림머리를 하지 않고는 절대로 외출을 할 수 없다. 올림머리를 하는 데에는 1~2시간이 걸리며, 머리 손질을 위해 전속 미용사가 365일 근무 기준으로 연간계약 되어 있는 상태다. 메르켈 총리가 젖은 머리를 말리지도 않은 채 의회로 총총걸음으로 달려가는 모습과는 참 상반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탄식하고 조롱하고 비웃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 올림머리를 한 아가씨와 노파의 착시현상. 둘은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번 일은 단지 거기에서 그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는데, 한 장의 그림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면서였다. 흔히 착시효과를 이야기할 때 사례로 드는 그림이다. 윗 그림을 본 사람들은 각자 다른 것을 먼저 발견하게 되는데, 이 그림에는 젊고 팽팽한 젊은 여인과 늙고 비틀린 노파의 모습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두 가지 그림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이 그림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올림머리에는 두 가지 얼굴이 함께 존재한다. 그녀는 아름답고 젊은 여인인 동시에 추하게 늙은 노파인 것이다. 보지 않으려 애써도 결코 부정되어지지 않는 그런 얼굴. 그 올림머리. 

문제는 그런 올림머리가 그녀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남들이 보기엔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그녀에게는 너무나 중요했던 그 올림머리 같은 부분. 그 부분은 평소에는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때로는 그 사람의 매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유사시에는 그 부분이 그 사람의 치명적 장애물이 된다. 사소한 습관과 중독이 우리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판단력을 상실하게 하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 주어져 있는 권한과 책임이 클 수록, 그 여파는 무한대로 확장된다.

일반인들도 마찬가지다. 평소 좋은 양복을 선호하는 남자들은 형편이 어려워져도 고급 양복을 맞춰 입어야만 한다. 고급차를 타지 않고는 은행에 갈 수 없는 남자들도 있다. 한 시간씩 공들여 화장을 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남들 앞에 나설 수 없는 여성들도 있다. 명품 신상 백이 없이는 자존감이 완전히 실종되는 경우도 있고, 보톡스를 주기적으로 맞지 않고는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 남자의 로망, 남자의 사치품, 자동차와 시계.(출처 : http://www.iautocar.co.kr/)

결국 올림머리란 부풀려진 나 자신이다. 목이 부러질 것 같아도 구름같은 가체를 쓰고 다니는 여인들은 자신의 지위와 재산을 과시하기 위해서 고통을 인내한다. 빚을 내서라도 해야만 한다. 의전을 좋아하는 권력자들은 그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열등감이 있는 남자들일 수록 크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시계를 차며, 여자들은 명품으로 자신을 과대포장한다. 개인의 차원 뿐만 아니라 사회의 곳곳에서도 전혀 쓸모없는 올림머리들이 존재한다. 거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것들을 사랑하고, 탐닉한다. 그 부자연스러움을 즐기는 대신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데도 말이다. 

▲ 미녀의 상징, 올림머리와 코르셋과 하이힐. Betty Grable 20th Century Fox (출처: 위키미디어)

젊은 날의 나에게 있어서 올림머리는 "코르셋"과 "하이힐"이었다. 그것들을 장착하지 않고는 외출을 할 수가 없었는데,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이십여년이 꼬박 걸렸다. 그 결과 외모의 손실을 다소 입긴 했지만, 운동화를 신은 내 몸은 자유로워졌고 코르셋을 벗어버린 내 몸은 더이상 고통스럽지 않다. 

나는 그녀가 언젠가 올림머리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 순간이 어느 곳에서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평화롭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도 또 물어보아야겠다. 2017년 새해를 맞아 나 자신과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올림머리는 무엇일까? 올림머리라는 은유가 던져주는 메시지가 우리 자신과 사회 곳곳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새해 바램이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조정미 주주통신원  neoech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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