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현실

대만의 지난 역사를 다룬 이야기는 ‘[대만이야기 5] 장보고와 정청꽁’, ‘[대만이야기 8] 대만의 슬픈 역사’에서 이미 언급하였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대만을 놓고 왜 미국과 중국이 다투는지, 그 배경과 대만인들이 느끼는 감정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1894년부터 1895년까지 조선에서 청일전쟁이 일어납니다. 이 전쟁에서 청나라는 일방적으로 일본에게 얻어맞고, 1895년 4월 23일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와 청나라 이홍장이 시모노세키(下關)에서 조약을 체결합니다.

주요 내용은 1, 청나라는 조선의 종주권을 영구히 포기하고, 조선을 완전한 독립국으로 인정한다.(일본이 먹겠다는 의미)

2, 청나라는 요동반도와 대만 섬, 펑후(彭湖)제도를 영구히 일본제국에 할양한다.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3국 간섭에 의해 요동반도는 반환함. 펑후제도는 중국 푸젠 성과 대만 사이의 섬으로 현재 대만에 속해있음)

당시의 조선은 좁은 우리 안에서 피터지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농민들이 창칼을 들었고, 군인들도 들고 일어났으며 친일, 친청, 친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각각이었지요. 어리석은 돼지들이 곧 도살장에 끌려간다는 사실을 모르는 꼴이었습니다. 조선은 강대국들의 식탁에 오른 요리에 불과했습니다.

지금도 성조기 휘날리며 친미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혹은 친중, 친일, 친북등 요란하지만, 결국 스스로 손발을 자르고 식탁에 오르려는 어리석은 돼지들이 아닌가요? 더 이상 굴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외세에 의존하지 말고 하나로 뭉쳐 힘을 길러야만 합니다.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대만은 일본의 영토가 됩니다. 일본이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지금도 일본 본토에서 대만까지 일장기가 휘날리고 있었겠지요.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는 모두 뻥이라며 대만 친구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정리해 올립니다.

일본은 대만을 점령지라고 생각하기보다 자신들의 영토로 여긴 듯합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까지 50년 통치를 당한 대만사람들이 의외로 일본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맨발의 야만족들에게 문명을 전해주었다고 합니다. 신발을 신게 하고 교육을 받도록 한 고마운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를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듣고 자랐다고 하네요.

1945년 일본은 맥아더 사령관에게 항복을 하면서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일본 영토가 된 대만이 애매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미국이 전승국으로 대만을 접수했다면 괌이나 사이판처럼 미국령이 될 수도 있었지요. 하지만 장개석이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여하였기에 미국의 묵인아래 장개석이 대만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합니다. 그 과정에는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1943년 장개석의 부인 쑹메이링(송미령)이 아시아 여성 최초로 미 의회에서 미국의 참전을 요청하는 명연설을 합니다. 1946년부터 공산당과의 내전에서 불리해진 장개석이 도망갈 곳을 물색했는데, 처음에 고려한 곳은 광동성 아래에 있는 하이난따오(海南島,해남도)였다고 합니다.

그 때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장개석에게 대만으로 옮기라고 하였답니다. 마오쩌뚱의 공산당에게 패한 장개석이 1949년에 대만으로 옮겨와 총통이 되었습니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장개석을 따라 대만으로 옮긴 60만 외성인들의 갑질이 대단하였지요. 티베트, 위구르(신장)를 무력으로 점령한 마오쩌뚱도 일본에 영구히 할양한 대만을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지 못했습니다.

장개석 역시 대만을 남의(미국) 땅에 수립한 임시정부의 개념이었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본토(중국 대륙)수복을 국시로 삼고 백성들을 억압했지요.

장개석이 대만으로 옮겨와 미국 우산아래 안전을 구했지만 독립의 기회를 놓쳐 현재의 갈등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현재 대만의 정치 경제는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중국은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대만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믿었던 미국은 1979년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를 합니다. 미국은 한국 다음으로 많은 무기를 대만에 팔고 있지만 정부 간 공식 교류는 없습니다. 정부 관리들은 공식적으로 상호 방문을 할 수 없지요.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 한겨레신문 5/20

사업가(?)이자 협상가인 트럼프는 당선되기 전부터 미국의 국익을 위해 중국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언급하면서 중국의 가장 큰 염원 대만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되자 중국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만 차이잉원 총통에게 전화를 했고, 대만과 미국의 정부 관료들이 상호 방문할 수 있도록 승인하는 행정명령에 사인을 했습니다.

현 시진핑 정부의 가장 큰 바람은 대만동포의 복속입니다. 홍콩과 마카오를 귀속시키고 마지막 남은 대만을 통합해야 중국 영토가 완성된다고 합니다. 99를 가지고 있는 중국이 1만 가지고 있는 대만이 잘 먹고 잘살게 내버려둘 수도 있으련만, 욕심이 어디 그러나요? 대만동포의 미래와 후손을 위한다고 하겠지만 실은 100을 채우고야 말겠다는 집착과 욕심 때문이지요.

대만사람들의 중국에 대한 혐오는 우리보다 훨씬 강해보입니다. 중국이라는 말도 안 씁니다. 모두 따루(大陸,대륙)라고 칭합니다. 지저분하고 수준이 낮다는 경멸이 깔려있습니다. 국민당 마잉져우 총통 집권 시에 중국 여행객들이 대만에 엄청 몰려들었습니다.

타이베이 호텔에서 아침 약속이 있었는데 장이 거북하여 죽을 먹으려고 데스크에 확인을 했더니 10층 식당으로 올라가보라고 하였습니다. 중국인 단체 여행객들은 10층 이상만 사용하게 나눠놓았더군요. 10층에는 중국 여행객만 이용하는 식당을 따로 두고 있었습니다.

식당을 둘러본 후 죽을 포기하고 1층에 내려와 약속한 대만인 사업가와 식사를 했습니다. 이 친구가 하얀 실내용 슬리퍼를 신은 어떤 남자를 가리키며, 짜증스럽게 저사람 분명히 대륙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종업원이 그 남자에게 가서 10층 식당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 차이잉원 대만 총통.                    사진 : 한겨레신문 4/28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이 집권을 하자마자 중국은 자국민의 대만단체 관광을 금지시켰습니다. 우리보다 더 큰 타격을 입었지요.

현재도 장개석을 따라 내려와 정치와 권력을 잡았던 외성인들과 내성인(대만 본토인)들 사이의 알력이 상당합니다. 대만의 슬픈 역사에서 언급한 2.28 사건으로 수만 명이 살해당한 남쪽 사람들은 국민당 정부와 중국에 대한 반감이 더욱 크지요.

대만은 한국에 비해 물가도 싸지만 10년 이상 임금이 오르지 않아 대졸자 월급이 아주 낮습니다. 한국의 80만원 세대라는 용어와 똑같은 말이 대만에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22K 세대. 22,000위엔(한국 돈 약 80만원)세대. 유명대학교 정교수인 친구의 월급도 10년 넘어 제자리라고 하는데 생각보다 낮습니다.

하지만 정년퇴직한 공무원이나 퇴역 장성들은 놀면서 많은 연금을 받고 있지요. 차이잉원 정부에서는 이 연금을 손대지 않으면 조만간 국가재정의 파탄으로 이어진다고 보고 연금수령액을 줄이자 밥그릇 챙기려는 반발이 무척 거셉니다.

본토인들은 외성인들에게 ‘그동안 백성들 고혈을 그렇게 빨아먹었으면 이제는 너희가 좋아하는 대륙으로 돌아가라’고 외치고, 외성인들은 ‘거지소굴 같은 곳을 이만큼 잘살게 키워놓았더니 배은망덕’이라고 나무랍니다. 또한 ‘우리가 중국 황궁의 보물을 모조리 가지고와서 그거 우리가 가졌냐? 고궁박물원에 전시하여 매년 들어오는 입장료 수입(약 37,000원/인)만 해도 연금과 비교도 안 된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서로 목소리를 높여 싸우지만 저변에 흐르는 대만인들의 마음을 들어보면, 누가 와서 어떻게 통치를 해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예전에는 해적들의 소굴이었고, 한 때는 홍모(紅毛, 스페인, 네덜란드)사람들의 지배도 받아봤고, 일본과 외성인들의 통치도 겪어보니, 결국은 다 남기고 떠나더라. 와서 땅을 떼어가는 것도 아닌데, 들어와 성도 쌓고, 학교도 짓고, 철도도 놓아서 살기 편해지더라. 그렇게 지나고 보면 결국 다 이 땅에 남아 있더라.

그래서 그런지 타지인 또는 외국인들에 대해 오히려 호의적입니다. 한국사람, 일본사람, 독일사람 참으로 쉽게 가서 음식점도 오픈하고, 어느 날 가서보면 다른 상점이 들어와 있고...

대만독립을 주장했던 민진당이 현재 집권하고 있지만 차이잉원 총통이 공개적으로 독립을 언급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향후 협상을 유리하게 가져가려는 전략으로 보이지, 통일의 주체나 이념 종교가 큰 걸림돌이 될 거 같지 않습니다. 대다수는 무력을 배제한 점진적인 통합을 바라며 그렇게 될 거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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