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유적지를 찾아서

경기북부 역사탐방 -항일 유적지를 찾아서-

몽실학교* 마을프로젝트 히스토리트립 팀(Hisrory trip 이하 ‘히트’)의 오늘 활동은 경기북부 역사탐방이다. 모임 장소와 시간은 녹양역 10시, 6월 3일 경기북부 역사 탐방의 시작이다. 녹양역에 9시 40분에 도착하니 우리 히트팀은 팀장 미성이가 먼저와 있고 회룡역에서 출발해 오는 초딩들은 아직 도착을 안했다. 녹양역 서부광장에는 단체 티셔츠를 입은 꼬마들이 보이고 낮익은 얼굴들이 있다. 몽실 둥지(초등)의 몽깨비팀이다. 오늘 함께 역사탐방을 가게 된 팀이 ‘몽깨비’이란 걸 모이는 장소에서 알게 된 것이다.

▲ [사진1]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새롭게 단장된 의정부 금오리 3.1운동터 표지석. 대한독립만세 재연과 기념사진. 정문부장군묘 북관대첩비 기념사진.정문부장군묘 헌화

오늘은 날이 맑아서 우리들의 역사탐방을 도와주지만 30도를 웃돌 높은 기온은 따가워 약간의 장애가 될 수도 있겠지만 주춤거릴 일은 아니다. 조금 기다려 10시가 되니 누군가 와서 학생들을 찾는다. 오늘 역사탐방 일행을 책임지는 <문화공간 온> 이사장인 이상직 선생님(나중에 알게 되었지만)이다. 녹양역에서 횡단보도 건너 관광버스를 서울 탑골 공원 출발한 1진과 녹양역에서 2진이 만나고 해설을 맡은 김재광 선생님이 기다린다. 오늘의 탐방 일행의 구성은 어른과 아이들이 절반 정도로 40여명 남짓이다.

버스는 일행을 금오동 네거리로 데려가 첫 탐방지인 3.1운동 만세터로 안내한다. 일본의 압제가 기승을 부렸던 1919년 암담한 미래에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만들어가던 이들이 외쳤을 3월 1일의 “대한독립만세” 그 후 99년이 지난 오늘, 우리 역사탐방객은 2018년 6월에 표지석 앞에 모여 국화를 헌화하고 무명의 항일순국선열들께 묵념으로 인사를 드린 후 만세삼창을 하였다.

다시 버스를 타고 다음 탐방지인 정문부장군 묘역으로 갔다. 정문부장군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다. 임진왜란 때 항전한 정문부장군과 더불어 이름 없이 산화한 항일 선열들을 떠올려 추념하며 헌화와 묵념.

다음 탐방지는 소요산 원효대 독림유공자 기념비이다, 원효대는 1907년에 봉기한 정미의병 전적지로 정미의병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과 내치를 강제로 침탈했던 일제가 친일파와 결탁하여 고종황제가 네델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한 것을 빌미로 강제퇴위시키고 군대까지 해산하자 분노한 민중과 군인들에 의해서 일어났던 의병이다. 원효대에 도착하니 12시, 배에서는 꼬르륵거린다. 그러나 오늘의 주 임무를 소홀히 할 수는 없지. 민생고를 해결하기 전에 원효대 순국선열추모비 앞에서도 헌화와 묵념으로 예를 갖춘 후 식당으로 향한다. 그러나 일부 아이들은 원효대 앞의 운동장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설치물이 궁금하고 넓은 운동장을 보면 뛰어 놀아야 한다. 함께한 모든 어른들은 아이들의 보호자, “얘들아 밥먹고 놀자”하며 아이들을 챙겨 원효대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으로 향한다.

▲ [사진2]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동두천 소요산 독립유공자추모비 헌화. 독립유공자추모비앞 기념사진. 양주 조소앙기념관 대한민국임시헌장 표지석. 황방리 느티나무.맛있는 점심시간

식당에 도착하니 예약시간보다 좀 일러 상차림이 그제야 시작되고 있었고 밥을 먹으려면 기다려야 된다. 초등 고학년들 몇 명은 주변을 둘러보느라고 아직 안 들어와서 찾아 나가니 냇가에서 놀고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올 즈음 밥상이 차오른다. 오늘의 점심은 나물 비빔밥이다. 요즘 아이들의 식성은 어떨까 궁금하지 않은 궁금함을 침묵으로 지키며 삼삼오오 모여 앉은 아이들을 살피니 비빔 나물 몇 가지는 골라내겠다는 친구가 있다. 컵을 찾아서 골라내주는데 눈치 빠른 친구는 어른들 차림에 나온 곡차를 발견하고 내게 일러준다. 내게 곡차가 있음을 일러준 친구는 본인의 기대까지도 피력한다. ‘우리에겐 음료수가 나오겠지요?’(헐~~~~)

내가 독박을 쓸 건가, 토스할건가 손가락 딱 하는 찰나에 곡차가 있는 테이블로 가서 이실직고하고 작금의 상황을 전달했다. 전달 결과는 ‘점심 후 이동 중에 얼음과자를 제공’하겠다는 답변이 왔다.

점심을 마치고 잠깐 휴식을 취하며 아이들은 뛰어 놀고 다시 버스에 올라 조소앙기념관으로 이동, 버스가 어린이들의 조잘거림으로 가득해지자 약속된 얼음과자가 등장했다. 얼음과자는 곡차마신 어른을 차별하지 않았고 모두의 입으로 들어간 순간 버스는 고요해졌고 ‘먹자’에 몰입하니 순식간에 조소앙기념관에 도착했다.

조소앙선생은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다가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수립에 참여하였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기본법적 성격을 가진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기초하고 삼균주의(정치 경제 교육)를 주창하였다. 8.15 이후 선생은 정치에 참여하였으며 6.25때 납북되어 1958년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소앙선생 기념관은 선생이 기록한 노트와 일기 그리고 사진 등 관람할 사료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고 기념관 안내는 전문안내인과 영상관에서는 선생의 일대기를 영상으로 상영해 주었다. 볼거리가 많고 궁금함이 많이 남아 있지만 일정을 진행해야하니 다음 탐방지인 가래비 3.1만세운동기념비로 이동해서 순국영령들께 헌화와 묵념 후 마지막 탐방지인 양주관아 터로 갔다.

▲ [사진3]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양주 가래비3.1운동순국기념비 기념사진. 양주관아지 형틀놀이. 제기차기. 기념사진. 전통놀이시설

양주관아 터는 본 건물과 새로 지은 부속 건물들이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마당 가운데는 형틀인 곤장 대와 주리 틀이 있었고 마당 한켠 돌담 옆에는 제기, 투호, 팽이 등이 갖춰져 있어 형틀과 놀이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아이들은 주리 틀에 몸을 맞춰 보고 어떤 아이들은 곤장 치는 포졸인형을 팽이채로 채찍질을 하고 뺨을 때려본다. 놀이기구인 제기차기 투호 팽이치기 등은 눈에 보이고 손에 닿는 대로 놀이기구가 된다. 부속건물인 새로 지은 한옥들이 신기해 이문 저문 열어보고 건물들을 돌아보니 관아는 순식간에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아이들 살피랴 안내하랴 바쁜 김재광 선생님과 더불어 길잡이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눈을 뗄 수는 없지만 아이들이 제기에 몰입하자 아이들에게 제기 차기 시합도 시켰다. 이제 돌아갈 시간 더 놀고 싶은 아이들을 불러 모아 양주관아 터를 마지막으로 인원 점검을 하고 이젠 귀갓길이다.

경기북부는 인구밀도가 높지 않아 산천의 신록을 즐길 수 있는 지역이다. 녹음우거지는 산천과 푸른 하늘을 벗 삼아 보낸 역사탐방 길은 더위에도 불구하고 험지가 없어 어린 친구들도 무리 없이 잘 다닐 수 있는 좋은 역사여행길이었다.

*몽실학교는 학생들이 주도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학생자치학교입니다.

-신성자 (몽실학교 마을프로젝트 길잡이교사, 별칭‘CO끼리’)-

(추신) 이 글은 신성자 필자가 역사탐방 후기를 기록해서 보내 온 것을 필자의 허락하에 본인이 게시합니다.

편집 : 심창식 부에디터

김재광 주주통신원  gamkooda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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