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고조선5 문화라는 이름의 여자

唐裵矩傳云          ‘당배구전唐裵矩傳’은 말한다.

高麗本孤竹國{今海州} “고려는 고죽국{획일의 물을 첨단화[今海]하는 주}을 모방[本]하였다.

周以封箕子爲朝鮮    그것은 주周가 기자를 책봉하여 조선을 부추겼기[爲] 때문이며

漢分置三郡          한漢은 (주나라의 郡과)분리[分]하여 삼군三郡을 설치[置]하였으니

謂玄菟樂浪帶方{北帶方} 현도玄菟 낙랑樂浪 대방帶方{븍대방}이라 이른다.”

通典亦同此說        ‘통전’ 또한 이 설과 같다.

{漢書則眞臨樂玄四郡  {‘한서漢書’에는 진번眞蕃 임둔臨屯 낙랑樂浪 현도玄菟 4군인데,

今云三郡名又不同    여기서는 3군이라 하고 이름 또한 같지 않으니

何耶}               누가[何] 모방[耶≒本]하였겠는가!}

(통론: 당나라 ‘배구전裴矩傳’에는 이렇게 전한다. 고려高麗는 본래 고죽국孤竹國{지금의 해주}이다. 주周가 기자箕子를 책봉하면서 조선朝鮮이라 했다. 한漢나라가 나누어 세 군郡을 설치하였으니 현토玄菟·낙랑樂浪·대방帶方{북대방}을 말한다. ‘통전通典’도 역시 이 설說과 같다. {‘한서漢書’에는 진번·임둔·낙랑·현토 4군郡인즉지금 3군이며 이름 또한 같지 않으니, 어찌된 일인가?}

 

"고려는 고죽국(백이숙제의 나라로서 중화의 성지)을 모방하였다."

일연은 '당배구전'을 인용하여 이렇게 단언한다. 그러나 {주석}은 부정한다. 주나라 무왕이 기자의 이름으로 낙랑질 한 천년의 역사, 그 다음 한무제가 낙랑 임둔 진번 현도 4군을 설치하고, 다음에는 현도 낙랑 대방으로 이름을 바꾸어가며 끊임없이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중화를 모방하게 하였으니, 반대편에서 바라보면 기자 이후 1500여년의 낙랑질에도 불구하고 유화의 영혼은 죽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데 왜 '당배구전'은 모방[本]하였다 하고, 일연은 왜 그것을 수용하는가?

 

영화 <붉은 수수밭>을 보자. 먼저 원제목은 '붉은 고량주'임을 유의하라. 18세의 꽃다운 처녀 추알(공리 분)이 나귀 한마리에 팔려 50살이 넘은 양조장 늙은이 이서방에게 시집간다. 신부를 태운 가마는 가마꾼들의 우렁찬 노랫소리에 장단을 맞추어 흔들리고, 흔들거리는 가마 문틈으로 보이는 츄알의 가죽신(전족)과 그 족쇄를 벗으려는 발가락의 꿈틀거림을 가마꾼 유이찬아오는 놓치지 않는다.

장면1은 결혼한 지 며칠 후 신부가 신행가는 날이다. 나귀를 타고 친정으로 향하는 신부를 어떤 놈팽이가 뒤쫓고 있으니, 다음 장면에서 놈팽이(유이찬아오)는 여자를 둘러매고 옥수수밭으로 들어가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이튿날 누군가 양조장 늙은이를 죽인다.

장면2. 청상과부가 된 추알은 두 팔을 걷어부치고 양조장을 재건한다. 추알을 겁탈한 유이찬아오는 공공연히 추알이 자기 여자라고 떠벌리며 일꾼들 앞에서 추알을 안아들어 침실로 들어가고, 새로 빚은 고량주에 오줌을 갈기는 천방지축형 인간이다. 그런 놈팽이에 대한 일꾼들의 반감에도 불구하고 추알은 놈팽이를 양조장관리자로 임명한다. 공교롭게도 놈팽이의 오줌을 머금은 고량주는 어느 해보다 맛있는 고량주가 되었으니, 장면2는 새로 빚은 고량주를 술잔에 부어 '죽어버린 디오니소스'를 부르는 엄숙한 부활의 의식이다.

장면3. 9년 후 평화로운 마을에 일본군이 들어온다. 군사로도를 만들기 위해 옥수수밭을 베어내는 작업에 마을 사람들이 동원되고, 그 자리에서 일본군은 항일 게릴라가 된 양조장일꾼 라호안의 가죽을 벗긴다.

장면4. 분노한 마을 사람들이 고량주에 불을 붙여 기관포를 앞세운 일본군과 싸운다. 하늘을 뒤덮은 붉은 화염 속에서 추알은 일본군의 기관총 세례를 받아 쓰러지고, 붉은 피로 물든 수수밭에 놓인 여인의 주검과 놈팽이와 아들, 서산에 지는 붉은 해가 중국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말한다.

영화의 첫번째 미션은 늙은이 죽이기다. 양조장 노인은 이미 몇 천년 전에 죽었어야 할 중화라는 이름의 난봉꾼. 죽을만 하면 꽃다운 처녀와 결혼하여 참신한 아이로 회춘하며 수천년을 버텨온 중화, 18화에서 인용한 논어 술이 제1장의 '노팽老彭’이 바로 양조장 늙은이였으니, 다시 주역 제28택풍대과澤風大過를 보시라.

 

九二  枯楊生稊    마른 버들이 새싹[稊]을 틔우도다.

      老夫得其女  늙은이[老夫]가 나이어린 여자[其女]를 얻었으니

      妻无不利    본처[妻]는 이롭지 않음이 없도다.

九五  枯楊生華    마른 버들에 중화의 꽃[華]이 피는구나.

      老婦得其士  늙은 지어미[老婦]가 젊은 남자[其士]를 얻었는데

      夫无咎无譽  본남편[夫]이 허물하지 않으니 무无는 영예를 회복하리라.

택풍대과 구이九二는 작은 음양이며, 구오九五는 큰 음양이다. 전자가 왕을 바꾸는 정도라면, 후자는 왕조를 바꾸는 대수술로 중화라는 여신은 거듭 부활한다.('마른 버들'을 유화의 영혼을 포기한 중화라는 이름의 신이다.) 그러나 영화는 중화의 정체를 '늙은 남자'로 단순화하였으니, 뒤늦게나마 늙은 중화를 죽인 것은 누구인가? 천방지축형 '놈팽이'이다. 그것은 공자왈맹자왈하는 교육에 물들지 않은 디오니소스형 인간. 그 디오니소스의 정액을 받아들임으로써 여태 늙은이의 씨앗을 수태했던 여인이 부활하고, 디오니소스의 오줌을 머금은 술이 깨어나고, 그 디오니소스의 술을 마신 일꾼들의 분노가 깨어난다. 부활한 중국은 제국주의 일본과 싸우지만, 그 일본이라는 제국은 '복종하는 병사들의 나라' 또 하나의 '(복종하는)중화'였으니, <붉은 수수밭>은 제국주의침략을 소재로 한 중화주의를 청산하는 파괴와 건설의 서사라 할 것이다.

모처럼 세계를 감동시켰던 중국영화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이제 역사책으로 돌아가자. 왜 일연이 고구려가 중화(고죽국)를 모방[本]하였다고 하는지,  「수서隋書」 및 「구당서舊唐書」에 공통으로 실린 ‘배구전裴矩傳’원문을 보시라.

 

矩因奏狀曰          배구裴矩가 황제에게 주상하여 말하였다.

高麗之地 本孤竹國也 고려의 하부구조[地]는 고죽국을 모방[本]하였습니다.

             (제2: 고려백성이 고려를 섬기면 중국백성이 고죽국을 본받겠습니까)

周代以之封於箕子    그 때문에 주나라 대代에는 고죽국이 기자에게 책봉하고

漢世分為三郡        한나라 세世에는 주나라와 분리[分]하여 三郡으로 바꾸었으며

晉氏亦統遼東        진씨는 ‘자아배척[遼東]’을 부활[亦]하며

                          (忠孝烈의)자아배척을 짬뽕[統]하였지만

今乃不臣            (동이족은 중화문화로)‘섬기지 않기[不臣]’를 첨단화[今]하매

                          겨우[乃 금기]는 백성을 부려먹지 못하고[不臣]

別爲外域           외면[外]을 차별화[別]하며 경계해도 경계 밖으로 나가려 하니

故先帝疾焉         선대 황제들은 오랑캐족[焉]을 미워[疾]하며

欲征之久矣         그들을 정벌하려 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결국 배구전의 요지는, 고조선 고구려가 중화의 문화(하부구조)를 모방[本]하여 유화문명의 영혼(상부구조)을 고양하는 기재로 활용하였다는 말이 아닌가. 요임금이 장구를 발명하고 느려터진 궁중음악을 작곡하여 경건한 제사를 올렸다면, 고조선과 고구려인들은 그들의 음악을 벤치마킹하며 신명나는 댄스음악을 작곡하여 광란의 춤을 추었으리라.

문화라는 이름의 여인을 응시하라. <붉은 수수밭>에서 양조장늙은이의 여인을  빼앗은 천방지축 놈팽이를. 역사에서 요임금의 찬란한 문화를 빼앗은 천방지축 오랑캐족을.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오순정 시민통신원  osoo20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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