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위만조선2

以兵威            위만이 (죽음 물질에 초연한 군자가 아닌)소인배[兵]의 위엄[威]으로
侵降其旁小邑      ‘더불어 살리라[其旁]’를 침투[侵]시켜 ‘다양한 읍[小邑]’을 책봉[降]하자
眞番臨屯 皆來服屬 진번과 임둔이 함께[皆]하고 변혁[來]하며 족속들[屬]을 포용[服]하매
方數千里          다양성[千]을 조화[方]하며 천년[千]을 도모[數]하는 부족[里]들이
傳子至孫右渠      아들과 손자에게 '우거右渠에게 가라[至]' 전傳하였다.
{師古曰 孫名右渠}  {안사고 가로되, 위만의 손자 이름이 우거右渠다.}
眞番辰國          진번眞番이 임신[辰]하매 나랏님[國]들이
欲上書見天子      글을 올려 하늘의 승은[天子]을 입으려[見] 하였으나
雍閼不通          옹雍(중화의 성인)과 알閼(오랑캐왕비)은 간통[通]하지 못하였다.
{師古曰辰謂辰韓也} {안사고 가로되, ‘진辰’은 韓(진화한 단군)을 임신[辰]함을 말한다.}

위만에 의하여 부활한 낙원(고조선)은 어떤 모습인가?

2행의 '더불어'와 '다양성'의 사회다. 3행의 '함께'와 '변혁'의 사회다. 4행의 다양성을 조화하는 사회다. 일연(전한서)은 왜 같은 말을 세번씩이나 반복하였을까? '자유'란 누구나 알지만 제대로 각성하기는 어려운 물건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의 흑백영화 <그리스인 조르바>를 보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밖에 모르던 '나'는 세상물정을 겪어보라는 친구의 충고를 따라 유산으로 상속받은 탄광을 개발하고자 크레타섬으로 향한다. 도중에 60대의 그리스인(정확히 그리스 마케도니아 출신) '알렉시스 조르바'를 만나 광산채굴 현장감독으로 고용하여 함께 생활한다.

수도원의 타락한 수도승들, 그리고 정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마을사람들이 살아가는 크레타섬이라는 세계에서 영화는 두 명의 여주인공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오랜 시간 고독을 견뎌온 아름다운 과부 소멜리나와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카바레 가수 출신이지만 평범한 남자와 결혼하여 아이낳기를 꿈꾸는 오르탕스 부인이다.

낯선 마을에서 매사에 소극적인 '나'와는 달리, 산전수전―터키와의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결혼 후에도 수많은 여자들과 즐기는―을 겪은 호방한 성격의 조르바는 금새 오르탕스 부인과 가까워져서 결혼하고, 물레를 돌리는 데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손가락을 자를 만큼 탁월한 열정을 발휘한다. 게다가 사업용장비를 구매하고자 ‘나’의 돈을 가지고 도시로 나간 조르바는 섹시한 술집여인(롤라)을 탐닉하며 그녀의 머리를 검게 물들이는데 거금(7,000드라크마)을 낭비한다.

마을 사람들은 어떤가? 마을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뽀얀 피부를 지닌 아름다운 과부에게 흑심을 품고 있다. 그러던 중 과부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청년(파블리)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마을사람들은 부활절이자 청년의 장례식을 치르는 날 교회 앞마당에 (음탕한?)과부를 묶어놓고 돌을 던진다. 조르바가 용감하게 나서서 그녀를 구원하려 하지만, 청년의 아버지가 과부를 칼로 찔러 죽인다.

도대체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한 가지는 선명하게 드러난다. 자기들이 과부에게 집적거렸으면서 도리어 과부에게 (남자들에게 꼬리를 쳤다는)풍기문란죄를 뒤집어씌운 마을사람들의 모순과 위선 말이다.

그렇다면 '조르바'라는 캐릭터로는 무엇을 말하는가? 마을사람들처럼 바보같이 집적거리지 말고 사나이답게 여자의 마음을 사라. 그래서 조르바는 몸소 오르탕스 부인을 꼬시고 롤라와 성매매하는 실력을 보여주며 주인공을 교육한다. 능숙한 멘토에게 연애기술을 배운 주인공은 예쁜 과부에게 강렬한 눈빛을 보내고 무언의 대답이 돌아오자 그녀의 집을 찾아가서 뜨거운 욕정을 불태운다. 그것도 한편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시껄렁한 멜로물이라면 말이다.

10화에서 말한 '오셀로'를 환기하시라. 오셀로는 악당(이아고)의 흉계에 빠져 데스데모나가 바람을 폈다는 소문을 믿고 사랑하는 데스데모나를 죽인다. 데스데모나는 코 불륜을 저지른 사실이 없는데 말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다른 남자와 동침한 여자는 죽여야 하는가?' 마찬가지로 그리스를 대표하는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관객들에게 묻는다. '남자들에게 꼬리를 친 여자는 돌을 던져 죽여야 하는가?' 대전제와 소전제를 응시하라. 누가 마을사람들에게 '정숙하지 못한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라는 잘못된 의식(대전제)을 심어주었을까?

영화제목은 '그리스인 조르바'다. 바꾸어 말하면 '마케도니아인 조르바'가 아니라는 말이다. 작가는 왜 그리스와 마케도니아를 구별하는가? 조르바의 정식 이름은 '알렉시스 조르바'이다. 그렇다면 '마케도니아인 알렉시스'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니, 거기서 한 걸음 나아가면 '마케도니아인 알렉산더'를 연상하리라.

알렉산드로스 대왕(BC356~BC323)은 마케도니아의 수도 펠라에서 필리포스2세(재정확충을 위하여 금광을 개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두 살 때 사나운 말을 길들일 정도로 용맹했고, 아리스토텔레스를 교사로 삼아 당대최고의 학문을 전수받았다. 페르시아 전쟁을 일으켜 지중해에서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이집트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는 스스로 파라오라 칭하고 신흥도시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하고, 그 후에는 정복지마다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의 도시를 건설하였다. 서양의 ‘마케도니아-그리스문화’와 동방의 ‘페르시아-인도문화’를 융합하여 동·서양 융화정책을 폈으며, 스스로 모범을 보이기 위해 다리우스의 딸과 결혼했고, 뒤이어 마케도니아 남성들이 페르시아 여인들과 결혼했다.

이상은 백과사전에 나오는 알렉산더 이야기다. 조르바가 터키와의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곧 알렉산더의 페르시아전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카잔차키스는 어떤 의도로 그리스의 위대한 영웅을 재현하였을까?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뛰어난 인물은 그의 제자인 알렉산더 대왕의 기질을 흉내 내려 했다. 스승은 모든 의견을 정복하려고 하였고, 제자는 모든 나라를 정복하려 하였다.

누군가가 알렉산더에게 토지의 복된 약탈자―세계로 보아서는 몹시 무익한 본보기였다.―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듯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학문의 복된 약탈자’라는 칭호가 부여된 셈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학문의 진보>2부7장에서―

필자가 중학교 시절 사회(세계사)교과서 중간 쯤에 '중세의 암흑'이라는 단원이 있고, 그 다음에 '르네상스'가 있었다. 무려 1천년의 세월을 암흑 속에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암흑의 시대를 명백히 규정한 것과는 달리 그 원인에 관해서는 역사책은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듯하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가 결정적인 계기라고 지목한다.[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르가논>을 부정하고 <노붐 오르가논(신기관)>을 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그것은 '그리스'에 포커스를 맞춘 견해였으니, '로마'의 역사에서는 언제부터일까? 대답은 셰익스피어의 <율리어스 시저>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 있다. 시저와 안토니우스가 서구의 역사를 암흑의 시대로 몰아넣었다고 폭로하고자 두 편의 작품을 썼다는 말이다. 아니지, <베니스의 상인>에서 상인 안토니오는 3000더거트의 돈을 빌려 그 친구 밧사니오(안토니오가 육체라면 밧사니오는 영혼이다)가 탕진한다.

상인 안토니오는 찬란한 고대를 말아먹은 안토니우스의 각성과 부활이다. 안토니우스는 상인 안토니오로 부활하기 위해서 샤일록에게 1파운드의 가슴살을 뜯기는 위기를 넘나든다. 그렇게 셰익스피어가 찬란한 고대로마의 부활을 기대하였다면, 그리스의 대문호는 찬란한 고대 그리스의 부활을 설계하였을 것이니, 조르바가 탕진해버린 거금 7000드라크마를 응시하라. 위대했던 고대 그리스를 페르시아전쟁에 쏟아부어 파산선고를 받은 것이 알렉산더대왕(마케도니아인 조르바)이었으니, 이제라도 '그리스인 알렉산더'로 부활하라고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것이다.(확인할 수 없는 작가의 의도를 단정한 점에 관하여 일부 독자들은 거부반응을 일으킬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조르바의 일탈행위는 잘못된 길로 들어섰던 그리스 역사에 대한 성찰이라고 이해하시길 당부한다.)

알렉산더(알렉시스 조르바)는 어떻게 부활하는가?

25화에서 본 <타이타닉>에서 잭은 여신(로즈)을 구원한다. 마찬가지로 카잔차키스는 "인간이 신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구원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神은 어디에 있을까? 다름 아닌 과부 '소멜리나'이다. 2000여년 전 알렉산더를 가르쳤던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이 소멜리나라는 이름의 여신이었을 것이니, 그 이후 소멜리나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스토아학파 등으로 성장하며 중세의 여러 황제들을 남편으로 거느렸으리라. 그러나 황제의 시대는 가고 소멜리나는 오랫동안 남편을 얻지 못한 채 고독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재림한 알렉산더(조르바)는 神을 구원하고자 참신한 비지니스맨을 소멜리나의 새로운 남편감으로 키우고 있으니, 눈치를 챈 소멜리나는 어느 날 밤 불쑥 찾아온 주인공과 몇백년만에 격렬한 열정을 불태운다. 그렇게 본다면 마을청년의 청혼을 거절한 여신의 태도는 문제가 있지 않은가?

우선 소멜리나의 중의법을 생각하시라. 마을 남자들이 과부의 집을 기웃거릴 때, 과부는 단지 소전제인간이다. 그러나 마을청년의 프로포즈를 받은 소멜리나는 대전제 여신이다. 그러므로 마을사람들의 심판 역시 이중의 의미를 띄게 된다. 남자를 홀렸다는 이유로 과부(소전제인간)에게 돌을 던진 것은 물론 위선(소전제를 왜곡한)과 모순(과거 알렉산더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왜곡한 대전제에 의한)의 심판이다. 그러나 마을청년의 프로포즈를 무시하고 주인공의 사랑을 받아들인 것은 여전히 '지배계급의 神'을 고집하는 태도이니, 청년 아버지의 칼에 맞아 마땅하리라. 그 지점까지 알렉산더(조르바)는 과거의 과오를 반성한다지만 여전히 한계적이다.[여신을 주인공이 독차지하게 한 것 외에, 조르바는 두 여인에게 상위자로서 선심쓰듯 사랑을 베풀었으니, 주체를 인정하지 않는 과오를 범한 것이다.]

소멜리나라는 이름의 여신은 죽었다. 카잔차키스가 존경하는 니체가 '神은 죽었다'하였듯이 말이다. 그러면 미래의 인간사회는 어찌할 것인가? 누가 神을 죽였는지, 그 죽은 神이 누구로부터의 神인지 생각하라. 그 神은 몇몇 성현에 의하여 만들어진 神이었으니, 神을 죽인 마을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神을 창조하리라. 어차피 神의 실체는 우리 인간들에게 두루 퍼져있는 공공의 善이었으니 말이다.

여신을 독차지하려는 주인공의 꿈(애당초 잘못된 꿈)은 물거품이 되었고, 광산개발사업은 파산을 맞았다. 주인공과 조르바는 (속죄하는)양고기에 포도주를 마시고는 시르타키 춤을 춘다. 마지막으로 함께 춤추는 법을 가르쳐준 조르바는 이제 '제우스 중매사무실'을 차릴 것이라고 한다. 다양한 남자 여자들이 지닌 개성과 매력들을 두루 마케팅할 때 비로소 대다수 인간이 주체가 되는 神(인간에 의한 상부구조 人乃天)이 창조될 것이니 말이다.

카잔차키스의 철학에 다소라도 접근한다면 위만과 함께 만리장성을 넘어온 중국철인들의 꿈, 기꺼이 그들과 함께 했던 조선민중의 꿈을 이해하리라. 그렇다면 현실을 보시라. <그리스인 조르바>를 본 문학가들은 "마지막 두 남자의 춤은 광산개발에 실패한 암울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 자유의지의 표현"이라고 한다. 카잔차키스는 성현들이 만들어낸 神을 죽여라 하는데, 도리어 그들이 창조한 기만의 가치를 선전하고 있지 않은가. 인문학이 그런 마당이니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겠는가.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함께'하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강점을 지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함께'는 다양한 인간들과의 '함께'가 아니라 동질적 인간들의 '함께'임을 철학과 문학과 역사학은 생각이나 하고 있을까?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오순정 시민통신원  osoo20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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