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오랑캐족의 역사 제29화

삼국유사 위만조선5 옷을 벗지 못하는 사람들 오순정 시민통신원l승인2018.07.06l수정2018.07.0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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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동물'이기에 밥과 섹스를 욕망하고,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랑과 존경을 갈망한다. 또한 '사회적' 동물이기에 인간은 일찍이 문명을 건설하였으니, 문명이 탄생하기 시작할 때 허위라는 이름의 이상한 존경욕구가 발동하였으리라. 25화의 <타이타닉>, 26화의 <그리스인 조르바>, 27화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모두 허위의 욕망(존경욕구)이 지배하는 현실these에서 잃어버린 욕망anti-these을 각성하고, 나아가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조화syn-these를 모색하는 드라마들이다. 그 욕망의 변증법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아이콘은 셰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에서 그려낸 '금상자-은상자-납상자'모델. 은상자형 인간 안토니오가 지배하는 에덴동산에 샤일록이라는 금상자인간이 등장하여 중세(안토니오)의 허위와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거기까지가 파괴의 서사라면, 재판 장면에서 판사로 변신한 여신 포르티아가 또 한번의 반전을 일으키며 다수의 욕망을 결합하는 납상자형인간의 시대를 선언한다.

<은마銀馬는 오지 않는다The Silver Stallion Will Never Come>

1991년 안정효의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6.25전쟁이라는 배경에서 벌어지는 욕망의 변주곡이다.

▲ 영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 장면1

6.25전쟁 중 강원도 어느 시골 마을에 유엔군이 들어오자 마을의 훈장일행이 그들을 막아서지만, 그들의 무력을 제압하기에는 역부족이다.(장면1)

▲ 영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 장면2

그 날 밤 과부(언례)의 방에 침입한 괴한이 여인을 끌어안았다.(장면2) 아마도 여인은 어쩔 수 없이 당하였으리라.

소문을 들은 마을사람들은 언례를 손가락질하며 따돌리고, 그 통에 언례는 유일한 생계수단인 남의집살이를 못하여 이중의 고통을 당한다.

▲ 영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 장면3

마을 근처에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강 가운데 뚝섬에 텍사스촌이 생긴다.(장면3) 양공주들이 마을에서 살게 되자, 마을 사람들과 군대와의 갈등은 양공주와의 갈등으로 바뀐다.

▲ 영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 장면4

훈장일행은 과부의 행실을 단속하고(장면4), 무례한 침입자(양공주)들을 막아선다.(장면5)

▲ 영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 장면5
▲ 영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 장면6

 그럼에도 양공주들은 과부를 유혹하고(장면6), 양공주들의 인정과 호의에 공감한 과부는 텍사스촌으로  들어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장면7)

▲ 결국 과부는 텍사스촌에 출근하고(장면7)

그러던 어느 날친구들에게 양갈보 아들이라고 왕따를 당하던 아들(만식)이 엄마의 방을 훔쳐보던 아이들을 쫓다가 다치고, 도망치던 아이는 미군의 총에 맞는 사건이 일어난다. 분노한 마을 사람들이 양공주들의 집을 불태우며 갈등은 정점으로 치닫는데, 곧 중공군의 개입으로 미군부대가 후퇴하고, 양공주들도 미군부대를 따라 떠나자, 과부는 아들의 손을 잡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피난길에 오른다. "다시는 매춘을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

▲ 결국 과부는 텍사스촌에 출근하고 '옷'을 벗었다(장면8)

어떤 평론가는 말한다.

"이 영화는 상업영화의 틀에서 반미와 반전의 소재를 적극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전쟁의 참혹함, 가부장적 유교 이념의 편협함이 한 여인에게 이중의 억압으로 작용하는 상황을 잘 드러냈다. 하지만 여성 등장인물을 관음증으로 응시하고, 등장인물 모두가 화해의 드라마로 결말을 노정했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독자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반전과 반미'의 메시지는 특별히 눈에 띄지 않으리라. 여인의 2중의 억압이 '전쟁과 유교'라는 지적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전쟁은 단지 배경일 뿐 영화의 소재는 욕망과 문화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화해적 결말'의 한계는 인정해야 할 지도 모른다. "다시는 매춘을 하지 말아야지"가 과부의 일탈을 저지르지 말았어야 할 '악惡'으로 규정하는 언어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작가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 한국 록 음악을 개척한 신중현의 1964년 앨범

제목을 보시라, '銀馬Silver Stallion'는 보통의 말이 아니라 종마 수컷을 의미하는 '씨받이 말Stallion'이다. 게다가 <베니스의 상인>의 은상자형인간을 감안한다면, '銀馬Silver Stallion'는 여인에게 섹스금지와 명예훼손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안기는 훈장선생임을 간파하리라. 영화는 장면1 장면4 장면5의 흑백톤 옷으로 훈장이라는 '고매한Silver 수컷Stallion'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다시는 매춘을 하지 말아야지"는 소극적 금기가 아니라 '이제는 당당하게 사랑하리라'라는 적극적 권리선언일 것이다.

▲ 신중현의 노래를 부른 디바 김추자의 앨범

영화는 여자와 문화라는 틀에서 해방의 메시지를 전한다. 문화라는 프레임에서 미국문화와의 소통창구는 미8군. 양키들의 돈을 벌기 위해서 양키들의 노래를 부르던 가수들은 점차 양키의 음악에 우리의 영혼을 담아내었으니, 그렇게 개척한 자유의 노래가 어떻게 우리를 움직이고 세계인들에게 전해지고 있는지는 독자들이 충분히 알고 있으리라.

'공자왈맹자왈하는 훈장선생들은 가라.'

이것이 <타이타닉> <그리스인 조르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의 공통된 주제였으니, 이제 그 보편의 진리를 회복하고자 투쟁해온 '위만조선'의 최후를 보자.

天子以久不能決        천자는 (우거가)不能의 물[氵]을 막다가[久] 터지게[夬] 하고자
使故濟南太守公孫遂    옛 제남濟南(풍류의 물을 건너는)태수 공손수公孫遂로 하여금 
往征之               착취한 놈[征]을 시해[
]하게 하여
有便宜將以從事        편견을 부활[有便]하고 동반을 미화함으로써 섬김을 진화하였다.
遂至縛樓舡將軍竝其軍  공손수가 결박[縛]을 부활하자 누선은 키[其]의 軍을 나란히 세워
與左將軍 急擊朝鮮     좌장군左將軍과 함께 급히 조선을 공격하였다.
朝鮮相路人 相韓陶{陰}  조선이 존경[相]하는 ‘로인路人’과 韓을 투영[相]하는 ‘도陶{陰}’와
尼谿相參 將軍王唊     이계尼谿가 비난[相]하는 ‘삼參’과 왕에게 군영을 베푸는 ‘겹唊’은
{師古曰尼谿地名四人也} {안사고 가로되, 尼谿는 명名을 섬겨서 사람을 포획[四=罒]한다.}
相與謀欲降           항복을 원함[欲
]을 표하여 욕망의 강림[降]을 꾀하자 했으나 王不肯之             왕은 수긍하지 않았다.
陶(陰)唊路人          도陶(陰)와 겹唊과 로인路人(노자)은
皆亡降漢路人道死     모두 도망쳐 한漢에 투항[降]하였으니 로인路人의 道는 죽었다.
元封三年夏尼谿相參   원봉 3년 여름 이계尼谿가 비난[相]하는 삼參(다양성, 참여)의
使人殺王右渠來降     사인이 왕 우거를 죽이매 ‘꼬치로 꿴 3인[來]’이 강림[降]하였다.
王儉城未下           그러나 왕검성의 모자란 까마귀들[未]은 트리클다운[下]하며
故右渠之大臣成己又反  우거右渠의 대신 성기成己로 하여금 다시 반란하게 하였다.
左將軍使右渠子長      좌장군이 우거右渠의 아들 ‘장長’과
        路人子最              로인路人의 아들 ‘최最’를 시켜서
告諭其民 謀殺成己     그 백성에게 成己를 도모하라 고告하고 成己를 죽여라 유諭하매
故遂定朝鮮            (천자는)공손수[遂]로 하여금[故] 조선을 평정하게 하고
  (朝鮮)爲眞番臨屯樂浪        조선으로 하여금[故] 진번·임둔·낙랑·
        玄菟四郡                              현도 등 4군을 모방[爲]하게 하였다.

28화에서 중화의 주요전략은 두 종류의 아미메토비온이었다. 거듭 실패한 후 전열을 가다듬은 천자는 다시 공격하지만, 전략은 역시 '아미메토비온'이다.(“不能의 물[氵]을 막다가[久] 터지게[夬] 하는”전략은 주역 제43택천쾌澤天夬 및 물을 막기만 하다가 실패한 아버지 백곤伯鯀의 실패를 딛고 물을 터뜨림(연결)으로써 완성한 우왕의 치수전략을 암시하지만, 큰 틀에서는 모두 '아미메토비온'전략이다.) 다만 왕(족장)을 죽이고 중화의 깃털을 업그레이드(진화)하는 과정을 급속히 전개하였으니, 조선의 왕과 4인방이 충분히 소통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천자는 승기를 거머쥐고 말았다.

4인방은 누구인가?

'로인路人'은 노자老子를 따르는 사상가다.(路는 인도[道]하지 않고 각자[各]를 따르는[足] 노자의 철학이다.) '도陶'는 도자기(문화)를 담당하는 문화장관이다.  이계尼谿가 비난하는 '삼參'이란, 속세를 떠난 승려[尼谿]와는 달리 속세에서 민중과 함께 하는 참여지식인이다. 군영을 베푸는 '겹唊'은 까마귀군주를 책봉하는 역할이다.

왕과 4인방의 실책은 무엇인가?

왕은 (일시적인)항복이라는 굴욕을 회피하였다. 일시적 항복을 권고하였다가 거부당한 4인방은 항복을 거부한 왕의 죽음 다음에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만일 의리를 지켜 자결이라도 한다면, 천자는 죽은 신하의 절개를 기리며 중화를 부활하리라. 그렇게 중화에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각자 도망쳐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상책이었으니, 3인방은 그 길을 선택한다.(우거 왕은 명예라는 옷을 벗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었다. 그것을 또한 4인방의 한계라고 보아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왜 일연(전한서)은 '한漢'에 투항하였다고 하였을까? '노자老子'는 중화문명을 파괴하고 자유세계를 건설하려는 변혁의 철학자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무위자연의 사상가라고 하지 않던가. 노자가 산으로 도망쳤으니, 한무제는 노자가 신선이 되었으니 노자사상은 무위자연이라고 백성들을 기망하였으리라.

4인방중 3인이 떠난 자리에 남은 참여승[參]은 중화의 부역자가 되어 우거를 죽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未]들은 까마귀문화를 트리클다운하며 반란하지만, 천자는 우거의 아들과 노자의 아들을 포획하여 민중을 제압한다.

이제 제23화를 환기하라.

단군은 기자가 조선으로 오자 장당경(요임금의 평양성)으로 갔다가 위만과 함께 돌아와 아사달에 은거하여 산신이 되었으니, 나이는 1908세라고 한다. 일연은 단군(영혼)이 산신이 된 것을 곧 단군(영혼)의 죽음으로 표현하였으니, 그것은 곧 위만조선 멸망과 함께 일어난 '노자의 죽음'을 말함이 아닌가.

노자는 중국인의 핏줄이고 중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이었으리라. 그러나 일연의 시각에서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노자가 고조선과 같은 나라를 꿈꾸는 혁명가였다는 사실만으로 노자는 곧 단군의 후예라고 보는 것이며, 위만조선은 곧 노자의 귀환이자 단군의 귀환인 것이다. 또한 노자의 죽음은 곧 단군의 죽음이었으니, 단군의 탄생연도는 BC2333년이 아니라 BC2016년(1908+108)이다.

위만조선의 멸망으로 단군은 죽었다. 그러나 머지 않아 '고구려'라는 이름으로 단군은 부활하리라. 하지만 일연은 곧바로 '고구려'를 말하지 않는다. 마한, 이부, 칠십이국, 낙랑국, 북대방, 남대방, 말갈과 발해, 이서국, 오가야, 북부여, 동부여. 이상 11편의 역사 다음에 '고구려'편을 실었으니, 동서남북으로 밀려오는 중화주의와 그에 대항하는 오랑캐족의 저항을 배경을 이해하면서 위대한 고구려의 역사를 살피자는 취지일 것이다.

한 가지만 덧붙인다. 고구려시대까지 유화문명의 역사는, 동서세계가 모두 중세의 암흑으로 빠져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문명을 지켰던 세계사적인 승리의 역사다. 그러나 안시성이 함락된 이후 중화의 문화는 거세게 우리를 파고들었고 '조선왕조'에 이르러서는 소중화를 표방하는 오명의 역사를 남겼다. 그러나 위만조선의 멸망사를 보라. 지배계급이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 때에도 결코 식지 않았던 민중[未]의 저항을. 조선왕조가 동방예의지국이니 소중화라느니 하는 부끄러운 이름을 자랑하였다고 하지만, 민중은 결코 거기에 부응하지 않았을 터, 그렇게 이어져온 자유의 DNA가 20세기 미국문화를 만났을 때 오늘날 한류라고 하는 우리의 문화를 잉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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