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73] 自畵自讚(자화자찬)

김동호 편집위원l승인2019.03.07l수정2019.03.08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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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자찬이 자기가 말하고 스스로 잘했다고 칭찬한다는 自話自讚인 줄 잘 못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보니 중국한자에서 유래된 성어가 아니네요. 일본에서는 지가지상(じがじさん)이라고 발음하는 사자숙어로 널리 쓰인다고 합니다.

대만 고궁박물원에 가서 유명 서화를 보면 쓰거나 그린 사람의 낙관 말고, 소유자의 낙관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황제의 낙관이나 유명인의 낙관이 많으면 가격이 엄청나게 뛰지요. 또 어떤 그림은 여백에다가 칭송하는 글을 써넣는 데 이를 찬(贊)이라고 합니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칭송하다는 의미의 옛글은 贊이라 썼고, 일본에서는 讚이라 쓴 걸 보면 자화자찬은 일본식 사자숙어일 확률이 높아보입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의 초상을 보면 좌우에 제자인 권상하와 김창협이 각각 찬을 짓고, 권상하의 제자인 채지홍이 후에 글을 썼다고 합니다. 따라서 자화자찬은 스스로 자기 얼굴을 그리고, 자기 업적을 자랑삼아 얼굴 두껍게 썼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듯합니다.

▲ 우암송선생칠십사세초상   제천의병전시관  사진 : 한국학중앙연구원

오른쪽 위 김창협 찬, 왼쪽 위 권상하 찬(贊으로 표기됨)

1985년 9월 東海대학교 철학연구소(대학원) 신입생은 대만학생 10명과 미국인 아담 그리고 제가 입학하였습니다. 중어중문학과나 역사학과 대학원에는 여러 명의 한국 유학생들이 있었지만, 철학과 대학원에는 제가 처음이었지요.

다른 사람들은 목표를 갖고 대학원에 들어왔지만 저는 출발부터 학문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공부나 운동 무엇 하나 남보다 잘하거나 내세울 건 아무리 뒤져봐도 없고 오로지 열등한 것들만 수두룩했습니다.

유일하게 장점도 아니고 특기도 아닌 것이, 한글전용시대에 성적에 전혀 도움도 안 되고 쓸 데도 없던 한자는 하면 잘할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는 있었지요. 거기에다 몇 가지 개인적인 관심이 중국어를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대만 사범대 어학원에 등록했습니다. 그리고 더 싸게 중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대학원에 입학하는 것이었지요.

한국인으로서 애국심이 남다르거나 투철한 국가관을 가진 것은 아니었고, 단지 내가 욕먹을 짓을 해서 후에 올 한국 유학생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만 하였습니다.

강의는 쉬워 보이는 걸 1순위로 신청했고, ‘양명학이 일본에 미친 영향’은 면접 때 했던 이야기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신청을 했는데 결과는 아주 꿀이었습니다.

일본에서 학위를 받은 林교수가 한국여학생을 사모했었는지, 저에게 호의를 많이 베풀었습니다. 무김치 담는 법도 일본 유학중 한국인 여학생에게 배웠다며 손수 담가서 교수사택으로 저를 불러 먹었으니까요. 내가 만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뭐라고 지적질 하기는 꺼림칙하지만 희멀겋고 길게 자른 단무지에 고춧가루 몇 개 묻어있는 걸 맛있는 척 먹어주고 또 부를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

또 기억에 남는 과목은 법대 대학원생이 계약론에 관한 논문을 써야 하는데 지도교수 강의를 들으려면 3명 이상이 신청해야 한다며 제게 부탁을 해왔습니다. 어딜 가도 어차피 못 알아듣는 거 기왕이면 적선하는 샘치고 부탁을 들어줬지요. 결과는 3명이 1점차로 86, 85, 84점을 받았습니다.

신입생 전체가 필수로 수강신청 해야만 하는 대학원장 수업에 들어가면 “누님, 나 여기 있어요~” 버전으로 꼭 한마디라도 질문을 하거나 대꾸를 하고 나왔습니다.

1년이 지나 방학을 앞둔 무렵 동기들이 어수선하고 열띤 논의가 벌어졌습니다. 들어보니 저의 이름이 논란의 주제였습니다. 대학원생들에게 여러 종류의 장학금이 들어와 성적순으로 5명이 배정됐고, 김동호가 5등으로 명단에 들었답니다. 교육부에서 장학금은 대만인들을 위한 특혜인데 외국인에게 지급할 수 없다고 거부했고, 다음 순번인 학생이 대신 받으라고 하였답니다.

6등 한 학생은 대학 졸업 후 원양어선을 타며 돈을 모아 많은 나이에 다시 공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회경험은 많았지만, 평소 이기적인 모습으로 인심을 못 얻은 친구였지요. 철학과 동기들은 (저는 아니고) 대부분 입으로 먹고살 친구들이라서 그런지 말은 얼마나 논리정연하게 잘하는지. 결론은 1등에게 지급되는 장학금만 본인이 수령하고, 나머지는 김동호까지 포함해서 공동 분배하자고 결정했지요.

사실 좋은 성적을 전혀 예상하지 못 했습니다. 듣고 말하는 수준은 초등학생에게도 미치지 못하고, 수업도 태반을 못 알아들어서 휴강인 줄도 모르고 강의실에 앉아 있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철학에 관심이 많아서 공부했던 것도 아니고, 그럴 가능성은 없지만 억지로 학위를 받는다고 해도, 한국에서 심리학과를 졸업한 제가 사학재단을 소유한 금수저도 아닌데 교수가 될 가망성 제로였지요.

학교 관계자들이나 교수들에게 크게 욕을 먹지는 않았던지 1년 뒤에는 한국인 유학생을 두 명이나 받았습니다. 반 지하처럼 구석진 기숙사는 후임 한국유학생들에게 넘어갔고, 저는 고참이 되어 위층으로 옮겼습니다.

생활은 적응이 될지 몰라도 억지로 하는 공부는 뭔가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특히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성적이 나오면서 교수나 친구들에게 내가 사기꾼이 된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동우(東吳)대 교수인 미졘꿔(米建國)는 당시 제가 고민하던 것과는 다르게 저를 기억하고 있더군요. 퇴직자 대학원 석사과정 입학 자격을 언급하며 당시의 제 수준의 중국어이거나 조금 떨어져도 받아주겠다고. (죄송합니다, 자랑질!)

제 딸이 자주 쓰는 말, “아빠 이야기는 기, 승, 전, 자기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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