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81] 등산장비 판매점 王子-3

김동호 편집위원l승인2019.11.06l수정2019.11.0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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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子의 李建雄과 등산장비 사업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 이후에도 관계는 지속하였습니다.

李建雄은 당시 대만체육회 산하 대만스키협회 총간사(總幹事, 총무)였습니다. 대만은 눈을 거의 볼 수 없는 나라입니다.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산에서 일 년에 1주일 정도나 볼까 말까 하지요. 스키를 좋아하는 대만 사람들은 스위스 캐나다 일본 등지로 겨울마다 스키를 타러 다닌다고 했습니다.

李建雄이 저와 인연이 되면서 일본보다 저렴하고 편리한 한국 스키장에 관심을 두고 1989년인가 1990년 겨울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대만 스키협회에서는 한국의 스키장과 자매결연을 통하여 대만의 스키 인구를 늘이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마도 스키를 좋아하는 스키협회 간부들이 저렴하게 자주 스키를 타고 싶은 욕구와 비즈니스를 접목했던 결과가 아니었을까요?

제일 먼저 서울에서 가까운 포천의 베어스타운에 가서 사장과 만났습니다.

당시 서울 근교의 유일한 스키장인 베어스타운은 야간 개장까지 하면서도 몰려드는 스키 인구를 소화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지요. 처음 먹어보는 멧돼지 요리를 대접받았지만 일은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날 밤에 처음으로 대만 총간사의 지도로 스키를 타봤습니다. 운동신경도 노래만큼이나 못하는지라 여러 번 구르고 또 굴렀습니다.

다음에는 용평 리조트로 가서 담당자를 만났지만, 그곳 역시 스키 붐으로 늘어나는 스키 인구를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이라 역시 대만과의 자매결연 이야기는 이루어지지 않았지요.

하지만 고성의 알프스 스키장에서 긍정적인 연락이 와서 찾아갔습니다. 알프스 사장님은 스키장에 대한 애착이 참으로 강하시더군요. 알프스 스키장은 일제 강점기부터 스키를 타던 곳이라고 합니다. 1976년에 현대적인 스키장으로 개장을 했고, 현역에서 물러난 선친은 당시도 스키박물관을 지어 스키 보급과 스키 사랑을 실천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실무적인 이야기까지 진행이 되었습니다. 알프스 스키장에서 장소를 제공하고, 대만스키협회는 스키 장비를 가져와 보관합니다. 그리고 알프스 스키장에서는 대만인들에게 리프트 비용을 좋은 조건으로 책정해주기로 했습니다.

자매결연식 행사에 맞춰 대만 스키협회 간부들과 주요 선수 및 관계자들이 대거 방한하였고, 강릉 MBC에서는 행사를 취재하여 그날 저녁 스포츠 뉴스 시간에 소개하였습니다.

그 이후 대만스키협회 주관으로 한국 스키체험 관광을 홍보하면서 겨울철에 수많은 대만인이 알프스를 찾았습니다.

대만사람들은 영상 10도에서도 저체온증으로 사망자가 발생합니다. 영하라는 말만 들어도 무서워하지요. 하지만 설원에 대한 동경은 아주 컸습니다.

하얀 스키장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이 퍼지면서 알프스 스키장은 대만인들의 겨울 관광지로 자리를 잡습니다. 더불어 화교 체인을 통해 홍콩 싱가포르 등지의 동남아에도 소개되었지요. 그 이후 언론을 통해 동남아 관광객들이 겨울철에 한국으로 몰려온다는 보도를 자주 접하게 되었습니다.

한류가 본격화되기 전에 제가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자부하는 이유이지요. 한류는 복합적인 문화수출입니다. 李建雄은 종종 가족들과 겨울에 찾아와서 함께 스키를 탔습니다. 제가 대만에 가면 스키협회 간부들이 줄줄이 나와 식사를 하였지요. 언제나 소탈하고 친근한 사람들! 한번 맺은 친구의 인연을 오래 기억하고 따뜻하게 맞아주는 대만 사람들!

1995년 겨울에 영동고속도로 부근에 현대성우리조트와 피닉스 파크가 생기면서 저는 현대성우리조트를 자주 찾았습니다. 그 이후로 교통이 불편한 알프스 스키장은 가지 않았지요.

▲ 폐허로 변한 강원도 고성 알프스리조트                         연합뉴스 자료사진

먼 훗날 고성 인근을 지나다 이미 폐허로 변한 알프스 스키장을 보면서 가슴 한쪽이 스산해지더군요. 한때는 하얀 설원에 아름다운 조명과 음악으로 불야성을 이루던 스키장이 30여 년이 지난 2006년 폐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 지역의 주민들도 아름다웠던 그때의 추억과 영화를 간직하고 있겠지만 저에게도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참 많은 곳이었습니다.

편집 : 김태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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