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모장군(禦侮將軍) 전방삭(全方朔) (14)

전방삭 장군 공적 증거 자료를 찾아서 (1) 선무원종공신록권(宣武原從功臣錄券) 전종실 주주통신원l승인2020.02.26l수정2020.02.26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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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조정에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난 뒤 전쟁에서 공로가 있는 자를 상을 주어 그공로를 치하키로 결정하고 대상자를 선정하여 표창하였다. 
전쟁이 끝난 지 2년 3개월 만에 사헌부가 임란 때 군공을 세운 자의 포상을 건의 한 것이다. 필자는 늦었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사헌부(사헌부의 대표로 추정)에서 이러한 발상을 했다는 것은 천만다행으로 생각한다.

당시 포상을 건의한 내용을 선조실록에서 찾아 기록해 본다.
​∎선조실록 134권, 선조 34년 2월 22일 신묘 1번째 기사 1601년 명 만력(萬曆) 29년
사헌부에서 임진란 때 군공을 세운 자의 포상을 건의하다.

(국역) 사헌부가 아뢰기를,
"사변이 일어난 뒤에 무사로서 종군(從軍) 하여 적을 사로잡고 참수한 공을 세운 자가 많습니다. 그 가운데는 속인 일이 없지 않으나 허위의 단서가 뚜렷하게 드러난 경우가 아니면 국가가 공로를 보상하는 은전을 아껴서는 안 될 것인데, 유사(有司)의 불찰로 특기할 만한 공로가 있더라도 보상의 은전을 받지 못하여 장사(將士)의 마음이 흩어지고 군민(軍民)이 원통해 하니, 나라를 배반할 뜻을 가진 자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국가가 불행하여 또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누가 시석(矢石)이 쏟아지는 속에서 있는 힘을 다하여 싸우다 죽으려고 하겠습니까.

의거(義擧)하여 군사를 모집하거나 외로운 성을 사수(死守)하는 등 적의 토벌을 자기 책임으로 여긴 자들의 시종 변함없는 충성은 연약한 자를 격려하고 미련한 자를 일으켜 세우기에 충분합니다. 상께서는 그들의 죽음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의 충절을 존중하시어 특별히 포상의 은총을 베풀고, 아울러 그 자손을 녹용(錄用) 하여 공로를 잊지 않는 은혜를 크게 보이신다면 한 세상을 격려하고 장래를 권장하는 뜻이 훌륭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거행하였다는 말이 없으니, 이 또한 어찌 국가의 흠전(欠典)이 아니겠습니까.

군공(軍功)을 세운 사람 가운데 드러나게 칭찬할 만한 자는 신분의 고하를 따지지 말고 사목(事目)에 따라 공로에 걸맞은 상을 고루 시행할 것이며, 절사(節死) 하거나 의거한 자의 자손도 승전(承傳)에 의하여 일일이 관직을 주어 격려하고 분발시키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태백산사고본】 82책 134권 30장 A면
【국편영인본】 24책 203면
【분류】 인사(人事) / 군사(軍事)

■ 공신 발표(1차) :1604년(선조 37) 음력 10월 29일

∙호성공신 (扈聖功臣)

1등 : 이항복, 정곤수 - 2명

2등 : 신성군, 이후, 정원군, 이부, 이원익, 윤두수, 심우승, 이호민, 윤근수, 유성룡, 김응남, 이산보, 유근, 이충원, 홍진, 이괵, 유영경, 이유징, 박동량, 심대, 박숭원, 정희번, 이광정, 최흥원, 심충겸, 윤자신, 한연, 해풍군, 이기, 순의군, 이경온, 순녕군, 이경검, 신잡, 안항, 구성 - 36명

3 등 : 정탁, 이헌국, 유희림, 이유중, 임발령, 기효복, 최응숙, 최빈, 여정방, 송강, 고희, 이응순, 절신정, 수곤, 강인, 김기문, 최언준, 민희건, 허준, 이연록, 김응수, 오치운, 김봉, 김양보, 이언봉, 박충경, 임우, 김응창, 정한기, 박춘성, 김예정, 김수원, 신응서, 신대용, 김새신, 조구수, 이공기, 양자검, 백응범, 최윤영, 김준영, 정대길, 김계한, 박몽주, 이사공, 유조생, 양순민, 경종지, 최세준, 홍택, 전용, 이춘국, 오연, 이희령 - 54명
합계  : 92명

▲ 호성공신 교서

∙선무공신(宣武功臣) - 1차

1등 : 이순신, 권율, 원균 - 3명

2등 : 신점, 권응수, 김시민, 이정암, 이억기 - 5명

3등 : 정기원, 권협, 유사원, 고언백, 이광악, 조경, 권준, 이순신(李純信), 기효근, 이웅룡 - 10명
 합계 : 18명

▲ 선무공신 교서

도감에서 공신으로 내정된 분 중 공이 부족하니 자기 이름을 빼달라고 사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신으로 선정할 수 없는 자가 억지를 부려 도감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호성공신, 선무공신이 발표되었으나 그 수가 너무 적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후손들의 항의뿐만 아니라 온 국민들의 불만의 소리가 들끓었다. 전쟁터에서 선봉에 서서 적선을 깨뜨리고 불 질렀으며 적군의 수급을 수없이 베었던 용감한 장수들의 실질적 공로를 무시한 처사라는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다시 말해 상위의 인물위주로 표창함이고 실전의 공로자는 소모적인 인물로 채색됨에 분개한 것이였다. 장차 전란이 발생하면 이러한 처사를 보고 누가 선뜻 나서겠냐는 민심이 요동치자, 공신을 다시 선정 발표하는 조정의 흠집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정되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리하여 공신을 2차로 선정 발표했는데 1차 때와 공신의 이름을 구분하기 위해 호성공신을 호종원종공신으로, 선무공신을 선무원종공신으로 정하고 1605년 4월 5일(호성원종공신), 1605년 4월 16일(선무원종공신) 공신을 발표하고 해당자에게 록권을 개별로 하사 하였다.

▆공신발표 2차
 ∙호성원종공신 (扈聖原從功臣) - 2차
  발표일 : 1605년 (선조 38년) 음력 4월 5일
  공신수 : 2,475명 

▲ 호성원종공신록권

선조실록 186권, 선조 38년 4월 5일 기유 1번째 기사 1605년 명 만력(萬曆) 33년
호성 원종 공신 2천4백75명을 계하한 전지

(국역) 호성 원종 공신(扈聖原從功臣) 2천4백75명을 계하한 전지(傳旨)는 다음과 같다.
"신하가 충성을 바치고 힘을 다하는 것은 본디 크고 작은 차이가 없으니 임금이 공훈을 포상하고 노고에 보답함이 어찌 귀천의 구별이 있겠는가. 이는 대개 백왕(百王)의 예전 법을 따른 것이며, 한 사람의 사심을 따른 것은 아니다. 돌아보건대 하찮은 과인이 나라의 어려운 대업을 계승하여 그 누구도 이 나라를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사전에 대비를 철저히 하고 깊은 물에 빠질 것처럼 조심하고 항상 상제(上帝)가 굽어보고 있는 것처럼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왜적이 창궐하여 신기(神器)가 떠돌아다니게 됨을 면치 못할 줄 알았으랴.

다행히도 황제의 위력이 멀리 떨침을 힘입어 그런대로 나라의 명맥이 떨어지지 않게 되었기에, 이에 수비하여 방어한 것을 잊지 않고서 공훈을 기록에 남기려는 것이다. 그대들 경대부 및 이서(吏胥)·하천(下賤)들이 분주히 호종하기도 하고 혹은 말고삐를 잡고 치달리기도 하였다. 그래서 무릇 전후에 걸쳐 협찬(協贊) 한 사람들을 모두 원종(原從)의 반열에 기록하고 이에 성전(盛典)을 거행하여 총장(寵章)을 보이노라."
【태백산사고본】 104책 186권 3장 A면
【국편영인본】 25책 49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 2차
 발표일 1605년(선조 38년) 음력 4월 16일
 공신 수 : 9,060명

▲ 전방삭 장군이 선조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선무원종공신록권
▲ 전방삭 장군에게 하사한 증거

선조실록 186권, 선조 38년 4월 16일 경신 5번째 기사 1605년 명 만력(萬曆) 33년
선무 원종 공신 9천60명을 계하한 전지

(국역) 선무 원종 공신(宣武原從功臣) 9천60명을 계하한 전지(傳旨)에,
"국가가 어려움이 많아 안정되지 못하자 그대들이 이미 중흥시키는 일에 힘을 썼으니, 공훈을 작은 것일지라도 갚지 아니할 수 없기에 내가 이에 원종(原從)에 추은(推恩) 하여, 새로운 의전(儀典)을 크게 거행하여 옛날 전장(典章)을 따르는 것이다. 생각하건대 남쪽 왜적이 날뛰어 서쪽 지방으로 파천(播遷)하였고 마구 날뛰는 시호(豺虎) 때문에 참혹하게 종사가 몽진(蒙塵)하였으며 산 넘고 물 건너는 고달픈 여로에 군신(君臣)이 이슬 맞던 일을 차마 말하겠는가. 하늘이 이 나라를 중흥시키고자 부모(父母) 같은 중국이 우리를 구제해 주었고, 사람들이 그래도 고국을 떠받들어 대소 신료들이 노고를 잊어버려, 다행히도 난리를 평정하고 환궁하여 마침내 공훈을 책봉하고 종정(鍾鼎)에 새기었다.

그대들 경대부 및 사서인(士庶人)이 혹은 우리 무열(武烈)을 선양하기도 하고 혹은 우리 군수품(軍需品)을 돕기도 하였으며, 몽둥이를 들고 치달려 목숨을 바친 선비도 있었고 무기를 들고 싸워 헌괵(獻馘)한 무리도 있었기에 여기에 모두 기록하여 길이 후세에 전하는 것이다. 경중에 따라 일시의 공로를 구분하였으니 그대의 자손들은 만세토록 안락을 누릴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교시(敎示) 하니 잘 알기 바란다."
하였는데, 이조에 내렸다.
【태백산사고본】 104책 186권 11장 A면
【국편영인본】 25책 53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이러한 절차와 엄정한 공훈 심사를 거쳐 선정된 9,060명 가운데 1등급 560명 다음으로 2등급 3,510명이 기록 되어있다. 전방삭 장군은 2등급의 218번에 기록되어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선무원종공신의 서열을 짐작하리라 생각한다. 서열은 접어두더라도 목숨 받쳐 나라를 구한 구국공신의 조상을 둔 후손이라는 점과 더 나아가 전방삭 장군의 아들 전홍례 판관이 후일 병자호란 때 임금을 강화도로 모시다 순절하여 부자의 대를 이은 쌍충신이 탄생한 자랑스러운 가문이라는 자부심을 갖는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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