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역사적 전통과 선거교육

하성환 객원편집위원l승인2020.02.26l수정2020.02.29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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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2월 1일 <촛불청소년 인권법제정 연대> 청소년들이 빗속에서 선거권 연령 18세 하향를 외치며 국회의사당 앞에서 피켓 시위하는 장면(사진출처 : 연합뉴스)

지난 해 12월 27일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이 통과되면서 선거법이 개정되었다. 개정된 공직선거법에 따라 당장 4・15 총선에서 만18세인 고교 3학년 학생들 일부가 선거권을 갖게 되었다.

OECD 가입국가 가운데 맨 마지막으로 한국사회는 18세 선거권을 획득한 나라가 되었다. 시민의 일원으로서 청소년의 인권이 한층 제고되었다는 데 역사적 의의가 크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한국사회 변혁의 시기마다 10대 후반 ~ 20대 청년들은 그 역할이 매우 컸다. 한국사회 청년들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중심이었으며 만주 항일독립군 출신 절반이 10대들이었다. 3・1만세 운동 당시 시위에 앞장선 이들도 청년학생들이었다.

▲ 15살에 3,1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17살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동풍신 열사(사진출처 : 국가보훈처)사진 위쪽 시계방향으로 곽낙원, 남자현, 동풍신, 정정화, 윤희순, 박차정 열사들이다.

함경북도 명천 만세시위를 이끈 15살의 동풍신, 전 국민이 다 아는 17살의 유관순, 그리고 경상남도 일대 최초로 만세 시위를 이끈 밀양 출신 윤세주는 19살이었다. 그런가하면 뒤늦게 발굴된 전남 여수 출신 주재년 열사는 일제에 항거한 최연소 항일소년으로 순국 당시 15살이었다.

해방 후 4・19혁명 당시 최초로 시위에 나선 것도 대구지역 고교생들이었다. 이른바 대구 2・28데모(1960)이다.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부정선거 유세에 항거하며 800명이 넘는 고교생들이 한꺼번에 대구 도심으로 진출해 자유당 정권을 맨 먼저 성토했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 열사는 17살의 나이로 최루탄에 맞아 산화했다. 4월 11일부터 13일까지 지속된 마산 2차 시위 역시 마산상고를 비롯해 마산제일여고, 마산고 학생들이 중심이었다.

4월 시민혁명을 '학생혁명'이라고 일컫는 이유는 학생들이, 그것도 중고교생들이 혁명의 선두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유리 국립묘지에 잠들어 있는 학생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중고교생들이다. 서울에서 대학생 최초의 시위는 4월 18일 고대생 데모가 처음이었다.

이러한 전통은 80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적지 않은 고교생들이 시민군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청년학생들은 광주 시민들과 함께 치안유지와 헌혈에 앞장섰다.

파리코뮌보다 더 위대한 공동체를 연출한 광주민주화운동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보여준 자율과 자치, 그리고 높은 도덕성은 세계사에 기억될 자랑스러운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

특히 청년학생들은 전두환 정치군인들의 살인 진압에 맞서 끝까지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희생되었다.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이 끝난 뒤 전남도청 앞마당에 널브러진 시신 가운데엔 앳된 고교 1학년생 안종필 군(16세)도 있었다. 불의에 눈 감지 않고 민주제단에 피를 뿌린 청년학생들의 희생으로 민족과 역사는 앞을 향해 뚜벅뚜벅 전진해 왔다.

세계사에 남을 2016-2017 촛불시민혁명에서도 많은 청년학생들이 참여했다. 1700만 촛불시민 가운데 10-20대 청년학생들이 20%를 넘었다. 필자가 목격한 광화문 시위 가운데에는 '교육혁명행동'이란 플래카드를 전면에 내걸고 수백 명 고교생들이 '박근혜 하야'를 외치며 행진하는 놀라운 광경도 있었다.

2018년 10월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촉발된 아베 정권의 경제보복에 대항해 일본상품 불매 운동에 적극 동참한 세대도 청년학생들이었다. 2019년 10월-11월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서초동과 국회 대로변 집회에서도 적지 않은 청년학생들이  참여했다.

▲ 2019년 10월 교대역에서 서초역 방면으로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시위 인파로 가득하다(사진출처 : 하성환)

역사의 고비마다, 또 변혁의 시기마다 이 땅의 청년학생들은 제 역할을 감당해 왔다. 시대의 불의에 저항해 온 자랑스러운 전통이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음에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

그렇다면 이제 청년 학생들을 마냥 어린 눈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청년학생들의 인권과 참정권을 넘어서서 그들이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와 시민사회는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청년학생들은 초중고 학창시절, 쉼 없이 입시공부로 내몰리고 때론 따돌림과 학교폭력에 노출되면서 남모를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젠 당당히 시민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져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한 인격체로 마땅히 존중받고 자신의 꿈을 키워가도록 격려와 배려가 주어져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청년학생들에 대해 국가와 시민사회가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를 사회문화적으로 구현하고 제도적으로 정착시킬 때 청년학생들은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것이다.

지난 해 기후변화 위기를 경고하며 세계정상들을 향해 시위를 벌였던 스웨덴 16살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스웨덴은 각 정당들이 고등학교를 방문해 자기 정당의 정책을 홍보하며 지지를 호소한다. 주로 청년복지와 교육정책에 대한 내용으로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참여하여 정보를 통해 정당의 이념과 성격, 그리고 각 정당이 지향하는 바를 이해한다. 스웨덴의 총선 투표율이 70~80%를 오르내리는 요인이다. 우리나라 총선 투표율 50%대와 차이가 크다.

지난 해 핀란드에선 34살 세계 최연소 총리가 선출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핀란드 역시 고등학교에 '청소년의회'가 존재한다. 청소년의회는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교류할 수 있고 지방의회와도 소통한다. 무엇보다 지자체를 비롯해 핀란드 사회가 청소년의회의 정책 제안이나 의견을 적극 정치현실에 반영한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핀란드 고등학생들은 자신이 정치에 참여하는 만큼 지역사회가 변화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면서 성장한다. 이미 고교시절부터 정치활동을 직접 경험하는 국가가 핀란드이다. 사회민주당(중도좌파) 출신 34살 산나 마린 여성 총리의 등장이 저절로 이뤄진 게 아니다.

▲ 2019년도 12월, 34살 세계 최연소 총리로 당선된 산나 마린(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핀란드 연정 내각 구성을 위해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사진출처 : 한겨레 TV)연립정부 내각 장관으로 참여한 좌파동맹(맨 왼쪽, 32세), 녹색당(맨 오른쪽, 34세), 중도당(왼쪽에서 두 번째, 32세) 당대표들 모두 30대인 게 인상적이다.

놀라운 사실은 지난 해 12월 산나 마린 총리가 연립정부를 구성하면서 내각 장관으로 입각한 좌파동맹 당대표나 녹색당 대표, 중도당 대표들이 하나같이 32살, 34살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미 미국, 독일, 캐나다를 비롯해 많은 선진국가에선 초등학교 시절부터 모의투표를 통한 선거교육을 착실하게 실천하고 있다. 당연히 선거교육을 담당하는 주체는 교사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해 12월 말에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발표된 교육부의 모의투표를 통한 선거교육은 교육계에선 매우 뜻 깊은 교육과정으로 받아들였다. 제도권 학교를 통해 민주시민교육을 정식화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모의투표를 통한 선거기획단이 교육부-교육청 간 구성되고 선거교육 자료가 일선 학교에 배포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지난 2월 6일 중앙선관위 전체회의에서 총선을 앞두고 학교 교사가 주체가 되어 선거교육을 하는 것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불허 결정을 내렸다. "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선거법 위반의 소지"를 이유로 유권해석을 내린 것이다. 그러자 서울시 교육청은 선거교육 주체를 학교나 교사가 아닌 외부단체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한발 물러섰다.

▲ 2017년 19대 대선과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YMCA처럼 중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의투표를 통해 사전 선거교육을 진행한 <징검다리교육공동체>(이사장 곽노현)가 중앙선관위 선거교육 불허 결정에 항의하며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사진출처 : 연합뉴스)

분명한 것은 선관위 불허 결정으로 교육부와 교육청, 그리고 일선학교에서 실천하려 했던 모의투표를 통한 선거교육은 4・15 총선 전에 실현될 수 없게 되었다.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주시민은 저절로 길러지지 않는다. 또한 성숙한 민주시민 역시 노력 없이 저절로 탄생되지도 않는다. 정치 사회현안을 교실로 들여와 논쟁 수업으로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가 중립적 자세로 다양한 자료를 제공하고 다양한 시각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정치사회적 관심을 갖도록 교육환경을 조성해 주는 게 필요하다.

▲ 세월호를 상징하는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포스터를 교실 게시판에 붙여 놓고 공부하는 학생들(사진출처 : 하성환)

그러할 때 학생들은 공동체 문제, 바로 정치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능동적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정치적 기본권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미국이나 정치적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일본조차 모의투표를 통한 사전 선거교육을 당연히 시행하고 있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를 비롯해 선진국 청년학생들은 오래 전부터 사전 선거교육을 너무나 소중한 체험활동이자 중요한 경험교육과정으로 학습해 오고 있다.

OECD 36개 국가 가운데 가장 뒤늦게 18세 선거권을 인정한 한국사회에서 모의투표를 통한 사전 선거교육을 총선이 끝난 이후에 시행하려고 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크리스마스를 지나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식이고 4월을 지나서 4월 혁명을 이야기하는 식이다.

선거교육 논란의 본질은 일부 보수적인 교육시민단체의 주장처럼 '정치적 중립성'이 아니다. '정치적 중립성'을 구실로 선거교육을 소홀히 하거나 방치한다면 이는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선거교육 논란의 본질은 '정치적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정치적 공정성'만 지켜진다면 선진국 사례들처럼 학교에서 모의투표를 통한 사전 선거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난과 격변의 근현대사 속에서 청년학생들이 보인 자랑스러운 역사적 전통을 생각하면 청년학생들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더더욱 교육부의 용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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