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커피는 그냥 커피집이다. 여느 카페와는 달리 주스나 쿠키, 빵 등은 없고, 오로지 커피만 판매한다. 이병학(58세)씨는 31년째 커피를 내리고 있다. 독일에서 로스팅을 공부했고, 인사동에서 처음으로 커피가게를 열었다. 귀천의 천상병시인과 중광스님이 그때의 단골손님이었다. 강원도 강릉에서 카페 ‘언덕위의 바다’를 운영했으며 홍대 앞을 거쳐서 현재의 통인동에 자리를 잡았다. 서촌에서만 6년째 커피를 내리고 있다.

강릉에서 커피가게 언덕위의 바다(양양)를 운영할 때 보헤미안의 박이추씨, 테레로사의 김용덕씨와 중앙일보에 기사화됐다. 그것을 본 강릉시장님이 커피축제를 제안했고, 세 분에 의해서 강릉커피축제가 탄생했다. 커피축제를 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는 제1회 커피축제를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좋은 자연환경에도 불구하고, 문화적인 갈증과 지역사회의 폐쇄성, 그리고 자녀의 교육문제 때문이다.

박이추, 이병학, 김용덕씨는 한국커피의 1세대 거장으로 불린다. 보헤미안의 박이추씨, 테레로사의 김용덕씨가 규모를 키우면서 여전히 성업 중인데 이병학씨만 강릉을 떠나서 서울로 돌아왔다. 아쉬움은 없을까? 애초엔 2년만 있을 생각이었는데 18년이나 있었고,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아쉬움이 없다고 한다.

히피커피의 창시자라고 하던데 그 의미는? 서울로 올라오기 2년 전, 양양에서 강릉으로 옮겨서 커피가게를 열었는데 그곳의 이름이 ‘히피 커피’(자유와 행복이미지)였다. 이병학씨로부터 커피를 배운 제자들이 히피커피점을 운영 중이다. 강릉에도 있고, 은평구 불광동에도 히피커피가 있다. 그렇다고 체인점을 운영하거나 볶은 커피콩을 판매하는 건 아니다. 제자들이 상호를 사용하며 독자적인 영업을 한다.

먼지, pinos.

한 순간에 이루어질 수 없는 시간과 세월이 흘러 쌓이는 자연스러움.
먼지에서 추구하는 십 분짜리 단편영화와 거리행위는 ‘사무엘 베케트’작품, <고도를 기다리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커피 집은 문화적 공간과 결합을 해야 한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그 일환으로 매주 금요일이면 연극인, 화가 등의 예술인들과 토론회를 연다. 매주 일요일 오후 1시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개의치 않고, 삼청동 길 아무데서나 ‘고도를 기다리며’ 행위예술을 한다. 벌써4년 째 계속하고 있는 일이다.

이병학씨는 커피의 전문가일뿐더러 영화사 먼지의 대표이자 영화감독, 그리고 시나리오작가이기도 하다. 미술감독 오재원씨와 손잡고, 통영 가는 길, 모던 우먼, 서촌가는 길, 동백꽃 필 때쯤, 압록강 가는 길, 번개탄 등 10여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으며 해외영화제에 꾸준히 출품하고 있다.

한겨레는 창간 초기부터 꾸준히 구독하고 있다. 서민들, 소외계층의 삶을 진솔하게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을 물었더니 ‘정치면도 소중하지만 문화부문이 강화돼서 가난한 예술가들을 찾아내고, 후원하는 일을 하면 좋겠다. 그 일을 할 만한 신문은 한겨레밖에 없다’고 한다. 이병학씨는 한겨레와 더불어서 씨네21도 꾸준하게 구독중이다. 통신원이 방문한 날도 다른 매체였으면 거절했을 텐데 한겨레라서 취재에 응하는 것이라고 한다.

광화문커피에는 여러 대의 자전거가 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이병학씨의 주요한 이동수단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나 영화를 촬영할 때 외발로 몇 시간씩 서 있을 수 있는 건 커피와 자본과 타협하지 않는 예술에 대한 신념으로 가능하단다.

취재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커피견문록이라는 책 읽어봤어요?”한다. 아니라고 했더니 꼭 읽어보라고 권한다. 누구의 말씀이라고, 거절하겠는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광화문커피에 들어서자마자 권한 아이스아메리카노와 눈앞에서 볶은 콩을 40g 분쇄해서 드립해준 진한 맛과 향의 커피가 아른거렸다. 우리나라 커피1세대의 거장 한분과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정보
이병학(58세) 010-6340-4777 서울시 종로구 통인동 35-11
blog.naver.com/pinos5458
BEYOND_THEATRE 먼지 FILMS
영업은 평일 :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 30분까지, 토요일과 일요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 30분까지

▲ 커피의 고수이자 영화감독인 이병학 씨
▲ 갓볶은 커피를 내려주시는 모습
▲ 한겨레뿐아니라 영화인답게 씨네21도 꾸준히 구독 중
오성근 주주통신원  babsang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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