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성북구 길음시장 입구 맞은 편의 연탄소금구이집.

'연탄소금구이'는 돼지갈비와 소금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김천수(64세) 김숙자(57세)씨 부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가게 안의 분위기가 어릴 때의 추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한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주전자를 들고 막걸리를 받아올 때, 어른들이 둥근 탁자에 둘러앉아있는 탁주집의 유리창에 빨간색페인트로 씌어있던 '대폿집' 등등. 이런 추억 때문일까? 십대 후반에는 강나루에서 그런 대폿집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강을 건너오가는 나그네의 사연을 귀동냥해서 이야기를 만들면 좋지 않을까싶었기 때문이다.

▲ 다정한 부부.

욕심은 나지만 부부가 분주하게 장사를 준비하고 있어서 두 분 모두에게 인터뷰요청을 할 수 없었다. 조금은 부끄러운 듯, 사람 좋은 웃음을 가진 김천수씨와 세월을 비껴간 듯 미모를 자랑하는 김숙자씨 부부의 사진촬영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김천수씨에게 한겨레와 관련된 이야기를 부탁드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 김천수 주주

질식할 것 같은 암울한 시대를 겪으면서 한겨레가 창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선뜻 오십만 원을 쾌척했다. 부부와 자녀의 몫으로 각각 십만 원어치씩의 한겨레 주식을 구입한 것이다.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때 ‘혹시 뒤탈이 나는 건 아닐까?’ 겁이 나기도 했지만 올바른 신문의 탄생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양평동사옥 시절, 한겨레에 견학을 갔다가 낡은 윤전기를 보고 가슴이 찡했는데 지금의 한겨레를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연세대학교에서의 주주총회 때 한겨레 사장님이 손수 막걸리를 따라주었을 때의 가슴 뭉클함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 온종일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고, 관리하는 게 제일 어렵다고.

한겨레 창간 때 아기였던 세 딸은 이미 출가 했고, 막내아들은 올해 기아자동차에 입사했다. 워낙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운 시절이어서인지 그 말에서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했다는 안도감과 자부심이 묻어나는 것 같다.

“자녀분들도 여전히 한겨레 독자인가요?”라는 나의 질문에 조금은 어색하고,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김천수씨가 말끝을 흐린다. “그게 <한겨레>를 보라고 계속 말해도 인터넷이나 핸드폰으로 보면 된다면서……” 활자매체가 점점 독자를 잃어가는 마당에 누굴 탓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 수 있을지 한겨레가 더 고민할 수밖에.

▲ 밤의 풍경.

몇 가지 질문을 더했다. 아무래도 서민과 밀접한 장사를 하는 분이니까 “요즘 경기가 어떤 가요?” 추석명절을 쇠고, 찬바람이 불면 조금 나아지겠거니 기대하지만 메르스 사태 때문에 최악의 불경기다. 작년에도 세월호의 여파 때문에 힘들었지만 올해와는 견줄 게 아니다. 없는 사람들이 부자편 드는 정당에 투표하는 걸 보면 이해가 안 된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공약을 지켜야 하는데 거짓말을 많이 하고. 이제 좀 나이든 사람들은 물러나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정치를 하면 좋겠다. 답답한 세상에 할 말이 많은 듯 하나를 물으면 몇 가지 이야기를 쏟아낸다.

▲ 서기철 한겨레 주주센터 부장이 때때로 들르는 곳.

“한겨레의 창간전후로 세상이 달라졌다고 봅니까?”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그럼 한겨레도 별 역할을 못한 것이지요?” 그건 아니다. 한겨레마저 없었으면 이나마도 유지되지 않았을 것이다. “주주 중에서도 한겨레가 마뜩지 않다고 구독하지 않는 분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주주들은 한겨레를 탄생시킨 부모입니다. 자식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버리는 부모는 없지요. 자식을 잘 보듬어야지. 엄혹했던 전두환 정권을 생각해봐요. 그게 어디 할 일인가요?

끝으로 한겨레에 대한 바람을 물었더니 “지금처럼 대한민국에서 가장 정직하고 올바른 신문으로 남길 바랄 뿐이야. 그것 말고 뭐가 있겠어?” “…......…” 한겨레에 대한 무한애정을 가진 주주를 뵙고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내 어릴 때 아버지세대의 추억 한 자락을 남아 있는 이곳에 다향이랑 한번 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탄소금구이] 전화번호 : 02-912-9705 / 영업시간 : 오후 3시 - 자정까지

서울시 성북구 길음동 541-59 번지(길음시장 맞은 편) / 휴일 : 설과 추석 당일.

오성근 편집위원  babsang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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