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다가 모처럼 비가 오는 토요일을 맞이하니 해방감이 느껴진다. 더위로부터의 해방이다. 비바람이 분다는 것이 이렇게 감사할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볼 일이 있어서 나가고 집에는 나 혼자 있다. 은퇴한 이후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해진지 오래다. 그런데 오늘 같은 날에 혼자 있자니 어떤 부담감이 나를 짓누른다. 비 오는 토요일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차피 오후 3시경에는 피트니스 센터를 가야 할 시간이다. 지금은 오전 10시경이다. 약 5시간 가량 나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까.
한겨레온에 들어가 어떤 글들이 올라와 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다음엔 무엇을 할까. 책도 몇 권 읽을 게 있고, 글도 써야 하는데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다. 그렇게 되면 다음 차례는 티브이다. 티브이를 켜고 채널을 돌리다 보니 개그맨 심현섭의 연애 스토리가 리얼타임으로 중개되고 있다. 심현섭이 만나는 상대 여인이 미모가 뛰어나다고 패널들이 난리가 아니다. 나이 54세에도 연애는 초보인 심현섭의 연애 스토리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티브이를 끄고 잠시 침대에 눕는다. 허리 디스크가 있는 사람은 가끔 누워 있어야 좋다. 말하자면 만 보 이상 걷기와 피로할 때 눕기가 디스크의 치료약인 셈이다. 침대에 누워 생각을 해본다. 이제 또 무엇을 해야 하지? 더 이상 무료하게 시간 때우기식의 티브이 시청은 하고 싶지 않다.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하는 의무감은 계속해서 나의 뇌리에 남아 있다. 그런 의무감을 이 토요일에도 느끼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반발심이 마음 한켠에 남아 있기도 하다. 어찌할까. 그 때 문득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걸 알아챘다. 바로 음악을 들으며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다. 나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영국 싱어송라이터이지 기타리스트인 커린 베일리 레이의 CD음악을 틀어놓고 창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얼굴과 전신을 상쾌하게 감싸 안았다. 요즘들어 예전에 사놓은 CD들을 하나씩 듣고 있는데 커린 베일리는 최근에 듣기 시작한 곡으로 부담없이 편하게 들을 수 있어서 좋다. 가랑비는 대지를 가르고 나무와 잎새들을 풍요롭게 적시고 있었다. 음악에 따라 몸을 약간씩 흔들어본다. 커린 베일리의 'ARE YOU HERE'를 들으며 몸을 들썩거려본다. 커린의 노래 'DIVING FOR HEARTS' 에 이르러 음악은 절정에 이른다. 나의 마음과 기분도 흥에 겨워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 머나먼 미지의 세계에 잠겨든다.
아, 이거다. 하늘과 자연을 보며 창가의 비바람을 맞으며 음악을 듣고 있자니 절로 나의 영혼과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다. 바로 이것이 내가 바라던 순간이 아니던가. 나의 시간을 방치하지도 않고 나의 정신을 의무감에 옥죄이지도 않는 바로 이런 순간을 나는 원했나 보다. 마음이 절로 흥겨워지고 이 즐거움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이 육십 대 중반 즈음에 육신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비상 상황을 몇 번 겪은 바 있다. 나이가 육십대 후반에 들어선다는 것은 칠십을 바라본다는 의미보다는 이제 몸과 마음을 다시 재정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시기임을 뜻한다. 몸도 마음도 잘 돌봐야 한다. 방치해도 안되고 너무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어도 안된다. 방치와 의무감의 틈새에서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나에게는 음악을 들으며 하늘과 자연을 감상할 때이다. 토요일은 국가적으로도 공휴일인데 나는 그런 공효일에도 어떤 의무감을 느끼고 있었나 보다. 그러다가 그 의무감에 반항하며 나의 시간을 방치하며 지냈나 보다. 방치도 의무감도 내던지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 내일모레면 칠십의 나이에 더 이상 누구 눈치 볼 것도 없지 않은가.
편집 : 심창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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