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편 고 김정동님 댁 사연 - 소설 김선애 (필명 김자현)
2. 앙칼진 시대의 하늘
평소와 같지 않게 힘이 잔뜩 들어간 엄마의 손에 잡혀 큰 집 대문을 나오면서 선애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상남이는 어쩌고 어딜 가는 거지? 골목을 벗어나자 귀신에 들씨운 듯 할머니의 외마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세상 년놈들아- 입이 있다문 말을 해보랑께. 내 아들 내 놔 내 아들 으떤 년이 잡아먹었어? 하늘이여 봇시오. 죽었다문 시신이라도 내놔야 헐 것 아니여. 땅으로 꺼졌소. 하늘로 솟았소오- 내 아들 김정동! 아이고 내 죽네 내 죽어어어~~ 내 아들 내놓으시오, 그 착한 자식을 그 똑똑한 자식을 어째서 뺏어가는 거요 왜?”
이른 새벽, 잠이 없는 노인네는 벌써 깨어 들판을 겅중겅중 뛴다. 악을 쓰는 소리가 가을 들판에 작살처럼 내린다. 지아비 김정동이 깨를 털 때 돌리던 도리깨가 머리에 떠오른다. 어서 몸을 숨겨야 한다. 시어머니에게 잡히면 배 시간에 대어 갈 수 없을지 몰라!
저녁 밥상을 받아놓고 원수놈에게 불려나가고 난 후 종적이 묘연한 지 6년, 스물다섯 살에 이유도 모르고 행불자가 된 셋째 아들에 대한 집착으로 시어머니는 하루도 안 빠지고 기도 대신 앙아불락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한다. 흡사 그녀는 강신무를 추듯 밭이고 논이고를 막론하고 겅중겅중 뛰고 달려가며 악을 악을 쓰곤한다. 아들을 잃은 그녀는 반은 미쳐버렸다.
아직 잠이 덜 깬 아홉 살짜리 선애는 연신 눈을 부비며 엄마의 얼굴을 살피느라 종종걸음을 친다. 눈물로 범벅이 된 엄마의 얼굴이 울어서 그런지 조금은 붉다. 선애의 가슴도 울컥 했으나 목으로 넘어오는 것을 꿀꺽 삼키고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정신없이 빠른 엄마의 걸음걸이를 따라가려면 말을 건넬 수도 없다. 상남이는 어쩌고 어딜 가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자고 있는 상남이를 두고 선애와 명선은 큰 집을 빠져나온 것이다. 엄마 걸음걸이로 봐서 줄행랑을 놓는 것이 분명하다. 아홉 살을 먹기까지 비슷한 날들이 오늘뿐이랴!
일백 호 가까이 되는 상동을 다 건너오자 이제부터 하동이다. 햇살이 바알갛게 물들기 시작하는 하동 초입에 역시 우람한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햇살은 나뭇가지 사이들을 삭도같이 비집고 마을로 달려들고 있었다.
어른들은 그 큰 나무를 보고 느티나무라고도 하고 당산나무라고도 했다. 왜 이름이 두 개일까. 당산나무에는 작은 고모와 타던 그네줄이 역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엄마의 표정이 좀 덜 심각하면 그네를 타고 가자고 졸라보겠지만, 선애는 떠오르는 생각을 일찍 접어버렸다.
두 팔을 벌려 손과 손이 맞닿으려면 아이들이 12명은 더 있어야 하는 정말 허리가 굵은 나무다. 한여름에는 집채만한 그늘에서 사람들이 더위를 식히고 힘 든 일손을 쉬기도 하는 곳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심부름으로 고모네 그리고 큰아버지가 함께 사는 색각시네 오느라 하동은 낯설지 않은 마을이다.
‘쳇- 나이는 자셨지만 큰 엄니가 새 각시보단 엄청 이쁘다 뭐-!’
큰아버지의 새 각시가 떠오르자 선애의 입이 삐죽 나왔다. 하동으로 들어서서 두 번째 골목을 들어서면 큰아버지가 새 각시와 사는 집이 나온다. 젤로 불쌍한 사람은 큰 엄니다. 큰아버지한테 가는 건가? 엄마는 이상도 하지. 큰 아부지 새 각시가 밉지도 않은가 봐! 언제든 새각시를 만나도 작은 엄니라 부르며 공손하고 친절하다. 종종걸음을 치면서 선애는 별별 생각을 다 하지만 둘째 골목을 지나친다. 하동을 다 지난 엄마는 부두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엄마 배 타러 가? 우리 어딜 가는 거여? 상남이는 으짜고?”
우두리를 떠나는 배가 부두에서 통통통 - 소리를 내며 기다리고 있었다. 하도 울어서 코가 빨간 엄마가 돌아본다.
“배 떠날라, 어서 타자!”
어른들은 일찍도 일어난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배에 타고 있었다. 이고 들고 진 사람들의 보따리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배만 타면 선애는 언제든 좋다. 바람은 먹은 욕들을 뻥뚫린 바다로 실어가기 때문이다. 상남이만 있다면 더 좋을 텐데. 외가나 친가를 벗어나 세 식구만 있는 시간이 너무 좋다. 엄마를 구박하는 사람도 없고 박복한 새끼들이 제 아비를 잡아먹었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세상이 좋다. 아버지 기일도 지나고 추석도 지나고 몇 날이나 간 것일까.
오던 날 같지 않게 뱃전에서는 써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또 광양 외가를 향해 가는 건가? 예전에는 선애를 두고 떠나더니 선애가 국민 학교를 들어간 후라 그런지 상남이를 두고 떠나는 것이다. 엄마와 누이가 저만 두고 떠난 것을 알면 6살 상남이는 어떻게 할까?
광양을 떠나오던 날도 엄마와 외할머니는 겁나게 말다툼을 했다. 엄마 등에 업힌 상남이, 그리고 희디흰 한복이 이쁜 엄마와 선애, 그렇게 세 식구만 오롯이 지긋지긋한 외갓집을 떠나 광양만 백사장을 걸어간다. 여기를 가나 저기를 가나 눈칫밥 먹기는 마찬가지다.
“그노무 기집애, 일도 안허고 밥은 잘도 들어간당께. 져우 해태를 말려 너희 세 식구 아가리를 어떻게 채워, 쌍녀리 새끼, 명도 명도 좆대갱이도 읎는 새끼, 스물 다섯이 나이여 뭐시여! 어디 가서 죽었는지 살었는지 구신도 할 일이 그리 읎어 시퍼런 청춘을 물고 가?”
무서웠다. 쪽을 찐 할머니의 머리가 눈보다 희어서 무서웠다. 소름이 끼쳤다. 남들은 고은 인상이라고 하지만 검은 머리 한 개 없이 하얗게 센 머리는 캄캄한 밤중에는 더 무서웠다.
“너희들은 워찌게 생각혀? 생각혀 봐, 외삼촌이 뭔 죄가 있어 은제까지 너희들을 재워 주고 입혀주고 밥을 주고 하냔 말여! 안그려? 복쪼가리가 새우 눈물만큼도 읎는 새끼들아-!!”
“제 애비를 잡아먹은 원수놈의 새끼들! 네 어미 앞길이 구만리 겉은디 너희들 땜시롱 팔자도 못 고치고 으쩐다냐 으쩐대, 안 그러냐? 죽은 늬 애빌 따라 가든가!”
악을 악을 쓰는 할머니의 목청에서는 늘 쇳소리가 났다.
“어무이요, 해도 해도 너무 하시능거 아입니꺼. 그 어린 애들이 뭘 안다꼬, 그 애들이 뭔 죄를 지었다꼬 하루도 안 빠지고 악담을 해제끼니 오던 복도 달아나고 말겄당께여. 안 그러요? 애비 없는 자식들이라고 그러는 거 아니랑께요. 외손자도 자식인디 어쩌면 그렇코롬 멸시를 한다요! 넘들은 불쌍타고 외할머니가 더 을고 떤다든디, 참말로 너무 하시네요.”
옥양목 적삼 위로 엄마의 눈물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진다. 행주치마를 들어 눈물을 닦는 엄마의 입은 늘 꼭 닫혀 있었지만 견디다 못하면 어떤 날은 그 입이 열리고 화염처럼 썩은 속이 쏟아져 나왔다. 얻어먹어야 꽁보리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는 뱃속에 선애네 세 식구는 날마다 할머니 욕으로 배를 채우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엄마가 보퉁이를 싸는 거다. 듣다 듣다 못 해, 견디다 견디다 못 하면 어느 날은 눈물 바람을 하며 상남이와 선애의 또 자신의 옷가지들을 싸는 거다. 간다고 가 봐야 또 눈칫밥 얻어 먹으러 가는 세상, 큰집 우두리를 향해 하나는 걸리고 영양실조로 5살이 넘어도 잘 걷지 못하는 남동생 상남이를 업고 광양을 떠나는 것이다.
집 앞 도로까지 바닷물이 찰랑찰랑 들어오는 날, 자신의 어머니와 싸우느라 꽁보리밥도 거른 어머니의 발걸음은 휘청거렸다. 상남이를 업고 흰 한복에 긴 행주치마를 허리에 질끈 동여맨 엄마의 허리는 동강이 날 듯 가늘었다. 그리고 세 식구는 물을 피해 산 모랭이 모랭이 길을 간다. 가다가 힘이 든 엄마는 상남이를 내려놓고 한참씩 쉬었다. 쉬는 시간에도 엄마의 눈에서는 쉬지 않고 눈물이 떨어졌다.
에고 에고~ 어무니 고만 좀 우시오
아홉 살 애간장도 끊어지고 끊어지오
나 세 살 때 종적이 없는 아부지는 대체 언제 오시오
오뉴월 염천에 말려 죽이고
겨울 삭풍에 삭아가는 당신의 고운님을 버려두고
아부지이~ 아부지이~ 대체 언제 오시오
전봇대 하나 없이 불바다 된 여수가 당신의 무덤이오?
수장당했다는 애기섬 바닷속이 당신의 무덤이요
에고 에고~ 내 어무니 누가 눈물 좀 닦아주오
아홉 살 애간장도 끊어지고 끊어지오
희고 흰 한복 그 고운 자태 홀로 두고
아부지, 당신은 달나라로
낚시하러 떠나셨소 떡방아를 찧는 토끼를 잡으러 떠나시었소
짜고 짠 세월이 석회처럼 가라앉은 바다만 출렁이고
친가와 외가, 광양을 가나 우두리를 가나
속 시원한 땅은 아득히 멀고
앙칼진 시대의 하늘에 물새들만 끼룩거리오!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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