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넷, 청계천을 탐사하다

승•종•근•석 이렇게 대학 동창 넷이 모인다.
모임 이름도 있다.

우리넷!

‘아내사랑’과 ‘손주사랑’을 공동 목표로 설정했다. 그리고 이를 추구하면서 우정을 다지는 네트워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게 풀어 쓰고 보니 조금 간지럽긴 하다.

우리는 광화문에서 만나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청계천 일대를 탐사했다. ‘승’이는 카시트 없이 손주 둘 등원시킨다더니, 나중에 전태일 동상 앞에서 합류했다.

설을 이틀 앞둔 섣달 스무여드렛날이다. 무척 포근했다. 약 2시간 동안 청계광장, 광통교, 삼일교, 수표교, 새벽다리, 광장시장을 거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앞에서 마쳤다. 흰뺨검둥오리는 유유히 헤엄치고, 백로와 왜가리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물속을 노려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팔뚝만 한 잉어 떼는 느긋이 유영을 즐기는데 하나같이 일없다는 표정이다.

염불보다는 잿밥이라고 할까? 해설사와 헤어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밥집으로 갔다. 2차까지만 먹고 헤어지기로 했는데 날바람잡은 이는 나다. 먹다 말고 먼저 간 두 친구 보란 듯이 문자를 보냈다.

“어디쯤 가는가? ‘석’이랑 나는 순댓국에 순두부 먹고, 다시 자리 옮겨서 찜닭집일세.”

거나하게 취했다. 술이 길다 보니 그날 나는 5차까지 한 뒤에 헤어졌다. 벌써 어둑어둑하다. 집에 가는데 쉴 새 없이 문자가 왔다.

“오늘 좋은 친구들과 데이트 즐거웠네. 청계천도 새로 알게 되고, 맛있는 점심과 시원한 맥주, 추억의 대화까지 고맙네.”

“과식. 과음 삼가고 알맞은 운동으로 건강하게 보내자구. 난 한숨 잔 뒤 헬스장 다녀왔네. 해피 뉴 이어!“

“오늘 울 친구는 자기가 가진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다른 생각을 경청해 주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리를 항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고마워, 내 친구들~!!!”

어떻게 지하철에 올랐는지 기억에 없다. 절로 눈이 감긴다. 자리에 앉은 게 잘못이다.

“자다 보니 까치산역일세. 다시 공덕역으로 되돌아와서 경의선 탔는데 일산역이지 뭔가? 지금 풍산역으로 돌아가고 있네. 친구들, 즐거웠어. 잘들 가소. 설날 아침, 떡국은 반 그릇씩만 먹자구….”

승강기 안에서 선친을 만나다

승강기가 열린다.
승강기가 닫힌다.
승강기가 올라간다.
거울이 비틀거린다.

뒤틀린 놈이 어지럽게 날 쏘아본다.
일자 목에
어깨는 처지고
허리는 구붓하고
이맛머리 휑하니 벗겨지고
두 눈은 퀭하니 꺼져 있다.

허연 눈썹이 대여섯 개나 도드라지고
볼썽사나운 구레쉬엄이 칙칙하게 드리우고
쭈뼛쭈뼛한 흰 수염이 입 언저리를 감싸고 있는데
아서라, 뭔 놈의 목주름이 저리도 자글자글할까나.

웬 놈이냐?
니가 너냐?
나는 간데없고
영락없는 선친이 날 보고 웃는다.
머잖아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까지 오시겠구나….
천하에 상종 못 할 불상놈이라고 되쏘면서 나도 웃는다.

거울 너머 아부지가 아까부터 속울음을 삼키고 있다.
나도 꺼이꺼이 목울대 너머로 생울음이 터진다.
둘은 이마를 맞대고 어깨를 들먹인다.
썩을놈아, 저승길이 구만리여. 언제까지 마빡에 사잣밥 붙이고 다닐겨?

 

청계천 탐사를 마친 '우리넷'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필자, 송봉종, 봉규석, 김익승(2023.01.19.)
청계천 탐사를 마친 '우리넷'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필자, 송봉종, 봉규석, 김익승(2023.01.19.)

 

편집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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