蘆田少婦哭聲長(노전소부곡성장) 갈밭마을 젊은 아낙 길게 길게 우는 소리

哭向縣門號穹蒼(곡향현문호궁창) 관문 앞 달려가 통곡하다 하늘 보고 울부짖네

夫征不復尙可有(부정불복상가유) 출정 나간 지아비 돌아오지 못하는 일 있다 해도

自古未聞男絶陽(자고미문남절양) 사내가 제 양물 잘랐단 소리 들어본 적 없네

舅喪已縞兒未澡(구상이호아미조) 시아버지 삼년상 벌써 지났고 갓난애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三代名簽在軍保(삼대명첨재군보) 이 집 삼대 이름 군적에 모두 실렸네

薄言往愬虎守閽(박언왕소호수혼) 억울한 하소연 하려 해도 관가 문지기는 호랑이 같고

里正咆哮牛去早(이정포효우거조) 이정은 으르렁대며 외양간 소마저 끌고 갔다네

磨刀入房血滿席(마도입방혈만석) 남편이 칼 들고 들어가더니 피가 방에 흥건하네

自恨生兒遭窘厄(자한생아조군액) 스스로 부르짖길 "아이 낳은 죄로구나!"

(‘나무위키에서 인용)

 

정약용의 <애절양(哀絶陽)>이란 시의 일부이다. 조선 후기에 과도한 군정으로 인한 고통을 못 견딘 백성이 아이 낳은 탓이라며 스스로 생식기를 자른 것을 보고 지은 시다. 관리들이 세금을 핑계삼아 백성들의 재산을 가혹하게 약탈하였으니, 힘없는 서민들이 정상적으로 살아갈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자신의 생식기를 자신의 손으로 잘랐으랴! 그 형편이 요즈음 MZ세대들이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은 형편과 겹치는 것은 필자의 과민한 상상일까?

최근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자 탄핵 집회에 응원봉이 밀물처럼 쏟아져 나왔고, 탄핵과 파면 요구는 힘을 얻으며 급물살을 탔다. 응원봉은 주로 아이돌 가수를 응원하기 위해 청소년 세대에서 사용하는 도구이다. 윤석열이 계엄령을 발동하자 그들이 응원봉을 들고 집회현장으로 달려와 촛불을 장악해버렸다. 그간 겨우 수만을 넘어서지 못했던 집회현장은 일시에 백만을 넘나드는 군중이 밀집하여 일시에 박근혜 탄핵 집회 현장을 방불하거나 능가하는 규모가 되었다.

윤석열의 계엄령 발동에  MZ세대들이 열 받아 응원봉을 들고 나왔다! ( 윤퇴진 부산행동 블로그) 
윤석열의 계엄령 발동에  MZ세대들이 열 받아 응원봉을 들고 나왔다! ( 윤퇴진 부산행동 블로그) 

응원봉 세대들 중에 상당수가 결혼도 출산도 안 하거나 못 하고 있다. 주로 경제적인 원인 때문이라고 한다. 최저임금 수준으로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감당할 수 없고, 자식을 극심한 경쟁 대열에서 버티게 해줄 사교육비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선배세대들이 치솟는 집값 때문에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고, 서울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서울 주변부에서 경기도 외곽으로 밀려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애절한 고통을 자신과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들이 부자 아이들과 집의 위치로 비교되고, 집의 평수로 비교되면서 당한 서러움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도 처음에는 정치권이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주기 바랬을 것이다. 사실 경제는 정부의 정책에 의해서 움직이고, 그 정책은 정치인들이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은 옳았다.

그런데 집권정당이 바뀌어도 변화는 없었다. 양대정당이 권력을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사람 얼굴만 바뀌었을 뿐,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았고, 삶의 질은 떨어졌다. 실제 통계적으로 보아도 어떤 정당이 집권하든 빈부의 격차는 더 심해졌을 뿐이고, 노동자의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소득이 최저임금보다 못한 서민의 숫자는 늘어만 갔다.

그 일이 반복되자 그들은 정치를 외면하였다. 그러다 이번에 입으로는 법과 원칙을 들먹이고 공정과 상식을 들먹이지만, 행동으로는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는 괴물 대통령을 만났다. 그들은 응원봉을 들고 집회현장에 나타났다. 그들은 가장 별처럼 빛나는 응원봉으로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들고 나왔다라고 했다. 그들에게 그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지난 주말 집회에 나갔더니 나에게도 응원봉을 나눠주었다.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나는 그 응원봉으로 그들의 소중한 것을 지켜줄 수 있을까? 젊은이들이 결혼도 출산도 포기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을 바꿔보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해왔는가? 그동안 시민운동을 하며 시간과 자금을 투자하고 나름대로 사회개혁을 위해 힘써왔지만 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다시 정리해보자. 조선말 관리들의 약탈로 아이를 낳은 죄라며 스스로 생식기를 잘라야 했던 백성의 심정과, 지금 경제적 약자인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심정이 어찌 다를까? 그들이 응원봉을 들고 집회장으로 밀려 나온 것은 너무나 큰 감동을 주었다. 그런데, 이미 부와 권력을 차지한 기성세대들은 그들에게 소중한 그 무엇을 나눠줄 수 있을까?

또 윤석열 탄핵만 되면 그냥 응원봉 세대들이야 어떻게 되든 외면하고, 넥타이 매고 거들먹거리며 골프가방 메고 외국 여행이나 다니지는 않을까? 이제 윤석열의 탄핵이 인용되면 야당인 민주당이 정권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응원봉을 든 젊은이들에게 지금은 박수를 보내며 반기지만 권력을 잡은 뒤에도 그들의 손을 잡고 그들이 처한 고통을 진지하게 듣고 풀어줄 수 있을까? 그럴 준비는 하고 있을까?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이현종 객원편집위원  hhjj55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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