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수행하였던 '가방 두기' 모의 실험을 본 적이 있다.  가방을 길에 놓아두고 누가 집어 가는지 확인하는 거였다.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이 가방을 못 본 듯 없는 듯 지나갔고 어떤 사람은 집어서 주변 의자 위에 올려놔 주기도 했다. 서울역 같은 곳에서 한 다른 실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한국인의 도덕의식이 그렇게 높아서일까? 수많은 CCTV를 의식해서일까? 사는 수준이 높아져서 남의 것에 탐을 내지 않게 된 걸까? 

2014년, 광화문 광장에서 있었던 세월호 1일 동조 단식에 참여한 적이 있다. 광화문 지하 화장실에 갔다가 휴대전화를 두고 나왔다. 두고 나온 줄도 몰랐다. 세월호 단식농성장에 앉아 있는데 방송이 나왔다. 광화문 화장실에 휴대전화를 두고 간 사람을 찾는다고. 그제야 주머니를 뒤져보니 휴대전화가 없었다. 가서 확인하고 찾았다. 찾아주신 분 연락처가 있어서 감사 전화를 했더니, “휴대전화 뒤에 세월호 리본 스티커가 붙어 있어서요. 세월호 광장에 나온 분일 것 같아서 관리팀에 주고 왔어요.”라고 했다. 휴대전화 케이스에는 현금도 있었는데....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정말 고마웠다.

2022년 어느 여름날 오후, 중랑천변 벤치에 흰 모자를 두고 왔다. 15분 정도 걷다 보니 머리가 허전했다. 땀이 나서 모자를 잠깐 벗고 바람을 쐬다가 벤치에 그냥 두고 온 것이다. 15년 전에 산 모자라 실컷 썼으니 그만 쓰라는 걸까~~ 생각했지만, 너무 편하게 막 쓰던 모자라 아쉬운 마음에 도로 가봤더니 모자가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아직은 이 모자와의 인연이 끝난 게 아니네'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 잃어버릴 뻔했던 내 두 모자. 
▲ 잃어버릴 뻔했던 내 두 모자. 

작년 여름에도 중랑천변 벤치에 모자를 또 두고 왔다. 그때는 거의 7시가 넘어 어둑어둑할 때였다. 이번엔 30분 지나 집에 다 와서야 생각이 났다. 이 모자는 딸이 외국에서 사 온 귀한 선물이기도 했지만... 편하고 가볍고 디자인이 단순해서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제일 좋아하는 모자였다. 하지만 다시 걸어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지치기도 했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부탁해서 차로 갔다.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웬걸? 모자는 의자 위에 고이고이 모셔져 있었다. 너무 반갑고... 중랑천변을 산책하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했다. 

얼마 전에는 우산을 2번이나 두고 왔다. 한번은 주민센터에 두고 왔는데 일주일 지나 가보니 그대로 있었다. 또 한번은 싸락눈이 내려 우산을 쓰고 요가 수업에 갔다가 눈이 그쳐 그만 잊고 왔다. 신발장 앞에 있는 우산을 보면서 들어갈 때는 '아... 저 우산 가져가야지' 했지만, 나올 때는 잊어 버리기를 여러 번.. 어느 날 요가 수업 후 비가 내려 우산 생각이 나 가보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약 한 달간 아무도 집어 가지 않은 것이다.

▲ 공원 철봉에 올려 놓인 모자 
▲ 공원 철봉에 올려 놓인 모자 

며칠 전에는 공원 철봉 꼭대기에 걸려 있는 모자를 보았다. 운동하고 모자를 떨어뜨리고 간 사람을 위해 모자를 찾아가라고 걸어 놓은 것이다. 

택배 회사에서 물건을 집 현관 앞이 아니라 동 출입구 앞에 두고 가는 경우가 간혹 있다. 나도 몇 번  그런 경우가 있었는데, 하룻밤 지나서 내려가 봐도 그대로 있었다. 택배 물건을 보낼 때도 그냥 현관 앞에 놓아두고 가면 발송장 영수증만 떼어 놓고 가져간다. 누구도 택배 물건을 가져갈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카페에서도 차를 마시다가 노트북이나 휴대전화를 두고 화장실을 갔다 와도 누가 훔쳐 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CCTV 덕이든 높아진 도덕의식 덕이든 여하튼 서로 믿는 사회가 된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 국민이 자랑스럽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신뢰 사회가 어느 날 느닷없는 계엄령과 상상 초월 서부지법 폭동으로 허물어졌다.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에서 도덕과 법이 깡그리 무시되는 사태가 일어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이 폭동을 보면서 한국 사회가 이것밖에 되지 못하나? 신뢰 사회는 CCTV 덕인가? 하는 생각도 더러 할 것 같다.

▲ 계모임 ‘잠 못드는 계동주민’이 여행가려고 모았던 곗돈으로 준비한 커피차. 백소아 기자(사진 출처 : 한겨레 신문/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79885.html)
▲ 계모임 ‘잠 못드는 계동주민’이 여행가려고 모았던 곗돈으로 준비한 커피차. 백소아 기자(사진 출처 : 한겨레 신문/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79885.html)

하지만 나는 믿는다. 한국 사회는 허물어지지 않는다. 특히 남태령 대첩에서 보여준 농민과 젊은이들의 연대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조건 없는 후원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오늘 <한겨레>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우리나라는 서로 돕고 믿는 사회로 나갈 것이라 굳게 믿는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서로 돕고 아끼는 유전적 힘이... 과거 역사에서 깨달은 뼈저린 각성이...  공동체를 위해 선한 사회를 꽃 피우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2025년 대한민국 힘내라!!! 화이팅!!!

▲ 학교 급식 노동자들이 준비한 어묵꼬치 푸드트럭. 백소아 기자(사진 출처 : 한겨레신문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79885.html)
▲ 학교 급식 노동자들이 준비한 어묵꼬치 푸드트럭. 백소아 기자(사진 출처 : 한겨레신문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79885.html)
▲ 익명의 시민들이 준비한 비건 감자튀김 푸드트럭. 백소아 기자(사진 출처 :한겨레신문/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79885.html)
▲ 익명의 시민들이 준비한 비건 감자튀김 푸드트럭. 백소아 기자(사진 출처 :한겨레신문/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79885.html)
▲ ‘일상을 돌려받고 싶은 사람들’이 준비한 떡볶이 푸드트럭. 백소아 기자((사진 출처 :한겨레신문/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79885.html)
▲ ‘일상을 돌려받고 싶은 사람들’이 준비한 떡볶이 푸드트럭. 백소아 기자((사진 출처 :한겨레신문/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798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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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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