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주기 추모일을 앞두고
오는 3월이면 누님이 하늘로 떠난 지 다섯 해가 됩니다. 문득 그리움이 일면 한강변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마냥 걷습니다. 걷다가 ‘동생’ 하면서 누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발걸음을 멈추면 다시 그리움이 밀려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엔 멀리 돌아 공항철도를 타고 마곡나루역에서 내립니다. 식물원을 가로질러 벤치에 앉아 푸른 하늘을 마냥 쳐다봅니다. 그러면 하늘에서 ‘동생’ 하면서 누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다시 하늘을 쳐다봅니다. 누님이 하늘로 돌아가신 그해엔 거의 매일 그런 나날이었습니다. 그리움으로 하루를 보내고 다시 그리움으로 하루를 맞습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블로그에 달린 답글을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누님을 그리워하는 동생의 글(2020. 10. 21.)에 누님 제자의 답글(2024. 5.15.)이 달렸습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누님은 진정으로 아이들을 사랑한 선생님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학교 어린 시절에 만난 선생님을 20년도 더 지난 어느 날, 중학생 시절 옛 선생님을 회상하다니...
제자의 답글을 읽으면서 절로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제자를 향했던 사랑이 20년도 더 지나서 제자의 애틋한 회상으로 돌아오다니 하늘에서 누님은 얼마나 흐뭇해하실까요?
1989년 1,500명이 넘는 전교조 교사들이 군사정권에서 대량으로 강제 해직됐습니다. 그 여파로 수년간 발령 적체된 사범대 졸업생들이 일거에 교직 발령이 났습니다. 누님 또한 대학을 졸업한 지 거의 10년 만에, 그것도 갑자기 부산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러자 누님은 생활 터전인 서울을 떠나 무작정 어린 조카들을 데리고 영도 동삼동 부모님 댁으로 내려왔습니다.
영도여고 불어 교사가 되었고 선친께선 아침마다 승합차로 출근길을 도와주셨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다 90년대 중반 경기도 광명북고로 전근해 오셨습니다. 그러다 영어 교사로 전과하여 광명경영정보고(옛 광명상고)로, 그리고 다시 광명시 00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2003년 훌쩍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어려운 이민 생활 속에서도 중국을 오가며 중의학과 청소년 심리학을 꾸준히 공부하셨던 누님! 조카들이 커서 결혼을 하고 어느 날 손녀를 품에 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 그 손녀가 초등학교에 다니고 누님 막내는 P.A. 간호사(진료보조 간호사)가 되어 환자를 살리는 일에 종사한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언제 미국에 한번 갈 일이 생기면 누님이 묻힌 그 무덤 앞에 가서 누님을 위해 쓰고 헌정한 책(『우리 역사에서 왜곡되고 사라진 근현대 인물한국사』(살림터, 2021))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 받았던 사랑을 돌려드리지 못했는데 누님께 이 책을 헌정하면서 작게나마 위안을 얻고 싶습니다.
어느 날 다시 하늘에서 만나면 지상에서 못다 한 가슴 속 이야기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리움이 하늘에 가닿으면 오늘이라도 누님을 만날 것 같은 하루입니다.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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