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7일~9일

○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기록, 2025년 5월 7일(수)
숙박(2실 조식 포함, 373,015원) Fatima(Hotel Fatima), 주유 0, 고속도로비 0, 식비 74,222원, 기념품 13,080원


포르투갈 파티마(Fátima)에서 일어난 성모 마리아 발현 사건(1917)은 가톨릭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며, 이를 목격한 세 명의 어린 목동들[루치아(Lúcia), 프란치스(Francisco), 히야친타(Jacinta)]의 생가는 오늘날 많은 순례자의 성지.

사진 정선자 / 목격자 셋[루치아(Lúcia), 프란치스코(Francisco), 히야친타(Jacinta)] 중 가장 오래 살았던 수녀 루치아의 생가(도스 산토스 집) 등
사진 정선자 / 목격자 셋[루치아(Lúcia), 프란치스코(Francisco), 히야친타(Jacinta)] 중 가장 오래 살았던 수녀 루치아의 생가(도스 산토스 집) 등
사진 정선자 / 목격자 셋[루치아(Lúcia), 프란치스코(Francisco), 히야친타(Jacinta)] 중 가장 오래 살았던 수녀 루치아의 생가(도스 산토스 집) 등
사진 정선자 / 목격자 셋[루치아(Lúcia), 프란치스코(Francisco), 히야친타(Jacinta)] 중 가장 오래 살았던 수녀 루치아의 생가(도스 산토스 집) 등
사진 정선자 / 목격자 셋[루치아(Lúcia), 프란치스코(Francisco), 히야친타(Jacinta)] 중 가장 오래 살았던 수녀 루치아의 생가(도스 산토스 집) 등
사진 정선자 / 목격자 셋[루치아(Lúcia), 프란치스코(Francisco), 히야친타(Jacinta)] 중 가장 오래 살았던 수녀 루치아의 생가(도스 산토스 집) 등
사진 정선자 / 목격자 셋[루치아(Lúcia), 프란치스코(Francisco), 히야친타(Jacinta)] 중 가장 오래 살았던 수녀 루치아의 생가(도스 산토스 집) 등
사진 정선자 / 목격자 셋[루치아(Lúcia), 프란치스코(Francisco), 히야친타(Jacinta)] 중 가장 오래 살았던 수녀 루치아의 생가(도스 산토스 집) 등
사진 정선자 / 목격자 셋[루치아(Lúcia), 프란치스코(Francisco), 히야친타(Jacinta)] 중 가장 오래 살았던 수녀 루치아의 생가(도스 산토스 집) 등
사진 정선자 / 목격자 셋[루치아(Lúcia), 프란치스코(Francisco), 히야친타(Jacinta)] 중 가장 오래 살았던 수녀 루치아의 생가(도스 산토스 집) 등
사진 정선자 / 목격자 셋[루치아(Lúcia), 프란치스코(Francisco), 히야친타(Jacinta)] 중 가장 오래 살았던 수녀 루치아의 생가(도스 산토스 집) 등
사진 정선자 / 목격자 셋[루치아(Lúcia), 프란치스코(Francisco), 히야친타(Jacinta)] 중 가장 오래 살았던 수녀 루치아의 생가(도스 산토스 집) 등
사진 정선자 / 목격자 셋[루치아(Lúcia), 프란치스코(Francisco), 히야친타(Jacinta)] 중 가장 오래 살았던 수녀 루치아의 생가(도스 산토스 집) 등
사진 정선자 / 목격자 셋[루치아(Lúcia), 프란치스코(Francisco), 히야친타(Jacinta)] 중 가장 오래 살았던 수녀 루치아의 생가(도스 산토스 집) 등

루치아 수녀(Lúcia dos Santos)는 파티마 성모 발현의 세 목격자 중 유일하게 장수한 인물로, 후에 수녀가 되어 평생 성모 신심과 교회 사명을 위해 헌신했는데, 그녀가 수도원 생활을 보낸 루치아 수녀의 집(Convento de Santa Teresa)은 오늘날 순례자와 연구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장소로 여겨진다. 

1917년 5월~10월, 코바 다 이리아(Cova da Iria) 들판에서 6차례에 걸쳐 성모 발현을 목격한 세 자매의 생가는 파티마 성지에서 남쪽으로 약 2km 떨어진 작은 마을 Aljustrel에 원형 그대로 복원 및 공공 관람 가능(무료입장).

 


○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기록, 2025년 5월 8일(목)
숙박(2실 조식 포함, 373,015원) Fatima(Hotel Fatima), 주유 69,933원, 고속도로비 14,225원, 식사 212,841원, 아주다궁 입장료 94,725원

 

 

포르투갈 리스보아
타구스강 벨렝탑과
발견기념 비에씁쓸


아주다궁 아주비싸
리스본대 성당교통
낡고좁은 언덕배기


트램타야 꼬불신나
렌터카론 진땀삐질
아주혼난 리스보아

 


포르투갈 리스본(Lisboa)의 벨렝탑(Torre de Belém)은 대항해시대의 영광을 기념하고 포르투갈의 해양 문화를 상징하는 세계유산이다. 대항해시대(15~16세기, 향신료 무역과 해상 제국 확장을 통해 포르투갈이 유럽의 바다 지배국이던 시절) 항구 방어 요새 및 탐험선의 출항·입항 감시 거점, 바스쿠 다가마, 마젤란 등이 이곳에서 출항의 축복을 받고 항해를 시작했다.

사진 김인수 / 포르투갈 리스보아의 벨렝탑과 대발견기념비
사진 김인수 / 포르투갈 리스보아의 벨렝탑과 대발견기념비
사진 김인수 / 포르투갈 리스보아의 벨렝탑과 대발견기념비
사진 김인수 / 포르투갈 리스보아의 벨렝탑과 대발견기념비


내부 구조는 감시탑, 대포용 포대 층, 지하 감옥, 경비병 생활 공간 등으로 구성되며, 포르투갈의 민족 정체성(과거의 ‘발견과 탐험’ 정신)을 오늘날까지 이어주는 기념비적 건축물, 리스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포르투갈에서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히는 장소 중 하나, 포르투갈 시인 페르난도 페소아 등 다수 문학 작품에서 ‘출발’과 ‘그리움’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포르투갈 리스보아의 대발견기념비(Padrão dos Descobrimentos)는 15~16세기 대항해시대 포르투갈의 해양 개척 정신과 인물들(왕족, 항해자, 지도제작자, 선교사 등)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대표적 문화기념물이며, 1960년 엔리케 항해왕(Henrique o Navegador) 서거 500주년 기념으로 재건립, 높이가 약 52미터(탑 내부 전망대, 전시관, 엘리베이터)이다.

엔리케 항해왕(Infante Dom Henrique), 바스쿠 다가마, 페르나도 마젤란,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 카몽이스, 지도제작자, 성직자 등 총 33인 조각되어 포르투갈의 제국주의적 유산뿐 아니라 지리 탐험과 문화 교류 역사의 기념물이다.

포르투갈 국민에게는 “바다로 나아간 민족”의 상징하나, 최근에는 제국주의 · 식민주의유산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역사적 재조명 대상이며, 유럽 르네상스 시기의 지리적·과학적 발견이 인류 역사에 끼친 영향을 시각화한 기념물로 교육적 가치는 있다.

사진 정선자 / 대발견기념비 가까이에서 ‘발견’한 포르투갈 길거리 음식
사진 정선자 / 대발견기념비 가까이에서 ‘발견’한 포르투갈 길거리 음식
사진 정선자 / 대발견기념비 가까이에서 ‘발견’한 포르투갈 길거리 음식
사진 정선자 / 대발견기념비 가까이에서 ‘발견’한 포르투갈 길거리 음식

리스본 대성당(Sé de Lisboa)은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깊은 역사와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합된 상징적 유산으로 중세부터 지진과 재건을 거쳐 오늘날까지 리스본의 신앙·역사·문화가 겹겹이 쌓인 장소, 1147년 십자군이 무어인을 몰아낸 직후, 이슬람 모스크 자리에 건설 성당을 건립, 12~13세기에 로마네스크·초기 고딕 양식으로 확장 후 중세 리스본의 중심 성당으로 성장,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심각한 피해 후 바로크 양식 포함하여 복원했다.

정면은 파사드 요새처럼 단단한 외형, 로마네스크 양식의 쌍탑 구조와 장미창, 내부 신랑(nave)은 고딕 양식의 아치형 천장과 둥근 기둥으로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 중앙 제단은 바로크 양식의 장식과 금박 성상, 성모 마리아 헌정, 성 유물 보관소(Tesouro)에 종교 유물, 성직자의 유품, 중세 보석·제의구 등 전시, 고고학 유적, 성당 내부 뒤편에 로마시대·이슬람 시대 유적 층 발굴되어 보존 중.

트램 28번은 성당 앞을 지나는 고풍스러운 노선으로 관광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리스본 트램, 저녁노을에 물든 성당 외관은 사진 명소로도 유명, 리스본 대성당은 12세기부터 포르투갈 수도의 신앙과 정체성을 상징해온 중세 성당으로, 로마네스크부터 신고딕까지 다양한 양식이 혼합된 역사적·문화적 보고(寶庫)이다.[by AI chatgpt]

사진 정선자 / 리스본 대성당(Sé de Lisboa) 내부
사진 정선자 / 리스본 대성당(Sé de Lisboa) 내부
사진 정선자 / 리스본 대성당(Sé de Lisboa) 내부
사진 정선자 / 리스본 대성당(Sé de Lisboa) 내부
사진 정선자 / 리스본 대성당(Sé de Lisboa) 내부
사진 정선자 / 리스본 대성당(Sé de Lisboa) 내부
사진 정선자 / 리스본 대성당(Sé de Lisboa) 내부
사진 정선자 / 리스본 대성당(Sé de Lisboa) 내부

그러나 만약 리스본에 가서 벨렝탑, 대발견기념비, 리스본대성당 등을 구경하고 싶다면, 트램 28번 전차를 추천한다. 좁고 가파른 돌길 골목 골목을 엄청난 인파와 “톡톡이 차(툭툭이, Tuk Tuk)”[리스본의 독특한 지형과 관광 수요에 맞춰 등장한 소형 3륜 전동 택시로, 도심 탐방의 인기 교통수단]를 뚫고 낯선 길을 빌린 차로 이동하는 것을 상상해 보시면 충분히 이해되실 듯.

1755년리스본 대지진으로 기존 리베이라 궁전 붕괴하자 왕실은 텐트촌“Real Barraca”에서 임시 거주, 1796년 새로운 석조 궁전으로 아주다궁 건설 시작하여 19세기 중반 마리아 2세, 페르난도 2세 등 실질적인 왕실 거처로 사용되었고, 1910년 포르투갈 공화국이 수립되고 왕실이 해체된 후 국유화.

현재는 일부 공간은 국빈 접견실·행사장, 대부분은 궁중 생활사 박물관으로 일반에 공개. 왕실 침실, 응접실, 식당 등 당시 왕실의 생활상 완벽 보존, 접견실과 연회장, 대형 샹들리에, 벽화, 금박 장식, 궁중 예술품 18~19세기 유럽 및 동양의 가구, 도자기, 태피스트리, 조각, 금속공예 등, 보물관(Museu do Tesouro Real) 포르투갈 왕실의 보석·관·왕홀·은식기 등 국보급 보물 전시(2022년 별도 개관). 

왕정의 마지막 상징, 포르투갈 왕정이 실질적으로 활동한 마지막 궁전으로, 유럽 입헌군주제의 쇠퇴와 연결되며, 예술 보존소로 19세기 유럽 왕실 문화와 실내 예술의 살아 있는 박물관, 과거의 권위 공간이 오늘날 문화, 예술, 외교 공간으로 전환된 대표 사례, 19세기 유럽 왕실 예술과 정치 변동을 간직한 문화유산.

아주다궁전에서 화장실 찾기는 다른 ‘유럽의 화장실 문화 체험’을 대표하는듯 미로 학습이다. 계단과 골목을 수없이 돌고 돌아야 겨우 화장실을 찾아서 해우(解憂)가 가능하다.

 

○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기록, 2025년 5월 9일(금)
숙박(2실 조식 포함, 373,015원) Fatima(Hotel Fatima), 주유 0, 고속도로비 14,210원, 식비 242,210원

1974년과 1975년, 진주 칠암 성당에서 영세와 견진 교리를 지도하신 루치아 수녀님께서 노래처럼 되뇌던 ‘성모 발현성지 루르드와 파티마’, “내 살아 있는 동안 꼭 가보리라” 오십 년을 소망했기에 주저 없이 도전했던 “파티마, 루르드를 자동차로 보름”의 포르투갈 파티마에서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였다, 멋진 정찬으로.

사진 정선자 / 예수 죽음 경당, 호텔 파티마의 정찬 등
사진 정선자 / 예수 죽음 경당, 호텔 파티마의 정찬 등
사진 정선자 / 예수 죽음 경당, 호텔 파티마의 정찬 등
사진 정선자 / 예수 죽음 경당, 호텔 파티마의 정찬 등
사진 정선자 / 예수 죽음 경당, 호텔 파티마의 정찬 등
사진 정선자 / 예수 죽음 경당, 호텔 파티마의 정찬 등
사진 정선자 / 예수 죽음 경당, 호텔 파티마의 정찬 등
사진 정선자 / 예수 죽음 경당, 호텔 파티마의 정찬 등
사진 정선자 / 예수 죽음 경당, 호텔 파티마의 정찬 등
사진 정선자 / 예수 죽음 경당, 호텔 파티마의 정찬 등
사진 정선자 / 예수 죽음 경당, 호텔 파티마의 정찬 등
사진 정선자 / 예수 죽음 경당, 호텔 파티마의 정찬 등

(이글은 계속 이어집니다)

 

 

편집 : 김인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편집위원 

김인수 객원편집위원  pppp77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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