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 음식>

미국 가기 전, 딸에게 사 갔으면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김치'라고 했다. 미국 코스트코에서도 김치를 팔고 인터넷 한국마트에서도 김치를 팔지만, 한국에서 사 온 김치만큼 맛이 없다고 했다. 우리 시절에는 모유 수유하는 산모에게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은 먹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백김치'를 넉넉히 사가겠다고 했다. 딸이 사실인지 물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지혜라고 했더니.. 딸은 팩트체크를 해보겠다고 했다. 인터넷 정보를 뒤진 딸은 백김치만 먹어야 한다는 건 근거 없는 말이라며 고춧가루 들어간 포기김치를 사 와달라고 했다. 께름하지만 딸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딸은 한 달 내내 뻘건 김치를 먹었다.  

▲ 6월 중순의 어느날 점심. 맨 앞 접시에 있는 것이 사위가 만들어준 핑크색 후무스(hummus) 소스다. 단백질이 풍부한 중동식 향토 음식으로 재치 있게 버터에 구운 브로콜리를 올렸다.
▲ 6월 중순의 어느날 점심. 맨 앞 접시에 있는 것이 사위가 만들어준 핑크색 후무스(hummus) 소스다. 단백질이 풍부한 중동식 향토 음식으로 재치 있게 버터에 구운 브로콜리를 올렸다.

딸은 모유 수유했다. 모유 수유하면 한 번 젖 먹이고 뒤돌아서면 배가 고프다는 것을 경험했던 나는 아침, 점심, 저녁과 사이사이 5회는 미역국 같은 고깃국에 밥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딸은 어떻게 그렇게 부담스럽게 먹냐며, 평소처럼 먹겠다고 했다. 딸네는 아침은 과일, 그릭 요거트, 우유, 너트 등으로 각자 알아서 먹었다. 점심은 빵이나 샐러드, 국수 등 간편식으로 먹었다. 딸은 아침·점심은 평소대로 먹고, 저녁만 고깃국에 밥을 먹겠다고 했다. 그러면 젖이 안 나온다고 했지만…. 미국 사람들은 다 그렇게 먹으면서도 모유 수유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며, 아기 낳고 나서 병원에서도 파스타 등을 줬다고 했다. 젖이 잘 돌려면 따뜻한 국물을 먹어야 한다는 내 말에 우유를 틈틈이 먹겠다고 했다. 엄마가 힘들까 봐 그러는 건지….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어려서는 부모 말을 따르고 늙어서는 자식 말을 따라야 한다는 옛말이 있듯이…. 다 큰 자식을 어찌 이길 수 있으랴. 그나마 다행은 내가 해주는 저녁 식사를 맛있게 잘 먹었다. 국을 큰 대접에 가득 담아줘도 싹싹 다 먹었다. 오랜만에 시골 밥상 같은 음식을 먹는 것 같다며 좋아했다. 그간 아이들은 전통 한국식보다는 퓨전식으로 강렬한 달짠 음식을 주로 해 먹었던 것 같다.

나는 고깃국이나 찌개, 나물, 부침 위주로 저녁 반찬을 했다. 전날 쇠고기를 푹 삶아 뜬 기름을 전부 제거한 후 국이나 찌개를 담백하게 끓였고, 모든 반찬은 조미료 없이 싱겁고, 달지 않고, 기름을 조금만 넣고 심심하게 조리했다. 특히 사위는 내가 한 음식에 중독성이 있어 자꾸 손이 간다면서 정말 좋아했다. 사위는 요리에 관심이 많아 그런지, 사찰 음식 같은 조리법을 꼬치꼬치 묻기도 했다. 딸은 엄마가 해준 음식 먹고 기운 났다며 이렇게 도움이 될 줄 몰랐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제야 면목이 좀 섰다. 

내가 볼 때 딸이 상당히 부실하게 음식을 먹는데도 젖은 잘 나왔다. 초반에 아기가 하도 울어 "네가 먹는 게 부실해서 젖이 부족한 거 아니냐?"라고 딸을 타박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젖은 충분히 나온다고 증언을 해주어 그만 겸연쩍게 되었다. 이후로는 그저 딸이 먹겠다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결론은 반서양식으로 먹어도 젖은 잘 나온다는 것…

<산후 몸 관리>

우리 시절에는 아기 낳으면 일주일 이상 샤워도 못 하게 하고 머리도 감지 못하게 했다. 아기 낳느라 온몸의 관절이 느슨하고 뼈가 약해져 있다고 조심해야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딸에게는 이 말이 전혀 먹히지 않았다. 딸은 2박3일 병원에 있다 퇴원하자마자 샤워하고 머리도 감았다. 이후 매일 샤워하고 머리를 감았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머리털 다 빠지고, 뼈도 아프다고 했지만... 근거 없는 말이라고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찬물로만 하지 말라고 했다는 거다.

딸은 식사할 때면 2층에서 내려왔다. 계단이 제법 많아 계단을 내려오는 것이 산모 무릎 관절에 좋지 않을 것 같아 처음 일주일간만 식사를 올려다 줄 테니 내려오지 말라고 했다. 딸은 답답해서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무릎 시큰거린다고 후회할 거라 해도 듣지 않았다. 2층까지 식사를 올려다 주는 수고를 덜게 하려고 그러는 건지... 진짜 답답한 건지...

물도 냉장고에 딸린 통에서 나오는 찬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어이구... 치아도 약해졌을 텐데 찬물을 저리 들이키면 어쩌누~"하는 내 탄식에도 딸은 병원에서 아기 낳자마자 수분 섭취가 필수라며 간호사가 큰 물통에 얼음을 잔뜩 띄운 물을 갖다주었다고 했다. 

출산 후 풀어진 근육과 뼈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기간을 산욕기라고 하는데 보통 3개월 잡는다. 그 기간은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하고 몸을 따뜻하게 한다고 배웠다. 또 우리는 삼칠일(三七日: 아기가 태어난 후 21일) 동안에는 외부 활동도 삼갔는데... 2시간 진통만에 쉽게 아기를 낳은 딸은 자신만만한 것 같았다. 출산 1주일 후 답답하다며 1시간 산책도 나갔다. 의사도 출산 후 많이 움직여야 빨리 회복된다며 가벼운 산책 정도는 문제 없다고 했다. 출산 한 달 좀 지나 병원에 갔는데 정상적으로 회복되었다는 판정을 받아 얼마 전부터는 매일 수영하러 다닌다. 동양인은 서양인에 비해 골반이 작고 아기 머리가 크다. 이런 신체 차이로 인해 산욕기도 달라지는 건데.... 멀리서 걱정만 할 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신생아 돌보기>

'불면 날아갈세라 쥐면 깨질세라'가 우리가 신생아를 다루는 식이었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꽁꽁 싸매서 키웠는데.... 캘리포니아가 워낙 덥고 건조한 지역이라서 그런지 손주가 더워한다며 때때로 가슴을 벌렁벌렁 드러내놓고 바람을 쐬였다. 모유를 먹일 때면 엄마와 피부 접촉하게 해주랬다며 옷을 벗기고 수유했다. 기저귀를 갈아줄 때도 우선 웃옷부터 훌러덩 벗겼다. 기저귀를 갈고 나도 바로 옷을 입히지 않고 잠시 시원하게 두었다. 내 앞에서 그러면 나는 얼른 거즈 수건으로 손주 배만이라도 가렸다. 그런데 거의 두 달이 되어가는 지금, 손주는 어디 한번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크고 있으니.. 이 또한 내가 틀린 것 같다.  

손주는 딸꾹질도 자주 했다. 서늘한 기운 때문에 딸꾹질하는 것 같은데  의사 샘이 딸꾹질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했다면서 그냥 두어도 된다고 했단다. 때때로 손주가 힘들어 보였다. 따뜻한 물이라도 젖병에 넣어서 조금 먹이면 좋으련만....

6월 14일 트림시키는 모습
▲ 6월 14일 트림시키는 모습

모유를 먹고 트림을 시킬 때도 우리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우리는 아기를 보통 어깨에 엎어 놓고 등을 아래로 쓸어가면서 트림을 시켰다. 그런데 딸과 사위는 손주를 앉히고 턱을 손으로 받히고 등을 아래에서 위로 쓸어가면서 트림을 시켰다. 이 모습을 처음 보고 난 기겁을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알려준 방법이라고 했다. 예전 방식이 오히려 아기가 질식할 수 있다고 요새는 다 저렇게 한다며 한국에서도 이젠 저렇게 한다고 했다. 아직 고개도 못 가누고, 허리도 곧추설 수 없는 손주에게 부담이 될 것 같기만 한데.... 저게 바른 자세라고 했다니...  할 말이 없었다. 

6월14일 아빠와 함께 터미 타임
▲ 6월14일 아빠와 함께 터미 타임

제일 기겁을 한 거는 '터미 타임'(Tummy Time)이다. 이제 2주도 되지 않는 손주를 목 근육을 단련시킨다며 땅바닥에 엎어놓고 고개를 들게 했다. 조금이라도 들려고 하면 "잘했다"라고 칭찬해주었다. 세상에나… 우리 때는 저런 것 하나 시키지 않아도 제때 알아서 목 가누지 않았나? 막 태어난 아기 뼈는 순두부같이 약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의사가 하루 3차례 하랬다며 사위는 터미 타임을 고정적으로 시켰다.

▲ 7월 3일, 31일된 손주.  할무이 품에 안겨 고개를 들어 할머니와 눈을 맞췄다.
▲ 7월 3일, 31일된 손주.  할무이 품에 안겨 고개를 들어 할머니와 눈을 맞췄다.

처음에 손주는 악을 쓰며 울었다.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결국 사위에게 조금 더 크면 시키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했다. 사위도 아기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가슴에 비스듬히 45도 각도로 눕혀서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니 손주가 덜 힘들었는지 울지 않았다. 그레그런가 한 달도 되기 전에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내 가슴에 안겨 있을 때도 위 사진과 같이 고개를 조금씩 들곤 했다.

지금은? 고개를 들려고 스스로 힘을 쓰고 기어가 보려고 팔을 움직이기도 한다. 고개를 든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도 하다. 손주가 씩씩하게 훈련을 따라 하다 보니 목 근육이 빨리 발달한 것 같다. 내가 또 틀렸고 미국 의사 샘 말이 맞았다. 그런데 손주가 너무 잘 따라 하니까 엄마 아빠가 자만해질지 걱정이라 딱 2가지만 부탁했다.

1. 목 근육은 아직도 약하니까 앉은 자세에서 목을 들 때는 꼭 목덜미를 받칠 것. 아기 포대기에 안고 갈 때도 목덜미를 받칠 것

2. 척추 근육이 다 완성되지 않을 때라 너무 일찍 앉히려 하지 말 것. 보행기를 좋아해도 너무 일찍 태우지 말고, 아기 포대기에 안고 갈 때도 엉덩이를 꼭 받쳐줄 것

우리가 한국에 오고 2주 지나지 않아 딸이 "엄마 2주만 더 지내다 가지. 요새 옹알이도 시작했고, 나보고 웃기도 하고, 모빌 달린 플레이매트에서 혼자 잘 노는데... 그거 보고 갔으면 좋았을 걸... "했다. 신식 엄마·아빠의 거칠고 강한 육아 방식에 손주가 잘 적응해서 잘 크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 달 지난 손주의 오전 활동은 플레이매트에서 시작한다. 처음에는 엄마 아빠를 보면서 같이 놀았는데 요새는 혼자 두어도 음악에 맞춰 발차기 하면서 잘 논다고 한다.

산바라지하러 가기 전에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산바라지해 주러 갔다가 딸하고 싸우고 돌아오기도 한다네요. 아기들이 부모 말을 들어야 말이지요. 저희 잘 났다고 다 저희 방식으로 키우겠다 한다네요. 부모는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고 아이들 하자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네요" 우리는 어른들에게 들은 전통 방식으로, 그 방식에 의문을 품지 않고 키웠다. 이제 신세대 부모들은 그런 방식에 의문을 품는다. 인터넷 검색을 통하거나 AI에게 물어보고 방법을 찾는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만 띠르려고 한다. 우리는 완전 구식이 되었다. 

이젠 산바라지해 주는 것이 그저 밥이나 해주고, 우는 아기 달래주는 것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는 것 같다. 전부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하니 똥 기저귀 한 번 빨지 않았고, 모유 짜는 기계도 있어 모유 한 번 짜주지 않았고, 심지어 빨래도 세탁·건조까지 다 돼서 나오니 아기 속싸개 한번 빨지 않았다. 목욕시키는 것이 좀 힘든 일인데... 사위가 전담해서 했다. 병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시켜도 된다고 해서 겨드랑이에서 꼼꼼한 냄새가 나면 씻겨줬다. 우리 때는 하루에 한 번은 꼭 목욕을 시켰다. 응가가 닿았던 궁둥이를 꼭 물로 닦아 주고 말려줘야 피부가 무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물휴지, 연고 등 장비빨로 대신한다. 모유 먹일 때도 목디스크를 예방하는 안경을 쓴다. 우리 때랑 비교하면 아기 키우기 정말 편한 세상이 되었다.

요새 딸은 매일 손주가 자라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내준다. 그거 보는 낙으로 산다. 하도 동영상을 틀고 사니까 남편이 한 동영상을 2번씩만 보라고 할 정도다. 하지만 나는 이 즐거움을 실컷 누리려 한다. 이때, 이 귀여운 모습을 언제 또 다시 만날 수 있으랴.

7월 23일 찍은 영상이다. 모빌을 손으로 치는 것을 넘어 모빌을 잡아챘다. 그리고 힘 있게 마구 흔드니까 집이 무너지는 듯 모빌이 모두 격하게 움직였다. 그 모습에 저도 놀라 손을 놓고 "으앵"하는 모습이 무척 귀엽다. 손주는 겁이 나서 삐쭉삐쭉 울기 일보 직전인데, 철없는 할머니는 길거리 가다가도 피식피식 웃는다.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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