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만고 끝에 도착했지만, 손주는 안아보지도 못하고 당분간 격리 생활을 해야 했다. 우선 우리가 자는 1층 손님방을 제외하고 모든 공간에서 마스크를 쓰고 지냈다. 우리는 손님방과 주방, 식탁이 있는 1층 공간에서 지냈고, 딸네는 2층에서 생활하고, 1층 거실 테이블에 식사를 차려놓으면 내려와 밥을 먹고 쉬었다. 우리는 식탁이나 마당 야외 테이블에서 따로 식사했다. 수저와 컵도 따로 구분해서 사용했다. 거실과 2층은 딸네 영역, 우리는 1층 주방과 식당 영역으로 나누어 되도록 접촉하지 않으려고 했다.  

자칫하면 손님 방에서만 갇혀 지낼 뻔했는데... 다행히 식당이 넓어 식탁도 크고, 한쪽에 3인용 소파도 있어 움직일 공간은 넉넉했다. 식당에 달린 큰 유리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마당이라 수시로 마당을 산책하면서 갑갑함을 달랬다. 마당에는 큰 나무가 5그루나 있어 아침이면 새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다람쥐들은 나무에서 내려와 담장을 타고 수시로 쪼르륵 쪼르륵 다녔다. 오후에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새들이 지지배배거리며 잔디밭을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하얀 꽃이 만개한 나무에서 나오는 향기에 취해 자꾸 나무 아래를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울적할 뻔했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역시 자연이다.

태어난 지 5일째 되는 날 손주 모습이다. 움직이는 모습이 뱃속에 있을 때 초음파 사진과 비슷하다. 예정일보다 8일 먼저 태어났으니... 아직도 뱃속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손주는 거의 2시간 간격으로 먹고 자고 할 때라 수유가 늦어질 경우만 가끔 울었다. 손주는 주로 2층에 있다가 가끔 1층 거실로 내려 올 때도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고 싶었지만 2미터 거리를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남편의 경고에 멀리서만 볼 수 있었다. 다행히 딸이 손주 영상을 찍어 공유해 주어 그 영상을 보고 또 보면서 보냈다. 그렇게 일주일 지나고 나니 다행히 내 기침· 가래는 다 떨어졌다.

딸과 사위는 몹시 힘들어 보였다. 24시간 내내 2시간 간격으로 수유를 하는데 한 번 수유 시간이 보통 30~40분 걸린다고 했다. 1시간 30분 자고 일어나고... 하는 생활을 일주일째 계속하고 있으니 지칠 수 밖에. 하지만 내가 도와줄래야 도와줄 수가 없었다. 밥 해주고 빨래 개키는 일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1주가 지났지만한 더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는 것이 좋을 듯싶어, 한 주를 더 그렇게 보냈다. 식사만 아이들과 한 식탁에서 먹었다. 다행히 식탁이 8인용이라서 식탁 양 끝,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앉아 먹었다. 그래도 식사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주 보고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손주는 여전히 마스크를 쓴 채 좀 떨어져서 보기만 했다.

2주 차에 들어가면서 손주의 투정이 심해졌다. 제 맘에 안 들면 '악악' 거리며 울었는데 그 소리가 아래층까지 쩡쩡 울렸다. 오죽했으면 큰 소리에 민감한 사위는 손주가 울 때면 큰 귀마개 이어폰을 끼고 돌봤다. 배고픈데 먼저 기저귀를 갈아주면 악악 울었다. 자고 싶은데 잠들지 못하면 또 악악 울었다. 목욕할 때도 악악 울었다. 하도 울어서 모유가 부족해서 배가 고픈 것은 아닌가 했다. 하지만 의사샘은 정상적으로 모유가 나오고 아기도 충분히 먹고 있다고 했다.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세상에 처음 나온 손주가 세상 탐색을 얼추 끝내고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하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딸과 사위는 점점 지쳐갔다. 내가 쫓아 올라가 달래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할 수 없어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3주가 시작된 후 딸과 사위 앞에서는 마스크를 벗었다. 마주 보고 한 식탁에서 자유롭게 밥을 먹었다. 마스크를 쓰고 손주를 안아보는 것도 허용되었다. 딸이 물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말이 나오지 않고 웃음만 나왔다. 큰 기쁨이 아래부터 벅차올라 얼굴이 후끈거렸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도 손주는 할머니 품을 아는 것 같았다. 악을 쓰다가도 내 품에 안아 토닥토닥 해주면 금방 진정했다. 아기 달래는 기술이 저절로 나오는 것 같았다.

토론토에서 사는 아들도 왔다. 아들은 매형 운동 가르쳐준다고 오전에 매일 둘이 운동센터에 갔다. 아침에 수유를 막 마친 손주를 사위가 봐주고 딸은 2시간 단잠을 잤는데, 이제 내가 아침에 돌봐주는 역할을 맡았다. 모유를 양껏 먹고 내려온 손주는 기분이 좋은지 잘 놀았다. 2~30분 놀다 칭얼대어 토닥토닥 해주면 잘 잤다. '악'을 쓸 때면 앙칼진 고양이 같던 손주가 나와 있을 때는 순한 강아지 같았다.

사위가 무슨 비법인지 물었다. 나는 놀아줄 때면 늘 말을 걸었다. 그리고 칭얼대면 우리 할머니가 들려주던 전통 자장가를 틀어놓고 재웠다. 악을 쓰며 뒤집어지다가도 이 음악을 틀면 순간 눈이 '반짝'하면서 듣는 것 같았다. 몇 번 울다가도 금방 진정했다. 그러면 가슴에 안고 엉덩이를 토닥토닥 해주면 스르륵 잠을 잤다. 잠자는 손주를 침대에 살짝 내려놓으면 깰 때도 있었다. 그럴 때도 움직이지 말고, 쪽쪽이를 물려주며 그 자리 그대로 끈기 있게 토닥토닥 해주면서 자장가를 들려주면 다시 잠을 잤다. 이게 비법이다. 

4주 차에는 마스크를 벗고 손주를 만났다. 드디어 오전뿐만 아니라 손이 필요할 때면 수시로 손주를 돌봐줬다. 손주는 내가 돌봐주면 떼를 거의 안 썼다. 그런 손주가 더없이 예뻤다. 딸이 엄마에게 가면 쉽게 진정이 된다고 이상하다고 했다. 아기 영혼과 할무이 영혼이 서로 연결되어 알아보는 거라고 하니, 딸은 우스갯소리로 알고 웃었다.

어느 날 딸이 점심에 콩국수를 했다. 국수를 삶아 막 먹으려는데 자던 손주가 깼다. 딸은 젖 먹을 시간이라며 젖을 먹이고 국수를 먹겠다고 했다. 그럼 20~30분이 걸린다. 콩국수는 다 불어서 먹을 수 없게 된다. 내가 달래주고 있을 테니 딸에게 얼른 먹으라고 했다. 딸은 망설였지만, 나는 자신 있었다. 한번 해보자고 했다. 

손주가 가장 악을 쓰고 울 때가 바로 젖을 먹으려고 일어났는데 빨리 안 줄 때다. 나는 '악악' 우는 손주를 가슴에 안고 계속 말을 걸었다. "아가…. 엄마가 국수 먹을 동안 기다려줄 수 있지? 우리 아기 착하지? 기다려줄 거지? 우리 아기 잘 기다려주네!"라고 계속 말을 걸면서 토닥토닥 해주었다. 손주는 말귀를 알아듣는 건지 울음을 멈추고 내 품에서 잠이 들었다. 갓난쟁이라 아무것도 모를 것 같지만…. 갓난쟁이도 말만 못 할 뿐이지 알 것 다 아는 건 아닐까?

손주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다. 7월 2일 태어난지 한 달 되는 날 병원에 갔다. 2.9kg으로 미국 기준으로 볼 때 비교적 작게 태어났고 초기 황달증세가 있었으나, 한 달 뒤 현재는 아주 건강하게 잘 커서 몸무게는 하위 30%, 키는 하위 40%로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모유도 충분하다고 했다. 병원 다녀온 날, 엄마 젖을 실컷 먹고 응가를 푸짐하게 싼 후 기분이 좋은 손주 모습을 찍었다. 제가 손으로 얼굴을 치고는 깜짝 놀라 모로반사 하는게 웃겨서 보고 또 보는 최애 영상이다.  

손주는 내 품을 좋아했다. 우린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짜릿한 교감도 잠시…. 7월 4일 우리는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날 아침 7시, 딸 집을 떠나기 전 손주를 잠깐 보고 싶었다. 그 시간 손주는 자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2층에 올라가니 손주는 막 잠에서 깨서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었다. 혼다 자다 깨서 울만한데도 울지 않고 나를 빤히 보았다. 할무이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달간의 산바라지를 무사히 마치고, 눈에 어리어리한 손주를 뒤로 하고, 우리는 귀국했다. 

손주가 잠투정할 때 들려주던 자장가를 다시 올려본다. 나에게도 편안함을 주는 곡이 되었다.  

 

 3편에 계속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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