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한 마을에 금슬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이야기의 주제는 닭발이였다. 재미를 더하고자 필자가 재구성 편집하였다. 마을사람들은 그 부부가 항상 밝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신기하고 부러웠지만, 한편 의아스럽기도 했다. 아무리 금슬좋고 다정다감한 부부라 해도, 살다 보면 뜻밖의 일로 다툼이 있기 마련이고, 그로 인한 불편한 기색을 감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부에게서는 도무지 그런 기미를 찾을 수가 없었으니 참으로 기이했다. 지나가던 한 나그네가 우연히 이 얘기를 듣고, 그 댁 남정네를 찾아가 사연을 들어보기로 했다. 이 얘기는 다소 남성 중심적으로 비칠 수 있으니 감안하면 좋겠다.>

▲ 어미닭과 병아리

나그네: (한 손을 치켜들고 웃으면서 느릿한 목소리로) 여보시오! 안녕하십니까?
남정네: (허리를 약간 굽혀 인사하면서) 아예~ 그럼요~ 잘 지냅니다. 무슨 일이시지요?
나그네: (남정네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나는 전국 방방곡곡을 떠다니는 나그네올시다. 이 마을을 지나가다 몇몇 사람들이 모여 웅성웅성 이야기를 나누기에 가까이 가서 들었더니, 아주 흥미롭고 재미가 있었소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궁금하고 부럽기도 하여 그를 확인하고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남정네: (짐작이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약간 점잔을 뺀다) 무슨 그런 말씀을? 얘기를 들었으면 그들에게 물을 것이지, 어찌 내게 와서 그러시오? 거참.
나그네: (이야기를 듣지 못할까봐 다소 겸손한 자세를 취하면서) 그들 얘기를 들어보니, 이차저차해서 저차이차하다는 닭발이야기이더이다. 바로 귀댁 부부에 관한 이야기라 하더군요. 그래서 실레를 무릅스고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 신랑차지 닭발

 남정네: (먼 산을 쳐다보면서) 허허~ 그것 참! 그랬군요?(그러면서 머리를 긁적거린다.)
나그네: (남정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공손한 말투로) 귀하께서는 어찌 하시기에 부부간의 금슬이 그토록 좋단 말이요?
남정네: (약간 쑥스러운 모습으로) 허참~ 좀 얘기하기가 그렇습니다. 부부간의 내밀한 이야기라서...(말꼬리를 흐린다.)
나그네: (곧장 말하지 않고 잠시 뜸을 들인 후에) 이는 많은 분들에게 귀감이 될 것입니다. 말씀해 주시면 특히 부부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교훈과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남정네: (머뭇거리면서) 그 그렇지만... 사실은 제가 잘 해서라기보다는 제 아내가...(말꼬리를 흐리면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나그네: (남정네를 빤히 쳐다보면서) 그러시겠지요. 알겠습니다. 말할 수 있는 것만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남정네: (뒤 짐을 지면서 나그네 쪽으로 얼굴을 돌린다.) 그러면 대충 말씀 드릴 터이니, 귀 손께서 잘 알아들으시구려.
나그네: (고마운 표정을 지으면서) 그럼요! 알겠습니다. 그래야지요.
남정네: (고개를 숙여 땅을 향하더니 다시 먼 산을 보면서) 결혼 초, 신혼 때의 이야기입니다. 아직 서로의 얼굴을 바로 보기가 어색한 어느 날, 아내가 저를 보자더니 대뜸, 암탉을 한 마리 잡아 달라 했습니다.    
나그네: (침을 꿀꺽 삼키면서) 아예~ 그래서요?
남정네: (나그네를 지긋이 쳐다보면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그냥 잡아달라는 거예요. 어여쁜 새색시의 말을 어찌 거부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곧장 닭장으로 가서, 큼지막한 암탉 한 마리를 잡아가지고 여물간으로 갔지요. 가마솥에 물을 붙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닭의 목아지를 비틀고 털을 뽑아 손질을 깨끗이 한 후, 함지 통에 담아 아내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나그네: (닭 잡는 모습을 그리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끄덕하면서) 으흠~ 그르셨군요. 그래서요?
남정네: (허리춤을 한 번 치켜 올리고는) 손질 된 닭을 받은 아내는 부엌으로 곧장 가면서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금방 요리해서 가져올께요’라고 말하더이다. 그래서 마당을 왔다 갔다 하면서 기다렸지요. 
나그네: (두 손을 만지작만지작 거리면서) 부엌아궁이에 불이나 좀 때 주시지 않고...
남정네: (의아한 눈으로 나그네를 쳐다보면서) 에이~ 어디를... 아내가 오지 못하게 해요.  

나그네: 아내분이 좋아하시지 않나요?

남정네: 진정 모르신단 말씀이오? 가랭이를 벌리고 아궁이에 불을 때면, 남정내의 아랫도리는 따뜻해지고 낭심이 축 늘어저 힘이 없어집니다. 남자의 아랫도리는 다소 서늘한 게 좋다지 않습니까? 반면에 여성의 아랫도리는 따뜻해야 하고요.
나그네: (눈을 가느스름히 뜨면서) 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닭조림이던가요? 백숙이던가요?   
남정네: (입맛을 쩍 다시고 나그네를 쳐다보며) 아내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백숙을 함지박 가득히 들고 왔더이다. 먹음직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막 달려들어 먹으려는데, 아내가 ‘잠시 만요! 자~ 여기 이 닭발과 닭 머리를 먼저 드사와요.’ 하면서 내밀잖아요. 난 가려던 손길을 흠칫 멈추고 의아한 눈초리로 아내를 처다 보았지요.

나그네: (궁금한 표정으로 남정네에게 더 다가서며) 그~ 그래서요.     
남정네: (멋 적은 웃음을 지으면서) 왜 이러시오? 저만치 가시오. (나그네를 아래위로 처다 보면서) 왜 닭발과 닭 머리를 먼저 먹으라 하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아내가 ‘닭이 먹이를 찾을 때 땅과 풀 섶에서 어떻게 하는지를 생각해 보세요. 닭이 하는 것처럼 나를 땅과 풀 섶이라 생각하시고 헤치고 쪼아 드시라고요...’  하고 말끝을 흐리면서 보시시 웃잖아요. 어찌나 그 모습이 예뻤던지 지금도 선합니다.
나그네: (몸을 살짝 흔들면서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어허~ 햐~ 그것참! 그래서요?
남정네: (그때를 회상하듯 먼 산을 처다 보며) 어쩌기는요. 닭발과 닭 머리를 우두둑우두둑 씹어 먹었지요. 닭발을 먹고 나니 아내는 닭다리를 비롯한 다른 부위를 뜯어 주더이다. 자기는 닭 날개를 먹으면서...
나그네: 부인께서 닭 날개를 드셨다고요? 
남정네: (발부리로 땅을 툭툭 차더니) 닭 날개는 바람을 일으키니 자기가 먹어야 한다면서...

나그네: (알겠다는 투로 은근한 웃음을 지으면서) 참, 그렇겠군요. 그때 한 번으로 끝이었나요?  
남정네: (의미 있는 표정을 지면서 뜸을 들이더니) 아닙니다. 내가 아내에게 관심이 조금 시들해질 때면 어김없이 암탉을 잡아 닭발을 가져 왔지요. 닭만 잡는 게 아니었어요. 그때마다 아내의 모습도 달라졌어요. 닭이 모이를 찾을 때 한 곳에서만 헤집지 않잖아요? 엉덩이를 전후좌우로 흔들면서 이곳저곳을 두 발과 부리로 땅과 풀을 헤집어 새로운 먹이를 찾잖아요. 그럼 지렁이가 나오고, 땅강아지도, 애벌레도, 부드러운 풀도 있지요. 돌이켜 보면 암탉을 잡을 때마다 아내는 야릇한 매력으로 새로워졌어요. 맘과 몸과 태도에서 나타났지요. 그 후로 나는 아내가 곁에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 되었습니다. 아내는 지루함이 없이 변하는 나의 광장놀이터였지요.

나그네: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감탄사를 연발한다.) 허! 햐! 어찌 그런 지혜를... 대단한 부인이시네요.
남정네: (눈을 지그시 감고 나그네를 바라보면서) 아내는 고갈되지 않는 신선한 샘물이에요, 동나지 않는 꿀단지였습니다. 언제나 따뜻한 휴식처였고 포근한 안식처였지요. 아내에게 가면 맛난 음식과 술이 있고, 애틋하게 넘치는 사랑이 있고, 다정한 속삭임이 있고, 춤과 노래가 있는 등 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러하니 제가 외출이나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있겠습니까? 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아내의 매력은 나를 사로잡았지요. 아내는 나에게 모든 것을 다 제공하는 요술단지요, 웃음과 즐거움을 연출하는 종합예술공연장이었습니다.

나그네: (입을 쩌~억 벌리고 멍 띤 얼굴로) 음~ 음~ 아~ 아~
남정네: 아내가 이런 말을 합디다. 남정네의 본성은 목표 지향적이라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거나 성취하고 나면, 다음 새로운 목표로 옮겨가기 마련이라고요.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는 남성들의 근본이므로 죽을 때까지 끝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를 충족해 가는 과정이 남성들의 삶이라면서, 그렇게 생겨 먹은 남정내를 가타부타하며 막기만 하면 되겠느냐고요. 자기는 그를 인정하고 남성들의 본질을 알았으니, 답을 찾아 실행하는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남정네들은 본시, 떠돌이 사냥꾼 근성이 있는 방랑자이므로, 한 곳에 정착하기 힘들어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日新又日新(일신우일신)으로 變心變身(변심변신)하여 정복하고 탐하고 싶은 새로운 목표가 되도록 노력했답니다. 그 결과 늘 새롭고 신선한 매력을 발산할 수 있다 했지요. 
나그네: (고개를 연신 끄떡이지만 맥이 풀린 모습으로) 그렇게 까지? 할 말이 없소이다. 알겠습니다. 알겠어! 닭발의 비밀을 이제야 알겠어! (나그네는 고맙다는 인사도 잊고 느릿한 걸음으로 뒤돌아갔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지만 바보 같은 사내를 뒤로 한 체...)

닭발이야기에 빠져 남정네에게 직접 듣지 못했지만, 부부사이가 좋다보니 다산하여 6남6녀 12자녀를 두었다 한다. 자녀들을 전국 각지로 시집장가 보냈고, 부부는 자녀댁을 방문하면서 전국유랑을 했다고 한다. 자연히 즐겁고 행복한 노후를 보냈고 백년해로는 당연지사.

▲ 보무도 당당한 암닭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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