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평양 남북 마라톤 대회가 말해 주는것

9.미국의 두 얼굴

대동강에 가면 미국의 군함 푸에블로호가 1968년부터 나포되어 전시되어 있다. 푸에블로호는 승무원 83명(장교 6명, 사병 75명, 민간인 2명)을 태우고 북한 동해안 40km 거리의 북한 영해에서 첩보 업무수행 중 북한의 초계정 4척과 미그기 2대의 위협을 받고 나포되었다. 이 때 도주하다가 북한 측의 위협사격으로 1명이 사망하고 수 명이 부상했다. 아무리 자국의 영해상이라 하더라도, 경제대국이자 군사대국인 미국의 군함을 나포했다는 것은 세계를 경악시키고도 남을 만한 사건이었다. 미국은 핵추진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와 7함대의 구축함 두 척을 동해상에 진주시키고 미사일 및 항공기를 발진시키며 전면전 준비로 북한을 위협, 즉각적인 반환을 요구했으나 북한 당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북한이 끄떡도 하지 않자 미국은 결국 소련과 중국에도 굴욕적인 협조를 요청했으나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북한은 북한 영해 상에서의 첩보활동에 대한 미국의 시인, 사과와 재발 방지 서약이 없으면 불가능함을 천명했고 결국 미국은 굴복하여 북한에 사과했지만 배는 돌려받지 못한 채 승무원만 송환 받았던 것이다. 미국이 북한 영해를 침범하여 정보수집행위를 한 주권침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던 것이다. 세계를 놀라게 한 북한의 강한 자존심이었다. 북한 대동강에 정박되어 있는 푸에블로호는 미국의 오만함과 북한의 자존심이 공존하는 상징이 되어 있었다.

그보다 4년전 베트남에서 북베트남군이 미군 구축함을 공격했다는 통킹만 사건이 발발했다. 북베트남군 4명이 사망하고 어뢰정이 격침되는 등의 손실이 있었지만, 오히려 북베트남군에게 공격당했다는 미국 측의 손실은 없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의회는 ‘통킹만 결의’를 하여 미군의 전면적인 베트남 군사 개입의 길을 터 주었다. 이듬해 2월 미국의 B-52 전폭기들이 북베트남을 융단 폭격하기 시작했고 이어 지상군도 파견되었다. 미국은 베트남의 통일을 원하지 않았다. 부패한 남베트남이 패망할까봐 전쟁에 개입한 후에도 끊임없이 휴전을 제의하여 베트남의 남북 분단을 고착화 하려 시도했다.

1971년 미국 뉴욕타임즈에 통킹만 사건이 조작되었음이 폭로되었을 때는 이미 베트남 전역은 불바다가 된 이후였고 약도 없이 죽어가는 베트남 인들의 절규가 지옥도를 연상케 한 이후였다. 미국은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었다. 호 아저씨를 위해 죽겠다며 결사 항전하는, 베트남인들을 단결시킨 것은 호치민이었지만 그 호치민을 강하게 만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었다. 베트남은 미국과 전면전을 벌여 승리를 맛 본 세계 유일의 약소국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미국을 비웃으며 통일을 이루었다.

10. 우리끼리 만들어 가야 할 머나먼 길....통일

다시 평양 순안 공항, 3박4일 일정동안 우리팀 담당 동무들과도 정이 많이 들었다. 남측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기 전, 한국식으로 작은 선물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동안 남자 동무와 제일 친하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던 내가 책임을 맡게 되었지만 막상 이야기를 하려니 난감한 일이었다. 공항에 초라하긴 해도 선물가게도 있긴 하다. 한국에서는 그냥 팁 개념을 돈으로 주는 것이 일상적이지만 그들이 가이드도 아니고, 팁을 건네기는 난감한 일이었다. 나는 첫 만남때 그를 끌고 고려호텔의 지하 가라오케를 갔던 용기로 말을 건넸다. "한국에서는 이럴 때 그동안 잘 보살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데 뭐 딱히 살 것도 없고 해서 돈을 좀 걷었으니 받아주면 고맙겠다"고 더듬더듬 이야기를 했다. 공연히 내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웃음기 띤 얼굴로 남조선에 두 번이나 갔고 지금도 남조선 동무들이 오면 꼭 자기가 대접을 한다면서 말을 이었다.

“여기에 돈을 두지 말고 마음을 두고 가시라요. 왜 꼭 남조선 동무들은 고마우면 돈으로 대접을 합네까? 마음을 주면 좋갔는데...그리구 자주 오시라요. 우리야 뭐 적만 많고 돈은 없고...남조선 동무들이래 돈이 많으니까. 거 뭐 미국, 일본 많이 가지 말고 이리로 많이 놀러 오란 말입네다. 이래 자주 오고 가고 하다보면 통일이 빨리 오지 않갔습네까? 그거이 보답이고 대접이지요 뭐.”

나는 손에 돌돌 말아 쥐고 있던 백 달러짜리 두 장이 혹여 그의 눈에 띌까봐 슬그머니 뒷짐을 지고 말았다.

“우리야 뭐 아예 당국에서 허락도 안하고..첫째 돈도 없구 말입네다. 동무들이 자꾸 남조선 당국에 북한 가갔다구 우기라요. 남조선은 그래도 인민들 단결 하는 거 무서워하지 않습네까? 열 번 주장하면 한번은 보내주지 않갔나 이 말입네다.”

구멍가게나 하는 내가 통일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내 설움에 겨워 자식들에게 얘기하기도 민망할 뿐인 통일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 체념에 젖어있는 내게 그의 단순 무식한 말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그래 이제 우리끼리 하자. 정권도 정치가도, 잘난 인간들도 다 필요 없다. 어떻게 해서든 북으로 가고 남으로 오고. 우리가 우리 힘으로 통일의 장정을 시작하자. ‘통일’ 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모든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미국 갈 돈으로, 호주 여행 갈 돈으로 북한에 가자. 금강산도 좋고 개성도 좋고 그 어딘들 금수강산이 아니랴. 그리하여 하도 많은 이들이 남북을 드나들어 누가 어디를 돌아다니는지 국가정보원의 첩보도 감당치 못하고 경찰도 그 수를 파악하지 못하여 드디어는 남북의 철조망을 걷도록 해보자. 그렇게 우리가, 우리가 분단의 설움을 끝장내도록 해보자.

▲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오르는 모습

비행기가 도움닫기를 시작했다. 멀리 김일성의 사진이 걸려 있는 순안공항의 모습이 멀어지는가 싶더니 비행기는 하늘로 기우뚱 날아올랐다. 중국을 거치지 않고 바로 대한민국으로 갈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가족보다 더 보고 싶은 사람...그 역시 우리가 돌아오는 비행기를 알고 있고 진심으로 반가이 맞아 줄 것이다. 통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이라도 보고 왔으리라 믿으며 빙긋이 웃고 있을 것이다. 볼 수는 없어도 그의 웃음이 옆에 있는 것만 같았다. 끝

편집 : 안지애 부에디터

유원진 주주통신원  4thme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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