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53] 한신과 토사구팽(兎死狗烹)

다다익선(多多益善):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요! 김동호 객원편집위원l승인2018.01.29l수정2018.01.3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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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이 위나라에 이어 대나라를 정벌하고 조나라로 진격을 하려는데, 유방은 형세가 위급하다며 한신의 병력을 차출하여 초나라 항우를 막기 위해 데려갔습니다. 한신은 정예병을 보내고 새로 개편한 오합지졸 2-3만을 끌고 정형으로 진군하지요. 당시 조나라에는 20만의 군대가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조나라 이좌거는 왕과 실력자 진여에게 청하기를, ‘3만의 군사를 자기에게 주면 수백리 길을 이동하느라 지친 군사들이 정형으로 들어오는 좁은 지형에 길게 늘어졌으니, 샛길로 가서 보급을 끊어버리면 열흘 안에 한신의 목을 바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한신의 군대가 원거리에 지쳤다고 하여도 선봉의 기세는 당할 수 없으니 싸우지 말고 방어를 강화하여 예봉은 무조건 피해야한다고 주장하지요.

하지만 진여는 병법을 들먹이며 지치고 수에서도 상대가 안 되는 적과 전면전을 주장합니다. 한신과 싸우지 않고 피하면 다른 제후들이 조나라를 업신여겨 함부로 쳐들어올 수 있다고 하자, 조나라 왕은 진여의 계책을 받아들여 그를 대장으로 임명합니다.

한신은 조나라 군대가 전면전을 한다는 첩보를 듣고 곧장 모든 병력을 진군시킵니다. 기병 2,000명을 성벽으로 몰래 이동시켜 매복시키고, 나머지는 면만수를 모두 건넙니다. 강을 등지고 싸우는 배수진은 모든 병서에서 금기하는 병법입니다. 퇴로가 끊기면 후일을 도모할 수 없이 몰살을 당하기 때문이지요.

한신은 병력 중에서 1만을 추려 강가에 배수의 진을 치고 나머지 노약자들로 공격군을 편성합니다. 이를 지켜보는 조나라에서는 배꼽이 빠질 지경이지요. 병법도 모르는 한신은 그야말로 독안에 든 쥐라고 여겼습니다. 자기들 눈앞에서 군을 나누느라 우왕좌왕하는 오합지졸들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대오를 갖추기도 전에 공격을 하면 한신이 도망칠까봐서 한꺼번에 때려잡겠다고 기다려주는 여유도 부립니다.

나름대로 준비를 마친 한신은 노약자들을 대리고 북을 울리며 대장기를 앞세우고 직접 공격을 합니다. 조나라에서는 당연히 도전을 받아주지요. 성벽을 나와서 싸웁니다.

비록 허접한 병사라고 해도 퇴로가 없다는 걸 알기에 싸우는 척 하다 도망갈 곳도 없습니다. 할 수 없이 싸우다보니 이젠 죽고 살기로 싸우는 형국이 되었지요. 조군은 내심 당황합니다. 그냥 함성만 크게 지르고 뛰어가면 다 잡을 줄 알았는데 막상 죽자 사자 덤벼드니 오히려 사기가 떨어졌지요. 그래도 시간이 갈수록 병력은 적고 힘은 달리니 결국 한신의 군은 밀리지요.

그러자 한신은 실감나게 대장기까지 버리고 허겁지겁 도망칩니다. 대장 진여는 이제야말로 승리가 눈앞에 왔다고 여기고 성벽안의 군사들까지 모두 동원하여 일거에 섬멸하겠다며 밀어붙입니다.

한신이 강을 등지고 진을 친 본대로 들어오자, 그동안 쉬고 있던 병사들이 이제는 죽기로 싸웁니다. 오히려 공격하다가 지친 조나라 병력이 할 수 없이 철수를 해야만 했지요. 그런데 아뿔싸 자기들 진영으로 돌아와 보니 성벽에는 수많은 붉은 한나라 군기가 빼곡히 바람에 펄럭입니다. 바로 2,000명의 기병이 비운 성을 점령해버린 것인데, 깃발만으로는 어마어마한 대군처럼 보이지요.

갑작스런 상황에 조나라 군인들은 동요하고, 그 동요는 더 큰 공포를 불러오자 순식간에 와해되었습니다. 한나라 군이 앞뒤에서 공격을 하자 공포심으로 전의가 꺾인 조나라 군대는 도망가기 바쁩니다. 조나라 왕과 대장 진여마저 도망을 치자, 오히려 조나라 군인들이 강물로 뛰어드는 상황으로 돌변합니다. 결국 왕은 사로잡히고 진여는 죽임을 당하지요. 한나절이 다 가기도 전에 20만의 대군을 물리치고 조나라를 멸망시킵니다.

▲ 한신(韓信: BC 230?~BC 196)

불가능한 전투를 승리로 이끈 한신. 정형의 전투는 그 중에서도 백미임 사진: wikiwand.com

이 배수진 하면 떠오르는 통한의 역사 임진왜란 생각이 누구나 나지요. 바로 신립 장군이 정예군을 대리고 탄금대에서 결사항전을 하겠다며 배수진을 치고 싸웠다가 몰살을 당하면서 조선은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종사관 김여물은 작전회의에서 가장 험지인 문경새재에서 막자고 하였지요. 문경새재는 너무 가파르고 험해서 새들이나 넘어가는 고개 즉 새재, 한자로는 조령(鳥嶺)이라 부릅니다. 왜군도 이 조령을 가장 경계하였지만 유리한 지형을 버리고 배수진을 쳤다가 신립 장군도, 김여물 종사관도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합니다.

조나라를 멸망시킨 이 정형의 전투로 인해 서른 살도 안 된 젊은 한신은 비로소 세상에 그 가공할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그 여세를 몰아 북쪽의 연나라와는 싸움 한 번 없이 항복을 받았습니다. 이어서 동쪽으로 제나라를 치러 떠납니다.

BC 204년 유방의 책사 역이기가 제나라에 들어가 유창한 말솜씨로 전광을 설득하여 유방에게 항복을 하도록 했습니다. 한신도 이 소식을 듣고 제나라 정벌을 중지하려는데, 변사 괴철이 등장하여 역이기에게 공을 빼앗길 거냐고 충동질을 하지요. 이에 한신은 무방비상태의 제나라를 기습합니다. 제나라는 크게 패하여 후퇴하고 책사 역이기는 전광에게 죽임을 당하지요.

위기에 처한 전광은 항우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이에 항우는 용저를 장군으로 삼아 20만의 군대를 보내 한신을 치도록 합니다.

용저는 주위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한신을 업신여기고, 제나라의 반을 차지하겠다는 욕망이 앞서 유수라는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를 합니다. 한신은 밤사이 1만개의 모래주머니를 만들어 상류를 막습니다. 다음날 한신은 강을 건너 용저에게 싸움을 걸다가 패하는 척 도망을 칩니다. 용저는 즉시 추격을 하였지요. 강을 반 도 건너지 못해 둑이 터지면서 초군은 물귀신이 되고 용저는 전사를 합니다. 제나라 왕 전광이 달아나면서 제나라마저 한신의 손에 들어갑니다. 이제 천하는 항우 유방 한신이 나눠 갖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BC 203년 제나라를 굴복시킨 한신은 유방에게 사신을 보냅니다. 믿을 수가 없는 제나라 백성을 다스리려고 하니 거짓으로 자신을 제나라 왕에 봉해달라고 합니다. 유방은 한신이 대놓고 제나라를 탐하자 분노가 치솟았지만 장량의 간언을 받아들입니다. 직접 장량을 파견하여 한신을 정식 제나라 왕으로 삼지요.

BC202년 한신은 30만 대군을 끌고 초한대전의 마지막인 해하의 전투에 참가합니다. 한신은 앞 선을 맡아 주력으로 공격 선봉에 섭니다. 한신이 싸우다 물러서자, 유방의 중군이 좌우 측면을 공격합니다. 후퇴하던 한신의 대군이 뒤돌아서 협공을 하자 초군은 무너지고 해하의 전투는 한나라의 승리로 막을 내립니다.

유방은 전쟁이 끝나고 귀로에 갑자기 한신의 진영으로 들이닥쳐 한신의 군권을 뺏고, 자기가 가까이서 통제할 수 있는 초나라 왕으로 봉하고 하비에 도읍을 정하게 합니다. 제나라는 후에 유방의 아들에게 주지요.

초나라 왕이 된 한신은 고향으로 가서 표모에게 천금을 하사하고, 굴욕을 준 건달에게도 자리를 주었습니다. 1년여 초나라 왕으로 평화로운 시절을 보내지만, 전쟁터가 삶이었던 사람들에게는 전쟁이라는 무대가 사라지면 평범한 사람보다 더 거추장스런 존재가 됩니다.

한 번 의심이 자리를 잡으면 가만히 서있는 돌부처도 의심스럽지요. 책사 역이기를 죽게 만들고, 제나라 왕의 자리를 탐했으며, 항우에 패해 곤욕을 치를 때도 달려오지 않아 섭섭했던 젊은 한신은 유씨 왕조를 건설하는데 큰 짐이었겠지요.

BC 201년 유방은 한신을 제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각 제후들을 현재의 하남성 회양으로 소집한 후, 반역을 이유로 한신을 곧장 포박합니다. 그러자 한신이 한탄하며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합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교토사 양구팽(狡兔死 良狗烹: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좋은 개를 삶는다. 사냥거리가 없어지면 마지막에는 사냥개를 잡는다.)라고 하더니 오늘은 내가 팽을 당하는구나.”(원전은 월나라 범려가 문종에게 한 말. 대만이야기 17 와신상담)

▲ 최근에 토사구팽이라는 사자성어가 크게 유행합니다. MB에 팽 당한 제1부속실장 김희중 저격수로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유방은 한신을 죽이지 않고 군권이 없는 회음후에 봉합니다. 초나라는 둘로 나누어 유방의 사촌과 친동생을 왕으로 삼지요. 한신은 병을 핑계대고 조정의 일에는 참여하지 않습니다.

한번은 황제와 장군들이 모여서 한담을 하는 자리에서 유방이 한신에게 묻습니다. “공은 내가 얼마의 장병을 지휘할 수 있다고 보오?” “10만 정도 입니다!” “공은 얼마나 지휘를 할 수 있소?” “다다익선(多多益善의 유래)입니다” “왜 내 밑에 있소?” “황제께서는 많은 군사를 통솔할 수 있는 뛰어난 장수를 거느릴 수 있는 재능이 있고, 또한 하늘이 도우니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BC 197년 8월 유방의 신임을 받아 거록의 태수로 임명된 진희가 반란을 일으키자 9월에 유방은 반란을 진압하러 떠납니다. 한신은 역시 병을 핑계로 출정을 하지 않지요.

BC 196년 한신의 가신 중에 죄를 짓고 갇혀있던 미상의 부하가 도망쳐 여후에게 보고를 합니다. 한신이 진희와 역모를 도모하였다고. 유방이 원정을 가 있는 동안 승상 소하의 기지로 궁에 들어온 한신을 여후는 붙잡아 장락궁에서 참수를 합니다. 한신의 처자식과 삼족이 모조리 죽임을 당하고 말지요.

사마천은 한신이 역모를 도모했다고 기술하지만 팽월이나 다른 반란을 주도한 사람과는 달리 기록 자체가 억지스럽습니다. 역모로 죽은 한신 외에는 연루된 어떤 가신도 없습니다. 하다못해 진희와 연락을 취한 사람도 없고, 여후에게 보고한 이름 모를 사람만 존재합니다.

애석하게도 한신을 위한 구명에 누구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유방에게 천거한 소하는 오히려 한신을 잡는데 거들고 나섭니다. 한신이 전쟁에서는 적수가 없을지 몰라도 대인관계는 모난 듯합니다. 불패신화를 역사에 기록한 대장군 한신, 30 중반의 젊은 나이에 토사구팽이란 말을 후세에 널리 전하고 후대가 끊기지요.

편집: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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