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284~289일

투루판으로 들어서는 길은 뽕나무 가로수가 한동안 이어졌다. 붉게 익어 떨어진 오디가 거리를 붉게 물들이고, 뽕나무 사이사이에 접시꽃이 사막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피어나고 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길가에는 지난 밤 더위를 피해 문밖 침상에서 자는 사람들이 보였다. 먼지를 피우며 마당을 쓰는 서역여인은 먼지를 뒤집어쓴 접시꽃처럼 시골티를 뒤집어썼어도 있는 그대로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듯 보인다.

뽕나무 가로수가 끝나자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사막 한가운데 펼쳐진 포도밭은 장관이다. 나그네에게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투루판이라는 지명은 위구르어로 ‘파인 곳’이라는 의미다. 해수면보다 낮은 이곳은 톈산 산맥 자락들이 에워싼 분지다. 여름에는 기온이 50도에 이를 정도로 덥고 겨울에는 엄청난 추위가 몰아닥친다. 이곳은 중국에서 가장 더운 곳이지만, 중국에서 가장 맛있는 포도와 와인이 생산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것은 톈산이 가져다준 커다란 축복이기도 하다.

톈산은 거대한 산 도적이다. 이곳은 내륙 깊숙한 곳이라 구름을 구경하기도 힘든데 그 구름이 산을 넘을라하면 구름이 가지고 있는 습기를 탈탈 털어 눈(雪)으로 빼앗아 머리에 이고 있다가 날이 더워지면 주위 황량한 땅으로 흘려보내주어 온갖 생령이 자라게 만든다. 톈산은 양산박의 송강과 오용, 이규, 노지심 등 108인의 의적과 비슷한 셈이다. 중국인들은 아마 수호지보다 톈산을 현실적으로 더 좋아할 것 같다. 하늘의 것을 도적질해서 황폐한 대지에 나누어주는 의적이니 말이다.

포도는 강렬한 태양과 바다의 물 주름을 모래에 그려내는 거친 바람을 고스란히 담고, 발부터 가슴까지 시원하게 해주는 맑고 깨끗한 눈 녹은 물을 마시면서 최고의 맛을 생산한다. 최고의 뜨거움과 차가움, 거친 듯 부드러움을 담아서 익은 포도 알이 이곳 토굴에서 오랜 시간 숙성된다. 언제나 냉랭하던 연인과 함께 마시면 그 연인의 가슴을 뜨겁게 데워줄 마성의 포도주로 탄생하는 것이다.

현장법사가 천축국의 불경을 공부하러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당나라 조정은 백성들 출국을 금지하고 있었다. 장안을 출발한 현장은 감숙성 무위현에 도착했다. 변방을 지키던 관원들은 그를 붙잡아 장안으로 보내려 했으나 그는 옥문관 부근 과주로 도망쳤다. 그는 결국 물 한 방울 없는 거친 사막을 지나 고창(투루판)에 도착했다. 그에게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고도 지켜야 할 더 큰 가치가 있었다.

▲ 2018년 6월12일 오전 경찰서에서 1시간여 조사 받고 달리기 시작하여 오후에는 경찰차가 에스코트

629년 불심이 깊었던 고창 왕국의 왕 ‘국문태’는 당나라 현장법사가 하미에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사람을 보태 정중히 모셔왔다. 고창 왕은 현장을 극진히 모셨고, 자신을 도와 정사를 맡아 달라고 청하였으나 현장은 거절하고 파미르 고원을 넘어 인도로 갔다. 그러나 그가 돌아왔을 때 고창왕국은 당나라에 의해 멸망해 없어졌다.

고창 왕은 현장의 식사대접 등 시중을 직접 들기도 하며, 현장이 설법을 나갈 때는 자신을 발판으로 밟고 올라가도록 하는 등 최고로 극진한 대접을 했다. 하지만 인도에 가기로 결심한 현장은 나흘간 단식으로 겨우 고창국을 벗어날 수 있었다. 떠나는 현장을 위해 소년 4명을 출가시켜 시중을 들게 했고 20년간 여비에 해당하는 황금 100냥, 말 30 마리, 하인 25명을 달려 보냈다. 직접 친서를 써 현장이 지나는 나라에서 돕도록 배려를 했다.

투루판을 지나 하미로 향하는 길목에 화염산이 있다. 구리의 머리, 쇠의 몸뚱이라도 녹여버린다는 이 화염산을 현장법사 일행이 넘어갔다. 이곳 화염산은 서유기에 나오는 우마왕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위구르인은 이 화염산을 '붉은 산'이라고 부른다. 산이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햇빛을 받아 반사하면 마치 불타는 모습으로 보인다고 한다. 화염산 불을 끄는 일은 파초선을 갖고 있는 우마왕 부인 철선공주를 이긴 손오공이 아니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불 꺼진 그 화염산을 지나는 곳에 베제크리크 천불동(千佛洞)이 마음 아프게 훼손된 채 자리하고 있다.

투루판에서도 가장 덥다는 곳이 바로 화염산이다. 사람들이 보는 눈은 비슷해서 달리면서 이글거리며 피어오르는 아스팔트 아지랑이 속 이 산은 바로 불꽃 모습이다. 무더운 여름 이곳 화염산은 섭씨 55도까지 오른다고 한다. 인도로 불경을 구하러 가던 현장법사가 화염산 열기에 놀란 모습을 서유기에서는 우마왕을 등장시키고 손오공과 철선공주 대결구도를 만들어 세계 어린이들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탄생시켰다.

어린 시절 손오공 만화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는데 지금 그 서유기 무대가 되는 이 화염산을 지나면서 한낮 최고 더위만은 피해보려고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 달리지만 이런 더위 속에서는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심장이 터지기 전에 먼저 손이 붓기 시작한다. 오늘은 42km를 다 못 채우고 39km에서 마감했다. 나는 손오공처럼 구름을 타고 나는 재주도 없고 여의봉도 없으니 이 화염산 철선 공주에게 지고 마는 듯 하지만 어쨌거나 화염산은 기필코 지나쳤으니 무승부로 쳐줬으면 좋겠다.

현장법사는 중국을 떠날 때 보안법 위반이었다. 645년 2월 우여곡절 끝에 경전 520묶음을 말 20필에 나눠 싣고 17년 만에 장안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중국 영웅이 되었다. 처음 현장법사의 구법여행을 막았던 당태종도 “목숨을 바쳐 법을 구하고 중생을 이롭게 했으니 경하 드린다.”며 치하했고 황실과 수많은 백성들은 그의 귀국을 열렬히 환영했다.

내가 처음 유라시아 평화 마라톤에 나설 때 사람들이 내게 가장 많이 물어본 질문이 진짜 유라시아 대륙을 완주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북한을 통과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왠지 모를 자신감이 내게 있다.”고... 이미 근대사 박물관에 들어가 있어야 어울릴 ‘국가보안법’을 내 손으로 유물을 만들고 싶었다.

▲ 6월 12일에서 6월 16일 달리면서 만난 사람들

 

▲ 6월 12일에서 14일까지 동반 달리기 한 이대수 목사

 

▲ 6월 12일에서 6월 16일 달리면서 만난 이정표

 

▲ 2017년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2018년 6월 16일 투루판 60km 후방 까지 (총 누적 최소 거리 9798km, 중국 누적거리 860km)

* 평화마라톤에 대해 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으면 공식카페 (http://cafe.daum.net/eurasiamarathon)와 공식 페이스북 (http://facebook.com/eurasiamarathon), 강명구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kara.runner)에서 확인 가능하다.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8063)과 유라시안마라톤조직위 공식후원계좌(신한은행 110-480-277370/이창복 상임대표)로도 후원할 수 있다.

[편집자 주] 강명구 시민통신원은 2017년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년 2개월간 16개국 16,000km를 달리는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는 2년 전 2015년,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달고 아시아인 최초로 미대륙 5,200km를 단독 횡단한 바 있다. 이후 남한일주마라톤, 네팔지진피해자돕기 마라톤, 강정에서 광화문까지 평화마라톤을 완주했다. <한겨레:온>은 강명구 통신원이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달리면서 보내주는 글과 이와 관련된 글을 그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날까지 '[특집]강명구의 유라시안 평화마라톤'코너에 실을 계획이다.

사진, 동영상 : 강명구, 현지 동반자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강명구 주주통신원  myongkuk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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