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322~324일

지구상에 가장 고독한 길! 신장 우르무치에서 감숙성 란조우까지의 길!

▲ 2017년 7월 19일

그 황량한 사막을 달리고 달리다보면 희망에 부푼 꿈을 단번에 녹여버릴 것 같은 뜨거운 태양, 굳게 다짐한 초심을 사정없이 날려 보낼 것 같은 거센 바람과 마주 선 초라한 자신과 대면하게 된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그 목마름은 세상의 어떤 통증과도 비교할 수 없다. 달려도 달려도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듯한 무료함이 영혼까지 갉아 먹을 것 같다.

황량한 사막에서 꽃을 피운 야생화, 내 모습 같아서 발을 멈추고 눈을 맞춘다. 삶은 사막을 건너는 일이다, 나는 지금 끝없는 사막을 묵언수행하며 달리고 있다. 여기서도 꽃을 피워낸 야생화의 생명력이 큰 위로를 준다. 말라버린 땅이 눈물이 말라버린 슬픔처럼 푸석푸석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은 절망을 넘어야 일과가 끝난다. 이제 그 절망 너머 희망의 문이 어렴풋 보이기 시작한다.

▲ 2018년 7월 19일과 21일 고독한 마라톤

하루 42km씩 달리는 최고의 육체적 탄력감이 마음을 충만함으로 이끈다. 오랫동안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달리는 길 위에서 심오한 영감의 세상도 맛보게 된다. 문득 세상이 나를 버리고 나는 홀로 텅 빈 사막을 달린다는 절망감에 빠질 때도 있지만, 바로 풍요로운 상상의 숲을 헤매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언제나 멋진 결과는 과정을 즐기고 우연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이뤄진다.

▲ 2018년 7월 19일과 21일 달리면서 만난 무궁화와 오아시스

오아시스 마을을 지날 때 수로를 만났다. 설산 눈이 녹아 흐르는 이 물에 발을 담그면 금방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그 시원함을 좀 더 오래 즐기고 싶지만 1분도 견디지 못하고 발을 빼야한다. 눈 녹은 물에 발이 녹아 없어질 것 같다. 이 물에 멱감다 가는 심장마비 걸리기 십상이다. 그저 머리에 물을 적시고 땀에 전 웃통을 벗어 헹구어 입으면 그 시원함이 10분은 지속한다.

지금 달리고 있는 이 길은 인류가 만들어 낸 길 중 가장 위대한 길로 불리는 실크로드다. 이 길을 통해서 무역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가 교류하며 발전하였고 그 시너지 효과로 세계사의 명운을 돌려놓았다. 지금 내가 지나는 감숙성은 옛날 흉노 영토였다. 실크로드는 한 무제가 유사 이래로 중국인들에게 목에 가시 같은 존재인 흉노를 치기위해 결전을 앞두고 동맹을 구하기 위해 월지국으로 장건을 파견하면서 시작되었다.

개인 역사건 국가 역사건 역사란 필연일 수도 있지만 우연에 의해서 물줄기가 확 바뀌기도 한다. 내가 평화마라톤을 시작한 것도 우연이었다. 느닷없이 찾아온 중년 사춘기가 나를 길 위에 나서게 했다. 그것이 나홀로 미대륙횡단 마라톤이었다. 나는 깊은 성찰 없이 자칫 아무 의미도 없을 이 마라톤에 ‘남북평화통일’이란 표어를 내걸었다. 그것이 내가 평화마토너로 불리게 된 계기가 되었고 그렇게 나는 평화마라토너가 되어갔다.

장건도 우연히 실크로드의 아침을 연 사람이 되었다. 흉노로 인해 골치를 않던 한 무제는 잡은 포로로부터 우연히 서쪽에 월지국이 있으며, 흉노는 월지국 왕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어 술을 마실 정도이며, 월지국 사람들은 살던 곳에서 서쪽으로 쫓겨 밀려나 흉노와 원한관계가 있다는 말을 듣는다. 아직 한나라는 홀로 흉노를 물리칠 만큼 강건하지 못할 때였다. 무제는 월지국과 동맹을 맺기 위해 장건에게 활과 말에 능한 장사 100여명을 내주고, 지금 내가 달리고 있는 하서주랑을 통해 사신으로 가도록 명령했다.

장안을 출발한 장건은 며칠 지나지 않아 흉노 포로가 된다. 그는 이곳에서 10년간 포로로 억류돼 흉노인 아내를 얻고 가정을 꾸렸지만 한나라 사신이라는 신분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그러다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탈출한 그는 월지국에 도착했다. 월지국은 원래 살던 곳보다 땅이 비옥하고 생활이 안정되자, 강력한 흉노를 상대로 싸움할 엄두도 못 내고, 또 그럴 이유도 없었다. 장건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하기로 결심한다.

장건은 오손국을 거쳐, 울지국, 강하, 강거 등 많은 작은 나라들을 지나며 보고 들은 상황을 한 무제에게 상세히 고했다. 한 무제와 황실 사람들은 장건의 귀국 보고를 듣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언제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없다. 서역에는 한혈마라 불리는 명마가 있고, 아름다운 여인도 많고, 금은보화가 그득하고, 중국의 특산품인 칠기와 비단을 사고 싶어 하는 나라도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 목적은 이루지 못했지만 장건이 가지고 온 서역의 진기한 물건들과 알찬 정보는 한 무제로 하여금 새로운 전략을 세우게 하였다. 흉노와 주변국들 정세를 더 많이 알게 된 무제는 흉노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것 대신 위청과 곽거병 두 쌍두마차를 앞세워 과감한 전쟁으로 승부수를 띄운다. 거기에 장건 또한 길을 안내하는 등 한몫을 단단히 하게 된다.

새로운 안목이 트인 한 무제는 BC 104년부터 101년까지 페르가나국에 군사를 보내어 왕의 목을 치고, 남북실크로드의 중요한 길목인 누란(樓蘭)도 정복했다. 그리고 BC 60년에는 흉노마저 격파하고 서역을 완전히 손에 넣었다. 이때부터 중국 비단은 본격적으로 로마까지 팔려 나갔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 기린, 사자와 같은 진귀한 동물과 호마(胡馬: 말), 호두, 후추, 호마(胡麻: 깨) 등이 전해졌고, 유리 제조 기술도 전해졌다.

장건이 가지고 온 농산물과 가축의 종자는 전국으로 보급되었고 좋은 혈통의 말들을 번식시켜 전투력을 배가 시켰다. 이때부터 서역의 악기들이 보급되어 음악은 발전했고, 간다라 미술이 들어와 미술 발전에도 이바지했다. 이 길을 통해 중국 비단과 종이가 서역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서역문화는 중원문화와 융합되어 새로운 중화문화로 꽃을 피워 당나라 때 최고 전성기를 맞는다. 그러다 명나라 쇄국정책으로 이 길은 동맥경화에 걸리기 시작한다.

장건은 흉노에 잡혀 사는 동안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버리질 못했다. 조국으로부터 부여받은 소임을 잊지 않았다. 그는 원래 임무를 완수하지는 못했지만,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문화 개방과 융합에 크게 이바지 했다. 

조국으로 향하는 나에게 장건이 가져갔던 진귀한 선물보따리는 없다. 다만 유라시아를 평화의 푸른 초원으로 만들고 싶은 꿈이 있을 뿐이다.

▲ 2017년 7월 21일 만난 이정표
▲ 2018년 7월 21일 달리면서 만난 린쩌현의 모습

 

▲ 2017년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2018년 7월 21일 Shajingzhen(沙井镇) 전 2km까지 (최소 누적 거리 11,036km, 중국 누적거리 2,098km / 중국이전 지역 도로와 중국 도로가 구글맵에서 아직 연결이 되지 않아 따로 붙임)

* 평화마라톤에 대해 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으면 공식카페 (http://cafe.daum.net/eurasiamarathon)와 공식 페이스북 (http://facebook.com/eurasiamarathon), 강명구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kara.runner)에서 확인 가능하다.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8063)과 유라시안마라톤조직위 공식후원계좌(신한은행 110-480-277370/이창복 상임대표)로도 후원할 수 있다.

[편집자 주] 강명구 시민통신원은 2017년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년 2개월간 16개국 16,000km를 달리는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는 2년 전 2015년,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달고 아시아인 최초로 미대륙 5,200km를 단독 횡단한 바 있다. 이후 남한일주마라톤, 네팔지진피해자돕기 마라톤, 강정에서 광화문까지 평화마라톤을 완주했다. <한겨레:온>은 강명구 통신원이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달리면서 보내주는 글과 이와 관련된 글을 그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날까지 '[특집]강명구의 유라시안 평화마라톤'코너에 실을 계획이다.

사진 : 강명구, 현지 동반자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강명구 주주통신원  myongkuk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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