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관공서는 소위 말해 메이저 신문이나 관보성격의 지역신문 등 만을 구독하거나 비치하기 쉽다. 그러나 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 주민센터는 좀 다르다.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 서울신문, 그리고 지역신문이 비치되어 있었다. “아! 여기서도 이런 신문을 비치하시네요?” 하고 일부러 한겨례란 말을 빼고 묻는 말에 “예! 요즘은 3가지 신문 구독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있어서 선택은 저희가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한다. “옛날 같으면 한겨레, 경향 같은 신문은 이런 기관에서는 볼 수도 없었잖아요?” “지금은 그렇게 억제하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이광영 팀장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러면서 일부러 이런 신문을 골라서 비치한다고 말했다.


서대문구 홍제3동은 옛날부터 문화촌이라 불리는 동네다. 1950년대 말 무렵 한국예술인총연합회를 만들었던 정치깡패 임화수가 <청년 이승만>이라는 영화를 만들면서 원로배우 김희갑씨에게 출연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고 한다. 이에 화가난 임화수는 분을 참지 못하고 원로배우 김희갑씨에게 폭력을 가했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자 신문에서는 대서특필을 하면서 임화수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사실 임화수를 어쩌지도 못하고 끙끙 앓던 언론에서는 옳다 됐다 싶어서 이 일을 물고 늘어졌던 것이다. 아무리 정치깡패이지만 이런 언론의 보도에는 어쩌는 도리가 없었다.
이에 임화수가 인기만회를 위해 내어 놓은 것이 문화촌의 건설이었다고 한다.
홍제천의 냇가 땅을 반듯하게 정리해 바둑판처럼 길을 내고 담장을 사이에 두고 두 집을 하나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소위 말해 우리나라 최초의 구획정리된 마을에 20여 평의 양옥집으로 집을 지어서 문화인들이 들어와 살게 한 것이다.
처음 이 마을에 살았던 문화예술인으로 시인 박화목, 김관식, 김상억, 아동문학가 석용원, 화가 성기대, 작곡가 박춘석, 연극작가 이해랑, 연극인 장민호, 아나운서 백지연씨의 부친 등이 들어와서 살았다고 하지만. 이러한 역사가 있어서 인지 역시 문화촌다움을 보이는 홍제3동 주민센터가 아닌가 싶다. 서울 한복판 관공서에서 버젓이 한겨레신문을 비치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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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잘못 알고 성을 틀리게 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