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일기> 린밸리 공원에서 하루를 즐기다

정우열 주주통신원l승인2019.07.26l수정2019.07.2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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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 토요일. 이곳에 온지도 어느새 열흘이 훌쩍 넘었다. 서울에선 연일 열대야로 밤잠을 설친다는 친구들의 카톡이 온다. 헌데 이곳은 초가을 날씨다. 낮엔 햇볕이 따가워도 그늘로 들어가면 시원하고, 조석으론 제법 쌀쌀해 소매 긴 옷을 입어야한다.

"한송, 10시에 쿼퀴틀람센터 역에서 만나!" 우빈(又彬, 문순탁)의 카톡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이곳 친구들과 린밸리 파크 둘레길 돌기로 약속한 날이다. 한송(漢松, 정우열)은 나의 호(號)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이름 대신 호를 부른다.

이곳에는 고등학교 동기 동창이 8명이나 살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팔십을 훨씬 넘은 나이인대도 아직 정정하다. 오늘 모임은 내가 서울에서 왔다는 소식을 듣고 나를 위해 마련한 것이다.

아직 이곳 지리에 익숙지 않은 나는 이곳에 살고 있는 우빈의 안내로 목적지 그린밸 파크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벌써 친구들이 나와 날 기다리고 있다. 반가운 얼굴들이다.

저만치서 학송(鶴松, 구자학)이 "有朋自遠方来, 不亦樂乎?"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하며 달려와 나의 손을 꼭 잡는다. <논어> 첫장에 나오는 말이다. 학송은 서울대 지질학과를 졸업하고 일찌기 이곳 브리티쉬 콜롬비아 대학(UBC)에 유학해 졸업후 교수로 재직하다 퇴임한 지질학계의 세계적 석학이다. "학송, 오랜 만일세. 아니 저 친구 누구야? 백석 아냐?" 백석이 나의 손을 잡는다. 백석(白石, 김진화)은 서울에서 서가협회장을 지낸 서예계의 거장이다. 모두들 반가운 얼굴들이다. 한동안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자! 그럼 가면서 이야기하고 출발하세!" 창헌이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오전 11시, 벌써 등산객들로 길이 붐빈다. 마치 일요일 도봉산 계곡을 찾는 그런 분위기다. 'Lynn Valley Link’ 안내판을 보며 행렬을 따라 얼마 쯤 걸으니 'Lynn Canyon Suspension Bridge’가 나온다.

계곡을 가로 질러 연결한 다리인데, 폭은 겨우 두 사람이 지나갈 만하고, 길이는 2~3백미터 밖에 안되는 짧은 다리다. 마치 우리나라 파주 적성 감악산 출렁다리를 연상케한다. 다리가 흔들려 그 흔들림 때문에 스릴을 느끼려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다리 밑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그 위쪽으로 폭포수가 제법 소리치며 쏟아진다. 폭포 소리를 폰에 담고 다리를 건너 느린 걸음으로 숲길을 걸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쭉쭉 뻗은 나무, 그리고 울창한 숲. 그때 누군가가 "저것 봐! 나무가지가 옷을 입었네." 소리쳤다. 바라보니 과연 나무가지가 푸른 이끼로 뒤엉켜 마치 푸른 이끼 옷을 입은듯 하다. 그 사이로 따사한 햇살이 스며들어 환히 웃고 있다.

우리는 마치 중학교 때 정능으로 소풍 가던 그런 기분으로 잡담을 나누며 낄낄댔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그런 기분이다. 얼마쯤 올라가니 'Following the Flumes’ 간판이 보이고, 그 뒤에 나무로 만든 수로(水路) 모형이 보였다.

이것은 1911년까지 통상적으로 사용되었던 나무 운송 수로다. 원형은 그 뒤에 있고, 이것은 어린이 교육용으로 만들어 놓은 모형이다. 그 뒤 주차장 옆으로 건물이 보이는데, 그 건물이 보조상수원이라 한다. 조금 더 올라가니 숲 속에 조그마한 호수가 보였다. 'Rice Lake’이다.

마치 포천의 산정호수를 연상케했다. 크기는 산정호수만 못하지만 물의 맑음이며 주위 자연환경이 사람들을 불러모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호수를 한바퀴 도는 산책은 물론 송어 낚시를 즐기기 위해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우리는 시계 방향으로 호수를 돌았다. 군데군데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 설치한 선창(Dock)이 보였다. 이곳은 봄부터 가을까지 낚시 하기에 좋은 곳이다. 하루 잡을 수 있는 무지개 송어의 할당량(quota)은 2마리이다. 송어를 잡은 뒤 2마리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놓아줘야 한다. 송어를 잡기 위해서는 라이센스(fishing license)가 필요하다. 그러나 16세 이하는 이 라이센스가 없어도 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여기 저기서 낚시를 하는 강태공들이 보인다

또한 이 호수는 산책을 즐기에 좋은 곳이다. 사시사철 쭉 뻗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은 사철 내내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여름에는 가득한 숲의 그늘로 더위를 식혀주고, 온갖 꽃들의 향기가 마음을 즐겁게 한다. 힐링하기에 정말 좋은 곳이다. 이름 모를 새들도 여기 저기서 노래한다. 마치 우리 일행을 반기기라도 하듯 말이다.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3km의 적지 않은 거리다. 한 바퀴 도는데 약 1시간이 걸렸다.

정오가 넘으니 시장기가 돈다. 저만치 석상(石床)이 보인다. 그 석상 위에 각자 싸서 가지고 온 도시락을 올려 놓고 둘러앉아 오손도손 점심을 먹었다. 꼭 중학교 때 소풍가서 먹던 그 기분이다.

우리는 술 대신 음료수를 잔에 따라 높이 들었다. "건강을 위하여!"

점심을 마친 뒤 호수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한컷 찍었다.

그리고 벤취에 앉아 잠깐 호수를 바라보며 명상에 잠겼다. 짧은 순간이지만 마음을 평정시키기에 충분했다. 피톤치드(Phytoncide)가 가득한 숲속을 걷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찌든 마음이 살균되는 힐링의 시간이었다. 호수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은 우리를 희망의 통로로 인도했다. 나무 숲 사이로 들어오는 작은 빛줄기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다만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다" ~ 헬렌 켈러 말이다.

나는 가슴 속으로 '진정한 우정'을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의 나들이를 마무리 했다. 즐거운 하루였다.

산은 매일매일 봐도 만족하지않고(日日看山看不足)

물은 때때로 들어도 싫증나지 않네(時時聽水聽不厭)

~ 2019. 7. 25. 캐나다 밴쿠버에서 원광대 한의대 명예교수 한송 포옹 정우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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