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 단위별 열띤 논의 끝에 만들어진 '어린이 생활 규정'

<김광철의 혁신학교 이야기 9> '전교 어린이 다모임'에서 '어린이 생활 규정'을 만들어갔던 모습 김광철 주주통신원l승인2020.08.14l수정2020.08.14 19:08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김광철의 혁신학교 이야기 9>

▲ 2012년 필자가 담임을 했던 서울신은초 '하늘반' 어린이들의 학급 다모임 모습

필자는 2011년 7월부터 혁신학교인 서울신은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주로 담임을 맡아 어린이를 가르치면서 특별한 날에는 교단일기를 썼다. 다음에 쓴 글은 2012년 4월 29일에 써서 필자가 어린이와 학부모, 지인들과 함께 운영하는 '들꽃피는교실' 카페에 올렸던 글이다.

이글을 올리는 것은 혁신학교인 신은초등학교에서 전교어린이회의를 어떻게 운영했는지 사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당시 혁신학교 운동이 막 일어나는 시기여서 학생자치에 관한 정형이 없었다. 다들 학교 나름대로 규정을 만들어서 학생자치를 실시하기도 했다. 100명 안팎의 소인수 학교에서는 '전교 어린이 다모임'이 가능했다. 필자가 근무했던 학생수가 1000명이 넘는 학교에서는 '전교 어린이 다모임' 형태로 모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는 수 없이 3학년 이상 각 학급에서 2명씩의 대의원을 선출하도록 하였다. 그것도 일정기간 고정되어 역할하는 것도 아니고, '전교 어린이 다모임'이 열리는 날에는 그때그때 2명씩 선출하여 대의원으로 참석하게 했다.

다음에 쓴 교단일기는 '전교 어린이 다모임'에서 어린이 생활규정을 심의했던 이야기이다.

▲ 학급 다모임은 약간 소란스러운 것 같아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잘 진행되었다.

4월 27일 금요일

오늘은 3학년 어린이들이 20시간 수영 교육을 끝내는 날이다. 오전에 수영교육을 다녀왔다. 교사들이 가서 하는 일은 어린이들을 인솔하여 가고 오는 일과 강사들이 수영 지도를 하는 것을 창 밖에 지켜보는 일이 중심이다. 아이들을 버스를 이용하여 안전하게 데리고 가서 수영이 끝나면 드라이기로 아이들 머리 말려주고 차를 타고 학교로 돌아오는 일이다. 차 안에서는 그동안 공부했던 동요도 함께 부르기도 한다. 오늘은 이웃 학급인 김용승 선생 반에서 화전 만들기 학습이 있다고 하여 수영장 인근에서 민들레와 제비꽃을 좀 뜯어 주었다.

오늘 6교시 수업이 끝나서 전교어린이 회의가 열린다고 한다. 며칠 전부터 '학교문화혁신팀장인' 명노철 선생이 도와달라고 하여 외면할 수 없어서 가서 함께 거들었다. 필자는 작년에 이미 한 차례 경험한 바가 있어서 명노철 팀장은 이런 경험이 없어서 도움을 청해왔다. 더구나 내가 여기저기서 학생자치에 대하여 주장해 온 바들이 있어서 거들어서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3학년 이상 6학년까지 전교 각 학급에서 대의원으로 2명씩 35명이 참석을 하였다. 오늘의 주된 안건은 '학교생활 규정 제정'에 관한 것이다. 따로 회의와 관련하여 학습을 시킨 것도 아니다. 단지 각 학급에서 지금까지 논의되었던 것을 중심으로 회의에 참석하여 발언하고 표결하는 것이다. 각 학급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접근이 되었는지 정확히 파악을 해 보지도 못한 상태였다. 이런 이린이들을 모아서 회의를 해야 하니 어디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좀 난감했다. 나는 얼른 회의 순서를 머리에 있는 것을 바탕으로 칠판에 써 내려갔다.

* '임시의장 선출, 개회사, 국민의례, 임원선출(의장 1인, 부의장1인, 서기1인), 안건상정 및 토의, 건의사항, 선생님 말씀, 회의록 낭독 및 확인, 교가제창, 폐회' 이런 순서로 진행한 것이다. 아주 즉흥적으로 써 내려간 것이다. 일반 학교에 근무할 회의 진행 순서에 준해서 써 내려갔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임시의장으로 뽑힌 6학년 여자 어린이가 회의를 진행하는데, 내 도움을 받아 참 재치 있고, 능숙하게 진행을 잘했다. 마음에 쏙 들었다. 지금까지 교사를 하면서 참 힘든 일 중의 하나가 회의 진행을 학습시키는 일인데, 그때마다 참 힘들었다. 그런데 오늘 회의는 좀 달랐다. 각 학급에서 뽑힌 대의원들이라서 좀 똘똘하기도 했겠지만, 의장의 진행과 부의장, 서기 등의 역할이 생각보다 잘 이루어졌다.

오늘 논의의 중심은 생활규정 32조의 내용에서 '학교 생활규정을 잘 안 지켰을 때 어떻게 지도하여야 하는가?'라는 내용이다. 물론 서울시 교육청 등에서 생활규정의 예시안 같은 것이 나와 있기도 하였다. 다른 학교의 안들도 참고를 하여 '문화혁신팀장'이나 필자 같은 사람이 기초를 한 것을 근간으로 하고 교사다모임 등을 거치기도 하였다. 당시만 하여도 규정을 지키지 않은 어린이들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에 촛점이 맞춰졌다. 규정을 위반했을 때는 가장 낮은 단계인 '주의', 그다음 '경고', '교실 안 지도', '교실 밖 지도' 등으로 이어지는 절차와 내용이다. 이에 대하여 아이들의 의견을 모으는 회의인 것이다. 주의가 3번이면 경고를 보내고 경고가 싸이면 '교실 안 지도'를 받아야 하는데, 이때 학급에서는 담임이나 어린이들이 벌칙을 만들어 시행하기도 하였다. 

오늘 진도가 많이 못 나갈 줄 알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이미 논의를 통하여 '주의'에 해당하는 내용들 중 삭제할 것과 추가할 것을 중심으로 하나하나 짚으면서 결정을 해 나갔다.

1. 의견이 제안되면 제안 설명을 자연스럽게 하게 하고,

2. 반대토론 1명, 찬성토론 1명 하고(시간이 없어서 이 부분이 충분하게 토론 진행이 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음)

3. 표결하여 결정하는 방식으로 처리를 하였다.

- 삭제할 내용, 추가할 내용, 경고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방식으로 주의와 경고에 해당되는 내용에 대하여 결정을 해 내려갔다.

나머지 '교실 안 지도'와 '교실 밖 지도'에 대한 내용은 집중력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시간이 많이 흘러서 더 진행시킬 수가 없었다. 중간 쉬는 시간에는 미리 준비한 빵과 음료수를 한 개씩 학교 예산으로 매입을 해서 주었더니 어린이들이 참 즐겁게 먹으면서 회의에 참여하였다.

문제는 다른 회의들도 그러하겠지만 오늘도 몇몇 어린이들이 자주 의견을 개진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의견 개진이 활발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표결을 통하여 의사표현을 했기 때문에 꼭 다 이런 토론에 참여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찬반 토론도 1명씩이 아니라 3명 정도는 시켰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마침 우리 학교에 교감 연수차 몇 명의 교사들이 와서 회의 진행하는 것을 잠시 보고 갔다.

▲ 학급 다모임은 약간 소란스러운 것 같아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잘 진행되었다.

오늘 회의는 2시간 동안 중간에 잠시 10분 쉬고 강행이 되었다. 나중에는 집중력이 떨어져서 그런지 발언 회수도 현저히 떨어진다는 느낌도 받았지만 전체적으로는 잘 진행된 회의라 생각되었다. 우리 반 3학년 꼬마들도 4차례나 일어서서 기죽지 않고 5, 6학년 형들 앞에서 의견 개진을 하는 것을 보고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약간 의제에서 벗어나는 발언을 할 때도 있었지만 3학년 치고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주훈 어린이는 학급에서 의장으로 선출되어서 이미 회의 진행을 한 번 했던 경험이 있지만 이가람 어린이도 한두 차례 의견 개진도 잘하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들이 처음에 '주의'에서 발표해야 할 내용들인데, 그때는 망설여서 못하는지, 중간에 내가 찾아가서 '왜 의견 발표를 안 하니?' 채근을 하여서 이루어진 면도 없지 않지만 3학년 아이들로서는 역할을 아주 훌륭히 잘해 주었다.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몇 장 찍기는 했지만 이번 회의는 동영상으로 찍어서 각 학급에서 회의 학습을 하는 자료로 활용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명노철 팀장한테 다음에는 준비 좀 하라고 해 놓긴 했다.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회의 문화가 잘 안 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이런 교육이 잘 되질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역시 오늘도 혁신학교의 새 역사를 한 페이지 쓴다는 생각이다.

▲ 3학년 어린이들이 의장과 서기를 선출하여 학급 다모임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이렇게 하여 '전교 어린이 다모임'에서 모인 의견과 '교사 다모임'에서 모여진 의견들을 가지고 학교운영위원회에서는 학교 운영위원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심도 있는 고민과 토론 등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서울신은초등학교생활규정'이 정해지게 된다. 당시 학생자치가 잘 되었던 학교는 서울의 선사고등학교라고 알려져 있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광철 주주통신원  kkc0828@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광철 주주통신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116-25) 한겨레신문사 주주커뮤니케이션팀  |  전화 : 02)710-0124  |  등록일 : 2015년 1월 15일  |  발행일자 : 2015년 1월 1일
등록번호 : 서울 아03523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이상준  |  에디터 : 이동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상준
편집위원 : 김경애, 김국화, 김동호, 김미경,김태평, 서기철, 심창식, 정혁준, 허익배   |  객원편집위원 : 김혜성, 박춘근, 박효삼, 안지애, 양성숙, 최성주, 하성환
Copyright © 2020 한겨레:온.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