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100] 싱가포르의 무라타 전자-4

김동호 편집위원l승인2020.09.24l수정2020.09.24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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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스틸 볼 사장과 함께 무라타에 갔습니다. Peter Goh와 C. K Soh 그리고 Inspection 책임자 등이 회의실에 모였습니다. 실핏줄이 터져 벌겋게 충혈된 눈은 하루가 지나도 가라앉지 않아 초췌(?)하게 보였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연기한 것도 아니었는데 안면이 있는 그들이 오히려 저를 걱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명백한 저의 과실이라고 시인하고 불량품 전량 항공편으로 공수하고, 앞으로 매 생산 LOT 별 검사 데이터를 첨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스틸 볼 공장 사장이 방청 코팅 과정에서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게 할 수 있다고 자신해서 그 부분도 확답했고요.

검사 책임을 맡은 여직원이 오차를 벗어나고 이물질이 들어 있는 물량을 보고하는데 1/3이 안 되었던 거로 기억합니다.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차를 넘어간 불량품은 열처리가 되어 다시 가공할 수가 없기에 무라타에서 폐기하는 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합당한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물량도 급속히 늘어나더니 매월 일정한 괘도를 유지하더군요.

스틸 볼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더 빨리 진행된 홀로그램 필름 사업도 진행되고 있어서 직원을 몇 명 뽑았고, 일이 늘어나면서 사업자금도 걱정되던 시점에 스틸 볼은 생명수와 같았지요. 싱가포르에서 매월 거의 일정한 오더가 오고 수입이 들어오니 당시 저의 바람은 일 년만 탈 없이 유지되었으면 하고 기도하는 심정이었습니다. 만약 1년만 수익이 지속되면 사업상 자금 부족으로 불편할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었지요.

좁은 오피스텔에서 벗어나 구로구청 맞은 편 오피스 빌딩으로 옮겼고, 사장실도 나름 구분하여 젊은 직원들을 자유롭게 했습니다.

등산장비가 한창 잘 나가다가 중국의 대만해협 봉쇄문제로 수출이 중지된 후 일 년 넘게 수입 없이 고생하다 보니 기대치도 당연히 낮았겠지요. 이어진 IMF 금융위기는 커다란 태풍으로도 설명이 안 될 정도의 변화를 몰고 왔습니다. 기존의 질서가 파괴되고, 의지와 상관없이 풍랑에 휩쓸리는 다수가 있는 반면에 누구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대다수는 힘들어하지만, 남과 다른 생각과 새로운 시각으로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겠지요.

해협 봉쇄로 인한 길었던 어둠의 터널이 지나고 맞이한 금융위기가 오히려 저에겐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중의 한 결과가 우여곡절 끝에 스틸 볼을 싱가포르 무라타 전자 회사에 납품하게 된 것이지요.

중국인들은 음력설을 중심으로 한 해를 결산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회사 자체에서 12월 말에 종무식을 하고 1월 초에 시무식을 하는데, 관계를 중시하는 중국인들은 음력 12월이면 회사마다 날을 정하고 축제처럼 행사를 진행합니다. 웨이야(尾牙,연말 연회)라고 부르는데, 회사의 모든 임직원과 관계사 임원들이 참여하고 전문 사회자가 행사를 주관합니다. 식사와 음주 가무, 회사 직원들이 준비한 다양한 퍼포먼스, 그리고 추첨을 통한 상품 혹은 주식증정 등이 이루어지죠.

무라타는 일본 회사이고, 싱가포르에서는 웨이야 문화가 있는지 확인을 못 했지만, 저는 설이 지나면 해마다 고마운 마음과 한 해를 시작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싱가포르 무라타를 방문했습니다.

눈을 구경할 수 없는 싱가포르 사람들은 한국의 겨울이 설레는 여행지입니다. C. K Soh도 가족과 함께 한국 여행을 왔고, 일정 중에 하루를 비워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해가 지날수록 회사 재정도 넉넉해지자, 스틸 볼 수출을 담당하는 젊은 남녀직원과 함께 무라타를 방문하여 소개하고, 그들 덕분에 파도가 철썩이는 해안에서 조명에 어른거리는 밤바다를 보며 맥주잔을 기울이는 즐거운 시간도 가졌습니다.

▲ 센토사 섬의 머라이언 상            사진 : 위키피디아

저는 혼자 가면 호텔에 있거나 무료하면 오차드 로드에 가서 골프샾이나 기웃거리는데, 젊은 친구들은 자료를 찾아 잘 돌아다니더군요. 샌토사에 함께 가자고 하는데, 아무래도 부담을 줄까 봐 안 따라간 덕분에 아직도 못 가봤습니다.

많은 업체와 심지어 저와 껄끄러웠던 스틸 볼 공장 사장이 다른 무역업체를 통해 납품을 시도했지만, Peter Goh와 C. K Soh 등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3년 넘게 싱가포르 무라타와 거래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무라타의 생산 시스템이 바뀌면서 거래는 끝나게 됩니다.

당시 홀로그램 필름 사업을 하며 컨테이너가 드나들고 많은 물건을 저장할 창고가 필요하였는데, 무라타 덕분에 구로 디지털 단지 내에 100평이 넘는 아파트형 공장을 사서 입주할 수 있었습니다.

(대만 사람과 사업하기로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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