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대지진 92년…학살 당한 조선인 추모비엔 “주어가 없다”>란 글을 보았다.

관련기사 :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706934.html?_fr=mt2

이 기사를 보면 마치 간토대학살이 일본인의 차별의식에 의해 일어난 사건으로 보는 것 같다. 기사 내용을 보면....

추모 행사에 참석한 아시자와 가즈아키 시부야구 구의원(민주당)은 92년 전 발생한 조선인 학살 사건은 “일본인의 차별의식과 배외주의의 뿌리 깊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일본은 오랜 시간 이 사실을 감춰왔지만,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선 과거를 직시하고 제대로 기억하는 것과 함께 역사와 진지하게 마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좀 아쉬운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사건을 일본인의 차별의식과 배외주의, 공포심을 교묘하게 이용한 일본 정부의 잔인한 학살사건으로 본다. 한 경찰관의 발언을 시작으로 군인과 경찰이 일반시민으로 조직된 자경단을 부추겨서 일으킨 학살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1923년 9월 1일 간토대지진은 일본의 중심지인 도쿄와 요코하마에서 일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 후 경제대공황 속에 있던 일본은 이 재난을 수습할 능력이 없었다. 하여 국민의 민심이 대대적으로 이탈하기 시작한다. 지진 다음 날, 내각은 민심을 수습하기 위하여 계엄령을 선포하기로 마음 먹는다. 계엄령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위기의식을 조성해야 했는데, 이 위기의식을 조성하는 데 재일조선인이 이용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를 조직적으로 유포시켜, 민심이 극도로 불안하게 만든다. 그리고 계엄령을 선포한다. 그들은 유언비어의 전파뿐만 아니라 그것을 국민이 확신하게끔 유언반(流言班), 지휘반, 실행반 등의 공작대를 조직하고, 방화·독물투입·투탄(投彈) 등의 테러 행위를 감행시키고, 그것을 마치 조선인들이 자행한 것처럼 조작한다. 일본 국민은 한국인 폭동설을 그대로 믿고, 지방별로 자경단(自警團)을 조직하여 일본 육군과 경찰과 함께 무고한 한국인, 중국인을 학살한다. 공식 통계로 6천 명, 비공식통계로 만 명 이상이다.

▲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의 참상. 한겨레 자료사진

대학살 이후 일본정부는 군대와 경찰의 학살은 은폐하고, 모든 책임을 자경단에게 돌린다. 일부 자경단원이 재판에 회부되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된다. 즉 대학살에 대한 책임을 아무에게도 묻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 유언비어를 최초로 확산시킨 장본인을 주목해야 한다. 바로 '쇼리키 마쓰타로’란 인물이다. 그는 간토대지진 당시 경시청 관방 주사로, 시청에 식량과 음료가 쌓여 있다는 소문을 들은 기자들이 모여들자 "조선인이 폭도화 되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라고 흘린다. 이 말을 들은 기자들이 이를 그대로 신문에 실으면서 조선인에 대한 공격은 시작된다. 이후 일본정부는 이를 유언비어라고 공식 발표한다. 물론 ‘쇼리키 마쓰타로’도 자신의 정보가 허위임을 인정한다.

그 이후 ‘쇼리키 마쓰타로’는 어떻게 되었을까? 허위정보를 흘리고 시작된 무고한 죽음에 대한 처벌을 받고 경찰복을 벗었을까? 그렇게 되는 것이 상식이 존중받는 사회다. 하지만 일본 사회는 그러지 못했다. 그는 이듬해인 1924년, 요미우리신문사의 제 7대 사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일개 경시청 관방주사가 1년 후 신문사 사장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드문 일일 거다.

그후 그의 행적은 이러하다. 1934년에 요미우리 자이언트 팀의 전신인 대일본동경야구구락부를 만든다. 하여 ‘일본프로야구의 아버지’라 이름 불린다. ‘쇼리키 마쓰타로상' 은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상이라고 한다.

그가 ‘아버지’로 불리는 것은 한 가지 더 있다. 1954년 일본 총리대신 나카소네 수상이 원자력발전소를 세우는 정책을 추진한다. 하지만 일본 국민은 원폭 피해로 인해 원자력발전소 설립에 반대의견이 우세했다. 여기서 또 ‘쇼리키’가 여론 몰이에 나선다. 요미우리신문을 통해 나카소네 총리의 정책을 지지하는 여론에 앞장 선 것이다. 그는 아예 나카소네 정부에서 원자력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고 이어 과학기술성 대신까지 역임하면서 초기 일본 원전의 기틀을 세운다. 이런 공로로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전까지 ‘일본원자력의 아버지’라 불리며 칭송을 받았다. 1969년, 그는 온갖 영화를 누리다 사망했고 죽기 전까지 자신의 과오를 단 한 번도 사과한 적 없다.

간토대지진이 일어난 후, 88년이 지난 2011년 동북부 대지진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 동북부대지진으로 인해 원전사고가 일어났고 4년이 지난 현재까지 사고는 진행 중이고 언제 마무리될 지 알 수 없을 정도다.

간토대학살으로 최대 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내게 한 유언비어의 최초 유포자 ‘쇼리키 마쓰타로’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나올 지 모를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최대 공로자 ‘쇼리키 마쓰타로’.

그 두 가지 연결고리에서 나는 ‘그냥 저절로 일어나는 일은 없다’라는 생각을 한다. 반성할 줄 모르고 사죄할 줄 모르는 일본 정부와 국민에 대한 무고한 원혼의 저주라고 생각하면 지나친 감정적 비약일까?

편집 : 오성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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