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듯이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도 개인에 따라 단체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메로나 마을의 현자 다비드가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했다. 매주 윤리위원장과 간담회를 겸한 티타임을 갖고는 있으나 이번에는 사안이 사안인지라 긴급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참석자는 다비드와 윤리위원장 그리고 보안국장과 레이첼이었다. 레이첼은 윤리위원회에서 한시적 입주자를 담당하는 윤리위원이다. 3주일 전에 한시적 입주자인 스티브가 제기한 의혹과 그 이후의 사태에 대한 현안을 협의하기 위한 긴급회의에 레이첼이 빠질 수 없다. 다비드는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회의에 앞서 레이첼의 한시적 체류자와 관련한 약식 동향보고가 있겠습니다."
레이첼이 스티브의 의혹 제기로부터 시작된 최근의 사태에 대해 간략하게 보고를 했다.
"메로나 마을의 한시적 체류자는 스티브, 알렉스,헝티나, 발란스키, 샤몽키츠 등 5명이며 모두 3년간의 한시적 체류자들입니다. 이들이 최근 3주간에 걸쳐 메로나 마을을 혼란에 빠트린 사실은 여러분께서 주지하는 바와 같습니다. 이에 윤리위원회에서 사태 해결을 위한 결의를 한 바 있습니다."
사라폰티가 윤리위원회에서 결의한 사항을 낭독한 후 다비드에게 결의문을 전달했다.
윤리위원회의 결의문을 전달받은 다비드가 회의를 주재했다.
"보다시피 한시적 체류자들의 주장은 도를 넘은 듯합니다. 둥가돌프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둥가돌프는 마을의 보안과 안전을 책임지는 보안국장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들의 발언은 메로나 마을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험한 발언들입니다. 앞으로 편의상 이들을 D5라고 부르겠습니다. "
레이첼이 그 의미에 대해 물었다.
"거기서 D는 Danger(위험)이고, D5는 위험 등급이 5등급이라는 건가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습니다. 이들은 위험 등급으로는 3단계 수준에 있습니다. 보안국에서는 위험을 5등급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사람이나 단체는 갑작스럽게 위험으로 치닫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다섯 단계를 거칩니다. 이들이 다섯 명이라서 D5라고 부른 겁니다."
"그 다섯 단계가 무언지 말해줄 수 있습니까?"
"1단계는 Deliberate(교묘한)의 단계인데 어떤 의혹을 제기하면서 마을의 미래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고의로 분란을 일으키며 불순한 의도를 감추고 선으로 위장한 단계입니다. 2단계는 Delusion(미혹)의 단계로 각종 궤변으로 주민들을 미혹시키고 미망에 빠트리는 단계입니다. 3단계는 Discord(불화)의 단계인데 지금의 메로나 마을이 3단계에 있다고 판단됩니다."
이번에는 사라폰티가 질문을 했다.
"그다음 단계는 위험이 점차 고조된 단계가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4단계가 Dark(어둠)의 단계로서 마을의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앞이 캄캄한 단계입니다. 마지막 단계가 Danger(위험) 등급으로 이 단계에서는 마을의 안전과 주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몹시 위험한 상태가 됩니다."
둥가돌프가 자신의 말을 정리해서 말했다.
"이들이 아직은 마을의 안전과 주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주민들을 미혹시키는 단계를 지나 이제 마을의 불화와 알력을 조성하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D5가 앞으로 4단계나 5단계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아직 단정하긴 어렵습니다만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둥가돌프의 설명을 들은 다비드가 이번에는 사라폰티에게 질문을 했다.
"이들 D5가 윤리위원회를 무력화시키려고 하는데 이들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방금 보안국장이 말했듯이 이들은 메로나 마을에 소란을 일으키며 마을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해치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경고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비드가 머리를 끄덕이며 이번에는 보안국장에게 물었다.
"D5가 폴란드 태고마을에서 왔다는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다고 하던데 그에 대해 말해보시오."
"확인 결과 익명의 제보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들은 메로나 마을에 입주신청을 할 때 폴란드 태고마을에서 거주한 사실을 숨겼습니다. 특정 목적을 가지고 메로나 마을에 잠입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제보를 받은 즉시 태고마을에 요원을 급파하였습니다."
"요원을 보낸 지 열흘이 지났는데 그동안 보고받은 것이 있으면 중간보고를 해주세요."
"먼저 태고 마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태고 마을은 가톨릭 영성운동가인 마리앙팡 여사가 주도적으로 설립한 마을 공동체입니다. 알렉스도 초기에는 마을 설립에 기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후 알렉스와 마리앙팡 여사의 관계가 틀어졌고 스티브와 알렉스를 중심으로 한 D5 가 주동이 되어 태고 마을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마리앙팡 여사를 몰아냈다고 합니다."
그러자 레이첼이 둥가돌프에게 질문했다.
"태고 마을을 장악한 스티브와 알렉스는 왜 태고 마을에서 메로나 마을로 온 걸까요?"
"그게 바로 문제의 핵심입니다. 메로나 마을에서 일으키고 있는 소란도 결국은 그 목적을 위해서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D5가 메로나 마을에서도 태고 마을에서 처럼 마을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윤리위원회를 해체시키고 다비드까지 몰아낼 의도를 갖고 있다고 봐야겠군요. 내 말이 맞나요?"
레이첼의 예리한 질문에 둥가돌프는 물론이고 다비드도 움찔해 하는 모습이었다.
" D5 가 태고 마을에서 보인 행태로 미루어 볼 때 메로나 마을에서도 그렇게 할 거라고 보는 게 합리적 추론일 겁니다."
둥가돌프가 눈을 가늘게 뜨며 연이어 말했다.
"태고 마을에서 보인 행태를 볼 때 이들은 선동의 대가들입니다.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하고 주민들을 선동하여 지도층을 불신하게 만들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태를 몰고 가는 귀재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레이첼이 둥가돌프의 말에 동의했다.
"맞아요. 가톨릭 영성운동가인 마리앙팡 여사도 온갖 사회활동으로 잔뼈가 굵은 인물인데 그들에게 한순간에 당했잖아요. 이들 D5를 그대로 두면 안되겠어요."
거기에 덧붙여 둥가돌프가 쐐기를 박는 발언을 했다.
"좀 더 두고 보면 알겠지만 알렉스와 스티브 같은 자는 포식자라고 보면 됩니다. "
"동물 세계에 포식자가 있듯이 인간 세상에도 포식자가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이들 D5는 인간 세상에서 인간성을 약탈하는 최상위 포식자라고 봐야겠지요."
"그렇다면 그들 D5가 영화 <프레데터 : Predator>에서 인간을 사냥하는 외계인 포식자처럼 적을 탐지하는 열 감지 기술과 상대 시야에서 사라지는 클로킹(은폐) 기술을 사용하며, 엄청난 위력의 광선포인 플라스마 캐스터까지 갖췄단 말인가요?"
프레데터 (사진 출처 : Pixabay)
"그럴 리가요? 하지만 그들은 누구를 공격목표로 삼아서 조직을 무너뜨려야 하는지를 알아내는 귀신같은 분석력을 지니고 있고, 자신의 정체를 교묘하게 숨긴다는 점에서 클로킹 기술에 버금가며, 뱀같이 교활한 혀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플라스마 캐스터 광선포 못지 않지요."
그러자 사라폰티가 이의를 제기했다.
"엄연히 법과 정의가 살아있는데 어떻게 최상위 포식자가 될 수 있다는 거죠?"
"태고 마을의 경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지요. 그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온갖 비방과 인신 공격으로 마리앙팡 여사를 몰아냈어요. 권력에 굶주린 자들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이들은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워 인간의 꿈을 약탈하고 파괴하는 포식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둥가돌프의 말에 다들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다비드가 회의를 마무리했다.
"오늘은 이쯤에서 회의를 마치고 추후 태고 마을에 대한 최종 보고가 올라오면 그때 가서 이들에 대한 조치를 검토하는 걸로 합시다."
사라폰티가 다비드를 위해 한마디 했다.
" D5가 여지껏 윤리위원회를 집중 공격했으니 다음에는 다비드 차례일 겁니다. 마음 단단히 먹으셔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이들이 어디까지 막장 드라마를 쓸 건지 어디 한 번 지켜봅시다."
다비드의 말에 참석자 모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다비드는 마리앙팡 여사의 꿈이 무너진 것에 대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누구나 꿈을 꿀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꿈을 이루는 건 아니다. 꿈을 이루었을 때 최고의 만족감을 누리겠지만 꿈이 무너졌을 때의 절망감은 그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할 것이다. 꿈이 지닌 이중성을 지금처럼 실감한 적이 없다.
그날 저녁 무렵 슈만과 레이첼은 창밖의 늦가을 풍경을 감상하며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레이첼은 인간 세계의 포식자가 있다는 둥가돌프의 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과연 그런 걸까. 우울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는 레이첼을 보며 슈만이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세레나데곡을 틀었다.
오늘 슈만이 레이첼을 위해 선택한 곡은 영국 음악가 에드워드 엘가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였다. 이 곡은 음악가로서 무명시절의 힘든 시간을 보낸 엘가가 런던 생활을 정리하고 자신의 고향으로 내려갈까 고민하던 시기에 작곡한 곡이다. 지금의 레이첼에게는 이런 음악이 도움이 될 거라고 슈만은 생각했다. 우울한 사람에게는 즐겁고 기쁜 음악보다 오히려 이런 음악을 들려줬을 때 침체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때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듯이 자신의 마음 상태와 비슷한 분위기의 음악을 들으면 회복이 더 빠르다.
레이첼은 자신을 위로하려는 슈만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그 마음이 가상하게 느껴졌다.
"내가 걱정돼서 그래요? 내 곁에 듬직한 당신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어요?"
슈만은 총명한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레이첼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귀여운 여인이었다. 신혼 기분이 아직 남아 있는 걸까. 레이첼이 아직 신비하게 보였다. 곱상한 얼굴에 아담한 몸매를 지닌 레이첼은 슈만의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슈만에게 없는 슬기로움과 명석한 두뇌를 지니고 있어서 때로는 존경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세레나데로 마음을 달랬으니 이제 에드 시런(Ed Sheeran)의 'Photograph'를 들려줘요."
레이첼의 요청에 슈만이 즉각 에드 시런의 노래를 틀어주었다. '사랑은 치료해주지. 너의 상처받은 영혼까지'~. 로맨틱하고 달달한 곡과 노래 가사를 들으며 슈만과 레이첼도 로맨틱한 분위기에 젖어들고 있었다.
사랑의 열정으로 가득찬 슈만이 레이첼의 소담하고 봉긋한 가슴을 어루만지며 레이첼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따뜻하고 촉촉한 감촉을 느끼며 레이첼도 슈만의 가슴에 파고 들어 슈만의 품에 꼭 안겼다. 레이첼과 슈만 부부는 메로나 마을의 긴장된 분위기와는 아랑곳없이 그날 밤을 사랑으로 불태웠다. 사랑으로 충만했던 그날 밤 꿈 속에서 레이첼은 야만성과 하이테크 기술을 겸비한 외계인 프레데터와 맞서 싸우는 여전사가 되어 프레데터를 무찌르는 꿈을 꾸었다.
편집 :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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