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 버든의 〈Urban Light〉
- 디에고 리베라의 <꽃의 날>
- 디에고 리베라의 <프리다 칼로의 초상화>
- 프리다 칼로의 <울고 있는 코코넛>
- 루피노 타마요의 <바람 속의 메신저>
- 루이스 아레날 바스타르의 <관을 이고 가는 여인>
- 마타의 〈Burn, Baby, Burn〉

지난 7월 6일 한겨레신문에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뮤지엄' 기사가 났다. 

기사 : [단독] 미국 미술관이 내건 이중섭·박수근 그림 4점 다 가짜였다

지난 2월부터 6월30일까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뮤지엄'은 재미교포가 기증한 작품으로 구성한 ‘한국의 보물’ 전을 열었다. 여기 전시된 이중섭·박수근 작가 작품 4점이 ‘확정된 진작으로 볼 수 없다’라는 공식 감정 평가를 받았다는 기사다. 이 작품은 전시 준비 과정에서 질적 수준이나 진위 등에서 여러 논란이 제기됐었고, 개막 직후부터 진위 논란이 있었다. 결국 국내 전문가 4명을 초대해 감정을 받은 후, '고번' 관장은 전시 문제점을 인정하고 도록 발간을 중지하겠다고 밝혔다 한다. 

이렇게 큰 미술관에서 이렇게 큰 사고를 치다니…. 우려를 무시하고 전시를 강행한 기획자도 문제고, 그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전시를 허용한 관장도 문제고, 또 그런 작품을 기증한 재미교포도 문제인가? 하여튼 K-문화의 바람이 전 세계에 불고 있는 이 시점에서 누구의 책임이든 좀 불미스럽고 불편한 느낌을 주는 일이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뮤지엄'(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약자로 LACMA, 이후 라크마)가 어떤 곳이냐? '라크마'는 1961년 설립됐다. 150,000여 점 이상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게티 센터, 샌프란시스코 미술관과 더불어 미국 서부 3대 미술관 중 하나이다. 매년 150만 여명의 관람객이 방문할 정도로 미국 서부 최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로스앤젤레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라크마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역사를 수용하고 반영하는 데 적극적이다. 남북아메리카, 유럽, 아시아, 중동에 이르는 여러 지역의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을 수집하고 전시한다. 

라크마는 미국의 부유한 사업가들의 후원에 힘입어 건물을 짓고 작품을 사들였다. 특히 1980년대 호황기에 라크마에 돈이 쏟아져 들어왔다. 폴 게티(J. Paul Getty)도 초창기에 라크마에 미술품을 기증했다. 하지만 라크마의 전시관이나 전시 방식이 맘에 들지 않았다. 스스로 게티 센터를 지어 자신의 소장품은 게티 센터에서 전시하고 있다.  

<'크리스 버든'(Chris Burden)의  'Urban Light'>

▲ 낮에 만난 크리스 버든의 'Urban Light'(814.07 x 1743.71 x 1789.43cm)
▲ 낮에 만난 크리스 버든의 'Urban Light'(814.07 x 1743.71 x 1789.43cm)

라크마 앞에 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이 '크리스 버든'(Chris Burden)이 설치한 'Urban Light'다. 라크마에 티켓 구매 입장을 하지 않고도 누구나 볼 수 있고 누구나 가까이할 수 있다. 'Urban Light'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비공식적으로 도시의 상징으로 채택될 정도로 라크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예술 작품이다. 

'Urban Light'는 주철 가로등 202개가 배열된 조립 조각품이다. 이 작업을 위해 버든은 2000년 첫 번째 램프를 구입한 후 7년간, 골동품이 된 가로등을 수집했다. 16종의 서로 다른 가로등은 대부분 로스앤젤레스를 포함한 남부 캘리포니아 거리를 밝히다 폐기된 것이었다. 이를 복원한 후 2008년 작품을 완성했다.

▲ 저녁에 만난 크리스 버든의 'Urban Light'
▲ 저녁에 만난 크리스 버든의 'Urban Light'

램프는 지금도 작동한다. 태양 에너지로 켜지는 램프는 매일 저물녘 켜지고 밤 10시에 꺼진다. 가로등 전시 작품이다 보니 밤에 찍은 사진이 훨씬 아름답다. 사진에서 보듯 가로등 몸체는 모두 연회색으로 칠해져서 동일한 모습 같아 보이지만 가로등 램프는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그런 다른 모습이 더 매력적이고 운치 있다. 버든 작품 덕에 두 남녀가 더 로맨틱해 보인다.

라크마의 실내 작품을 구경할 시간이다. 워낙 작품이 많다 보니 다 관심을 기울여 볼 수 없었다. 독특해서 내 눈에 띈 작품 여러 점 중 먼저 라틴 아메리카 작가 작품을 소개한다.  

  

<라틴 아메리카 작가의 작품>

-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의 '꽃의 날'(Día de Flores)

1925년 디에고 리베라(1886-1957)가 그린 '꽃의 날'(Día de Flores) 이다. 디에고 리베라는 멕시코 민중화가다. 멕시코 혁명에 동조했을 뿐 아니라 주로 멕시코 원주민을 그린 화가로 멕시코 현대 회화의 아버지라 불린다. 

 ▲ '꽃의 날'(Día de Flores), 캔버스에 유채(147.32 × 120.65cm)
 ▲ '꽃의 날'(Día de Flores), 캔버스에 유채(147.32 × 120.65cm)

'꽃의 날'(Day of Flowers)은 1925년 제1회 범미 유화 전시회에서 1등 상을 받은 작품이다. 백합을 등에 지고 파는 원주민을 그린 초기 작품이다. 위에서 본 백합은 원근법을 따지지 않고 독특하게 그렸다. 마치 백합을 기르고, 따고, 짊어진 노동의 무게에 짓눌린 모습이다. 두 원주민은 꽃 파는 원주민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하는 그림 같다. 왼쪽 원주민의 오른팔은 왜 저렇게 굵게 그렸을까? 오른쪽 아기의 발도 제 위치에서 벗어나 있다. 고정화된 시각을 벗어난 화풍이 인상적이다.

-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의 '프리다 칼로의 초상화'(Portrait of Frida Kahlo)

▲' Portrait of Frida Kahlo'(유화,35.56 × 24.77 cm)
▲' Portrait of Frida Kahlo'(유화,35.56 × 24.77 cm)

디에고 리베라가 그의 아내 '프리다 칼로'(1907-1954)를 그린 유일한 이젤 초상화다. 1935년 디에고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프리다는 두 번째 유산을 한 직후였다. 두 사람 인생의 격동기에 그린 이 작품은 1954년 프리다가 지병으로 사망하고, 디에고가 1957년 갑작스레 사망할 때까지 20년 이상 스튜디오에 보관되었다가 공개되었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프리다는 건강해 보인다. 파란색과 녹색 배경에 단순하고 굵직굵직 거친 붓질과 붉은 뺨이 인상적이다. 프리다는 독일계 아버지와 원주민 혼혈 어머니를 두어서 그런지 원주민 느낌이 많이 난다. 고갱이 그린 타히티의 여인도 같은 분위기인데.... 

-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울고 있는 코코넛'(Weeping Coconuts)

프리다 칼로(1907년~1954년)는 멕시코 초현실주의 화가다. 1907년 멕시코에서 태어난 프리다는 6세 때 소아마비를 앓았다. 1925년 교통사고로 척추와 골반이 심하게 골절되어 3개월 동안 전신 깁스를 해야 했다. 2년 동안 병상에서 투병했다. 시간을 때우고 고통을 덜기 위해 그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듬해 첫 자화상을 완성했다. 교통사고는 그림 그릴 기회를 주었지만, 그 후유증은 계속되어 평생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살아야 했다. 1928년 프리다는 멕시코 공산당에 가입하면서 디에고 리베라를 만났다. 1929년 디에고와 프리다는 21살의 연령차를 뛰어넘어 결혼했지만 삶은 평탄치 않았다. 디에고는 많은 불륜을 저질렀으며 각자 집과 작업실을 따로 갖고 살았다. 1939년 그들은 이혼했으나 1940년 다시 결합했다. 재결한 후에도 디에고와 프리다는 여전히 이전과 같은 삶을 살았다. 프리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디에고의 아내가 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일입니다. 나는 그가 다른 여자들과 결혼 놀이를 하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디에고는 누구의 남편도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 것이지만, 그는 훌륭한 동지입니다."

▲ 'Weeping Coconuts' (1951년 작품. 나무 판자에 유채. 35.56 × 42.55 × 6.35 cm)
▲ 'Weeping Coconuts' (1951년 작품. 나무 판자에 유채. 35.56 × 42.55 × 6.35 cm)

고통에 가득한 자화상을 많이 그린 프리다는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한 말년에는 정물화를 주로 그렸다. 'Weeping Coconuts'에서 코코넛이 울고 있다. 코코넛을 의인화해서 자신의 고통을 그려낸 것이다. 그녀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30번 넘는 수술을 받았다. 약 200점에 달하는 그녀 그림 중 상당 부분이 그녀의 아픔을 다루고 있다. 아래는 그녀의 대표 작품 30점을 모은 영상이다.

독특하고 처절한 프리다의 일생을 담은 영화 '프리다'가 2002년 제작되었다. 한국에선 2003년 개봉되었는데, 그 영화를 보고 프리다를 알게 되었다. 2020년에는 '프리다 칼로' 다큐도 제작되었다. 평생 디에고를 놓지 못하고 사랑하고, 증오하고, 고통받았던 그녀의 삶에 '그림'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1954년 죽기 직전 쓴 마지막 일기에 그녀는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라고 썼다고 한다. 1년 후 디에고는 그녀가 태어나고 죽은 ‘푸른 집’을 국가에 기증했다. 국가는 1958년 이곳을 '프리다 칼로 미술관'으로 개관했다.

- '루피노 타마요'(Rufino Tamayo)의 '바람 속의 메신저'(Messengers in the Wind)

루피노 타마요(1899~1991년)는 멕시코 화가다. 너무 개성이 강해 멕시코 국립미술학교에서 쫓겨난 후 혼자 그림 공부를 했다. 프랑스 현대 예술과 멕시코 전통 예술을 융합해서 그만의 독특한 양식을 확립했다. 당시 사람들과 달리 타마요는 예술이 이념적 기능보다는 미적 기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1926년 멕시코에서 첫 개인전을 연 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여러 미술전에 작품을 발표하고 유명해졌다. 그의 작품에는 멕시코 인디언의 전통이 짙게 흐르고 있다고 한다. 

▲ 'Messengers in the Wind'( 캔버스에 오일 / 96.52 × 105.41 × 5.08 cm) 1975
▲ 'Messengers in the Wind'( 캔버스에 오일 / 96.52 × 105.41 × 5.08 cm) 1975

1928년 타마요는 쫓겨났던 멕시코 국립미술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게 된다. 그곳에서 화가 마리아 이스키에르도(Maria Izquierdo)를 만난다. 이후 4년간 두 사람은 몽환적인 것과 평범함을 결합하는 데 관심을 두게 된다. 1931년 작품인 '바람 속의 메신저'에는 흰옷을 입은 두 원주민 여성이 도시의 밤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간다. 그들의 물결치는 드레스가 바람에 휘날리는 구름과 합쳐진다. 오른손에는 전달될 메시지가 굳게 들려있다. 날고 있는 여성 아래는 전화선이 있다. 여성의 손에 들린 메시지는 전화선 속의 보이지 않는 메시지를 형상화하지 않았나 싶다. 날아다니는 여성이 몽환적이라면 평범한 전화선과 결합한 작품으로 보인다.

- '루이스 아레날 바스타르'(Luis Arenal Bastar)의 '관을 이고 가는 여인'(Woman carrying a Coffin)'

루이스 아레날 바스타르(1908년~1985년)는 멕시코 화가이며, 조각가이며 ,건축가이다. 멕시코 시티와 게레로 주에서 벽화와 기념비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기계 공학도 공부하고, 건축도 공부하고, 조각과 법률도 공부했다. 여러 학문을 전전한 후 1930년 캘리포니아에서 작품을 전시하면서 본격적인 예술 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1985년 사망하기 전까지 다양한 벽화와 기념비를 제작하는 작품활동을 했다.

▲ 'Woman Carrying a Coffin',1936작, 80.01 × 57.15 × 3.18 cm,  Paintings Cellulose nitrate and oil)
▲ 'Woman Carrying a Coffin',1936작, 80.01 × 57.15 × 3.18 cm,  Paintings Cellulose nitrate and oil)

1936년 제작된 이 그림은 머리에 작은 관을 이고 걸어가는 원주민 여성을 그렸다. 둥근 달님이 내려다보는 으스스한 하늘 아래 괴기한 밤공기가 가득하다. 그녀가 가야 할 멀고도 먼 길은 회색 시멘트 도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 듯 보인다. 하늘과 벽과 도로의 극명한 대비가 불안을 느끼게 한다. 마치 저 모퉁이를 돌면 삶과 죽음의 경계가 튀어나와 그녀와 그녀의 관을 앗아 갈 것만 같다. 그녀가 이고 가는 저 관은 누구의 관일까? 자녀의 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는 처연하고, 그녀는 고달파 보인다. 그날 본 가장 마음에 남는 작품이다.

- '마타'(Matta)의 'Burn, Baby, Burn'

마타의 원 이름은 'Roberto Sebastián Antonio Matta Echaurren'로 길다. 라틴 아메리카의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 마타는 1911년 칠레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 이태리, 멕시코, 미국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 작품 활동을 한 전형적인 순례 예술가이다. 1935년 파리에서 건축학 공부를 시작한 마타는, 1937년에 스페인에서 초현실주의 운동에 합류했으나,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해 뉴욕으로 이주해서 활동했다. 경험을 추상화하는 독특한 그의 방식은 젊은 미국 예술가들 사이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마타는 '추상 표현주의'를 발전시킨 예술가로 인정 받고 있다. 

Matta는 1950년대와 60년대에 전쟁의 잔혹함, 인종 차별, 인간의 파괴적 잠재력에 대해 점점 더 인식하면서 작품 방향을 정해 나갔다. 'Burn, Baby, Burn'은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참여 의식이 드러난 그의 가장 강력한 작품 중 하나라고 한다. 

▲ 1965-1966에 제작된 'Burn, Baby, Burn'(캔버스에 유채, 298 × 981 × 5.08 cm)
▲ 1965-1966에 제작된 'Burn, Baby, Burn'(캔버스에 유채, 298 × 981 × 5.08 cm)

'Burn, Baby, Burn'은 처음에는 베트남 전쟁의 끔찍함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했지만, 196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난 '와츠 폭동'(Watts Riots)과 베트남 전쟁이 결합하여 완성되었다. 그는 베트남 전쟁과 와츠 폭동이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와츠 폭동은 고속도로 순찰대 경찰관이 음주 운전 혐의로 흑인 남성을 검거하면서 벌어졌다. 이를 부당한 인종차별적 공권력 집행이라고 판단한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항의하기 시작했다. 이미 흑인들은 LA 경찰국의 인종차별적, 폭력적 관행에 대한 분노와 LA의 고용 차별, 주거 분리, 빈곤에 대한 불만이 가득 차 있었다. 'Burn, Baby, Burn'은 그 당시 유명한 지역 라디오 디제이 'Magnificent Montague'가 외치던 문구다. 캘리포니아 육군 주 방위군이 개입하면서 폭동은 6일 만에 진압되었지만, 34명이 사망하고 4천만 달러 이상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던 그 당시 최악의 집단 소요 사태였다.

'▲ Burn, Baby, Burn'의 왼쪽 반 
'▲ Burn, Baby, Burn'의 왼쪽 반 

'Burn, Baby, Burn'에서는 온갖 괴상한 무기들이 화면에 가득하다. 무기들은 일제히 발사를 외치며 파괴를 자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위성은 폭발하고, 차량은 과속하고, 소용돌이 치는 위험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런데 이게 현실 같지가 않다. 피 튀기는 모습이라 어둡고 칙칙해야 하는데 가상의 활기가 넘친다. 비참한 현재를 그린 그림의 바탕이 전체적으로 밝은 톤이라 그러하리라. 

▲ 'Burn, Baby, Burn'의 오른 쪽 반 
▲ 'Burn, Baby, Burn'의 오른 쪽 반 

'Burn, Baby, Burn'은 2002년 마타가 사망할 때까지 '마타 컬렉션'에 남아 있던 작품이라고 한다. 그만큼 그는 이 작품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이 그림을 '인류의 파괴성에 대한 대담한 고발이자 평화를 위한 선언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오른쪽 아래에 밝은 녹색을 넣었나 보다. 생명과 평화를 상징하는 녹색이 화면을 가득 메울 미래를 기대하면서….

다른 작가의 작품은 다음 편에.... 

참고 사이트 : 위키백과
참고 사이트 : LACMA 홈페이지
참고 사이트 : www.fridakahlo.org/
관련 기사 : [단독] 미국 미술관이 내건 이중섭·박수근 그림 4점 다 가짜였다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김미경의 길따라 풀꽃따라 기사더보기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