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브라크의 'Still Life with Violin'과 'Concert'
피카소의 'Portrait of Sebastia Juñer Vidal' 외 11편
알렉산드르 아르키펜코의 'Woman with Hat'
세실 드 블라키에르 하워드의 '기타리스트(Guitarist)'
입체파의 작품도 다수 보았다. 피카소 작품이 가장 많다.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의 작품>
조르주 브라크(1882-1963년)은 프랑스 화가다. 브라크는 처음에는 대담한 붓질과 선명한 색조를 강조하는 야수파 성향의 그림을 그렸으나, 입체파에 영감을 준 '폴 세잔'의 영향을 받은 후 1907년 피카소와 친구가 되어 사물을 입체적으로 보는데 주력하면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초 입체파(큐비즘/Cubism)을 공동 창립했다. 입체파는 2차원 표면에 3차원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이다.
'바이올린이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Violin)'
'바이올린이 있는 정물'은 브라크가 1913년 그렸다. 브라크는 대상을 여러 방향에서 본 평면과 선으로 분해하여 조각으로 나눈 후, 이를 화폭에 갈색과 회색을 사용하여 그렸다. 평면이 단순화되고, 음영이 부족하여 평평한 느낌이다. 나뭇결이 있는 직사각형은 바이올린의 반짝이는 나무 표면을, S-스크롤은 음향 홀을, 가로 막대는 악보를 나타낸다. 1909년에 고안한 타원형 안에 주제를 넣는 방식은 브라크의 초기 작품에서 종종 보이는 특징이다.
- '콘서트' (Concert)
1937년 작품인 '콘서트'는 '바이올린이 있는 정물'과는 다르다. 3차원 대상을 분해하여 2차원 캔버스에 집어넣은 심심한 초기 작품과는 달리 '콘서트'는 움직임이 들어갔다. 앞으로 기울어져 있는 테이블 뒤에 바닥 대리석, 벽지, 나무 등이 보인다. 테이블 위에는 악보, 바이올린, 물병, 찻잔 등이 떨어질듯 불안한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한 대상을 분해한 것이 아니라 3차원 공간을 분해하고 조각으로 나눴다. 대신 각 대상의 고유한 특징은 살렸다. 이 시기 이후부터 브라크는 화면에 색채와 대상의 특징을 되살리는 독자적 양식으로 피카소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작품>
피카소(1881-1973)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페인 태생이지만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다.
-' 세바스티아 주니에 비달의 초상화'(Portrait of Sebastia Juñer Vidal)
피카소에게는 입체파 이전에 청색 시대(1901~1904년)가 있었다. 절친한 친구가 자살한 후 그 충격으로 붓을 놓았다가 다시 잡으면서 암울한 청색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 청색만이 가난하고, 힘없고, 소외된 자들의 절망을 표현해 준다고 생각했다.
'Portrait of Sebastia Ju er Vidal'은 피카소의 절친이자 동료 예술가 '비달'을 그린 그림이다. 비달은 피카소가 1900년대 초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를 오갈 때 함께 오간 동반자였다. 옆에 앉은 알 수 없는 여인은 붉은 꽃을 달았지만 오로지 푸른색으로만 그린 비달은 우울해 보인다. 피카소는 피할 수 없는 고독에 사로잡힌 인물을 청색으로 일관되게 묘사했다.
- 'Head of a Woman'(Fernande Olivier)
피카소 여성 편력은 유명하다. 수십 명의 여성과 염문을 뿌렸다고 알려졌다. 그중 그래도 수년간 피카소와 함께 살면서 피카소의 여인으로 불리는 이는 7명이다.
그는 결혼하기 전 2명의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그의 청색 우울 시대를 마감하고 붉고 분홍색으로 표현되는 장미 시대(Rose Period)’를 열어준 '페르낭드 올리비에'(Fernande Olivier)가 첫 번째 여인이다. 피카소가 23세 되던 1904년부터 1911년까지 7년간 동거했다. 피카소의 입체파 첫 작품인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 Avignon)>은 페르낭드와 여행 중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1906년, 첫 번째 여인인 페르낭드를 그린 'Head of a Woman'이다.
'Head of a Woman'은 옅은 색상과 어두운 윤곽선을 사용하여 그렸다. 당시 피카소는 60여 점의 페르낭드를 그렸다. 차분한 색상으로 유선형 형태, 직선 윤곽선, 깊은 눈을 가진 표정 없는 얼굴의 페르낭드가 개성이 있다.
두 번째 여인은 '에바 구엘'(Eva Gouel)이다. 피카소 30세 되던 해인 1911년, 페르낭드에 싫증이 난 피카소는 친구의 약혼녀인 에바과 사랑에 빠진다. 에바는 피카소가 그림 모델로 삼지 않은 유일한 연인이다. 하지만 에바는 건강이 좋지 못해 4년 후 1915년 세상을 떠난다.
- 'Still Life on a Pedestal Table in Front of a Window'
1918년 피카소는 결혼 한다. 우크라이나 태생 발레리나 올가 코클로바(Olga Khokhlova)가 그의 신부이자 세 번째 연인이다. 10년 동안 함께 살았다. 올가는 러시아 명문가 출신으로 피카소에게 부와 상류사회를 안겨준 여성이었다. 1927년 피카소가 '마리 테레즈 발테르(Marie-Thérèse Walter)와 연인 관계가 되면서 올가와는 멀어진다. 1935년 올가는 피카소에게 이혼은 제안했지만, 피카소는 재산의 반을 나눠주기 싫어 이혼을 거부했다. 올가는 피카소와 평생 법적으로 결혼을 유지하면서 별거 부부로 지내다가, 1955년 64세에 암으로 사망했다.
'Still Life on a Pedestal Table in Front of a Window'는 1919년 여름 프랑스 리비에라의 생라파엘에서 올가와 휴가를 보내면서 그린 수채화다.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선명한 철제 난간이 있는 발코니에 과일 그릇과 기타가 테이블이 놓여있다. 고요한 바다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넣었다.
- 'Woman with Blue Veil(Sara)'
피카소는 큐비즘을 추진하면서도 잠시 다른 화풍에 매료된 적이 있다. 1917년 로마, 나폴리, 폼페이, 피렌체 등지로 고대와 르네상스 미술 작품을 둘러본 후, 1920년부터 약 3년간 '신고전주의' 화풍을 택한다. 이를 피카소의 '신고전파 시대'라고 한다. 이 당시 막 결혼한 올가와 그녀와 첫 아이 파울로의 초상화인 '모자' 시리즈는 이 시기 작품으로 유명하다.
신고전파 시대인 1923년 그린 'Woman with Blue Veil'은 섬세한 완성미가 좀 떨어지는 듯하지만 참으로 은은한 그림이다. 피카소에게 이런 여성적인 면이 있나 싶을 정도로 부드럽고 따뜻하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프랑스로 이주한 부유한 미국인 'Gerald Murphy'의 아내 'Sara Wiborg Murphy'다. 머피 가족은 1922년 여름부너 1년간 피카소 가족과 함께 프랑스 남부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친분을 쌓았다. 피카소는 사라를 여러번 그렸다고 한다.
-'The Red Armchair(Marie-Thérèse Walter)'
올가를 버리고 택한 네번째 여인은 프랑스 모델 '마리 테레즈 발테르'다. 1927년 18세인 그녀는 29세 연상인 피카소와 동거에 들어갔다. 피카소는 금발과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그녀를 모델로 수 많은 그림을 그렸다. 마리와는 8년 동거했다. 1935년 마리가 딸 마야(Maya)를 임신하고 있을 때 피카소는 '도라 마르'(Dora Maar)와 사랑에 빠졌지만, 마리도 버리지는 않고 정기적으로 방문했다. 피카소 사망 후 마리는 피카소 없이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피카소 사망 4년 후인 1977년 그녀는 자살했다.
1931년, 피카소는 마리를 모델로 시리즈 그림을 시작했다. 'The Red Armchair'에서 피카소는 정면과 옆모습이 모두 들어간 마리를 한 영역에 그렸다. 이는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모티프다. 피카소가 형태와 스타일에서 끊임없는 혁신을 추구했음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 Weeping Woman with Handkerchief (Dora Maar)
다섯 번째 여인은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초현실주의 사진 예술가 '도라 마르'다. 54세인 피카소보다 26세 어린 28세인 그녀는 구시대에 속하는 피카소에게 초현실주의라는 신세대 예술을 알려줬다. '우는 여인' 시리즈와 '게르니카(Guernica)'에서 보이는 피카소의 초현실주의 화풍은 도라와의 만남을 통해 탄생한 작품이라고 한다.
피카소는 다른 예술가들에 비해 많은 사진을 남겼다. 도라 덕분이다. 도라는 피카소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진으로 남겼다. 도라가 '게르니카' 제작 과정을 촬영한 사진들은 또 다른 예술 작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피카소는 도라의 사진을 이용하여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도라는 피카소 예술 방향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피카소는 '게르니카' 스케치 중 우는 여인의 모습을 그렸다. 한 손은 가슴에 대고, 흰색 손수건은 형체 없는 덩어리로 구겨져 절망을 전달하는 '우는 여인'의 모델은 도라다. 도라는 피카소의 다중적 사랑 때문에 고통받은 여인이다. 피카소가 도라와 관계 맺고 있을 때도 피카소에게는 법적 부인인 올가도 있었고, 아직도 피카소의 아파트에 살면서 정리하고 있지 못하는 마리도 있었다. 실제 도라는 평소에도 자주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그녀는 항상 우는 인물이다. (여성이 우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여성이란 동물은 우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우는 모습은, 결코 추상적인 것이 아닌 사실에 기초한 현실이다.” 하지만 도라는 우는 자신의 그림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의 모든 초상화는 거짓말입니다. 그들은 피카소입니다. 도라 마르는 한 명도 없습니다"라고 했다.
- Bust of a Woman (Dora Maar)
1941년 도라를 그린 그림이다. 9년 동안의 그들의 관계는 1943년 프랑수아즈 질로(Fransoise Gilt)가 나타나면서 끝난다. 도라와의 사이에서는 자식이 없었다. 도라는 피카소와 헤어질 때 많은 상처를 받아 신경쇠약에 걸리기도 했다. 이후 화가의 길로 들어섰지만, 우울증으로도 고생했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피카소를 잊지 못했다고 한다. 1997년 89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피카소와 올가의 손녀 '마리나'는 할아버지 피카소의 여성 편력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는 여성들을 동물적 성욕에 복종시키고, 길들이고, 매혹하고, 섭취하고, 캔버스에 짓밟았습니다. 피가 마르면 그는 그것을 처리했습니다”
- Young Woman in Striped Dress(Fransoise Gilt)
피카소는 62세가 되던 1943년에 여섯 번째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피카소와 42살 차이가 나는 22세의 프랑수아즈 질로였다. 그녀는 대학에서 영문학, 철학, 법학을 공부한 인텔리 화가 지망생이었다. 자신의 세계관도 뚜렷했다. 유복한 집안의 딸이었음에도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피카소와 가장 잘 통한다면서 자발적으로 피카소를 택했다. 1944년부터 1953년까지 9년간 동거했다.
프랑수아즈는 피카소와의 사이에서 딸과 아들도 두었지만 스스로 피카소를 떠났다. 피카소가 친한 친구와 바람 피운 것을 안 그녀가 이별을 고하자, 피카소는 "나 같은 남자를 떠나는 여자는 없다"며 격분했고, 그녀는 “나는 내 사랑의 노예이지, 당신의 노예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떠났다고 한다.
피카소가 그녀의 작품 활동을 방해하자, 그녀는 뉴욕으로 무대를 옮겨 작품 활동에 성공했다. 1964년엔 자전적 회고록 <피카소와의 삶>을 펴내 막대한 인세를 벌었다. 피카소의 유산도 법적 소송을 통해 자녀들이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6월 뉴욕 맨해튼에서 101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프랑수아즈를 그린 그림 'Young Woman in Striped Dress'이다.
'Young Woman in Striped Dress'는 의자에 앉은 여성을 그린 시리즈 그림 중 하나다. 이 그림을 시작으로 피카소는 중앙 축을 중심으로 단일 정면 인물을 그리는 경향이 강해진다.
- Head of a Woman (Jacqueline)
이제 마지막 여인이 남았다. 프랑수아즈가 떠난 후 피카소가 만난 일곱 번째 여성은 '재클린 로케'(Jacqueline Roque)다. 27세의 재클린을 만난 것은 1954년이다. 73세의 고령인 파카소는 마지막 여인까지도 20대 여성이었다. 1955년 첫 번째 부인 올가가 사망했으므로 피카소는 재혼할 수 있었다. 재클린은 지속적으로 결혼을 원했다. 하지만 피카소는 네 번째 여인 마리에게 청혼했으나 거절당했다. 1961년 피카소 80세가 되던 해 재클린과 두 번째 정식 결혼을 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피카소가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재클린은 결혼 생활 내내 피카소에게 헌신했다. 피카소도 보답했다. 재클린 초상화를 400점 이상 그린 것이다. 1973년 피카소가 92세로 사망했을 때 그녀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수년 동안 그의 죽음을 인정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상태로 살다가, 그의 죽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59세의 나이인 1986년 자살했다.
위 두 작품은 재클린을 그린 그림이다. 10년 간격이 있다. 그녀의 독특한 큰 눈, 짙은 눈썹, 곧은 코는 두 작품에서 여전하지만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34세의 젊은 재클린이 섬세하고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반면에 10년 후의 재클린은 피카소에게 좀 더 단순하고 강인한 존재로 부각되지 않았나 싶다.
- 'Head of a Man'
피카소는 1960년대 후반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er Dumas)의 소설 <삼총사>를 다시 읽고 영감을 받아 총사를 그렸다. 이는 피카소의 마지막 분신이 되었다. 1969년 그린 'Head of a Man'에서 강렬한 검정 선과 빨간색, 푸른색으로 인물을 그렸다. 강한 남성성을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나치게 둥그렇게 뜬 눈, 유난히 치켜 올라간 수염 등 허세 가득하고 우스꽝스러운 총사의 모습도 보인다. 어떤 기묘한 광기가 느껴진다.
- 'Man and Woman'
피카소가 죽기 4년 전 1969년에 그린 'Man and Woman'을 보는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 아무리 피카소라지만…. 이것도 진정 예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도로 표현된 남자의 성기는 여자의 성기를 향해 그 뾰쪽한 끝을 들이밀고 있다. 갑옷을 입은 남성은 <삼총사>에 나오는 총사일 것이다. 곧 피카소의 분신이다. 여성 옷은 벗겨졌고, 드러난 가슴은 과장되었고, 손은 남성의 수염을 잡아당기고 있다. 그림은 군데군데 뭉개졌고, 거칠게 표현되었다. 전체적으로 폭력성이 가득하다. 그래서 역겹다는 느낌이 들었을 거다. 좋게 평하는 사람은 회화의 기교와 가식을 벗어던진 자유로운 그림이라고 한다.
피카소에 대한 나의 시선이 곱지 못해서일까? 아무리 봐도 제어할 수는 없는 일차적 본능을 마구 휘갈겨 놓은 그림이란 생각이 들었다. 90세 가까운 피카소에게 본능을 초월하여 자신과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평화로운 능력은 없었을까?
<'알렉산드르 아르키펜코(Alexander Archipenko)'의 'Woman with Hat'>
아르키펜코(1887년~ 1964년) 우크라이나 키예프 출신으로 프랑스, 독일, 미국에서 활동했던조각가다. 1902년~1906년 키예프에서 미술학교를 다녔고, 1908년 파리로 이주한 후 입체파와 합류했다.
그는 입체파 요소와 러시아 표현주의 요소를 혼합한 독특한 접근방식으로 회화와 현대 조각에 새로운 합성을 시도했다. 그는 이를 '조각 회화'라고 불렀다. 1923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활동하다가1964년 뉴욕에서 사망했다.
1916년에 나무에 그린 그림이다. 나무 표면에 독특한 패턴을 넣은 'Woman with Hat'은 생생한 색상이 돋보인다. 이렇게 두 개 이상의 요소가 합쳐진 하이브리드 작품은 그가 1922년까지 가장 중요시하게 생각했다. 또한 현대 조각에서 그의 가장 독창적인 공헌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런 것이 예술이라는 이름을 달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세실 드 블라키에르 하워드'(Cecil de Blaquière Howard)의 'Guitarist'>
세실 드 블라키에르 하워드(1888년 - 1956 년)는 캐나다 온타리오 출생이지만 미국으로 이주해서 활동한 화가이자 조각가다. 그는 다양한 상황에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는 작품을 제작했다. 구상, 다색 조각, 입체파, 전통 아프리카 예술, 아르데코, 고전주의 또는 신고전주의를 넘나들며 점토, 석재, 대리석, 목재, 플라스틱, 테라코타, 석고, 왁스, 청동 및 은 등 다양한 재료로 작업했다.
1915-17에 제작한 '기타리스트'는 입체파 다색 조각품이다. 하워드는 몇 안 되는 입체파 나무 조각품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3차원의 기타리스트를 평면 분할해서 조각한 작품은 브라크와 피카소의 초기 작품과 연결된다. 28cm 높이의 기타리스트는 하워드의 조각품 중 가장 대담하고 추상적인 작품 중 하나라고 한다. 독특해서 눈에 확 띈 작품이다.
* 작품에 대한 일부 평가는 비전문가의 개인적 의견이므로 너그럽게 읽어주시길 바란다.
데이비드 호크니 등 현대 작가의 작품은 다음 편에...
참고 사이트 : 위키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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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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