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처드 세라'의 'Band'와 'Tilted Spheres'
- '크리스 버든'의 'Metropolis II'
딸이 꼭 가봐야 한다면서 데리고 간 전시실이 있다. LACMA의 그 귀한 공간에 큰 전시실 하나를 가득 채운 '리처드 세라'의 <Band>가 진시된 공간이다.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리처드 세라(1938년~2024년)는 '당대 최고의 조각가 중 한 명'이라는 칭호를 받는 미국의 추상 조각가다. 그는 주로 거칠고 단단하고 차가운 강철로 부드럽고 유연하며 따뜻한 형태의 조각품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93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스페인인,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유대인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작은 스케치 노트를 가지고 다녔는데 어머니는 그를 '예술가 리처드'라고 부르면서 격려해 주었다. 아버지는 조선소에서 파이프 배관공으로 일했다. 세라는 4살 때 배가 진수되는 것을 보러 갔다가 거대한 무게를 가진 배가 물속에서 둥둥 뜨는 물체로 변하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후에 "나에게 필요한 모든 원료는 이 기억의 저장고에 들어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세라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시각 예술로 전공을 바꿔 예일대 대학원에서 미술 석사학위를 받았다. 공부하면서 그는 생계를 위해 제철소에서 일했다. 이때 다시 '철'이라는 물질을 접했다. 이 '철'이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그는 1964년 예일대 연구 지원금으로 유럽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회화에서 조각으로 전공을 바꿨다. 1966년 뉴욕으로 이주한 후 고무, 네온, 납의 초기 실험을 거쳐 작품의 재료를 '철'로 정한 후 대규모 철강 작품을 제작했다.
LACMA는 세라의 유명한 조각품 'Band'와 'Inverted House of Cards'를 소장하고 있다. 우리는 'Band'만 만났다. 'Inverted House of Cards'는 잠시 수장고에 들어갔지 싶다.
<Band>
2006년 설치된 'Band'는 높이 3.9m, 길이 21m가 넘는 세라의 대작이다. 183톤의 강철을 사용하여 제작과 설치에만 2년 이상이 걸렸다. 관람객은 4개의 넓은 공간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조각품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
멀리서 이 조각품을 보았을 때 강철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무로 만든 조각품인줄 알았다. 그만큼 부드럽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넓고 크면서도 유연한 곡선은 강철의 휨이 얼마나 우아하고 세련되게 펼쳐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한 장으로 된 강철판의 길이는 21m다. 이 강철판이 구불구불 곡선을 이루면서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마치 독립된 방 여러 개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작품의 공간 안과 밖은 곡선으로 연결되면서 이어지기 때문에 천천히 걸어가면서 하나의 통합 공간이 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세라는 이 강철판이 공간을 따라 이어지면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세라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Band를 구상한 후 제철소에서 제작하고, 가서 살펴보았는데 확실히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나는 며칠 동안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품질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 공간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나를 놀라게 했습니다. 마침내 나는 이 조각품과 새로 만들어진 공간의 형태를 이해했습니다. 지난 40년의 작품과는 완연히 구별되는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형태인 조각품입니다."
<Tilted Spheres>
2021년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국제선 제1터미널)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거대한 강철 조각품을 만난 적이 있다.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머릿속에 담아놓고 있었다. 이번에 세라의 작품을 보고 같은 작가의 작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찾아보니 맞다. 바로 세라의 'Tilted Spheres'(기울어진 구체)다.
피어슨 공항의 터미널 라운지는 2004년 개장했다. 라운지 중심에 'Tilted Spheres'를 설치하기 위해 특별한 공간을 두고 설계했다고 한다. 전체 4.35 x 13.86 x 12.11m 크기의 작품이 들어가야 하니 상당히 많은 공간을 비워놓아야 했다. 그들의 여유있는 결정이 부럽다.
수백만 명이 이용하는 캐나다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 제1터미널은 시끄러운 공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고 이런저런 방송 소음, 비행기 이착륙 소음 등이 서로 각자 부대낀다. 이런 곳에 갑자기 등장한 'Tilted Spheres'는 분주하게 돌아가는 화면을 일시에 '멈춤'으로 바꾸어 놓는다. 작품을 만난 사람들은 순간 가만히 서서 들여다보다가, 아무 말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가서 신기한 듯 곡선 강철 벽을 마주하고, 그 고요한 보호 아래 잠시 머무르다 나온다.
검정 강철 조각품은 어떤 나사, 볼트, 지지대 또는 용접 흔적이 전혀 없다. 곡선형 강철이 마치 바닥에서 초자연적으로 우아하게 솟아오른 듯하다. 발길은 저절로 공간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손은 저절로 조심스레 맞잡아진다. 북미 원주민의 신성한 기도처 같다는 생각에 저절로 내 몸에 경건함이 흐른다. 세라는 의도치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피어슨 공항에서 'Tilted Spheres'를 만났을 때는 코로나 팬데믹이 내림세로 들어섰을 때였다. 백신이 널리 접종되고 환자와 사망자가 급격히 줄자, 캐나다가 다시 외국인 관광을 허용했지만, 아직 완전히 안심할 때는 아니라서 관광객이 많이 없었다. 불안한 여행을 운 좋게 마치고, 사람이 많지 않은 덕에 그 안에서 나만이 홀로 걷고 머물 수 있는 시간을 한참 가졌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 위에서 본 기울어진 구체의 모서리에서 어떤 생명력이 느껴진다. 마치 새의 날개 같다. 날개는 공간을 감싸고, 그 안에 떨고 있는 작은 이들을 포근히 안아 줄 것만 같다. 강철의 차가움을 물리친 따뜻함이 살아 숨 쉬는 작품이다.
<크리스 버든(Chris Burden)의 'Metropolis II'>
크리스 버든(1946–2015년)은 LACMA의 첫 글에 나오는 'Urban Light를 제작한' 설치 미술가다. 그는 설치 미술 전에는 위험한 공연 예술로 이름을 날렸다.
예를 들면 이렇다.
1971년 공연 작품 <Shoot>에서 그의 조수는 소총으로 약 5m 거리에서 그의 왼팔에 총을 쏘았다.
1972년 공연 작품 <TV Hijack>에선 그는 카메라 스태프를 데리고, 생방송 TV 인터뷰에서 인터뷰어 Phyllis Lutjeans를 칼끝으로 들이대며 방송국이 생방송을 중단하면 그녀를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물론 Lutjeans은 그것이 공연 예술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1975년 공연 작품 <Doomed〉에서 그는 시카고 현대미술관 갤러리 경사진 유리판에서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었다. 약 45시간 후, 박물관 직원이 버든의 손이 닿는 곳에 물주전자를 놓자, 버든은 자리에서 일어나 유리잔을 부수고 망치로 시계를 내리쳐 작품이 끝났다. 버든은 미술관 직원이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보다 그의 안녕을 우선시할 때까지만 그 자리에 머물 계획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괴상하면서도 위험천만한 공연 예술을 하다 1970년대 말, 그는 거대한 공학적 조각 설치물로 눈을 돌렸다. 그의 후기 조각품 중 다수는 작은 부품으로 구성된 복잡한 구조물이다.
버든이 2011년 제작한 '메트로폴리스 II'는 제작 기간만 총 4년 걸렸다. 빠르게,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대 도시를 모델로 한 움직이는 조각품이다. 가로 , 세로, 높이가 3.0m×6.1m×3.7m인 이 작품은 중력으로 움직이는 소형 자동차 1,080대가 도로를 달리고, 모형 전기 열차가 횡단하는 상상의 도시다. 빌딩 블록, 레고 블록 및 Lincoln Logs*로 만들었다.
* Lincoln Logs는 작은 요새와 건물을 짓는 데 사용되는 미니어처 경량 통나무로 구성된 미국 어린이용 건설 장난감
자동차는 18개 트랙을 따라 눈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이동한다. 자동차가 바닥에 닿으면 자석의 힘으로 작동하는 컨베이어 벨트 맨 위로 올라가고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최대로 작동하게 되면 매시간 약 100,000대의 자동차가 밀집된 건물 사이사이를 돌고 또 돈다.
버든은 자기 작품을 이렇게 설명했다.
'메트로폴리스 II'는 복잡한 롤러코스터 시스템이다. 이는 도시의 축소 모형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도시의 에너지를 생각해 보기 위해 만들었다. 소음, 끊임없이 흐르는 기차,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로 이루어진 21세기 도시는 그 역동성과 활동성과 분주함으로 인해 도시인들에게 스트레스를 일으킨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상상의 도시는 특정 도시가 아니라 어디서든 존재할 수 있는 도시다."라고 했다.
1층에서 가만 보고 있으면 정신없어 얼이 빠진 눈이 차들을 따라가느라 30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마치 자동차를 따라 나도 달려야 할 것만 같다. 이런 관람객을 위해 좀 멀리 떨어져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볼 수 있도록 2층 테라스를 만들어서 관람하게 했다.
움직이는 조각품이니까 아무래도 동영상을 보면 확 와닿지 않을까 싶다. 동영상을 보면 소형 자동차가 미친 듯이 달리는 한 가운데 관리자가 있다. 조형물 한가운데에 서서 작업자는 사고를 찾고 비상 정지 버튼을 누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려면 눈이 팽팽 돌아가야 할 것만 같아... 무척 스트레스받는 직업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차들은 고정 차선만 달리는 것 같다. 차선을 바꿔 달릴 순 없나? 그럼 대형 사고 나는 걸까? 차선을 바꾸면서도 서로 충돌하지 않게 설계한다면 정말 대단하다고 엄지척 해줄 텐데....
더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지만 LACMA의 작품 소개는 이글 6편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너그럽게 봐주시길....
참고 사이트 : 위키 백과
참고 사이트 : https://collections.lacma.org/node/214935
참고 기사 : https://www.latimes.com/entertainment-arts/story/2024-03-27/richard-serra-sculptures-la-southern-california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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