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른 생각들로 순서도 정오(正誤)도 없다. 오호(惡好)와 시비(是非)를 논할 수는 있지만 대상은 아니다. 중복도 있으므로 고려하시면 좋겠다. 여러 차에 걸쳐 싣는다.

출처 : 필자
출처 : 필자

 

1. 유체이탈(幽體離脫)꿈

지난달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다.
건넛방과 거실에서 가족들과 얘기하고 놀던 중 용변을 보기 위해 안방 화장실을 갔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누가 뒤에서 따라 들어왔다.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며 '나 화장실 가는 거야' 하면서 화장실 문을 닫으려 했다. 그러자 그는 문을 못닫게 붙잡고 날 따라 들어 왔다.

나는 놀라 정신이 증발했고, 기이한 상황속에서 그를 쳐다 보았다. 그의 형체가 순간적으로 흐느적거리며 흔들렸다.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화장실 한 구석에 섰다. 마치 나를 조롱하는 듯 비웃음을 띠면서. 이게 무슨 일인가 의아스러웠다. 와중에도 난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변고란 말인가? 난 흠짓 놀랐고 섬뜩했다. 정수리를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았다.

그는 바로 내가 아닌가! 나는 너무 놀랐지만 그를 보면서 '야!~'라고 크게 소리치며 두 손을 벌려 잡으려 했다. 그런데 그는 잡히지 않았고 이상야릇하게 웃으며 나를 빠져나가 다른 쪽으로 갔다. 난 허공에서 손을 허우적거렸다. 다시 그를 잡으려 손을 뻗으면서 '야!~'하고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잡히지 않았다. 

하여 도움을 청하고자 나도 모르게 '어머니!~'를 부르다가 그 소리에 놀라 꿈이 깼다. 꿈을 깨고 나서도 전신에 소름이 오싹 들었고 머리카락이 삐쭉 서는 느낌이었다. 몸을 꼼짝할 수 없었다.


2. 유체이탈화법(幽體離脫話法)

꿈을 꾸기 전에는 유체이탈화법을 개념상으로는 이해하고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이해가 부족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자기 입으로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을까? 했는데 꿈을 꾼 후에는 이해가 되었다. 

꿈을 꾸고 나서는 유체이탈화법이 어떤 것인지 확실해졌다. 꿈속에서 혼백(魂魄)은 육신(肉身)과 전혀 별개로 움직였다. 혼백은 육신의 통제 밖에 있었으며 육신과 무관한 타체(他體)로 움직였다. 둘 사이에 연결되는 고리가 전혀 없었다. 유체이탈 꿈을 꾸기 전에는 혼백과 육신이 일체(一體)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꿈을 꾸고 난 후에는 (二體)임이 분명했다. 살아 있을 때는 일체이지만 죽어서는 이체가 되는 것일까? 몸과 맘도, 영혼과 육신도 살아 있을 때 얘기지, 죽은 후에는 전혀 다른 차원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내가, 이러커니 저러커니 하면서 세상을 살아 왔으니 얼마나 웃긴가라는 생각에 미치자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스쳤다. 

유체이탈화법은 어떤 사람들이 쓸까? 유체이탈화법도 화술의 일종일까? 정신적인 착난증상이 아닐까? 스스럼없이 쓰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작정하지 않고 아무 의도도 없이 쓴다면 더욱 그렇다. 자신도 모르게 그런 화법이 나올 수 있다니 놀랍다. 말하고 난 후에는 자신도 이상하지 않을까? 보통 사람이 아님은 분명하다. 한편으로는 동정심도 간다. 유체이탈화법을 써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아닌가? 꿈속의 경험으로는 전혀 자신을 통제할 수 없지 않았는가? 그를 현실에서 살아가야 하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요즘 나의 심신이 좀 미약하다. 그러다 보니 유체이탈 꿈까지 꾸는 증상으로 나타났을까? 꿈이 깨고 나서도 이탈된 내 형상이 뚜렷이 남아 몸이 으시시 움츠려졌다. 허허~ 그것 참~ 먼 곳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내 생을 돌아보게 되고 현실도 다시 본다. 이런 꿈은 생전 처음이었다. 이도 삶의 일환이 아니겠는가? 살아 있기에 겪는 일로 위안을 삼으련다. 


3. 꿈의 유추와 깨달음

험한 말과 글을 쓰지 않으려 해도 참을 수가 없다. 여러분들의 이해와 용서를 구한다. 현 정부와 여당인사들은 거의 모두가 유체이탈화법을 구사한다. 대통령을 비롯해 국무위원과 국회의원들은 물론 주요 고위직 인사들도 예외가 없다. 논리와 시비도 없고, 헌법과 법률 및 사회규범도 없다. 말이 되든 말든 막무가내다. 되는 대로 지껄인다. 모두가 내로라하는 고등교육을 받은 자들이다. 

어떻게 한 국가를 책임지고 있는 자들이 이럴 수가 있을까? 동서고금 역사를 통틀어도 이런자들은 없었을 것이다. 희극인가 비극인가? 이들을 추종하는 일부 국민들은 또 무어란 말인가? 말과 글로 표현불가하다. 쌍스럽고 추악함이 극에 달한다. 자랑스러운 대한은 사라졌고 부끄러운 나라로 추락하고 있으니 참담하다. 

금번 국가의 누란위기를 보면서 왜일까를 생각한다. 가장 위험하고 두려운 인간은 어떤 자일까? 멍청하고 어리석은 자가 똑똑하고 현명한 자로 둔갑한 경우다. 더구나 이런 자가 어떤 착시현상으로 인해 대중의 지지를 받아 지도자가 될 때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진다. 국가든 기관단체든 존립의 위기를 피할수 없다. 이자는 마귀가 되어 휘하 세상 모든 생명체들을 흡혈할 것이기 때문이다.

빈궁하고 권력도 없는 사회적 약자들이 험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외치는 것이라면 그렇거니 하겠지만, 초권력과 초재력을 갖고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다 누리는 자들이 그러하니 기가 막히고 화가 치민다. 너무하지 않는가? 불원천(不怨天)불우인(不尤人)이라 하지만,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일말의 양심도 없는가? 

이권만을 쫒는 사악한 자들에게 어리석은 지도자는 기회의 보고다. 이들은 한 몸이 되어 파멸할 때까지 간다. 집단(대중)지성이 반드시 현명하지는 않다. 일단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겉잡을 수 없는 곳으로 간다. 이 병폐를 어떻게 치유해야 반복되지 않을까? 역사의 큰 덩어리로 흐르는 현상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일까? 

시비가 너무 명확하여 초등생도 즉시, 판단할 수 있는 문제를 끝없이 다툰다. 그것도 법을 전공하고 수십 년을 법조인으로 산자들이 그렇다. 사법부마저 우왕좌왕한다면 이 나라가 어찌 되겠는가? 고위공직자들도 피장파장이다. 저들의 저열하고 저속한 언행을 언제까지 참고 견뎌야 할지 암울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겠지만 자괴감이 깊어지고, 한숨이 그치지 않는다.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을 바랄 뿐이다. 언론에서 아름다운 소식을 더 많이 전하는 평화로운 그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학수고대한다.

 

4. 독일 마르틴 니뮐러의 시 ‘그들이 왔다(나는 침묵했다)’를 붙인다.

처음에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을 잡아갔다. 하지만 나는 침묵했다. 왜냐하면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그들은 노동운동가를 잡아갔다. 하지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자도 노동운동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그들은 대학생과 교사들을 잡아갔다. 하지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대학생도 교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그들은 문인들과 기자들을 잡아갔다. 나는 이때도 역시 침묵했다. 나는 문인도 기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엔 그들은 교회 목사들과 가톨릭 신부들을 잡아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침묵했다. 나는 기독교도 가톨릭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다. 하지만 이미 내 주위에는 나를 위해 큰소리로 외쳐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편집위원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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