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omy Sunday
- Strange Fruit
- I'm A Fool to Want You
- Everything Happens to Me
지난 3월에 올린 글 재즈계 샛별 등장 '새머라 조이''의 첫 번째 영상 앨범에서 두 번째 곡이 'Everything Happens to Me'다. 'Stardust' 같이 재즈 기타 연주자 '파스콸레 그라소(Pasquale Grasso)'가 이끄는 트리오가 반주를 맡았다. 이 곡 역시 재즈 명곡이다.
'Everything Happens to Me'는 1941년 '프랭크 시내트라'가 'The Tommy Dorsey Orchestra'와 함께 처음 녹음한 곡이다. '모든 일은 나에게 다 일어나는데 그게 다 안 좋은 일이야. 사랑마저도….'라는 가사는 좀 슬프다. 가사가 그렇더라고 새머라 조이는 '그러면 어때? 나는 이겨낼 수 있어'라는 분위기로 노래한다. 시내트라는 우울한 가사만큼 좀 축축 늘어지는 선율로 '내 기분 좀 알아주세요' 하는 분위기라 별로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후 쳇 베이커, 냇 킹 콜, 스탄 게츠, 엘라 피츠제랄드, 빌리 홀리데이 등이 불렀는데 여기선 빌리 홀리데이 곡을 소개하고자 한다. 빌리 홀리데이는 1955년 이 곡을 녹음했다. 짙은 호소력이 장점인 그녀의 독특한 음색으로 아무렇지 않게 허무함을 뚝뚝 떨어뜨리며 부른다. 별 거 아니라는 듯 부르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아프다.
빌리 홀리데이의 삶은 기구했다. 1915년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10대 미혼 커플에게서 태어났다. 16세 아버지는 그녀가 태어나기 전에 떠났고, 19세 엄마는 미혼모라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났다. 볼티모어로 이사한 엄마는 그녀를 이복 언니에게 맡겼다.
그녀가 조금 자라자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해서 학교를 많이 빼먹었다. 9살에 감화원으로 보내졌는데, 그곳에서 학대에 가까운 고통스러운 생활을 보냈다. 9개월 후 엄마가 데리고 나왔지만, 빌리는 또 일을 해야했고 결국 11살에 학교를 그만둔다. 11세에 백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지만 오히려 다시 감화원에 갇히게 된다. 남성을 유혹했다는 죄명으로... .
1927년 12세에 그녀는 집으로 돌아왔으나 그녀를 안정적으로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윤락가에서 심부름을 하면서 온갖 허드렛일도 했다. 1928년 엄마와 만나 살게 되었지만, 경제 대공황이 미국을 덮쳤다. 그녀의 삶도 더 힘들어졌다. 하루 종일 품을 팔아도 굶주림을 면하지 못했다. 집도 없이 싸구려 모텔과 유치장을 들락거리던 그녀는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단숨에 '기가 막히게 노래 잘하는 천재 흑인 소녀'로 온 뉴욕 클럽에 소문이 났다. 1년 만에 여러 클럽에서 공연할 정도로 이름을 날린다. 드디어 1933년 18세에 ‘Your Mother’s Son in Law’와 'Riffin' the Scotch'를 녹음한다. 어떤 전문적인 보컬 지도를 받은 적이 없는 그녀는 노래를 자유자재로 갖고 놀았다. 주어진 노래를 악보에 맞춰 부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따라 멜로디를 풀어내면서 목소리만으로 즉흥 연주를 해내어 음악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음반을 취입하고, 가난에서 벗어나고, 미 전역에 이름을 알린 재즈 가수가 되어 카네기 홀에서 공연할 정도로 성공했지만, 그녀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세번의 결혼은 실패했다. 1947년에 약물 소지로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했다. 1949년에도 약물복용으로 체포되었다. 음주와 약물 중독으로 건강이 나빠져 1959년 간병변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44세에 삶을 마감했다.
죽음 후에 그녀 음악은 더 인정을 받았다. 많은 음반이 사후에 발매되었고, 4개의 그래미상도 사후에 받았다. '그래미 명예의 전당'과 '국립 리듬앤블루스 명예의 전당',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도 그녀의 곡이 올려졌다.
NPR(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국 네트워크)가 선정하는 위대한 목소리 50명(50 Great Voices)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으며, 2023년 롤링 스톤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수 200인'에서 4위를 기록했다. 그녀의 삶을 다룬 영화도 여럿 개봉되었다. 가장 최근인 2021년에는 <The United States vs. Billie Holiday>가 개봉되었다.
그녀의 곡 중 가장 인기있었던 3곡을 소개한다.
- Strange Fruit
그녀 곡 중 최고 명곡으로 꼽히는 곡이 'Strange Fruit'이다. 흑인 인종차별을 에둘루지 않고 정면으로 언급했다. 1937년 이 곡을 작사·작곡한 사람은 시인인 '에이블 미러폴(Abel Meeropol)'이다. 당시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은 극심했다. 특히 남부 백인들은 흑인들을 마구잡이 폭행해서 죽였고, 그 시체를 나무에 매다는 일이 빈번했다. 'Strange Fruit'는 '나무에 목이 매달린 흑인'을 의미한다.
빌리 홀리데이는 1939년 이 곡을 불렀다. 그녀는 너무도 괴롭게 노래를 부른다. 가사가 너무도 처참하기 때문이다.
이상한 열매(Strange Fruit)
남부의 나무엔 이상한 열매가 열린답니다
잎사귀에도 피, 뿌리에도 온통 피범벅
검은 몸뚱이, 남부 산들바람에 흔들리죠
포플러나무에 이상한 열매가 열렸답니다
용맹의 고장 남부의 목가적인 풍경 아래
튀어나온 눈과 비틀어진 입술에는
달콤하고 신선한 목련꽃 냄새와
불타버린 살점의 급박한 냄새까지
까마귀가 파먹는 열매가 열렸어요
비에 맞고 바람에 시달려 흔들리고
햇볕에 썩어서 나무에서 떨어져 버리는
참으로 이상하고 쓰디쓴 과일이랍니다
그녀는 이 노래를 받았을 때 인종 차별로 폐질환을 치료받지 못해 사망한 아버지를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충격적인 가사를 미국 사회가 용납했을까? 당연히 아니다. 이 곡은 발매된 후 매우 큰 논란에 휩싸였다. 대부분 라디오 방송에서는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이후에도 오랫동안 미국 여러 주에서 금지곡이었다.
아무리 금지해도 그녀의 노래는 청중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Strange Fruit'은 그녀의 목소리로 온 세상에 퍼졌다. 싱글이 100만 장 이상 팔리는 히트를 했으며, 니나 시몬을 비롯한 여러 가수들도 이 곡을 불렀다. 이 곡으로 그녀 사진은 <타임>지에 실렸다. 이는 미국 잡지에 처음 실렸던 흑인 사진이었다 한다.
1999년 타임지는 이 노래를 '세기의 최고 노래'로 선정했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2003년 국가 기록물에 이 노래를 등록했다. 롤링 스톤은 2021년 500대 명곡 중 21위에 올렸다.
내 사랑 니나 시몬이 부른 곡도 소개한다.
- Gloomy Sunday
그녀는 언제 행복했을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외로움과 슬픔을 짊어진 그녀는 할렘에서 빛났고, 카네기 홀에서 인정받았고, 타임지 표지에도 사진이 실렸지만.... 평생 따라다닌 우울감은 극복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Gloomy Sunday'은 헝가리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레쇠 세레스(Seress Rezső)'가 작곡하여 1933년에 출판했다. 유난히 우울한 단조곡으로 인해 출판사를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후 헝가리 시인이 'Gloomy Sunday'란 가사를 붙였고, 1941년 홀리데이가 이 가사로 불러 영어권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다.
홀리데이의 노래가 얼마나 울적함을 주었으면... BBC는 그녀의 노래가 전쟁 사기를 저하한다는 이유로 방송을 금지했었다고 한다. 1999년 개봉한 독일과 헝가리 합작 영화 <Gloomy Sunday>에서 주제곡으로 나오면서 한 번 더 세상의 관심을 받았다.
- I'm A Fool to Want You
' I'm a Fool to Want You'는 1951년 프랭크 시나트라가 발표한 노래다. 가사는 '당신을 원하는 나는 바보야. 나만을 원할 리 없는데도 말이지. 그래도 나는 당신을 원해'라는 아픈 내용이다. 시나트라가 발라드로 부른 이 곡을 빌리는 그녀만의 독특하고 탁월한 곡 해석으로 허무하고 씁씁한 감정으로 뒤덮히는 재즈곡으로 바꿔부른다.
여러 평론가는 그녀를 이렇게 극찬한다.
"재즈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보컬이다.
"억양과 박자를 조절하는 새로운 보컬 형식을 창조했다."
"자신의 현실을 노래에 이입하여 진심 어린 감정을 표현했다."
"미국 팝 보컬을 예술로 영원히 바꿔놓았다"
이와 같은 뛰어난 가창 실력 외에도 그녀는 '용기'가 있었다. 그 모질고 험악한 시절에 'Strange Fruit'를 대중 앞에서 부를 수 있는 용기 말이다. 아마도 총 맞을 각오 하고 불렀지 싶다. 그녀의 용기는 헛되지 않았다. 그 용기는 후배 가수 나나 시몬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와 흑인인권운동가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Strange Fruit' 들으며 인간의 잔혹성을 다시 생각한다. 이 곡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이라면 어떤 것을 해서는 안 되는지... 인간이라면 지독히도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세상이 아주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런 처참함은 지구 곳곳에서 아직도 펼쳐지고 있다.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는 지금은 가자지구에서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난민을 학살하며 지옥을 재현하고 있다. 시대를 뛰어넘으며 벌어지는 인간의 무궁무진한 잔혹성에 치가 떨리면서도… 빌리 홀리데이와 같은 용기 있는 자들이 또 여기저기서 나올 거로 생각한다. 그렇게 야만을 이겨내면서 세상은 또 한 걸음 나아가겠지…. 하는 희망을 품어본다.
참고 사이트 : 위키백과
참고 기사 :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79013.html
참고 기사 :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81335.html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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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 명곡 2. 냇 킹 콜(Nat King Cole)의 'Stardust'
- 재즈 명곡 3.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
- 재즈 명곡 1. 엘라 피츠제럴드의 'Misty'
- 재즈계 샛별 등장 '새머라 조이'


30 여 년 전, 제가 구입한 재즈 입문서 뒤에 부록으로 붙은 CD에서
20세기의 3대 재즈 디바인 사라 본과 엘라 피츠제럴드, 빌리 홀리데이를 만났더랬습니다.
감미롭고 우아한 사라 본, 밝고 흥겨운 엘라 피제럴드보다는
비통하고 우울한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에 더 깊이 매료되었던 까닭을 콕 집어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뮤지션으로서의 영예와 명성에도 불구하고, 외롭고 참담했던 그녀의 삶에서 뿜어져 나온
'고통과 슬픔의 힘'이 주는 위로 때문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하위계층-흑인-여성의 3중고를 온몸으로 짊어져야 했던 그녀의 노래가
투표가 완료되는 내일을 앞두고 잠못이루는 제 영혼을 쓰다듬어주는 밤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