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른 생각들로 순서도 정오(正誤)도 없다. 오호(惡好)와 시비(是非)를 논할 수는 있지만 대상은 아니다. 중복도 있으므로 고려하시면 좋겠다. 여러 차에 걸쳐 싣는다.
1.
온전한 마음과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과연 우리는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며, 기분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살다가는 타인과 사회의 비난 및 시기 질투를 피할 수 없고, 정상적인 공동체에서 배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그렇다면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바로 ‘가면’을 쓰는 것이다. 유익한 가면도 있고 무익하고 해로운 가면도 있으리라. 세부적인 것은 전문가에게 맡긴다. 가면에는 유형과 무형이 있다. 무도회나 연극에서 쓰는 유형의 가면은 쉽게 쓰고 벗을 수 있지만, 형체 없는 무형의 가면, 즉 마음과 생각의 가면은 다르다. 때로는 자신마저 속일 정도로 강력하기에, 누구도 그 본모습을 볼 수도 알 수도 없다. 아마 현대인 대부분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무형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 않을까?
3.
하지만 우리는 과연 죽을 때까지 가면 속에서 살다 갈 수밖에 없을까? 가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늘 살아 있는 이성과 양심으로 사는 사람이 존재할까? 희귀하리라. 오히려 사회는 가면을 쓰도록 부추기거나 강요하지 않은가? 그래야 서로를 속이고 속으며 각기 편하고 유리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가면이 반드시 나쁜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가면을 일부 부정하면서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진실과 정의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자신의 좋은 면뿐만 아니라 부끄러운 면까지 모두 드러나는 진실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신의 손해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라고 노력할까? 그래야 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4.
결국 우리는 가면을 쓴 현실과 타협하며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환경도 그렇지만 생각할 수 있고 마음이 가진 인간은 본질적으로 그런 존재인지 모른다. 진실과 정의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처하면서 말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고 하지 않은가? 그만큼 사람 마음속의 가면은 두껍고 깊다는 것일 거다. 누구도 아니, 자신조차도 보이지 않는 마음의 가면을 없앨 수도, 벗길 수도 없다. 하므로 가면은 다양하고 다채로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 인정함이 올지 않을까? 맘과 생각의 가면을 벗기거나 그 속을 알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그를 인정하고 알맞게 대처하는 지혜를 기름이 좋고 바른 대처방안이리라. 그리고 가면이 공동체와 상호 간의 최적성 달성에 도움이 되도록 연구함이 좋지 않을까? 공익보다 사익이 우선시 되는 현대사회에서 권익을 추구하다보면 가면(假面)형태는 수시로 바뀌리라 생각한다. 이런 사회현상에 맞춰 살아가려면, 중요한 것은 가면을 금기시할 게 아니라 어떻게 쓰고, 언제 벗어야 할지를 아는 것 아닐까?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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