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명의 식객을 거느렸던 맹상군(2)

맹상군에게는 많은 식객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풍환(馮驩)이라고 하는 아주 특이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남루한 행색의 풍환이 맹상군을 찾아왔습니다. 다 헤진 옷에 짚신을 신고, 허리에는 장검을 차고 있는데 칼집도 없는 꾀죄죄한 몰골이라 몹시 가난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맹상군이 묻습니다. “선생께서는 제게 어떤 가르침을 주시려고 왔소?”, “저는 너무 가난해서 밥이나 얻어먹으려고 왔습니다.”, “어떤 재주를 가졌는지요?”, “아무런 재주도 없습니다.” 그래도 맹상군은 웃으며 풍환을 식객으로 받아주었습니다.

집안 하인은 재주도 없이 밥이나 얻어먹으려고 온 풍환에게 제일 보잘 것 없는 식객들이 머무는 방과 매일 형편없는 밥상을 주었습니다. 며칠 후 맹상군은 하인에게 풍환이 어떻게 지내는지 묻습니다. 하인이 답하길 “풍환이 매일 기둥에 기대어 장검을 두드리며 ‘장검아 돌아가자. 밥상에 먹을 생선은커녕 새우 한 마리 없구나.’ 라고 노래를 부릅니다.” 맹상군은 풍환에게 고기반찬을 먹는 다른 식객들과 동일하게 대우를 하라고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풍환은 또 장검을 두드립니다. ‘장검아 돌아가자. 문밖을 나가려도 수레가 없구나.’ 하인들이 비웃으면서도 맹상군에게 보고를 합니다. 그러자 수레를 이용할 수 있는 등급의 다른 식객들과 같은 대우를 해주라고 명합니다. 얼마가 지나지 않아 풍환은 또 장검을 두드리며, ‘장검아 돌아가자. 여기에 있다가는 돈이 없어 가족을 돌볼 수가 없겠구나.’ 하인들은 풍환의 탐심이 끝이 없다며 몹시 싫어합니다.

맹상군이 풍환에게 ‘집안에 가족이 있느냐?’고 묻자 ‘집에 노모가 있다.’고 대답을 하지요. 맹상군은 사람을 보내 풍환의 어머니에게 생활용품을 보내주자 다시는 검을 두드리지 않았습니다.

1년여가 지나자 맹상군의 명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결국 제나라의 재상이 됩니다. 그리고 식객은 무려 3천에 이르렀습니다.

맹상군은 많은 식객을 관리하며 부족한 비용을 충당하고자 영지인 설땅에 가서 채무를 받아오는 일에 하는 일 없이 밥만 축내는 풍환을 보냅니다. 임지로 떠나기 전에 풍환은 맹상군을 찾아가 “채무를 다 받은 후 돌아오는 길에 무엇을 사가지고 올까요?” 그러자 맹상군은, “집안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사오시오.”

설땅에 도착한 풍환은 채권 장부를 하나하나 대조를 한 후에, 받을 가망이 없는 사람들의 채권은 맹상군의 명령이라며 모두 불살라버립니다. 영지의 모든 백성들이 만세를 부릅니다.

풍환은 돌아오자마자 맹상군을 찾아갑니다. 너무 빨리 돌아온 풍환을 괴이쩍게 여기며 묻습니다. “무엇을 사가지고 돌아오시었소?” 풍환이 답하기를, “집안에는 산해진미가 가득하고, 가축이며 미녀들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의(義)』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몹시 언짢은 맹상군, “무엇이 『의』요?” 그러자 풍환이 대답하길, “주군이 영지의 백성들은 돌보지 않고, 오로지 이익만을 탐한다면 백성들은 힘이 들어도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합니다. 채무를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사람들은 야반도주를 할 것이고, 주군의 평판은 갈수록 나빠질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주군의 명령이라며, 모든 장부를 불태웠습니다. 백성들이 만세를 부르며 환호를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제가 사온 『의』입니다.”(분권시의,焚券市義:‘채권서류를 불사르고 의를 사다.’는 고사의 유래.)

맹상군은 제나라 민왕을 도와 국력을 크게 신장시키게 됩니다. 나라가 부강하게 되면 다른 왕들 위에 군림하고 싶어지나 봅니다. 끝 모를 인간들의 과시욕이지요. 민왕이 주변 약소국을 강압하자 맹상군은 이를 만류하고, ‘맹상군이 있으니 제나라가 존재한다.’는 주변의 평판에 불쾌해진 민왕은 맹상군에게 ‘과인은 선대의 신하를 나의 신하로 삼고 싶지 않다.’며 맹상군의 직위를 박탈합니다. 자리에서 쫓겨난 맹상군이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자 백성들이 뜨겁게 환영을 합니다. 그제야 맹상군은 풍환의 마음을 깨닫지요.

풍환이 또 맹상군에게 말하길, “교활하고 기민한 토끼는 항상 세 개의 굴을 준비하여 화를 면합니다(교토삼굴:狡兎三窟의 유래). 지금은 겨우 목숨을 건진 상황으로 현재의 주공은 하나의 굴만 있는 샘이니, 제게 두 개의 굴을 더 마련할 수 있게 하여주십시오.”

▲ 교활하고 영민한 토끼는 생존을 위해 여러 개의 굴을 판다는 고사.

맹상군은 풍환에게 수레 50승(대)과 청동 500근을 내어주자 풍환은 서쪽 위나라로 떠납니다. 위나라 혜왕을 알현하여, “제나라에서는 중신 맹상군을 쫓아내 지금 영지에 머물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든 맹상군을 먼저 모셔오기만 하면 그 나라는 부강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위나라 혜왕은 신하를 파견 수레 백승과 청동 천근을 보내 맹상군을 재상으로 영입해 오라고 합니다.

진나라에서도 수차례 사신을 보내 입국하라고 권했지만 풍환의 조언대로 모두 거절을 합니다. 그러자 제나라 조정 안팎에서 들고 일어나게 되고, 민왕은 몰래 사신을 보내 잘못을 사죄하고 더 많은 영지를 하사하며 맹상군을 다시 재상으로 부릅니다.

풍환은 맹상군에게 ‘대왕에게 부탁하여 제나라 종묘를 주군의 영지인 설땅에 세우시라. 그리하면 주공의 관직도 보장을 받게 되며 두 다리 쭉 뻗고 근심걱정 없이 베개를 높이 벨 수 있다.’고 조언을 합니다. 그래서 제나라 종묘를 설땅에 세우게 됩니다. 맹상군은 제나라 재상으로 수십 년을 지내며 어떤 화도 입지 않지요.

세상을 살다보면 흑과 백, 명과 암처럼 모든 사물을 명쾌하게 둘로 나눌 수가 없지요. ‘의’와 ‘불의’ 역시 시대와 관점에 따라 달리 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실리를 중시하고, 어떤 사람은 대의명분을 중요시합니다. 현실과 이상처럼 어쩌면 동전의 앞뒤와 같이 영원히 함께 가야할 동반자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서로의 입장만 강조를 하면 갈등과 적개심이 증폭을 하지요. 그래서 공자가 자로의 질문에 답한 명언이자, 안중근 의사의 좌우명으로 알려진 글을 인용합니다.

▲ 동의단지회를 결성하여 의병활동을 할 때의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 직후. (사진 출처 : 위키백과)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의(義)를 생각하고, (국가) 위태로우면 목숨을 바친다.’는 뜻이지요. 여순 감옥에서 사형 집행을 목전에 두고 대한국인의 의기를 시퍼렇게 날 세워 후손에게 고하시고자 했던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유묵 이였습니다. 단지를 한 장인을 찍은 안중근 의사의 기백과 희생이 오늘날 부끄러움을 모르는 친일의 후예들에게 다시 한 번 각성을 요구합니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善’이라고 주장하면서 인의예지(仁義禮智) 4단을 언급합니다. 그중에서 ‘義란 수오지심(羞惡之心)의 발현’으로 봤습니다. 바꿔 말하면 거짓이나 사기를 치면서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의롭지 않다는 말이지요.

오히려 두려워하고 삼가는 마음으로 써야할 국민의 혈세를 먼저 보는 놈이 임자인양 죄의식도 부끄러움도 없이 쓰는 거짓된 인간들이 진정 우리가 멀리해야할 불의한 인간들입니다.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김동호 주주통신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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