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난하면 결국 세상 끝까지 헤매게 되어 있어

마음이 가난하면 결국 세상 끝까지 헤매게 되어 있어

세월이 차곡차곡 쌓이면 안정된 구도의 탑이 만들어지듯 사람도 그렇게 세월로도 완성되는 줄 알았습니다. 세월이 쌓이면 이 땅의 흙도 잘 익어서 식물을 기르고 꽃을 피워내는 줄 알았습니다. 세월이 쌓이면 아픔도 잘 삭아지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더군요. 나이가 주는 아픔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살아온 세월만큼 아름다워져야 하는데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 흔들림은 청춘이 주는 역동적인 흔들림이 아니라 아주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는데 거의 앓는 수준이었습니다. 갈대가 속을 비우고 서 있는 것이 꺾이지 않기 위해서이듯 가슴 안에 허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저는 어떤 분이 선물로 사 준 책을 읽으며 기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랑을 가장 먼저 배우는 티베트 아이들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당신의 행운을 빕니다.>라는 책이었습니다. 밑줄을 쭉쭉 그으며 읽었습니다. 그만큼 감동이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은이는 정희재라는 분인데, 고아와 별다르지 않은 삶을 산 여인입니다. 티베트 어린이 정착마을에서 그들과 생활을 함께 하며 살면서 느낀 점들을 솔직하고 진솔하게 썼습니다.

'나보다 당신이 먼저'

이 말은 티베트 어린이 마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표어랍니다. 나라를 빼앗겼지만,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적었습니다. 가진 것 없고 먹는 것조차 열악한 이들이 타인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를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글의 중심과제는 기록이지만 감동이 있으면 읽는 내내 행복하지요. 이 책이 그랬습니다.

이들은 평생 남을 얼마나 도왔는가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고 산다고 합니다. 언제나 나보다는 당신이 더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글을 쓴 정희재 씨는 그들과의 만남을 놀라움과 부끄러움이라고 적고 있었습니다. 이기심에 부채질하는 자본주의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낯선 풍경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티베트는 중국에게 강제 점령당해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 그들이 중국인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말에 아연해지는 것은 우리는 마음의 이기적 편향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해를 끼치고 고통을 주는 사람은 관용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대상이므로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불교성자 산티데바는 말한 바 있습니다.

이 세상을 찾아온 우리는 모두 지구여행의 초보자여서 길을 잃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길을 잃는다고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 여행자가 길을 잃어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간다면 득이지 손해가 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두 다 놓아두고 갈 것을 가지려 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도무지 가늠하기 힘든 사람의 욕망의 시선에 대해 생각하고는 합니다.

이 책에서는 이런 내용의 글도 보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기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이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입니다. 티베트라는 나라를 찾아가게 된 것과 그곳에서 기쁨의 순간을 만난 것은 진정 성공한 것이겠지요. 앞서 말한 바처럼 이들은 평생 남을 얼마나 도왔는가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고 산다고 했습니다. 지금 내가 아파하고 있는 것들은 많은 부분 욕심과 사람의 관계에서 생겨난 것들입니다. 자신이 아파하고 있는 욕망과 인간관계에 대한 것을 잠시 벗고 남을 위해 살 수 있는가에 따뜻한 마음의 눈길을 둔다면 삶이 분명 달라지리라 믿어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왼쪽 가슴으로 끌어안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심장이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마주 안으면 심장은 서로 다른 곳에서 뛰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품위 있는 풍각쟁이>라는 소단원에서는 이런 사람에 대한 소개도 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랑을 쏟지 않고 살면 가슴이 아파 와" 라고 말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사랑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아파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만 아파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아픔을 끌어안고는 끙끙 앓고, 어떤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덜어주려 노력합니다. 타인의 아픔을 덜어 주기 위해 자신의 시선을 가져간 사람은 행복에 이르는 길로 접어들고 있었고, 자신의 아픔을 끌어안고 울고 있는 사람은 여전히 앓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사랑받지 못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그 반대인데, 사람은 마음껏 사랑하지 못하면 불행해집니다. 누구나 일정기간 이상 사랑을 쏟을 대상을 찾지 못하면 공허하고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라는 부분에서는 무릎을 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사랑을 해야만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대상을 잃어버린 것이지요. 사랑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불행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지금 그 사랑해야 할 사람을 미워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인데 말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마음이 가난하면 결국 세상 끝까지 헤매게 되어 있어’

이 말에 다시 한번 마음이 잠시 머무릅니다. 저도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이겠지요. 방황은 살아있는 생명에게는 수식어처럼 따라 다닐 것입니다. 그러나 흔들리면서도 어느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어야지 바람에 날리는 낙엽 같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람은 다시 불고 있습니다. 다시 출발해야 할 시간입니다. 우리는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고여 있어서 썩을지도 모릅니다.

여든 살의 부처가 생을 마치며 인류에게 남긴 말이 있습니다. 깨달음을 가지라든가 남을 위해 베풀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가져야 할  것을 말했습니다. 아마도 타인을 위해 열정을 가지라는 뜻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아니면 항상 먼저 깨어있으라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그 말을 전하면서 마칩니다.

"자신의 고유한 불꽃 안에 머물라 -산티 데바-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김상학 주주통신원  saram5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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