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은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바른 언론의 탄생을 갈구했던 시민들이 주축이 되어 시민주 형식으로 태어났다. 당시 나는 명동을 중심으로 한 6월 항쟁의 모습을 직접 목격했었고 넥타이부대(당시 여성 직장인들도 상당히 시위에 합류하였으므로 이 표현은 좀 아쉽다) 속에서 나 역시 목청껏 민주주의를 외쳤던 기억이 새롭다.

국민주 형식으로 모금운동이 일었고 나 역시 그 모금에 참여하여 난생 처음 주주가 되었다. 당시 주식시장은 호황을 누리고 있었지만 투자나 투기 목적의 주식 소유가 아닌 바른 언론의 발언권을 가진 주인으로서 그 주식의 의미는 남달랐다. 자본주의 사회의 상징인 주식, 그러면서도 자본의 의미가 아닌 바른 언론의 자부심과도 같았던 그 주식의 의미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었다.

창간 이후 지금까지 독자로서 한겨레를 지켜보고 있었고 그 논조에 대해 가끔 하고 싶은 말도 있었지만, 우리 사회에서 최고로 바쁘게 살아가야만 했던 젊은 시절, 자신의 족적에 관심이 집중되었던 시기였기에 그 관심을 현실화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변명과 함께 세월도 흘러갔다.

그렇게 30년이 흐른 지금 나는 87년의 그 기분을 가지고 한겨레 주총장을 찾게 되었다. 국민주 신문이 그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왔던 과정을 바쁘다는 핑계로 그저 관망만 하고 있다가 오랜 친구를 만난 듯이 어느 날 그렇게 다시 조우하게 된 것이다.

국민주 신문의 탄생 이후 줄곧 함께 해온 주주들도 많겠지만, 이 사회에서 왕성한 활동기가 꺾이는 어느 순간 여유를 가지고 다시 찾게 된 나 같은 주주들도 많지 않았을까 스스로 위로도 해본다. 새삼스레 한겨레신문에 대해 궁금한 것도, 주총장의 분위기에 대한 기대감도 컸음을 말하려다 보니 서설이 길었다.

주식회사 주주총회의 모습은 어디나 그저 비슷비슷하게 연출되곤 할테지만 한겨레 주주총회의 백미는 역시 열망이 뜨거운 주주들과 경영진의 대화 시간이 아닐까 싶었다. 기대를 가지고 경영진과의 대화를 지켜보았는데 역시나 한겨레에 대한 애정의 조언들이 쏟아져 나왔고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채 발언을 할 수 없었던 주주들도 많았다.

몇 가지 의미 있는 제안들을 중심으로 대화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현장 질의에 앞서 받은 서면질문 중에서 한 주주는 “한겨레 논조가 그동안 공정했고 앞으로도 더욱 진실에 접근하려는 정확한 신문이 되기를 바란다.”며 한겨레에 대한 애정과 격려를 보냈다. 서초구에 산다는 진〇〇주주는 “한겨레가 흑자경영, 이윤 추구만 몰두하지 말고 한겨레의 정체성을 잘 지켜가면서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가 하면, 김〇〇주주는 “내년부터 본사와 자회사 연결 재무제표를 작성했으면 좋겠으며, 회계기준도 국제회계기준에 맞추는 것이 좋겠다.”며 회사의 운영사항에 대한 보다 철저한 관리를 주문하기도 했다. 아마도 한겨레신문이 출자한 (주)롤링스토리 등 자회사가 당기순손실을 내고 있음에도 한겨레 재무제표 상에는 출자금에 대한 사업 및 자산가치가 반영되지 못해 실질적인 평가에 미흡했던 점에 대한 의견인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는 이에 대해 원칙적으로 기업회계기준에 맞추어야 하는 우리기업의 현실이 있다는 점에 이해를 구하면서 앞으로 신뢰받는 재무제표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관심이 많았던 부분은 <신문의 방향성>에 대한 발언들이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등한시했던 북한 문제를 간과하지 말고 대북구호, 대북협상 문제 등 정부에 대한 여러 감시 기능을 해 주었으면 한다는 의견과 함께 우 편향적인 국민들도 국가를 구성하는 구성원이므로 상생하는 차원에서 한겨레신문이 협력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으면 한다는 다소 어려운 주문도 하였다.

김〇〇주주는 진보, 보수 등 단어를 사용할 때 그 집단에 대한 성격을 제대로 규정할 수 있는 적정한 단어를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즉 어떤 속성에 대해 애매하게 폭넓은 언어 표현을 피하고 정확한 단어(예를 들어 ‘태극기 집회’가 아닌 ‘친박집회’가 더 정확하다거나)를 취사선택함으로써 오해의 소지를 줄였으면 하는 바람이었던 것 같다.

신문의 방향성과 관련해 인상 깊었던 발언중 하나는, 내년 주총에는 오지 못하게 될 것 같다는 올해 90세(1927년생) 된 주주의 의견이었는데 “국민의 힘으로 이렇게 정권 재창출 기회를 맞았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한겨레가 모 방송사와 함께 앞장서 갔으면 좋겠다면서 주주대표로서 한겨레에 감사를 드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바른 사회, 민주언론에 대한 열망과 함께 한 세대를 보내면서 어느덧 고령이 되셨지만 지금까지도 그 청년 같은 열망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 머리가 숙여졌다.

마지막으로 <주주, 독자들과의 소통>의 문제를 지적했던 어떤 주주는 ‘독자들과 순대국이라도 먹으며 의견을 교환한 적 있는지, 그러면서 어떻게 독자를 위한 신문이라 할 수 있는지’를 질타하기도 했다. 이 발언에 대해 한겨레는 독자들의 귀찮은 요구라고 생각하기보다(그렇게 생각할리야 없겠지만) 뜨거운 관심을 가진 한겨레 특유의 독자층, 그래서 언제든 충분히 협조할 준비도 되어 있는 이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이 잠재적 독자들의 니즈(needs)를 파악해가는데 활용될 수 있다는 행복한 고민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한겨레 기사를 몇 년간 다운 받아놓을 정도로 애정이 있다는 한 주주이자 독자 역시 “한겨레 기사를 보면 잘 쓴다는 생각이 들지만 독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이는 결국 소통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통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또 다른 어떤 주주는 언젠가 국민들의 관심사였던 문제를 한겨레에서 다루어줄 것을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이를 거절했다며 이 자리를 빌어 그런 문제들을 다루어줄 수 있는지 다시 질문하였고, 회사는 당시 지면의 제한이 있었거나, 보다 중요한 기사가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한겨레는 직원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기사화하고 있으며 사장이 기사에 대해 지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답변하였다. 독자들이 아쉬워하는 부분을 어떻게 수렴하고 어떤 방식으로 개선해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한겨레가 고민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제29기 정기주주총회 경영진과의 대화를 지켜보면서 몇 가지 생각을 해 본다. 한겨레에 대한 애정과 열정, 기사의 방향에 대한 주문, 그리고 어려운 시절을 함께 했던 주주들의 과거에 대한 회상, 회한 등 비슷한 발언 내용들이 해가 다르다고 크게 바뀌지 않았을 것이며 심층적 대화로 발전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제한된 시간 안에서 오가는 대화의 내용들이 단편적일 수밖에 없음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간들을 그저 형식적인 절차로 간주하고 지나치고 말 것인지는 고민해 보아야 할 대목인 것 같았다.

수많은 정보들로 넘쳐나는 이 사회에서 한겨레를 향한 애정이 가득한 주주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을 때 한겨레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도 함께하고 든든한 후원군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보는 것은 어떤지 제안하고 싶다. 한겨레는 그 동안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잘 왔지만 또 다시 종이신문이 맞이한 새로운 한계에 직면해 있다. 이슈들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으나 충분하지 못한 사내 인력으로 당장 오늘을 헤쳐 나가기에도 바쁜 상황일 것이라는 점도 이해한다. 한 마디로 정신없이 가고 있을 것임을 보지 않아도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위기가 한겨레만을 비껴가지는 않을 것임도 분명하다. 내부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문제들을 든든한 이 외부 후원군들과 함께 어떻게 활용하고 풀어갈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머니·아버지가 사랑했던 한겨레를 딸과 아들이 사랑하고, 할머니·할아버지가 사랑했던 한겨레를 그 손주들이 사랑할 수 있도록 임기 동안 최선을 다 하겠다.”는 신임 이제훈 편집국장의 주주들에 대한 인사가 인상 깊었다.

한겨레가 지향하는 바를 신임 편집국장의 인사말을 통해 들으면서 올해 90세가 된다는 고령의 주주가 한 이 말을 함께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한겨레를 주축으로 한 주주 임원님들(아마 주주통신원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임)께 부탁이자 명령을 합니다. 한겨레온 커뮤니티 코너에 한겨레의 포부, 소망 이런 것을 올려주십시오. 그러면 서로 댓글 달면서 호흡을 같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젊은 사람이라도 오랜 시간 속에서 그 열정과 애정이 무디어질법 하건만, 이 고령의 주주께서는 여전히 한겨레가 나갈 방향과 로드맵을 정확히 알고 싶어 했으며, 그 목표를 향해 여전히 함께 이루어가고 싶다는 열망을 전했다.

27년 전 2만 원짜리 월세방에 살면서 온 가족이 주식을 소유해 왔는데 박근혜 탄핵을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는 충북 음성의 황〇〇주주, 보수적인 지역이라 많이 싸웠고 그래서 더 기뻤다는 그 주주의 말에 공감하는 많은 분들이 여전히 한겨레를 지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주주들의 관심사는 얼마나 배당을 받게 될 것이며 기업 가치가 어느 정도 될 것인지의 재무적 가치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한겨레 주주들의 관심은 오로지 이 사회를 제대로 비판하고 충실한 사실보도의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를 향해 있다. 한겨레로서는 감사한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항상 어깨가 무거운 책임감으로 느껴지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신문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도 어려운 오늘의 현실에서 관심이 차고 넘치는 주주들이 이렇게 많다는 긍정적 효과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한겨레와 주주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경영진과의 대화 동영상>

사진 및 동영상 : 박효삼 편집위원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김진희 주주통신원  kimjh1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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