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독립운동 탐방여행 5

광야에서 유원진 객원편집위원l승인2019.07.09l수정2019.07.13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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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 - 광야 중 마지막 연)

 

▲ 광야라는 표현이 너무 잘 어울리는 연해주 벌판 풍경. 멀리 지평선에서 초인이 타고 오는 백마가 달려 나올 것만 같다. - 강인희 회원 제공

연해주에서 본 광활한 벌판은 그 자체로서 가슴 벅찬 아름다움이었다. 지평선으로 달리고 있는 대지는 넓은 바다의 파도처럼 완만하게 물결을 이루며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지평선을 바라보며 두 팔을 벌렸다. 바람이 귀에서 윙윙거렸다. 드넓은 광야를 달려온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며, 이곳에서 있었던 우리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역사를 말해 주는 듯 했다. 이 광활한 벌판 어딘가에,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눈보라 속에서 싸우다가 죽어간, 이름 모를 독립군의 마지막 숨이 떨어져 있을 것이었다. 그가 숨을 거두며 본 마지막 하늘이 어쩌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하늘일지도 몰랐다. 누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는 노래에 바람이 춤을 추고 대지는 속삭였다. 우리를 잊지 마세요. 우리가 여기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 연해주 벌판. 모두들 생각에 잠겨 걷고 있다. - 이강윤 회원 제공

촛불 혁명이 한창이던 2016년 겨울. 이순신 장군 동상 근처에서 만나기로 한 후배가 십여 분 늦게 나왔는데, 꿀밤이라도 하나 먹이려고 벼르던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 슬그머니 손을 내리고 말았다. 얼굴에 병색이 완연했는데 나를 보고 인사를 한다는 것이 기침부터 먼저 쏟아내고 있었다.

“뭐야? 많이 아픈 거 같은데 전화나 해주고 집에 있지 . . .”
“오늘 백만이 모인다는데 나 때문에 백만 명이 안 되면 어떡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이가 없었다. 그는 자기 깃발을 찾으러 휘청휘청 가며 나를 돌아다 보고 씩 웃었는데 그의 얼굴 옆으로 무엇인가 빛나는 것이 있었다.

나는 이야기가 익어가는 술자리에서 가끔 이순신 장군 동상 밑 부분에 뭐가 있느냐고 뜬금없이 묻곤 한다. 바로 대답을 하는 사람들은 드물고 좀 생각해보고 맞추거나 진짜 동상 밑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 좀 더 자세히 발밑에 있다고 설명을 해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광화문 앞을 지날 때마다 장군님을 올려다 보기 보다 그곳에 먼저 눈길을 주곤 했다.

 

▲ 충무공 이순신 장군 - 출처 다음 백과

“거북선이 있지요. 더 자세하게는 그 배 밑에서 북소리에 의지해 죽을 힘을 다해 노를 젓다가, 배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수많은 이름 모를 병사들이 있습니다. 대가 없이 목숨을 바친 이 땅의 위대한 민초들이 있습니다. 장군님이야 영원히 남을 위대한 이름을 얻으셨으니, 저 동상은 그들을 기리는 표상이어야 합니다.”

 

▲ 연해주 벌판에서 한반도 기를 펼쳐보이고 있는 이요상 단장과 이기묘 회원 - 이요상 단장 제공

대가 없는 희생이야말로 거룩하다. 오로지 조국의 독립만을 위하여, 계급도 명예도 이름도 없이 맨발에 작대기 들고 떨쳐 나선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다. 만주벌에서 그리고 여기 연해주 벌판에서, 죽을 줄 알면서 기어코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이 영웅이 아니면 그 어떤 인간들이 영웅이 될 수 있으랴. 그들이 죽어 오늘의 우리를 살린 것이다. 모두 숙연한 마음으로 광야를 걷고 있었다. 서로 말은 없어도 굳이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을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초인의 바람이 세월을 건너, 말을 타고 광야를 달리던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실어오고 있었다. 우리를 잊지 마세요. 우리가 여기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 발해 옛 성터를 둘러보고 있는 회원들. 성이 축조 되었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이강윤 회원 제공

해방 후 우리가 첫 단추를 이승만이라는 가짜 독립투사 구멍으로 꿰지 않고, 역사로 수없이 검증된 진정한 독립세력으로 이어졌다면 우리의 독립운동사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작금에 논란이 된 김원봉 선생이나 여운형 선생등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매국노들을 처단하고 기어코 새로운 나라를 반석 위에 버젓하게 세웠을 것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기필코 그리 되었을 것이다. 연해주 독립운동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은 반드시 새로이 조명되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발굴하고 보존하여 만대에 물려주어야 한다.

 

▲ 우리를 태우고 다니는 버스 앞으로 승용차 한대가 지나가고 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아직 어설픈 기억이나마 엊그제 배에서 배운 '살아 남은 자의 슬픔' 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위대했던 청산리 전투도 이곳 블라디보스톡에서 시작 되었던 것이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사들인 신식총 ~ 백두산 화룡현 청산리까지 가져갔지 ~~”

그때 짚더미 속에 숨긴 총들을 실은 마차들이 이 벌판을 지나갔을까? (계속)

유원진 객원편집위원  4thme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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