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부자리 삼 붙이기(벗삼, 누운삼)부자리 삼을 붙일 때는 먼저 본을 떠야 한다. 본을 뜨는 것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 하나는 삼재용 판재로 직접 본을 뜨는 방법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엷은 판재를 이용하여 본을 떠서 삼재용 판재로 옮기는 방법이다.둘 중 어느 방법을 쓰던 관계는 없지만 사용할 판재는 두껍기 때문에 엷은 판자를 사용하여 본을 떠서 옮기는 것이 더 편하다. 본을 뜰 판재를 배의 밑에 최대한 밀착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본을 뜬 후에 밑에 붙이려고 할 때 잘 맞지 않고 틈새가 많이 생긴다.
10) 간답(間㳫)이제 이물비우와 하반을 붙였으면 간답(횡강력재)을 붙여야 한다. 간답을 붙이는 것은 비교적 쉽다. 정해진 위치에 올려놓고 밑과 관통되게 뚫어서 볼트로 조이면 된다.앞에서도 말했지만 배의 밑에 있는 중심선과 간답의 중심선이 일치되어야 하고, 하반과 이물비우의 중심이 일치되어야 한다. 이때도 볼트의 머리에 댓거울 감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간답은 모두 4~5개인데 1차로 두 개만 붙이고 배를 만든다. 붙이는 위치는 고물 쪽의 휘어진 지점에 하나를 붙이고, 그곳으로부터 이물 쪽으로 대략 2자5치 지점에
8) 이물비우이제 밑판이 다 짜졌다. 다음으로는 과 같이 이물비우를 만들어야 한다. 1차적으로 밑에 붙여야 할 것은 이물비우, 간답, 하반이다. 이물비우(미요시, 전비우)를 만들 때는 과 같이 만들지만, 만들 때 그림의 점선처럼 중간에 먹줄을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세울 때 중심을 일치시키기가 어려워진다. 이물비우가 일치되지 않으면 배를 만들었을 때 어느 한쪽으로 틀어지게 된다.밑에다 붙이는 방법은 옛날에는 과 같은 방법을 썼다. 그림에서 보는
7) 배 밑 짜기배의 밑을 올릴 고임목이 설치가 끝나면 배의 밑을 짜야 한다. 은 만냇기(萬力機)를 이용하여 배의 밑을 만들고 있는 실제의 사진이다. 은 완성된 배의 밑그림이다. 밑판을 짤 때 필요한 너비만큼 되지 않을 때는 여러 쪽을 붙여서라도 필요한 너비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림에서 보는 중앙의 점선처럼 중심먹줄 놓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앞에서도 설명을 하였지만 고임목의 위치는 고물 쪽은 뒤로부터 대략 4자 지점, 즉 밑을 휘어 올리려는 지점에 설치한다. 이물 쪽은 고물
4) 목재의 건조배 만들 나무의 준비가 다 되었다고 바로 배를 만들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목재가 건조되지 않는 상태에서 배를 만들면 나중에 나무가 마르면서 틈새가 생겨서 배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목재를 건조하는 데는 최소한 90일은 잡아야 한다.나무를 말리는 것도 장소나 방법에 따라서 건조율이 다르다. 또한 나무의 두께에 따라서도 건조일수의 차이가 난다.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먼저 바닥에 고임목을 놓고 판재를 쌓아 올리는데 판재와 판재의 사이에 1~1.5치 정도의 각목을 넣고 쌓아야 통풍이 잘되어 건조일수를 줄일 수 있다.밀폐된 공
1) 선목(船木)의 준비먼저 배에 사용할 나무를 준비해야 한다. 그 배에 사용할 목재를 준비하려면 먼저 수종을 정해야 한다. 수종의 선택은 내부와 외부재로 구분한다.우리나라는 예부터 선목(船木)은 소나무를 써왔다. 소나무 중에서도 황장목이라고도 하는 홍송(紅松, 참솔)을 사용하였다. 에는 변산의 소나무(黃腸木)가 다 없어져 배무이 장소를 완도로 옮겨야 한다는 기록이 있다. 배 만드는 소나무가 전국의 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특정지역에만 집단 자생지가 있었던 것 같다.지금이야 외부용재는 삼나무(스기나무)를 쓰지만 내부용재
4. 배 만들기배의 제작에 있어 모든 배를 다 말할 수는 없다.그래서 현재도 사용하고 있으며 쉽게 만들 수 있고 함부로 부리기에 좋은 해추선(海鰍船)에 대해서 설명할 것이다. 그것은 해추선에 갑판만 깔면 어선 등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 배가 모든 배들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이 배를 두고 현재는 채취선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김이나 미역 등을 채취하는데 사용한다고 해서 부쳐진 이름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용도에 따라 해추선(海鰍船). 농토선(農土船), 토선(吐船), 해채선(海菜船)이라
위의 은 일본인들이 부르는 고유의 이름이다. 그 이름에서 보았듯이 쿠기사시노미라는 명칭을 노미라는 말은 떼 내어 버리고 구기사시로 불리게 된 것이다.그림 중 구부러진 것은 처럼 맛대기 이음방식에서 못을 박으려 할 때 사전에 구멍을 뚫을 때 사용하는 것이고, 곧은 것은 배의 밑과 부자리삼을 붙일 때나 옆삼과 부자리삼을 붙일 때 사용한다.위의 과 은 설명을 하였고 는 나무의 결을 자르면서 못을 칠 때 나무의 쪼개짐을 막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는 꺽쇠이다. 두 개의 것을 같이 잡으려 할 때 사용하지만 배의 삼 등을 붙일 때 휘어진 판재를 걸어서 밖으로 더 나가지 못하게 하여 놓고 못을 칠 때에도 사용한다. 두 개의 판을 붙이려 할 때 트잽이가 없다면 꺽쇠를 두 판에 박고 치면 처럼 꺽쇠의 끝이 밖으로 비스듬히 펴져있기 때문에 치면 칠수록 판의 사이는 밀착되기 때문에 트잽이 대용으로 쓰기도 한다.앞의 두 종류의 꺽쇠에서 는 목수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꺽쇠이고 은 거멀못(鉅未釘, 巨勿釘)이라고도 하지만 가구, 뒤주 등에
3. 배무이용 공구옛날에 배를 만들 때는 어떠한 공구를 사용했을까?예나 지금이나 사용하는 공구에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전동기구인 것 말고는 별다른 것이 없다. 몇 가지 안 되는 공구로 배를 만들었어도 마음대로 대해를 항해하고 다녔다. 이러한 옛 공구로 일을 한다면 힘도 많이 들고 작업능률도 떨어지겠지만 배를 만드는 데는 별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다.이러한 공구들이 언제부터 사용하였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철기시대로 접어들면서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차 개량된 공구로 변하여 오늘에 이르렀을 것
3) 우이도(牛耳島) 선소우이도는 전라남도 신안군에 속한 도서이다. 이곳의 선소(船所)는 우이도의 진리에 있으며 영조 21년(1745) 3월에 만들어졌다고 한다.이곳에 시설을 했던 것은 섬에 선재목이 많았으며, 먼 바다에서 연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어 이곳에서 바람을 피하거나 기다리기도 하였으며, 식량이나 식수 등을 조달받기도 하였을 것이다.이곳 선소의 선착장을 지역민들은 우이도 선착장이라 부르고 있으며, 현재 남아있는 시설은 길이가 63.3m, 높이2.2~3m, 폭1.6m 정도이며, 형태는 산의 경사면에 반하여 타원형 모양을 하
1) 남해 선소 위 사진은 경남 남해군 남해읍 선소리 192-9번지에 있는 비로 비에 명칭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이 비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호로 1972년 2월 12일 지정되었다. 문화재 명은 장량상동정마애비(張良相東征磨崖碑)이다.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나는 선조 31년(1598)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일본 패잔병 500여명은 관음포를 통하여 육지로 올라와 일본군이 주둔하였던 선소의 왜성으로 갔으나 왜성의 주둔군이 도망하고 없자 패잔병들은 주민들의 선박을 탈취하여 일본으로 도주한 후였다.명나라군은 이곳에 도착하여 왜군을
2. 선소(船所)선소란 배를 만드는 곳인데 여기에서는 배를 만들었던 곳이나 메어두었던 곳을 의미한다. 그럼 이러한 배들은 어디에서 만들었을까?밝혀진 것부터 하나씩 풀어보자. 오늘날의 조선소들을 보면 거의가 옛날에 조선소가 있었던 곳이나 그 인근에 자리를 잡고 있다.사람의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그동안 여러 사람들에 의하여 몇 군데 밝혀지기는 하였으나 아직 밝혀지지 않은 곳이 더 많은 것 같다.지금까지 알려진 곳을 보면 전라좌수영의 본영인 여수의 진남관 앞 중앙동 4거리의 선소(지금은 매립되었음)와 돌산읍
제1장 배 만들기1. 배의 탄생배는 언제부터 어떻게 만들게 되었을까?그 누구도 언제부터 어떻게 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 인류의 삶과 동시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내(川)를 건너야 할 때 그 방법을 찾았을 것이고, 먹을거리가 풍부한 바다로의 진출도 절실히 요구되었을 것이다.처음에는 그냥 물에 뜨기만 하면 되었겠지만 사람의 몸이 물에 젖는 것이 불편했을 것이고, 짐도 날라야 했을 것이다. 배란 아득한 옛날부터 고기잡이, 해상의 운송수단, 전선 등 다양한 형태로 긴긴 세월을 지나면서 변해왔을 것이다.배의
1476년에는 배 만드는 변산의 소나무가 이미 다 없어져서 완도로 자리를(배 만드는 장소) 옮겼다니 완도가 다 떨어지면(배 만드는 소나무가 다 없어지면)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라고 임금이 걱정했던 기록으로 보아 국역왕조실록, 성종 5년(1474) 10월 28일. 완도에서 배를 만든 일들이 계속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완도에는 그만큼 소나무(황장목)와 배를 만드는 목수들이 많았었음을 알 수가 있다.1505년에는 전라도에서 보낸 잉박선(芿朴船, 너벅선, 廣舟) 19척, 토선(吐船) 12척, 착어선(捉漁船) 2척을 내수사에 소속시키라고
의 객주(客舟)편에는 항해를 할 때 바다가 깊은 것은 두려워하지 않고 얕아서 박히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배의 바닥이 평평하지 않아 조수가 빠지면 배가 기울어져 배를 구할 수 없게 되므로 납추(鉛錘)를 떨어뜨려 바다의 깊이를 재어보았다고 하였다. (조동원 외(2005), 고려도경, 제34권 해도1 객주편, 황소자리).이 배가 비록 송나라 배이긴 하지만 이 배는 첨저형의 배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교류가 활발했던 동시대에 우리만 이러한 배를 외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바다에서 인양된 배들을 보면
우리의 배 형태를 크게 나누어 본다면 평저선과 첨저선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어느 시대에 어떠한 형태로 선형이 바뀌었는지 알 수 없을 뿐이다.평저선은 간만의 차가 심하고 수심이 얕은 연안이나 강에서 사용하기에는 용이한 배이지만 큰 바다를 항해하거나 역풍(逆風)일 때는 항해를 할 수 없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다만 첨저선에 비하여 회전반경이 좀 작아서 선회를 하는데 첨저선보다 회전반경이 더 작다는 장점은 있지만 이물과 고물이 치켜 올려져 있어야만 회전 반경을 더 줄일 수가 있다.반면에 첨저선은 회전반경은 크지만 역풍항해를
목차 저자의 말 5서 문 11제1장 배 만들기 23 1. 배의 탄생 23 2. 선소(船所) 251) 남해선소 272) 대굴포 선소 293) 우이도(牛耳島) 선소 32 3. 배무이용 공구 35 4. 배 만들기 531) 선목(船木)의 준비 562) 목도(나무 운반하기) 573) 톱질 594) 목재의 건조 615) 배무이 장소 626) 고임목 637) 배 밑 짜기 658) 이물비우 699) 하반 7110) 간답(間㳫) 7111) 부자리삼 붙이기(벗삼, 누운삼) 7512) 옆삼 붙이기(옥삼, 선삼, 웃설미) 8013) 판재의
저의 책 내용을 연재로 실으려 합니다. 표지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실으려고 하는데 전문서적이라서 용어 등에 생소한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이 사람이 이렇게 살아 왔구나 짐작하시고 부족한 부분은 넓은 마음으로 감싸주시기 바랍니다. 들어가면서나는 바다 한가운데 섬인 완도 가마구미(駕馬仇味)라고 하는 마을의 전형적인 어촌에서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다.자라면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다, 배, 고기잡이, 그리고 가난뿐이었다. 바다와 배를 무척 가까이 하면서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내가 처음으로 배를 타본 것은 4살 때라고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