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제3차 공산당 신의주사건1927년 제3차 조선공산당사건으로 이영, 권태석, 박형병 등 유수한 당내의 진보적 인사들과 정남국, 정창남, 위경양이 신의주 경찰에 체포된 사건이 발생했다. 체포된 이들은 재판에 부쳐졌는데 1929년 12월 1심에서 정창남, 위경양은 2년 징역에 3년 집행유예로 석방되었고, 정남국은 1심에 불복 공소하였던바, 1930년 3월 15일 2심결과 1년 8월의 징역을 받았다.이 사건은 1926~1928년까지 있었던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한 사건으로 완도출신 당원으로는 신준희, 최형천, 강사원, 정남국, 신광희
이제 선거가 끝이 났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되신 분들은 국민들에게서 선택을 받으신 분들이다. 선택을 받으신 분들은 선택을 해주신 분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면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고 원칙에 벋어난 일은 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당락 간에 서로 축하하고 위로하는 풍토가 되었으면 한다. 당선인들은 역사에서 옳고 그름을 배웠으면 한다.조선조 숙종 때 뛰어난 김유라는 학자는 대제학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김유는 그날 가족들을 모아 놓고 내가 대제학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누구보다 겸손하고 청빈해야 한 자리이니 앞으로는 몸
14, 3.1운동에 참가3.1운동은 우리 민족 최대의 항일운동으로서 그 역사적 의의는 정사에 미루기로 하고 본고에서는 3.1운동과 관련된 완도지방의 사정만을 소개하기로 한다.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소안의 송내호, 정남국, 최형천, 신준희, 김경천, 강사원, 백태윤 등이 완도의 나봉균, 최사열 등과 협의하여 3월 15일 완도읍에서 만세시위를 벌렸다. 시위는 일경에 의해 진압되었으나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4월 초에는 완도보통학교에서, 이듬해 1월에는 고금면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신지면에서도 임재갑, 임재경, 김재교 등의 주
12. 대신리 신우회사건1933년 완도면 대신리 김병규 중심의 비밀결사 ‘신우회’ 사건이 터졌다.이 비밀결사는 조직하여 그간 꾸준히 활동하여 왔다.이 비밀결사대는 대신리 사는 이응길, 허치성, 장명재, 이정인, 이일봉 등이 김병규를 중심으로 조직하였다.이 조직의 수장은 김병규로서 김병규는 소안의 배달청년회 사건에 연루되어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월을 받은 바 있고 수의위친계의 구성원으로서도 활약했던 맹장이다. 김병규는 스스로 설립한 대신학원과 유치원에서 경제학 강좌를 개설하고 이 조직 구성원들에게 사회경제제도의 변천사를 강의했
9, 소안노농대성회사건단체의 조직연대로 보아서는 배달청년회보다 늦었지만 사건의 발단은 소안노농대성회 사건이 배달청년회 사건보다 앞선다.1924년 9월 15일 조선노농총연맹의 산하단체로 소안노농대성회가 결성되던 날 총회 주체 측과 일경이 충돌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총회 측 의장인 송내호가 개회를 선언할 무렵 일경 추상민이 회의를 간섭할 목적으로 무단 입장하였다.이때 의장이 “여기가 어딘데 회원도 아닌 일본 순사 놈이 감히 입장하느냐” 고 고함치자 회의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일본 순사를 힘으로 쫓아내버렸다.일제는 이것을 사건화 하여
8, 소안배달청년회 사건과 살자회 사건1920년 소안도에서 회원 100여명을 중심으로 배달청년회가 조직되었다.회장에 송내호, 부회장에 정남국이 선출되었고, 이분들은 당대의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이분들이 조직을 이끌었기에 항일조직은 더욱 확대되어 갔다. 배당청년회는 1924년에 조직된 노농대성회와 1926년에 조직된 살자회, 그리고 여성회와 소년단 등의 조직을 지원한 후, 그들과 연대투쟁하였다. 배달청년회는 조선동맹이 결성되었던 1924년 보다 앞선 1920년에 자생적으로 조직되었다가, 그 후 1927년 완
4, 수의위친계(守義爲親契)각 면에서는 교육, 계몽 사업이 일어남과 동시에 자생적인 항일운동이 시작되었다. 1914년 소안에 본부를 둔 수의위친계가 조직되었다. 이 조직은 그 명칭으로 보아 얼핏 사사로운 상부상조의 전통적 계처럼 생각하기 쉬우나 그것은 왜경의 눈을 속이기 위한 이름일 뿐이고, 사실은 항일비밀결사로서 송내호 선생의 지도하에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북도를 포함한 광범위의 항일 조직이었다. 이 조직에서는 유능한 인재를 뽑아 독립운동의 전초기지인 중국과 일본에 파견하였고, 국내에서는 군자금을 모금하여
2. 자지도 등대사건자지도는 이름을 세 번이나 바꾼 섬이다.처음에는 제주도에서 들어오는 항구의 문이라 하여 항문도(港門島)라고 하였으나 인체의 그것과 같다하여 자지도(者只島)라 불렀으나 그도 아니라고 당사도(唐寺島)라고 부르게 되었다.이 섬에는 절이 없는데 절사(寺)자를 쓴 것은 장보고 시대에 멀리 당나라를 오갈 때 이 섬에서 무사항해를 기원하는 제사를 모셨던 곳이란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해 진다.이 사건이 일어난 때에는 자지도라 불렀기에 자지도 등대사건이라 하게 되었다. 사건인즉 1909년 1월 소안도 남쪽에 위치한 자지도 등대에서
전국 군단위에서 가장 격렬한 항일운동을 펼쳤던 곳으로는 완도와 함경도의 북청, 경상도의 동래를 꼽는다. 완도는 외로운 외딴 섬이 아니라 민족정기가 횃불이 되어 하늘로 치솟았던 항일운동의 성도(聖島)였다. 역사는 옳지 않고 부족한 것을 올바르고 정의로운 방향으로 바꾸어 가는 과정일 것이다. 완도에서는 항일운동을 어떻게 하였을까? 앞의 글에서 대략 언급했지만 그 개요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과 계몽 운동을 펴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우선 간략하게 18개항으로 나누어 말하고자 한다.1. 교육, 계몽운동
여권신장가 1, 천하의 어머니는 여자로구나여자의 책임은 중하고 크다책임은 중하나 권세 없으니이것이 무슨 까닭이냐깨쳐라 찾아라 잃었던 권리를가혹한 남자의 압박하에서 2, 생명은 달렸으나 생명이 없고생산은 할지라도 자식은 없다청춘 잃고 자식 없는 우리 신세는남자의 노리개로 팔려다닌다깨쳐라 찾아라 잃었던 권리를가혹한 남자의 압박하에서 3, 아름다운 마음보다 고진한 청춘인간은 평화를 갈구했건만재산 없고 자식 없는 여자 신세는남자의 노리개로 팔려다닌다깨쳐라 찾아라 잃었던 권리를가혹한 남자의 압박하에서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항일의 섬 소안도(所安島)소안도는 완도에서 남쪽으로 17.8km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노화, 보길, 횡간, 자개(당사)도 등의 섬들과 함께 소안군도를 이루고 있다. 고려 현종9년(1018)이래 영암현에 속해 있었고 달목도(達木島)라 하였다. 신증 동국여지승람 전라도 영암 편에는 주위가 56리 이고, 목장이 있다고 했으며 대동지지(大東地志)는 남쪽으로 200리 떨어진 물가운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조 명종 대(1546~1567) 처음으로 김해 김 씨와 동복 오 씨가 월항리에 입주함으로서 마을을 형성하였다. 소안도는 4개의 유인
춘란이 피었습니다. 편집: 양성숙 편집위원
지난 정월 보름달 편집: 양성숙 편집위원
척도(尺度)를 재는 것이 자(尺)라고 했는데...경국대전 공전(工典)에 도량형(度量衡)이 기록되어있다. 이를 관리하는 소속관청은 상의원(尙衣院), 선공감(繕工監), 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 전연사(典涓司), 장원서(掌苑署), 조지서(造紙署), 와서(瓦署)이고 여러 고을의 도량형을 본조에서 제정하고 불도장을 찍어 속임수를 쓰지 못하게 하였다.그리고 그 자를 여러 가지로 구분하였다. 즉 황종척은 주로 악기에 쓰는 자의 일종으로 세종 때 박연(朴堧)이 아악을 제작하기 위하여 처음에 해주 산 검은 기장을 기준으로 만들었다가 후에 다시 만들
소위 많이 배웠다는 식자층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우리글은 과학적이고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한다.그분들의 말에 진심이 담겨 있을까? 혹 자신들의 권익을 챙기기 위해 하는 말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든다.하지만 배움이 부족한 사람들의 말엔 진심어림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고의 교육을 받으신 분들의 말엔 위선과 가식, 사탕발림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말이다.필자는 우리글만 아는 어촌 사람이다. 많은 공부와 글을 익히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가난한 어촌탄생이 그를 막았다. 어찌하겠는가? 그래도 잘 살아 왔다고 자부한다. 어떤 이들은
한 도예가의 퍼포먼스 작품이다. 도예용 흙을 발로 밟아 자국을 남겨 아름다운 문양을 만들었다. 편집: 양성숙 편집위원
완도군 완도읍 신기마을 바닷가 바위 위에 공룡 발자국 처럼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공룡 발자국일까요? 몹시 궁금합니다. 누구 아는 사람 있으면 알려주세[요. 편집: 양성숙 편집위원
완도의 한 호텔 근처 바다에 물고기 떼가 몰려왔다.어떻게 알고 왔는지 오리 한 마리가 물고기를 잡아 포식하고 있다.우연히 포착한 광경.오리가 물고기를 잡았다. 편집: 양성숙 편집위원
윤선도가 1638년 3월 15일 영덕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음해인 1639년 2월 해배가 되어 돌아오는 길에 서자 미(尾)가 병을 앓다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슬퍼하면서 미(尾)를 애도하며 지은 시다.이때 윤선도 나이 53세 때이다.미(尾)는 천출로 태어난 나의 자식이다. 나면서부터 뛰어나게 총명하여 온통 내 사랑을 쏟았다. 기묘년의 중춘에 나는 영덕의 적소에서 귀양이 풀리어 집에 돌아오던 중이었다. 20일 아침 경주의 요강원에 이르렀을 때 尾가 두창을 앓다가 이달 초하루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분통하고 창자를 끊는듯하여 그
남해안 명물 ’장보고대교'의 야경 2017년 11월 28일 개통된 ‘장보고대교’는 전남 완도군 신지면 송곡리와 고금면 상정리를 연결하는 해상교량이다. 7여 년의 공사기간과 총 사업비 963억 원이 투입된 사장교(斜張橋)로 총 연장 4.297km 중 교량구간은 1.305km. 왕복 2차로이며 주탑 높이가 91.5m이다. 해수면에서 교량상판까지 통과 높이 30m를 유지함으로써 500톤급 이하 선박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설계하었다.이로써 2005년 완도~신지도를 잇는 신지대교, 2007년 고금도~
대장군전(大將軍箭) 복원대장군전이란 1592년 발발한 임진전쟁 당시 조선 수군이 왜군을 격퇴하기 위해 사용했던 대장군전(大將軍箭)을 말한다. 이 대장군전은 천자총통에 사용한 화살로 국내에는 단 한 점도 남아있지 않다. 이 대장군전이 약 420년 만에 고국을 찾았다. 일본인 왜장 구키요시타카(1542~1600)가 조선에서 가져간 것이다.국립 진주박물관이 정유전쟁 7주갑(420)을 맞아 특별전에 정유전쟁(1597)에서 구키요시타카의 후손인 구키다카쿠니씨의 협조를 얻어 대장군전을 전시하고 있다. 이 대장군전은 길이 182cm, 직경 9.
오늘 아침 해가 유난히도 맑게 떠 올라 찍어보았습니다. 편집: 양성숙 편집위원
외지에서 완도 올 때 완도대교에서 우회전하면 당인리 방향 서부도로를 탈 수 있다. 한참 오다보면 도로 우측에 '갯바람 공원'이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다. 공원에는 넓은 주차 공간이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닷가로 내려 가 보라.멋진 풍경을 구경하고, 풍광을 사진으로 남겨도 좋은 완도 갯바람 공원 해변. 편집: 양성숙 편집위원
완도군 군외면의 폐교 초등학교에 노랑 은행잎이 떨어져 쌓여있다. 편집: 양성숙 편집위원
주말 관광객을 겨냥해서 특산물을 판매하는 장흥 토요시장.'소몰고 불판으로'란 상호가 시장 안 고기 구워먹는 구역에 걸려있어 더욱 재밌다. 편집: 양성숙 편집위원
11월 1일 석양의 모습이다.자로 대고 그은 듯한 가는 선이그 모습을 자정이 될 때까지 그대로 유지하다가달과 함께 서산으로 넘어갔다.알 수 없는 자연현상이겠으나 신기할 따름이다. 편집: 양성숙 편집위원
완도 설군의 일등공신, 침천 김광선 선생완도 설군(設郡)의 주역은 심재 이도재 공만 있는 게 아니다. 침천 김광선 선생을 빼놓고는 온전한 완도 설군의 역사가 성립되지 않는다. 두 설군 주역은 1896년 완도 설군의 쌍두마차로 중앙과 지역에서 설군 작업을 이끌어 나갔다. 이도재 공은 전라감사와 학부대신 등 지방과 중앙의 관료로서 돌산군, 지도군과 함께 완도군이 설군 되도록 정부와 교섭를 맡았고, 김광선 선생은 현지에서 전주와 광주, 한양을 수차례 왕래하면서 설군 과정에서 도민을 설득하고 조직하는 실무를 처리했다. 설군 이후에도 두 사
단풍나무는 아니지만 '나도 붉은 색을 낼 수 있다'고 뽐내는...나도야 단풍!! 편집: 양성숙 편집위원
동백꽃이 활짝 피었습니다.제 철을 알지 못하고(不知) 꽃을 피웠으니 철부지 동백꽃이지요.철부지여도 꽃은 예쁩니다. 편집: 양성숙 편집위원
장보고 유적지 장도에 올랐는데 날씨가 참 좋았다.퍼지는 아침 햇살을 역광으로 찍었더니 더욱 멋지다. 편집: 양성숙 편집위원
아침이슬 맞은 강아지풀입니다.어린시절 강아지풀을 보며 '워리워리', '요요요' 개부르는 소리를 내며 놀았지요.추석 명절을 맞아 지난날을 떠올리며 피식 웃어보세요. 편집: 양성숙 편집위원
팔색조(八色鳥)팔색조(八色鳥)는 팔색조과의 여름철새이다. 동남아시아의 말레이 반도에서 살다가 여름에 제주도, 거제 학동의 동백림 및 팔색조 번식지에 와서 번식하며, 먹이는 곤충과 지렁이이다. 어미는 둥지에서 새끼가 태어나면 알 껍질을 먹어서 천적으로부터 새끼들을 보호한다. 종과 번식지 모두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다. 완도에서도 발견 되곤 한다.(출처 : 위키백과) 사진: 완도수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