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외국에서 학교를 다닌 기간을 합치면 8년이 넘는다. 미국에서 초등학교 2년, 고등학교 1년 다녔고, 캐나다에서 학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박사과정까지 5년 4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오랜 타지 생활로 인해 얻은 성과가 있다면 다양한 외국인들과 쉽게 빨리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다. 특히 외국인들이 어떤 것에 감동받고 좋아하는지 잘 안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고 친구를 만들기 위해 나름 터득한 지혜랄까? 기술이랄까?

외국인 특히 서양인들은 개인주의자이고 친해지기 어렵다는 편견을 한국 사람들은 갖고 있다. 사실 문화와 언어, 그리고 자라온 환경이 다른 외국인과 친해지기 어려운 건 맞다. 고등학교 시절 미국에 청소년교환학생으로 갔을 때와 캐나다 대학교에 다닐 때 친구를 사귀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었다. 그리고 그런 노력 끝에 언어적, 문화적 장벽을 금방 허물 수 있는 비법을 알아냈다.

강아지는 밥 주는 사람을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나도 밥을 차려주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듯해진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면 사랑의 감정은 더 상승한다. 그렇다. 모든 사람들은 밥을 차려 주면 정말!!! 좋아한다.

캐나다 대학시절 친구들을 초대해 김밥 만드는 걸 가르쳐줬던 적이 있다.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다들 그때 만들었던 김밥이 얼마나 맛있었는지를 찬양하며 그립다고들 한다. 그 생각이 떠올라 가끔 실험실 파티가 있는 날이면 떡볶이, 잡채, 불고기를 해간 적이 있다.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몇 명을 집으로 초대해 음식 문화를 나누는 것이다. 항상 따듯한 마음으로 나를 특별히 챙겨주는 동료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하기 위해 한국 음식을 몇 번 해주었다.

초대한 사람은 우리 실험실에서 같이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팅’과 ‘클라우디아'다. 팅은 중국에서 온 친구이고, 클라우디아는 캐나다 출신이다. 내가 실험실 일원이 되었을 때부터 따듯한 마음으로 반겨주었다. 학문 영역에서 서로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서로를 지지해주는 소중한 친구들이다.

▲ 2019년 12월 우리 집에 처음 초대한 날, 갈비찜 대접

준비한 요리는 김진옥님의 요리법을 참고하여 만든 갈비찜과 된장찌개였다. 갈비찜을 처음 접해 본 클라우디아와 팅은 처음엔 손으로 갈비를 뜯어야 하는 게 어색했는지 젓가락으로 깨작거렸지만, 이내 팔을 걷어붙이고 먹기 시작했는데 곧 집중해서 말없이 먹기만 했다. 양이 많아 남을 줄 알았던 갈비찜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너무 맛있다며 요리법이 뭐냐고 물었다. 밥을 해준 이후, 팅과 클라우디아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 대하는 제스처가 훨씬 더 따듯하게 바뀌었고 무엇이든 더 챙겨주고 도와주려고 했다.

▲ 팅이 준비한 소고기 요리와 닭고기 요리

그 후 팅도 처음으로 우리를 초대하여 중국 음식을 차려주었다. 중국은 귀한 손님이 왔을 때 고기를 코스로 대접한다고 한다. 팅 집에 도착하니 소고기 2종류와 닭고기를 정성껏 준비해놓았다. 팅은 평소와 다르게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우리를 맞이했다. 예전에 대만 여행 갔을 때 우리를 초대한 집에서 주로 고기류만 내 놓았던 기억이 났다. 혹시 또 그렇지 않을까 해서 야채김밥 재료를 준비해 갔다. 우리 셋이 김밥을 말아 팅의 고기와 함께 먹었다. 팅은 우리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는 흥분할 정도로 좋아했다.

▲ 팅과 클라우디아가 김밥을 말고 있는 모습

지난주에는 두 사람을 다시 초대해 삼겹살 쌈밥을 해주었다. 한국 바베큐는 이렇게 먹는 거라면서 삼겹살, 버섯을 구워 상추와 싸먹는 법을 알려주었다. 클라우디아는 이번에도 역시 말도 안하며 폭풍 흡입하다가 한마디를 던졌다.

“한국 음식은 정말 독창적이고 건강한 것 같아. 고기에 다양한 야채를 넣어 고추장 소스와 함께 상추로 싸먹으면 이렇게 맛있을 줄 몰랐어. 다양한 재료를 내 마음대로 넣을 수 있다는 거 너무 재밌는 거 같아. 우리 서양인들은 보통 고기를 먹는다하면 큰 고기 덩어리를 구워서 고기만 먹거든. 서양음식 정말 지루하지 않니? “

하며 시니컬한 웃음을 날리고 또다시 열심히 상추에 삼겹살과 야채를 넣고 싸먹기 시작했다.

▲ 얼마 전 우리 집에서 먹은 삽겹살 쌈밥

한국 음식을 해줄 때마다 매번 느끼는 건 외국인들이 한국 음식을 정말로 좋아한다는 것이다. 한국 음식과 서양 음식을 비교하며, 본인의 음식들이 얼마나 재미없는지에 대해 비평하고 한국 음식이 얼마나 건강하고 다양한 맛을 갖고 있는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10년 전 만해도 외국에서 김치하면 냄새나고 이상한 동양 음식으로 생각했다면 지금은 보편화된 웰빙 음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 식당이 아닌 일반 외국인 식당을 가보면 메뉴에 김치나쵸, 김치햄버거, 김치케사디아(얇게 구운 빵인 토르티야에 치즈와 다른 재료들을 함께 넣고 반으로 접어 익혀 먹는 멕시코 음식) 등등을 볼 수 있다. 외국 음식과 김치를 조합한 퓨전요리다. 또한 젓가락을 사용할 수 있는 외국인들은 문화적으로 ‘뭘 좀 아는’ 깨인 외국인으로 생각한다. 우리 집에 초대했을 때 “포크 줄까? 젓가락 줄까” 물어보면 다들 어깨를 으쓱이며 “나도 젓가락 사용할 줄 알아. 젓가락 줘”라고 얘기한다.

실제로 몬트리올 한국음식점은 장사가 참 잘 된다. 몇 곳은 외국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다 먹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한국 음식 메뉴는 삼겹살, 김밥, 비빔밥, 불고기, 떡볶이 등 화려한 메뉴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집에서 해먹는 음식이다.

2004년 미국에 청소년교환학생으로 방문했을 때 학교에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외국인 친구들 대부분 한국이란 나라, 그리고 문화에 대해 생소해했다. 하지만 16년이 지난 지금, 한국 음식은 인기 있는 트렌디 음식이 되었다. 이와 더불어 한국의 K-pop, 영화, 드라마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에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에서 많은 상을 휩쓸면서 다시 한 번 한국 문화를 자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몬트리올에서 친구들 5명과 함께 <기생충>을 보러 영화관에 갔다. 영화가 끝나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하며 좋은 영화를 추천해주어 고맙다고 했다. 우리 보스 스테판도 <기생충>을 보고나서 정말 색다른 영화였다면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제작한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보다 더 흥미롭게 봤다고 했다.

주위에서 한국 문화를 칭찬할 때마다 다시 한 번 우리 문화의 독특성, 창의성, 다양성, 건강성에 감사하고 자부심을 갖게 된다. 이런 좋은 문화를 활용하여 사람들 마음을 따듯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행운인 것 같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이지산 주주통신원  elmo_party@hot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