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모장군(禦侮將軍) 전방삭(全方朔) (27)

임진왜란 당시 전방삭 장군의 직책과 서열 전종실 주주통신원l승인2020.03.26l수정2020.03.26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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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삭 장군께서 국가에 헌신한 경로를 알아 보기위해 조선시대 중기에 해당하는 서관관직(무관)과 훈련원 조직 등을 여러 문헌을 통하여 알아보았다.

 ∎조선시대 훈련원 조직 및 담당 직무
『경국대전』에 따르면
정2품 지사 1명, - (겸임으로 파견된 명예직)
정3품 도정 2명, - (실제적 운영 전임담당관 운영직)
정3품 정   1명, - (⋇전방삭 장군 : 임란 후 사후 추증)
종3품 부정 2명, - (⋇전방삭 장군 : 임란 중 관직)
종4품 첨정 2명,
종4품 판관 2명,
종6품 주부 2명,
정7품 참군(參軍) 2명,
종8품 봉사 2명,
서원(書員)  3명,
고직(庫直)  1명,
사령(使令)  6명,
방직(房直)  1명,
군사(軍士)  7명,
종각직(鐘閣直) 1명,
타종군(打鍾軍) 3명,
 
⋇습독관은 승문원(承文院). 사역원(司譯院)등에 속해 전문지식을 익히고 가르치던 관직
습독관(習讀官) 30명, - (⋇전방삭 최초 입사시 직책)을 두어 각종 병서 등을 습독하고, 활쏘기와 말 타는 법 등을 연습하도록 했다.

최고 책임자는 지사였지만 겸임으로 파견되었고, 또 문신이 겸하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실제적인 운영은 전임 당상관인 도정이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비록 당하관이기는 하지만 정을 거치면 당상관으로 승진하는 제도가 마련되어 훈련원의 위상을 높여주었다.

∎임란 초기 조선 수군의 작전구역과 병력 상황*

전라우수영  : 전함 30척, 수군 5,000명

전라좌수영  : 전함 25척, 수군 4,000명 ⋇전방삭 장군 1592년 5월 26일 부터 전라좌수영 군무 돕고 많은 전투 참전으로 공을 세움  

경상우수영 : 전함 75척, 수군 12,000명

경상좌수영 : 전함 75척, 수군 12,000명

이외에도 당시 조선 수군은 충청수군 전함 30척, 수군 5,000명 및 경기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등에도 수군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편제상의 숫자일 뿐 실제로는 20%밖에는 가동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 수군 전투 장면(캡처)

∎조선중기 서관관직(무관) 비교

품 계     관  직   명  현 대 직 급 급수     비        고
정1품 영사. 도제조. 대장 국무총리                               
종1품 판사 부총리    
정2품 지사. 제조. 도총관. 통제사 대장. 치안총감   이순신(수군통제사)
종2품 관찰사. 부윤병마절도사 중장   이순신(수군절도사)
정3품

첨지사.

절충(折衝)장군(당상관)

어모(禦侮)장군(당하관)

소장 1급

 

 

 어모장군 전방삭

종3품

대호군. 부장

건공(建功)장군

보공(保功)장군

준장. 치안정감 2급

건공장군 전방삭

 (임란전)

정4품

호군

진위(振威)장군

소위(昭威)장군

대령. 치안감 3급  
종4품

겸릭. 부호군. 첨정

정략(定略)장군

선략(宣略)장군

중령. 경무관 4급  
정5품 사직. 과의교위.충의교위 소령. 총경.경정 4급  
종5품

도사.부사직.판관. 현신교위

창신교위

소령. 총경.경정 4급  
정6품 돈용교위. 진취교위 대위 5급  
종6품

부장. 수문장.종사관

여절교위. 병절교위

대위 5급  
정7품 사저. 참군. 적순부위 중위. 경감.경위 6급  
종7품 부사정. 분순부위 소위.준위.경사 7급  
정8품 사맹. 승의부위 소위.준위.경사 7급  
종8품 부사맹. 수의부위   8급  
정9품 사용. 효력부위 상사.중장.경장 8급  
종9품 참봉. 전력부위 하사.순경 9급

 

전방삭 장군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까지 훈련원에 근무했고 고향인 전라좌수영 이순신 관하에 백의종군하여 많은 공을 세운 뒤 이순신 장군 하옥으로 관군이 와해되자 고향 보성에서 의병을 창의하여 수차에 걸쳐 왜적을 무찌르는 도중 같이 협동하여 싸운 장수들이 하나 둘 전사하자 단신으로 맞은 보성 죽전벌 전투에서 혼신을 다해 싸웠으나 전사하고 말았다.

∎1597년3월 중순 의병 창의(보성군 의병장이라 칭함)

전방삭 장군은 보성군 벌교읍 영등에 해상의병기지를 마련하고 의병 300명을 모집 정예병에 가까운 수준 높은 훈련을 한 뒤 수차에 걸쳐 고향과 인근 지역으로 침입하는 왜적을 물리쳤다.                   

▲ 조선시대 군사 훈련 재연(캡처)

∎선무원종공신록권 및 기타 기록

선무원종공신록권 전체내용을 제시하기가 어려워 편집된 내용을 제시한다.
전방삭 장군이 이 록권을 선조임금으로 부터 하사 받을 당시는 이미 사후였고 그 뒤 선조임금교지의 약속대로 어모장군으로 추증되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당시 국란을 극복하고자 공을 세운 육군과 수군뿐만 아니라 승병, 그리고 무기를 개발한자, 군량미를 도운자 등 선무원종공신 9,060명을 3등급으로 나뉘어 포상했는데 1등급은 560여명이고 2등급은 3,500여명이다. 그 중 전방삭 장군의 순위를 굳이 따지자면 200번 순위 안에 속하므로 선무원종공신 전체 인원수(9,060명)의 상위 8%에 속하는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조선 수군 의 5관중 ‘전라좌수영 이충무공 관하 진충제공 추모비’의 기록 순서로는 108명중 12위에 기록되고, ‘호남절의록’에  ‘이순신과 함께 순절한 사실’ 에서는 58명중 27번째로 기록 되었고. ‘선무공신추모록’에는 112명중 27번째로 기록되어있다.

전쟁으로 입은 인명 피해를 기록하고 싶지도 않지만, 역사적 통계로 나온 우리나라의 사상자는 약 20만(민간인 포함)여 명에 달하고, 우리를 도와주었던 명나라 병사도 3만여 명의 사상자가 있었고, 조선인이 일본에 끌려간 사람이 5~6만여 명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두자.  일본군도 8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 전방삭 장군록권 편집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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