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 이야기 26. 갇힌 공간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다

이지산 주주통신원l승인2020.04.10l수정2020.04.2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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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

보스 스테판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2주간 예정됐던 자가격리 및 재택근무가 5월 1일까지 연장된다고 했다. 2주 자가격리 기간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데 부족할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그래도 지난 3월 14일 2주 격리를 시작했으니 4월 초순 지나면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앞으로 한 달 넘게 출근도 못하고 연구도 못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집에서 혼자 온전히 버틸 수 있을지... 앞으로 진행하던 연구는 어떻게 할지... 재택근무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국에 돌아가야 하나... 캐나다에 남아있어야 하나...’ 온갖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워 어떤 판단도 제대로 서지 않았다. 어떤 결정도 할 수 없어 하루를 그냥 보냈다.

3월 25일

연구기관에서 공식 이메일이 왔다. 5월 초순까지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며 현재 진행하고 있는 동물 실험 및 교배를 전부 중단하고 동물을 최소화하라는 내용이었다. 연구에 필요한 실험쥐를 준비하는데 6개월에서 1년 걸린다. 따라서 이 공문은 그동안 연구원들이 공들인 노력과 시간을 무산시키는 내용이다. ‘동물을 최소화하라’는 말은 실험쥐를 아무 목적 없이 안락사 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이어 스테판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누군가 대표로 동물실험실에 가서 실험쥐들을 정리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쥐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연구원은 나를 포함해 총 4명이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은 가족 및 남자친구와 같이 살고 있고, 실험실에 오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한다. 모든 면을 고려했을 때 혼자 살고 있고, 걸어서 실험실에 갈 수 있는 내가 대표로 동물을 정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실험실원들과 스테판에게 그렇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날 저녁 부모님과 통화를 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불안정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더 자주 연락을 취하고 있다. 엄마에게 실험용 쥐들을 정리해야하는데 마음이 몹시 착잡하다 했더니 엄마는 갑자기 말을 잇지 못하셨다. 그러곤 시무룩하고 속상한 목소리로 “그거 꼭 네가 해야 하니?”라고 물으셨다. 내가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한다고 하니까 “아이고 너도 쥐도 불쌍해서 어떡하니? 안락사 시킬 때 쥐들 좋은 곳으로 가라고 꼭 기도하렴.”라고 신신당부 하시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셨다.

3월 26일

실험실원들로부터 동물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정보를 받고 동물실험실로 향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이후, 4시 이전엔 동물실험실에 가지 말라는 지침에 따라 3시 40분쯤 집을 나섰다. 동물실험실은 저녁 6시가 되면 깜깜해지고 아침 6시가 되면 불이 환하게 들어온다. 야행성인 쥐들은 불이 켜지는 12시간 동안 잠을 자고, 불이 꺼지는 12시간 동안 활동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후 4시부터 불이 꺼지기 전인 6시까지 2시간이다. 빨리 일을 끝내기 위해 정신없이 쥐를 옮기고, 안락사를 시켰다.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 된 새끼를 어미로부터 떼어내어 안락사 시키는 과정이 제일 힘들었다. 어미는 새끼가 없어지니 안절부절 하며 케이지 안을 왔다 갔다 했다. 새끼들은 어미와 떨어지니 종종 찍찍 소리를 내며 엄마를 찾는 듯했다. 새끼는 산소차단법으로 안락사가 불가능하다. 끔찍하지만 단두대를 사용해야 한다. 제일 싫어하는 방법이지만 동물협회에서 인정한 가장 윤리적인 방법이라고 해서 한 마리씩 진행했다. 불이 꺼졌다. 케이지는 다 정리되었고 안락사 당한 쥐는 한 봉지에 들어가지 않아 3봉지에 나누어 담았다. 냉동고에 넣은 사체는 후에 동물실험실 관리원이 따로 날을 잡아 화장한다.

집에 와서 바로 목욕을 했다. 방금 내가 했던 일을 다 씻어 내어 다시 깨끗해지고 싶은 마음에 더 오랫동안 욕조에 앉아있었다. 내가 안락사 시켰던 생명체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옳은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그날 저녁 뉴스에서 보니 미국 연구시설들도 나와 같은 절차를 진행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만이 영향을 받는 게 아니라 죄 없는 동물도 영향을 받고 있었다. 내가 굳게 믿었던 과학의 발전과 질병 치료를 위해 허용되었던 동물실험목적이 사라진 채 생명체가 죽어나가고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잊어서도 안 되는 하루였다.

3월 28일

모든 사태에 낙심하여 한동안 풀이 죽어있었다. 글도 써지지 않았다. 그러다 인터넷 서핑 중 특이한 공고 배너를 보았다. 하버드 및 미국 유명한 대학에서 무료강의를 연다는 것이다. 호기심 삼아 사이트에 들어갔다. 하버드를 포함한 140개 대학 및 기관들이 2000개가 넘는 강의를 올려놓았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자가격리 중인 무료하고 우울해할 시민들을 생각해 한 과목당 200~300만원 하던 강의를 공짜로 들을 수 있게 열어준 것이다. 사실 그동안 맥길에 와서 받은 박사 프로젝트는 뇌과학 분야와 밀접하였기에 뇌과학 쪽으로 좀 더 기본기를 다져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뇌과학 강의를 살펴보니 하버드에서 제공하는 강의가 시리즈로 3개나 있었다. 재미삼아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강의내용, 제공되는 애니메이션 그리고 문제풀이까지 정말로 최고급이었다. 그 외에도 재밌는 강의가 널려있어 마치 옷가게를 막 들어간 소녀 마냥 흥분해서 이것저것 다 살펴보았다.

3월 30일

자가격리를 하면서 새로운 일상이 생겼다. 서둘러 출근하지 않아도 되기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요가를 20~30분 동안 하는 것이다. 보통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멍하고, 몸이 찌뿌듯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침 요가를 시작한 후부터 머리가 맑아져 집중력도 상승하고, 몸에 혈액순환도 잘되어 몸이 하루 종일 따듯하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에 의하면 요가나 가벼운 운동은 뇌 호르몬인 엔돌핀을 만든다고 한다. 엔돌핀은 보통 연애를 하거나, 맛있고 달달한 음식을 먹었을 때 몸에서 분비하는 기분 좋은 호르몬이다. 그래서일까? 요가를 하고 나면 기분도 좋아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긍정 에너지가 생긴다.

요가는 유튜브에 올라온 ‘Adriene’ 요가 쌤이 하는 동작들을 따라한다. 마치 실제로 만난 것처럼 Adriene 쌤은 “나마시떼”라고 인사를 한 후 나와 직접 대화하듯 동영상을 이어나간다. 나도 요가 쌤이 하는 말과 동작에 집중한다. 요가 외에도 오후 4-5시쯤엔 유튜브에 올라온 근력운동을 한다. 근력 운동 쌤은 ‘Maddle Lymburner’ 라고 <Mad fit>라는 강의 채널을 운영한다. 컴퓨터 너머로 느껴지는 쌤들의 열정과 가르침을 매일 만나며 내 몸을 이해하는데 좀 더 집중하고 있다. 쌤들 고맙습니다!

3월 31일

Zoom은 자가격리 이후 필수적인 툴이 되었다. Zoom이란 2011년도 미국 사업가가 개설한 화상회의를 제공하는 앱이다. Zoom은 기존 화상회의를 제공하던 기업과는 달리 개인 보안을 철저히 해 많은 기업들이 선호하는 앱이다. 실질적으로 코로나 사태이후 Zoom을 사용하는 이용자는 67% 증가했다고 한다. 맥길에서도 Zoom을 이용해 수업을 진행하거나 교수님과 미팅도 진행한다.

우리 실험실도 Zoom을 이용하여 랩미팅을 시행하기로 했다. 아침 10시, 미리 설치된 Zoom 방에 실험실원들 하나둘씩 로그인을 했고, 일주일동안 보지 못했던 얼굴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 너무나 반가웠고, 다들 잘 지내고 있는 거 같아 안심이 되었다. 스테판도 우리를 보니 반가웠는지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고 한명씩 돌아가며 안부를 물었다. 곧 이어 랩미팅이 시작 되었고, 생기 넘치는 토론은 잠시나마 자가격리로 인한 벽을 허물어 주었다. 두시간정도 진행된 미팅이 끝나고, 다들 아쉬운 듯 인사와 안부를 전하며 회의를 종료했다. 코로나 사태이후, 인간이 발명한 많은 툴들이 자가격리의 어색한 적적함을 달래주고 있다.

<캐스트 어웨이> 영화가 생각난다. 이 영화는 추락한 비행기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Chuck(톰 행크스)이 무인도에 떨어지면서 거의 4년을 혼자 살아가는 내용을 그린 다. 주인공은 너무나 외로운 나머지 본인의 피가 묻어 얼굴형상이 생긴 배구공을 친구라 생각하고 ‘Wilson’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대화를 주고받는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은 무인도에 혼자 떨어진 상황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 적적함에 우울증이 찾아온다고 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사태가 막막하고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매일매일 하루하루 충실히 일상을 유지하며, 친구와 같은 ‘Wilson=컴퓨터’를 잘 이용한다면 잠시나마 넓은 가상의 세계를 접하면서 ‘혼자’라는 생각을 잊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Wilson’ 너도 고마워요!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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